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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4일 오늘의 역사
2024년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대표 브라이언 톰슨 괴한 총격에 사망
2023년 서울서 세계최초 심야 자율버스 운행
서울시가 12월4일 밤부터 세계 최초로 심야 자율주행버스의 정기운행을 시작한다.
자율주행버스는 합정역과 동대문 사이 중앙버스전용차로 9.8킬로미터 구간을 순환하며, 오늘을 시작으로 평일 밤 11시 반부터 다음 날 새벽 5시 10분까지 운행한다 요금은 당분간 무료이며, 일반 시내버스와 동일하게 교통카드를 찍고 승하차 해야 환승할인이 연계가 된다.
2022년 인도네시아 동자바주 스메루 화산이 화산재를 내뿜는 등 분화를 시작.
2021년 권지안(솔비), ‘2021 바르셀로나 국제 아트 어워드’ 대상 수상
가수 겸 예능인 화가 솔비가 2021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 아트페어(FIABCN)에서 진행된 '2021 바르셀로나 국제 예술상(PIAB21, The Premi Internacional d’Art de Barcelona)'에서 영예의 대상인 '그랜드 아티스트 어워드' 국제 예술상을 수상
2021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있는 스메루 화산이 분출 13명 사망 100여 명 부상
2021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김근태를 기리는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
2017년 후티 반군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맨 대통령 살해
후티 반군이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을 살해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후티 반군은 언론을 통해 살레 전 대통령을 살해하고 그의 자택을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는 살레 전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찍힌 영상도 올라와 해당 주장을 뒷받침 했다. 살레 전 대통령은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이듬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후 반군과 연대해왔다. 그러나 살레를 지지하던 무장 대원들과 후티 반군이 갈라서며 양측은 사나에서 전투를 해왔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이날 "지난 5일간 전투로 최소 125명이 죽고 23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2012년 태풍 보파 필리핀 강타 사망 902명 실종 934명 이재민 550만명
2008년 세종증권 매각 비리, 노건평씨 구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6)씨가 지난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수재)로 2008년 12월 4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노씨는 지난 2006년 2월 세종증권 대주주인 세종캐피탈의 홍기옥(59·구속) 사장으로부터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성사시켜 준 대가로 정화삼(61·구속)씨 형제를 통해 29억6300만원이 예치된 통장과 도장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2002년 국내 2위 광고회사 LG애드 외국회사에 매각
1999년 요르단 후세인국왕 방한
1999년 ‘유럽최고 신랑감’ 필립 벨기에 왕세자 결혼
벨기에 왕세자 필립(39)이 4일 열세살 연하인 전직 언어교정사 마틸드 두데켐 다코즈(26) 양과 유럽 왕실의 20세기 마지막 결혼식을 올렸다.
필립 왕세자 부부는 먼저 고딕식 건물로 유명한 브뤼셀 시청에서 공식 결혼식을 올린 뒤, 다시 생-미셸 대성당에서 가톨릭식 결혼식을 치렀다.
왕실 전통에 따라 축포 101발이 발사됐으며, 왕궁에서 시청을 거쳐 대성당까지 왕세자 부부가 가두행진을 펼친데 이어 결혼식 후에는 축하비행이 있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학했고, 벨기에 공군의 전투기 비행사로도 활약했다. 신부 마틸드는 지방 귀족의 딸로, 필립이 왕위에 오르면 169년의 벨기에 역사상 최초로 벨기에 태생 왕비가 된다.
1999년 남대문시장내 대도마켓 건물 화재로 인근 5개건물과 내부 1천평 전소, 23억원 피해
1998년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 인천상공서 오발 사고
1997년 초대 통일원 장관 이용희 박사 별세
초대 통일원 장관을 지낸 동주 이용희(81) 박사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75년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로 관계에 나올 때까지 서울대 교수로서 한국 국제정치학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대우재단-세종연구소 이사장, 아주대 총장 등을 지냈다.
우리나라 국제정치학의 탄생을 알린 것으로 평가되는 저서 ‘일반국제정치학(상)’(1962년)에서 그는 “국제정치는 강대국의 시각이 아니라 내 땅, 내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제창, ‘한국 민족주의’(1977년) ‘한국과 세계정치’(1987년)에 이르기까지 주체적 학문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동주는 연희전문 시절 위창 오세창에게 그림보는 눈을 배운 이래 당대의 감식안이자, 수장가로서 평생 한국미의 탐색에도 정열을 기울였다.
