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소망♡
24.08.04(일)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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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속에서 여름을 지내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함께 은혜받을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잠시뿐인 세상 것들에 소망을 두고 살기도 합니다. 소망 없는 삶은 없습니다. 소망은 삶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곱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평생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산 삶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둔 소망 때문에 역경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결국 하나님께 선택된 복의 계승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품은 소망 때문에 험한 인생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인생의 역경을 이야기할 때 야곱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그의 인생길은 가시밭길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장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장자는 야곱의 형, 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에게 주어진 장자의 권한을 빼앗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유대민족은 장자의 권한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장자는 아버지 재산 대부분을 상속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녀에게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축복권과 저주권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장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은 장자의 권한을 목숨과 같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바뀔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맏아들로 태어나야만 장자가 되는 것인데, 간혹 첫아들 장자가 사망한다던가 아니면 장자가 심각한 죄를 범했을 때는 바뀔 수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정하신 바에 따라서 바뀔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몹시 허기져있는 형, 에서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바꾸기로 약속합니다. 그때부터 야곱에게는 고난의 삶이 펼쳐졌던 것입니다.
야곱은 둘째 아들이었을지라도 아버지 이삭이 부자였기 때문에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있었고 평안한 일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일생의 부귀와 평안보다는 하나님의 복의 계승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본문 성경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고난의 길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마음을 보셨고 그의 간절한 소원에 감동하셔서 장자의 명분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받게 된 야곱은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게 되고, 가던 중,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후로부터 야곱은 위기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야곱은 단순히 장자의 명분을 쟁취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쟁취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묶인 삶을 끝내려고 고향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씨름을 하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천국은 쟁취하는 자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바라보는 그 나라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쟁취하는 자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온 세월 속에서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에서처럼 먹을 것을 위하여 거룩한 것을 내쳐버리는 삶은 살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목적은 세상 것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잘못된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부자가 되지 못한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헛된 꿈만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는 많은 부자가 있었고 또 지금도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진 것에 만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갈급함 속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만족함을 모르고 산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해의 절반을 넘겼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이 어려운 세상에서 오늘까지 무사히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은 우리의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물질을 목적으로 살았던 사람은 짜증과 원망과 안타까움으로 남은 날도 지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인생 말년까지 교도소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왔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험한 세상에서 보호해 주시며 건강하게 하심이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세상에서 즐기던 것들은 그 나라에 이를 때 다 쓰레기와 같이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 아닙니까? 공수래공수거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뿐입니다.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고난쯤은 참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겪는 고난을 못 참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참읍시다. 조금만 더 견딥시다. 감사합시다.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146:5)라고 합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 것,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을 그 어느 날에는 모두 내려놓고 버리고 가야 할 세상 것에 집착하여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사는 잘못을 범하는 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야곱은 장자의 명분. 하나님을 구하기 위하여 험한 인생 여정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끝내는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라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삼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살게 하소서!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 어느 날 하나님 앞에 같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고 면류관 받는 우리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설교/이경준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