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6 주일설교
이제는 빚을 갚을 때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
매사추세츠 노스필드 (헐몬산 수양회 현장)
도입: 140년 전 이 주간, 이곳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미국 Massachusetts Northfield입니다. 이곳 노스필드는 전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성령의 폭발이 일어났던 영적 발원지입니다. 노스필드는 복음전도자 D.L. 무디의 출생지이며 고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디엘 무디의 초청으로 전국의 기독 대학생 251명이 바로 이곳 헐몬산 학교 캠퍼스에 모였습니다. 제1회 헐몬산수양회 기간은 1886년 7월 7일부터 8월 1일까지 4주간인데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지금은 그 마지막 기간과 겹칩니다.
헐몬산수양회의 공식 명칭은 ‘Summer School for Christian College Men’(기독교인 남자대학생 여름학교)이었습니다. 즉 당시에 모였던 251명의 대학생은 모두 남학생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무디는 노스필드 여학교와 헐몬산 남학교가 따로 세웠는데 수양회가 모인 곳은 노스필드 여학교 캠퍼스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헌신한 최종 장소는 헐몬산 남학교 채플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선교의 열정으로 모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7월 중순을 지나며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이 자리를 뒤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들은 매일 밤 숲과 들판에 엎드려 세계 복음화를 위해 통곡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7월의 마지막 주간에 251명의 참가자 중 100명의 청년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생애를 선교사로 던지겠다고 서약하는 ‘헐몬산 100인의 서약’이 이곳에서 일어났습니다. 2026년 7월 26일 오늘이 7월의 마지막 주일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140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수협(모든성경의신적권위수호운동협회) “내한 선교사 신앙 탐방” 팀을 이 기간에 그 결단의 현장, 이 노스필드 들판에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140년 전 청년들의 심령을 깨우셨던 하나님의 엄숙한 타임라인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셨음을 여러분은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전개: 2만 명의 파송과 한국 교회가 진 복음의 빚
140년 전 이곳 노스필드에서 타오른 불길은 단 한 번의 집회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수양회는 전 세계 선교 역사를 바꾼 ‘학생자원운동(SVM)’의 공식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양회가 끝난 1886년 8월 1일, 헐몬산수양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100인의 청년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자리에 임한 선교의 불길을 우리끼리만 나누고 끝낼 것인가, 아니면 미국 전체 대학으로 퍼뜨릴 것인가?” 그들은 그 불씨를 전국에 전할 순회 전도단을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두 명의 청년을 대표로 선출했습니다.
그 대표자는 바로 프린스턴 출신으로 헐몬산의 기도를 주도했던 로버트 와일더(Robert Wilder)와 같은 프린스턴 출신의 동역자 존 포먼(John N. Forman)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선교사로 보냈듯, 헐몬산의 100인은 이 두 청년이 전국 대학을 순회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얇은 주머니를 털어 여비를 모아주었습니다.
1886년 가을 학기가 시작되자 로버트 와일더와 존 포먼은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방문했는데 1년간 무려 167개 대학을 방문하여 청년들에게 헌신을 도전했습니다. 1년간의 순회 사역을 통해 헌신자는 100명에서 2,10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바로 그때 코넬대학 출신의 천재 행정가 존 모트(John R. Mott)가 흩어진 여러 선교 모임들을 하나로 묶어 1888년 12월에 거대한 연합 운동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모임이 바로 “해외 선교를 위한 학생자원운동”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 SVM입니다.
학생자원운동의 공식 모토는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이었고 공식 서약문은 헐몬산에서 썼던 그대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나는 해외 선교사가 되기를 목적한다”을 그대로 채택했습니다. 원래 이 서약문은 프린스턴의 서약문이었는데 헐몬산수양회의 서약문을 거쳐 학생자원운동의 서약문이 되었습니다.
새롭게 조직된 학생자원운동은 4년마다 수만 명이 모이는 국제선교대회를 개최했고 이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무려 10만 명의 청년들이 선교를 서약했습니다. 실제로 그 가운데 20,500명이 해외로 파송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선교 열정의 수혜는 단연코 조선이 입었습니다. 20,500명 가운데 수백 명이 조그만 조선 땅으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한 선교사 신앙탐방을 출발하기 전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역에서 만났던 돌비석들을 기억하십니까? 지금은 그저 이름만 희미하게 보이는 돌비석이지만 그 비석 하나하나는 한 생명, 한 생명의 표시입니다. 그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알려지지도 않고 어디에 붙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나라 조선에 와서 헌신하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자신과 어린 자녀들이 풍토병에 걸려 선교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그중에는 “내가 조선에 준 것은 내 전 생애였다”라고 고백했던 선교사들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장로교 선교의 초석을 놓았던 프린스턴 출신의 언더우드,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예일의 지성을 버리고 조선의 영혼을 품었던 조지 존스, 그리고 조선인과 똑같이 먹고 입다가 황해도 소래에 뼈를 묻은 캐나다 출신의 매켄지 선교사 등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귀한 분들입니다. 역사신학자 오덕교 총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초기 선교사 중에는 본교에서 수석 혹은 차석으로 졸업한 수재들이 많았습니다.