1996년 미국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 발사
미국의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가 1996년 12월 4일 새벽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기지를 떠나 화성으로 발사됐다. 3백60kg의 패스파인더는 발사된지 7개월 만에 1억9천1백만km 거리의 화성에 도착, 광할한 아레스 밸리스 평원에 연착륙했다. 패스파인더는 무인우주선으로는 사상 처음 직경 1m 가량의 풍선 24개에 의존해 착륙했다.
탐사선은 모선 ‘프로브’와 탐사로봇 ‘소저너’로 나뉘어 있다. 프로브는 착륙지점에 정착해 소저너를 풀어준 뒤 대기를 분석, 자료들을 지구에 전송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흑인노예 폐지론자 소저너 트루소의 이름을 딴 소저너는 초속 1cm 정도의 거북이 걸음으로 축구장만한 크기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질 탐사활동을 벌였다.
1996년 한국-칠레, 통신협력협정 체결
1991년 서울 남대문시장 내 대도마켓 건물 불 인근 건물 5개 1천평 전소 피해 23억 원
1990년 사상 첫 우주특파원 탄생, 일본 TBS의 아키야마 도요히로 기자 태운 소련우주선 TM1호 발사
1984년 쿠웨이트기 공중피납, 테헤란공항 착륙
1983년 베네수엘라 총선 야당 승리, 루신치 대통령 당선
1982년 영화 ‘ET’ 개봉
미국 영화계의 귀재로 일컫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ET’가 1982년 12월 4일 미 전역에서 개봉됐다. ‘The Extra Terrestrial’의 약칭인 ET는 외계인이란 뜻이다.
한 외계인과 지구어린이와의 흐뭇한 우정을 그린 ET는 개봉 1개월 만에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넘어섰고, 3개월 만에 2억9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스타워즈’의 기록을 깨고 흥행사상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ET는 난쟁이(1m 10cm)에 부엉이 눈을 한 괴상한 몰골의 외계인이 UFO를 타고 지구에 와 낙오됐으나 한 소년의 도움으로 다시 자기의 별로 돌아간다는 줄거리로, 둘 사이에 싹튼 뜨거운 우정이 현대문명에 찌든 관중들에게 감동의 심금을 울렸다는 평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 5월에 개봉돼 ET붐을 일으켰다.
1982년 제9회 아시안게임 폐막, 한국 금 28개로 3위
1981년 소련, 극동전역(戰域) 핵제한협정에 중국 참여 촉구
1980년 일본내 반(反)한단체. 김대중 재판항의 빙자로 주(駐)요코하마 한국총영사관 난입
1979년 김재규 등 8명 첫 공개재판
1979년 10월 유신체제 말기 정치세력간의 갈등이 날카롭게 빚어짐에 따라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김재규가 직속부하인 박선호, 박홍주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사건(10.26사태)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1979년 12월 4일 계엄보통군법회의 첫 공개재판을 받았다. 이후 12월 18일 결심공판이 오전10시 육군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재판장 김영선 중장, 법무사 황종태 대령 심리로 열렸다. 재판 결과, 육군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김재규, 김계원, 박홍주, 박선호에게 사형이 선고됐으며, 김계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1977년 당대 최고 남자 고전 무용수 에글레프스키 사망
1974년 네덜란드 전세기 DC-8기 스리랑카 콜롬보 부근서 추락, 191명 사망
1973년 남북조절위 제1차 부위원장회의 개최
1970년 서울 남산2호터널 개통
남산2호터널은 중구 장충동 산7-22번지 반포로의 일부로 건설된 도로시설물로서 1970년 12월 4일 준공되었다. 터널 높이 4.5 m, 차도 폭 7.2m, 연장 1,620m이며, 공사비는 18억 1,500만원이 투입되었다. 남산2호터널의 건설로 서초구 방면의 남북축의 교통 동선이 되어 강남개발이 촉진되었다. 한편 남산2호터널은 1970년 7월 3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30호에 의해 유료도로가 되었다. 징수기간은 1970년 8월 15일~1990년 8월 14일까지이며, 요금체계는 승용차,3륜차 60원, 2륜차 30원, 화물차,버스 90원, 특수차 120원이었다. 1974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890호에 의해 징수기간은 1970년 12월 15일~2000년 12월 14일까지로 연장되고, 요금은 승용차,3륜차 30원, 2륜차 20원, 화물차,버스 50원, 특수차 60원으로 대폭 인하되었다. 1975년 5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47호에 의해 요금체계가 조정되었는데, 승용차 50원, 3륜차,2륜차 20원, 화물차,버스 50원, 특수차는 100원으로 인상되었다. 1979년 8월 14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348호에 의해 전 유료도로의 요금체계가 획일화되었는데, 2륜,3륜차가 각 50원, 승용차,화물차,버스는 각 100원, 특수차는 200원으로 조정되었다. 1982년 7월 3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664호에 의해 전 유료도로에 있어서 차종에 불구하고 100원으로 통일되었다. 1993년 7월 3일 서울특별시조례 제3009호에 의해 남산2호터널의 유료도로는 폐지되었다.
