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처족의 처남 항렬인 남자가 나와의 나이 서른 차이가 나는 사람 이야기다. 필자와는 완전히 한 세대를 먼저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결혼해서 보니 그 사람은 첩으로 다섯 번째 여자와 살고 있었다. 엄연히 본처가 있음에도 역마살이 돋은 사람이라 온 천지로 떠돌아다니며 사는 버릇의 특이한 인생이다. 본처가 3남매를 키우며 숨 막히는 고생으로 살고 있고 둘째 부인도 3남매를 데리고 온갖 궂은일 다 겪으며 혼자 키우고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부인은 말만 들어서 얼굴은 모른다. 다섯 번째 첩은 전남편의 자식과 함께 친아버지처럼 살고 있었다. 시쳇말로 여자 복이 넘친 인물이다.
두 번째 부인은 생활능력이 강해서 남편이 간헐적으로 드문드문 찾아와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 돌아다니다가 용돈이 떨어졌나 싶게 찾아와서는 장사 밑천할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기를 떠나 돌아다니다가 오니 얄밉기도 하다. 그러나 미운 마음은 금방이고 만나는 반가움이 앞서 정답게 맞아주기가 버릇되었다. 셋째를 찾아갔었나 아니면 넷째를 찾아 갔으면 오지 말아야지 하고 퍼붓고 싶었다. 얼굴 대하기 전까지는 오기만 해봐라! 멱살을 잡고 흔들어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오랜만에 만나 얼굴을 대하니 반가운 정이 먼저 든다. 이게 여자의 약한 마음인가 싶었다.
하룻밤 자면서 어렵게 내뱉는 말이 사업하려니 자금이 부족하단다. 많은 돈도 아니고 천만 원만 있으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단다. 이웃 보기에도 남편을 너무 차갑게 대해 자주 오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그래도 간혹 나타나서 남편이 있는 젊은 여자라는 낌새를 주위에 퍼뜨려 주는 일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여자가 아이 데리고 남편 없이 산다는 구차함을 남에게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업신여기지 않기에 말이다. 이런 식으로 둘째 부인에게 돈을 뜯어 가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포장마차로 연명하며 자식 교육은 혼자 도맡아야 하는 일이었다. 남편은 마치 뻐꾸기처럼 자기 새끼는 아랑곳없이 버리고 유흥이나 즐기는 처지다. 저런 남자에게 무슨 연유로 여자들이 사족을 못 쓰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기에 애첩과 다섯 여자를 거느리도록 로맨스로 평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니 말이다. 사주팔자 이야기에나 있을 법한 일이 바로 현실의 실재 이야기다. 본처와 두 번째 부인은 가족의 행사나 제사 때는 자주 만난다. 둘째 부인은 남편의 흉을 거침없이 뱉어내 가족을 모두 웃게 하기도 곧잘 한다. 자기들 남편이 죄가 많아서 죽을 때는 모진 고통을 느끼며 죽어갈 것이라고 한다. 남들은 한 사람의 부인을 데리고 걱정시키지 않고 살지만, 남편은 다섯 여자를 건드려서 모두 고생시킨다고 비아냥이다. 아무래도 죽어서 독사지옥에 갈 것이 뻔하다고 믿었다.
하루는 느닷없이 헐레벌떡 나타나서 큰일 났다는 시늉이다. 무역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금 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부도 직전이란다. 길게 잡아 1개월만 넘기면 자금 회전이 온전해진다는 이야기다. 둘째 부인은 아무리 속지 않으려 했지만, 그냥 들은 체 하기는 참아 넘길 도리가 없었다. 1개월만 기다린다면 살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아 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아버지를 도와주어야 한단다. 아비가 자식들 마음을 언제 사로잡았다는 일이다. 인감을 발급받아 은행 대출금을 넘겨받자마자 휑하니 가 버렸다. 그러나 1개월이라는 기일이 일 년을 넘어 몇 년을 기다려도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는 속지 않으려던 작심이 또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늘이 노랗고 번개가 치는 듯한 절망을 느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막막하다. 기어이 집을 처분하고 월세방으로 눈물을 머금고 이사를 했다.
큰아들과 딸은 중학교밖에 보내지 못하고 둘째 아들은 당시 명문고 00 상고에 들어가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외환은행에 취직이 되어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은행에 입사할 때에는 재정보증이 큰 문제였다. 재정보증 서줄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이다. 중산층이라는 조건이 따라오는 사람의 보증이 반드시 있어야 취직된다. 고향에 가도 큰 동리에 재정보증 대상자가 다섯 손가락도 채우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다. 하는 수 없이 본처의 친정 동생과 6촌 시동생을 재정보증자로 허락을 받아냈다.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얻어낸 보배로운 일이다. 이런 일은 모두 남편이 해야 할 의무사항이다. 본처인 형님의 허락도 어렵지만, 순순히 허락했으나 그분의 남동생이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을 일이었으나 자형을 믿지 않고 조카를 믿기 때문에 보증 인감을 날인해 주었다. 고맙기 그지없는 마음이다. 그래서 그 아들은 나중에 서울의 외환은행 지점장이 된 인물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이 이제 죽음의 지경에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간 경화증이 심하여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소리를 들은 둘째 부인은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렵게 모은 피 같은 돈을 날리고 생계를 마련키 위해 집을 팔고 셋집에 살면서 겨우 연명한 일인데, 인제 와서 말도 안 될 소리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냉정히 거절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은 달랐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아버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자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수밖에 도리 없었다. 아이들과 찾아가 보니 서울의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의사의 판단으로 간 경화증 말기라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겉보기엔 멀쩡하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부인과 자식들은 혈족이 아니라도 가족애는 극진했다. 서울에는 자기 명의의 임대아파트에 살았단다. 본처는 너무 늙어 돌아갈 수도 없고 둘째 부인 집으로 데리고 왔다. 본처는 이미 오래전부터 별거로 남이나 다름없는 처지다.
대구의 집에 병든 남편을 데리고 오니 기르던 개가 나선 사람이라고 물어버릴 듯 악을 썼다. 둘째 부인이 혀를 차며 남편에게 대하는 너그러운 표정을 읽고 금방 조용해진다. 개도 금방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표현을 한다. 이 개가 주인을 알아본다고들 모두 한입 같이 말한다.
"봐라. 짐승인 개도 가족을 알아보는데 사람이라는 동물이 가족도 몰라보고 평생을 떠다닌 일 아닌가? 짐승보다 낫다고 할 일이 뭐가 있나 말이다."
처음 오는 사람은 모두 개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남편을 주인과 다름없이 조용하게 대하는 개가 기특하다. 개가 처음 보는 주인을 제대로 알아보았다.
( 글 : 박용 20190705 소설로 쓰고 있는 중이니 표절은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