이 거장들이 바로 이곳 노스필드 수양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불길을 장착하고 태평양을 건너온 청년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가 누리고 있는 신앙의 자유와 축복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곳 노스필드에서 시작된 2만 명의 눈물과 희생 위에 세워진, 거대한 복음의 빚입니다.
본문: 무너진 서구 교회와 말씀 전파를 위한 명령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를 향해,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해 무겁고 엄숙한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1-2)
바울은 모든 인생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엄하게 명령합니다. 부탁도 아니고 권고도 아니고 명령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조건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입니다. 이 말의 원문은 εὐκαίρως ἀκαίρως인데 “좋은 때이든지 나쁜 때이든지”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전도가 매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요즘은 전도가 어려워.”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복음 전하기에 좋은 때가 언제 있었나요? 바울이 전도할 당시 로마는 전도하기에 좋은 때였나요? 바울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전도했고 결국 이렇게 고백합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에서 보듯이 바울은 목숨을 걸고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우리에게 전도하기 좋은 때이든지 나쁜 때이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엄히 명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명령인 줄로 믿습니다.
바울이 이 명령을 내린 이유는 3절에 나옵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두며 진리에서 돌이킬 시대가 올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 바로 그러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했던 거룩한 신학교들이 이제는 자유주의의 물결에 밀려 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파수해야 할 강단들이 고사(枯死)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의 원인을 다수의 목사들이 세속적 가치관에 점령당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그 진단은 위험합니다.
원인을 세속화로 보는 진단은 당연히 회개 운동을 처방으로 내놓겠죠. 그렇게 하면 할수록 교회는 사회 개혁을 부르짖는 집단이나 윤리 실천 기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교회가 거룩한 삶을 살면 전도는 저절로 되고 부흥이 저절로 온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진단이고 처방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거룩해야 합니다. 신자는 당연히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주된 사역은 헌신과 봉사가 아니라 말씀전파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침체하는 이유는 우리가 착하게 살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말씀을 전하지 않아서입니다. 가장 완벽한 삶을 사신 예수님도 치유와 밥퍼사역에 주력하지 않고 말씀 전파에 주력하셨습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봉사와 밥퍼 사역에 힘쓰라고 하지 않고 말씀을 전파하라는데 힘쓰라고 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말씀을 전파하지 않는 것인데 그렇게 된 이유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비평학을 인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신학교를 점령하고 성경을 난도질하기에 더는 성경을 들고 말씀을 전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기에 성경이 말하는 교훈을 필요에 따라 바꾸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가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 본 대로, 지금 미국에서 보고 있는 대로 신학교와 교회들이 무지개 깃발을 내걸었습니다. 성전환은 명백한 창조 질서 위반이고 동성애는 가장 문란하고 지옥에 갈 죄이지만 사람들은 사랑을 내세우며 동성애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공급 기지였던 미국 교회가 영적으로 무너져 내린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앞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라고 외치십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임을 확실히 믿는 것을 전제합니다.
결론: 2026년 7월 26일, 우리의 결단
하나님께서 왜 140주년이 되는 2026년 7월 26일에 우리를 노스필드 이 현장에 세우셨습니까? 과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이 땅이 영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을 때, 이제는 복음의 빚을 가득 진 한국 교회가 영적 방파제가 되어 이 세대를 깨워야 한다는 경종입니다.
과거의 역사에 머물러 감상적인 추모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가슴에 품었던 그 순수한 복음의 원형, 정통 보수 신학과 뜨거운 전도 야성을 다시 수혈받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찾아갈 다음 장소는 그레셤 메이천 박사가 자유주의에 물들어 성경을 난도질하던 프린스턴을 나와 정통 보수 신학을 사수하기 위해 세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방문하면서 140년 전 노스필드의 이 들판에서 타 올랐던 복음의 야성이,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만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스필드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방문하면서 이렇게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선교사들이 흘린 피로 세워진 우리 한국교회를 이 시대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빚을 갚는 재 파송의 주역이 되게 하사, 우리가 밟는 미국의 무너진 캠퍼스마다, 강단마다 다시 복음의 불길을 지피는 거룩한 불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40년 전 청년들이 인생을 걸고 서약했던 것처럼, 오늘 이 예배가 우리의 심령 속에 바른 신학을 사수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겠노라 다짐하는 결단의 자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