1969년 제주도서 당나라 때 엽전 2만개 발굴
1966년 조나단 레소토국 수상 내한, 국교수립에 합의
1964년 본에서 한-독 경제협정 체결
1961년 근로기준법 개정(해고의 예고, 퇴직금제 신설)
1959년 대법원, 박태선 장로 원심 1년 파기하고, 징역 1년6개월 언도
1958년 일본-소련 무역의정서 조인
1958년 영국 로이드 외상, 유럽에 군비관리지대 설치를 제안
1954년 유엔총회, 원자력 평화이용결의안 채택
1954년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수
1950년 유엔군 평양 철수
1948년 중국 장야(江亞)호 폭발·침몰 사고
1948년 12월 4일 중국에서 일어난 장야(江亞)호 참사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낸 해양사고다. 정원이 2,250명이었으나. 당시 중국 국공 내전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약 4,600여명이 탑승했다고 알려져 있다.
피난민을 잔뜩 태우고 떠난 배는 상하이 북쪽 80㎞ 떨어진 황푸(黃浦)강 하구에서 폭발과 함께 침몰해 3,9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정확한 사망자 수도 집계되지 않았다. 승객 2,750~3,920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700~1,000명의 승객이 다른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사고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설치해놓은 기뢰에 부딪혀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47년 불가리아, 터키로부터 독립
1945년 초파리 실험으로 염색체 유전설을 확립한 미국의 유전학자 모건 사망
1922년 조선사 편찬위원회 설치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 12년째. 조선총독부는 훈령(訓令) 제64호로 1922년 12월4일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 본격적인 한국사 왜곡에 착수했다. 박은식의 '한국통사(1915)'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고취된 민족의식과 3.1운동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항일독립운동의 기운을 희석시키기 위해서였다.
총독부 정무총감이 위원장을 맡았고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등 친일파 인사들이 고문으로 추대됐다. 이들은 조선사강습회를 개최하고 ‘조선사 강좌’(1923-1924)를 간행하는 등 왜곡된 역사를 토대로 부정적인 역사인식을 주입함으로써 조선인의 민족혼을 순치시켰다. 또 역사왜곡을 위해 분서(焚書)도 서슴지 않았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寺內)는 전국에 있는 한국사 관련 서적색출에 나서 이미 ‘단군조선’ 관련 고사서 등 20여만권을 수거, 불태운 바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사편찬 사업이 순조롭지 않자 사이토 총독은 격을 한 단계 높인 ‘일황 칙령 218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해체하고 ‘조선사편수회’를 출범시킨다. 총독부 직속 독립관청으로 승격시켜 한국사 연구의 총본산으로 삼고 ‘조선사’ 간행을 서둘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1937년 ‘조선사’가 완간된다. 전35책 2만4000쪽 분량. 한민족의 역사는 외세에 의해 좌우된 타율적인 역사였으며, 수천년 발전이 없는 정체된 역사였다는, 이른바 ‘식민사관’의 결정판이었다
1922년 일진회장 이용구, 한일합방 상주문-청원서 제출
1922년 프랑스 배우 제라르 필리프 출생
1920년 독일 스파르쿠스단 독일통일사회당 결성
1916년 영국 로이드 조지 전시내각 성립
1908년 만국해군회의 런던에서 개최
1904년 일진회, 진보회와 통합
1899년 독립신문 4년만에 폐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이며 한국역사상 최초로 인쇄된 한글 전용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이 창간 4년만인 1899년 12월 4일 폐간됐다.
