치유의 글쓰기 106 – 나의 은인 '수연 이모' (사소)
올봄부터 이모가 이상했다. 자꾸 누가 자기를 의심하는 것 같다기도 하시고, 혼잣말도 하시고, 무엇엔가 자꾸 불안해지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안절부절못하시며 일을 중단하고 어딜 좀 급히 가셔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래도 이모가 이상해 그러시지 말고 잠시 차를 한 잔 하시자고 했다.
이모가 갑자기 가시려던 곳은 대전시장이었다. 전날, 이모는 아는 언니와 함께 대전에 있는 수입 그릇 집에 그릇을 사려갔다. 그런데 그릇 집 주인이, 자꾸 그릇과 떨어져 앉으라는 듯 의자를 멀리 주었다. 그런데 밤에 생각하자니 아무래도 그릇을 훔쳐 갈 것 같아 의자를 멀리 민 것 같았다. 너무 억울해 잠이 안 왔다. 아침까지 너무 화가나 일을 못하겠고, 그래서 어서 가서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이모의 인생에서 가해졌던 불안과, 피해의식이 이제는 망상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차분해져야 했다. 나는 이모에게
“만약 그릇 집 사장이 진짜로 이모를 의심했다면, 그것은 사장이 잘못한거고, 그런데 사장이 의심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면 그건 이모가 생각만일 수도 있는데, 그 둘 다 이모가 일부러 따지러 그 먼 거리까지 가실 필요가 없고, 그러니 이모는 불안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차근히 말씀드렸다.
이모는 들으시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떡끄덕하시고 한숨을 푸욱 쉬셨다. 그리고 왜 자꾸만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지 모르겠다고 애매햔 표정을 지으셨다.
이것저것 원인을 파악해 보니, 이모는 무료할 때마다 자주 휴대폰으로 살인사건 등 잔혹 유튜브를 시청하고 계셨다. 그리고 몇 년동안이나 매일 같이, 몇 시간이고, 전화로 무당이나 귀신 얘기를 자주하며 가스라이팅 해대는 아는 언니에게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모에게 요즘 미디어는 돈을 벌기 위해 클릭을 유도하고, 매우 자극적인 동영상으로 유혹을 하니, 절대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아는 언니와 관계도 끊으시라고 조언을 드렸다. 그리고 쉬시는 시간엔 휴대폰을 열지 마시고, 대신 그림책이나 시집을 보시거나 일기도 써 보시자고 제안을 드렸다.
마침 구름빵 책을 쓴 백희나 원화 전시회에 다녀온 후라, 거실에 여러 권의 백희나 동화책과 호미님의 시집도 있었다. 이모께 호미님의 시집을 읽어드리니 하하 호호 웃으면서 참 좋아하셨다. 이모 옆에 노트랑 색연필을 놓아 드리고 출근 하고, 돌아와보면 이모는 내게 너무 걱정말라는 손 편지를 빼곡히 써놓고 가셨다. 나는 삐뚜름한 이모 글씨체를 참 좋아한다. 집안 여기 저기 포스트잇 대신 붙인 이모의 손글씨 라벨은 날 안심시키고 편안하고 했다.
수연 이모는 십오 년 전부터, 내가 평택에 와서 학원을 하는 동안, 일주일에 한 두번 오셔서 집안 일을 도와시는 분이다. 굉장히 깔끔하신 분이라 원래 다른집은 청소만 도와주시는데, 내 사는 형편을 보니 딱하셨던지 점차 살림까지 도맡아 해주셨다. 아이들을 혼자 키우기 가장 힘든 부분은 아이들 사춘기가 와서 갈등이 있을 때였다. 이모는 그때마다 중재를 해주시고 날 위로해 주셨는데, 그런면에서 나와 아이들을 키워 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했던가? 이모는 내게 엄마이자, 이모이자 언니이며, 조용한 은인이시다. 나에게 수연 이모가 안 계셨으면 나의 오늘은 아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이모가 오시는 날, 30분 정도 말벗이 되어드렸는데, 이제 그것만으론 이모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모께, 아무래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마음 근육이 약해지니, 겁낼 게 아니라 빨리 치료를 하시자 설득을 했다. 걱정보다 이모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셨고 나는 가족분들에게도 알려야 하니 아드님 긴급 연락처를 달라했다. 그런데 이모는 가족들은 알아주지도 않는데, 신경을 써 준사람은 윤원장 뿐이라며 고맙다면서도 서글픈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던 끝에 이모는 평생,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셨다. 나는 믿기지 않아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정말 내가 그동안 이모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구나!’ 나는 바쁘게만 살았던 세월이 자꾸만 미안해졌다.