독립신문은 한글전용으로 민중을 위해 알기 쉬운 신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신문사상 획기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한국사회의 발전과 민중의 계몽을 위해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한 시대의 기념비적인 신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신문은 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과 개화파가 합작
하여 1896년 4월 7일 창간, 처음에는 가로 22cm, 세로 33cm의 국배판 정도 크기로
4면이 발행됐다.
1면 머리에는 ‘논설’을 싣고, 이어서 ‘관보’, ‘외국통신’, ‘잡보’의 순으로 1면에서 2면으로 넘어가면서 기사를 배치한 뒤에 3면에는 광고를 실었다.
광고는 영문과 한글 2종류였다.
4면은 영문판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로 편집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897년 1월부터는 한글판과 영문판을 분리하여 두 개의 신문으로 발행했다.
독립신문은 19세기 말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담아내고 민중계몽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민간신문이었으나 정부의 탄압과 수구세력의 미움을 사게 되고 핵심인물이 바뀌는 등
혼란을 겪었다.
결국 이날 정부가 서재필에게 4천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독립신문의 판권과 인쇄시설을 매수했고 이날부터 독립신문은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았다.
언론계는 1957년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의 탄생을 기념하고 신문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 있다.
1897년 그리스-터키 콘스탄티노플 평화조약 체결
1892년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출생
1890년 독일 세균학자 베어링 혈청요법 발명
1884년 갑신정변 발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당이 일본의 힘을 이용해 청에 의존하려는 민씨 중심의 세력을 물리치고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1884년 12월 4일 정변을 일으켰다. 이른바 `갑신정변`이었다.
본래는 이날 열린 우정국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안국동 별궁에 방화한 후 척신들이 왕이 있는 궁궐로 급히 돌아갈 때에 이들을 모두 암살할 참이었다. 그러나 방화 계획이 실패하자, 김옥균 등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고종에게 청국군이 변을 일으켰다고 하며, 일본군의 호위를 청해 경우궁으로 국왕을 모셨다. 이들은 이어 궁으로 들어오는 윤태준, 한규직, 이조연, 민영목, 민태호 등 사대당 일파를 살해하고, 다음날인 5일에 각국 공사-영사들에게 신정권의 성립을 통고했고 6일에는 새정부가 앞으로 단행할 개혁정치의 내용을 담은 14개조로 된 `신정강`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원세개가 이끄는 2천명의 청국군이 출동해 일본군을 패퇴시키자 정변은 실패하고 말았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으나 홍영식, 박영교 등은 청군에 의해 피살됐다. 이로 인해 청-일 양국의 한국쟁탈전이 더욱 격화됐다.
1875년 독일 시인 릴케 출생
1871년 독일 금본위제 채택
1795년 영국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 출생
1792년 루이16세 재판 개정
1679년 영국의 철학자, 정치 이론가 토마스 홉스 사망
1649년 스코틀랜드 시인 윌리엄 드러먼드 사망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폐막
1517년 마틴 루터가 가톨릭의 부패상을 고발하는 95개 조항을 발표하면서 촉발된 종교개혁이 들불처럼 유럽전역으로 번져가자 로마 가톨릭이 해법을 찾기 위해 트리엔트공의회가 소집됐다.
공의회(公議會)는 교회의 교의(敎義)나 규칙 등 중요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교황이 소집하는 가톨릭 최고회의로, 트리엔트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이름이다.
1545년 12월 13일 교황 바오로 3세가 제안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가 동의해 소집된 트리엔트공의회가 1563년 12월 4일에서야 폐막됐다.
18년동안 논의가 두 차례나 중단되고 교황이 세 사람이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다행히도 쇠퇴해가던 교세는 회복할 수 있었다. 신·구약성서를 정경(正經)으로 확정하고 라틴어 성서 ‘불가타(Vulgata)`가 교리를 증명하는 데 유효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성서에 대한 논란도 잠재웠다.
이로써 공의회 결과 종교개혁의 원인이 된 많은 악습은 사라지게 됐지만, 신·구교간의 분열은 더욱 심화돼 서방 기독교 세계의 절반이 로마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기존의 질서와 권위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졌고 신앙심의 굴절을 겪었다. 종교개혁이 몰고온 시대의 대세였다.
897년 신라, 진성여왕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