이모는 젊은 날, 장 절제 수술을 하셔서, 화장실 문제로 장시간 차도 못 타시고, 외식도 못하시고 그래서 하룻밤 이상을 밖에 나가서 주무실 엄두를 못 냈다. 이혼 하시기 전, 폭력 남편에게 시달렸던 탓도 있고, 결벽증에 새가슴인 데다 누구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시는 성격도 있었다. 게다가 일을 가시는 집들에서 일어난, 그동안 이기적이고 몰지각한 사건들로 인해 이모는 점점 더 앓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올 5월, 아빠를 보내 드린 지 두 달 만이다. 나는 제주 이시돌 자연 피정을 예약했다. 자꾸 망설이는 이모에게 절대 취소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모는 알겠다고 병원에 가서 위장약을 지어 짐을 챙기셨다. 떠나기 전날 비행기가 뜨니 못 뜨니, 폭풍이 온다고 이모는 설렘 반 두려움 반 소풍을 앞둔 어린애처럼 여러 번 톡을 하셨다. 나는 놀러 가는 날은 항상 하느님께서 화창한 날씨를 하늘에 걸어주시니 걱정 마시라 안심시켜 드렸다. 하지만 차에 타신 이모는 비옷 두 개에 우산도 챙기는 등 만만한 준비로 가방이 몸집보다 컸다. 청주 공항에서 비행기가 뜰 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모는 비행기도 불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데, 제주에 비행기가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었다. 이모는 역시 윤 원장이 날씨 요정이라는 게 진짜인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이시돌 피정의 집에서 이모랑 보낸 2박 3일. 조미료를 덜 쓴 식사는 단백하고 맛있었다. 이모는 남이 해주는 밥이 젤 맛있다고 하셨다. 이모는 크리스천이시지만 신부님께 이모를 위한 안수를 부탁드렸는데, 감사하게도 흔쾌히 받아주셨다. 나는 미사를 드리고 신부님께 내 일생의 첫 고해를 했다. 신부님은 정성을 다해 우리 둘에게 차례로 안수를 해주셨다.
이모랑 처음, 단둘이 자는 밤, 평화롭게 함께 수분 팩을 하고 우린 아무 걱정 없이 나란히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미용실을 개장했다. 가져간 드라이로 이모 머리를 말아드리고 왕년에 메이크업 강사에게 단독 화장을 받으시는 거라며 한껏 추켜세우며 화장도 해드렸다. 이모의 미모가 화안이 피어났다. 사실 이모는 좋은 집에서 태어나 돌봄을 잘 받으셨으면, 탤런트가 되고도 남을 미모를 지니신 분이시다. 게다가 매우 영민하고 지혜로운 분이신데,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셨고, 선크림도 하나 안 바르고 다니셨던 것이다.
아침에 변신하신 이모를 보고 피정 온 팀원들은 밤새 무슨 마술이 일어난 거냐고 탄성을 질러댔다. 이래 뵈도 이모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데리고 다니는 분이라 하며 나도 기분이 으쓱했다. 자꾸만 부끄러워하시는 이모를 카메라 프레임에 담으니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구나!’ 싶었다. 나는 이모를 따라다니며 되도록 많은 사진을 찍어드렸다. 이모는 싫다면서도 잘 찍힌 사진을 보여드리면 좋아하셨다. 섭지코지랑 곶자왈, 제주도 산과 들, 바닷가를 나는 맨발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이모도 머리카락과 스카프를 휘날리며 웃고 또 웃으셨다. 나와 이모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무람없이 섞여 잘 놀았다.
그 후 이모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고, 많이 위험하지 않다는 결과를 받으셨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이모 얼굴에 그때의 불안한 표정이 거의 사라졌다. 다시 웃음도 찾으셨다. 오늘 이모는 날씨가 좋다며 갑자기 그때 제주도 여행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얘길 하신다. 나도 그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사람에게 행복이란 게, 이렇게 함께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축복 아닌가?
햇살 좋은 가을이 어서 갈지 모른다. 나는 이모 오시는 날, 당진에 여행을 가자고 했다. 이모가 다시 활짝 피어나시면서 집안을 이리저리 나비처럼 발뒤꿈치를 가볍게 다니셨다. 학원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 할 무렵, 이모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바위만큼 커다랗고 빠알간 하트풍선 이모티콘을 내게 보내셨다.
통통통 탄력 있게 넘실넘실 꿈틀꿈틀 굴러오는 빨간 하트 풍선! 나는 거기 깔린다 해도 하나도 안 아플 것 같다.
첫댓글 피정을 누구랑 같이 갈수도 있는거였네요.
그리고 첫 고백성서보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그곳에 가서 사람들이 성지 순례나 피정을 왜 떠나는지 알게 되었어요.
돈에 의해 관계의 우위가 결정되고 일이 정량화되는 이 시대에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담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시는 사소님과 수연 이모의 삶을 응원합니다
ㅎ 이모님이 제게 권력자예요. ^^
가족처럼 따듯한 사랑과 정이 느껴지는 수연이모와 사소님 두 분의 관계를 저도 응원합니다!!
이모님이 내일 오시면 응원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ㅎ 말씀드려야겠어요.
비틀거릴 때 손을 내밀고 등을 내줄수 있는 사람인지 저를 돌아봅니다
치유와 평화가 이미 두분 안에 있네요 ^^
저는 그런면에서 복 받은 사람 같아요. 아마 글로리아님도 계시지않을까요?
사소님,
너무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사소님은 사랑입니다^^
골짜기백합님이야말로 항상 따스하시고 댓글 하나 하나에 사랑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사람들> 중 "Clay"(진흙)를 읽는 느낌이 듭니다. 짱!
호미님! 덕분에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사람들>을 읽고 있어요. ' 진흙' 이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거든요. 맨 마지막에 마리아가 부른 노래를 조수미가 불렀네요. 보헤미안 소녀
https://www.youtube.com/watch?si=guPZofvR2YIW6YJO&v=iI3x1pKLUAQ&featur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