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6
민수기 20장~25장까지!
(민수 21, 4)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민수 21, 8)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묵상ㅡ
돌아가는 것 같고 막히는것 같으면, 내면에서 가장 먼저 올라오는 감정은 조급함, 성급함이다. 뭔가 일이 틀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일이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뀌어갈 때 정점을 이룬다. 이를 변수라고 말한다. 이럴 때 발휘되는 역량들이 있다면 상황 판단력과 해결능력, 순발력 등이다. 그런데 그것도 훈련된 사람이나 가능한 역량이지, 아무나 그렇게 조급함을 다스리는 건 아니다.
조급함이라는 감정이 왜 나쁠까?
일단 모세의 지휘를 따르던 백성들이 이동하려던 길이 막히거나, 그 마을의 임금들이 허락하지 않아 지름길을 놔두고 먼길을 돌아가야 할 때, 불평불만이 나온다. 그건 그들의 공식과도 같은 패턴이었다. 그 다음 공식은 모세가 하느님께 불평하는 백성의 죄를 대신 속죄하며 도우심을 청하는 것으로 자동 전환된다. 또 다음 공식은 하느님께서 놀라운 순발력과 해결력을 동원해서 비방을 제시하신다. 그러면 모세는 그것을 백성들에게 알려 실행하도록 하면서 조급함과 두려움이 남긴 악습과 내면의 질병들을 치료하게 되는 그런것. 거의 비슷하게 진전되는 공식이다. 민수기에서의 공식 역시 그렇다. 광야에서 개고생하다 전사한 아론과 미르얌의 죽음앞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을 투사했을 터, 이러다간 우리도 길바닥에서 죽어가겠구나. 말끝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상상시키며 우리들을 꼬드기더니, 그 많은 계명과 법규들이 무슨 소용이더냐!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은 공감적 측은지심. 일상의 작은 일들에서도 내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면 명치끝이 짓눌리면서 헷가닥, 조급해지고 그래서 주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내다, 거룩하지 못한 독성죄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모세처럼, 말이 먼저 나가고, 몸이 제멋대로 따라 나서는 거다. 조급함은 정말 악마가 즐기는 미끼임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면, 오늘 3시까지 원고를 써서 넘기겠다고 마음먹고 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친정엄마가 오시고, 병원 모시고 갈 일이 생긴 거다. 서둘러 움직여보지만 그 3시라는 마감 시간에 꽂혀서 어떤 감정이 솟구친다? 오케이 정답! 조급함이렷다.
그러면 그때부턴, 머리로는 울 엄마 잘 모시고 다녀야지 효녀심청이 마냥 우아를 떨지만, 맘에선 왜 하필 오늘 오신거야. 미리 연락이라도 했으면 어제 다 해 놨을 거 아냐. 급기야 걸음도 빨라지고, 가뜩이나 빠른 말투가 더 속도가 붙기 마련, 그 조급함이 엄마에게도 전염되어,
내가 바쁜 딸에게 폐를 끼치는구나 하고 2차 감정인 죄책감과 미안함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어디 이뿐이랴. 부지불식간에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나는 특히나 8체질중 토양체질이라서 조급한 성향이란다. 매운 것이나 속에 열을 주는 음식을 삼가야 한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매운 것을 즐겨먹었던 거다. 매운 것만 자제했는데도 속이 편하고 느긋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하여튼 그래서 나는 조급함에 대한 매듭을 풀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는데, 본인이 자아인식을 하면서 고쳐보려 애쓰다 보면 개선이 좀 되는 것 같다. 하여 나는 꼭 해야만 한다. 라는 강박에 매일까봐 시간을 정해놓지 않기로 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할 수 있을 때 천천히 미리 해놓자. 뭐 이런식으로다가!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이 조급해지는 순간을 잘도 파악하시어 비방책을 내놓으신다. 이번엔 구리 뱀을 높이 세워 바라보게 하는 특 상품이었다. 야매십자가였던 거다. 나 역시 내가 통제할수 없는 변수가 생기거나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고 느낄 때,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나며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감각더듬이를 높이 세우고 눈동자를 막 굴리며 살아남을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럴 땐, 민수기의 이 구절을 떠올리며, 동네 수도원으로 달려가 십자가를 올려다본다. 나에겐 바라만 봐도 조급함이 치료되는 처방전인 셈이다. 마음이 복잡할 땐, 정말 약빨이 잘 받아 진정이 되곤 한다. 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하느님께 시선을 두면서 '바라봄의 영성'을 훈련한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김수환추기경님께서도 어렵던 시절, 사방이 막힌 것처럼 절망감이 몰려올때, 이렇게 하셨단다.
'앞이 캄캄하고 옆도 뒤도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고개를 위로 들어 하늘을 봅니다. 하늘은 뚫려있으니까요.' 김추기경님께 하늘은 희망이었던 거다. 하늘을 보자, 그 하늘은 늘 우리에게 두 팔을 벌리고 품어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우리는 조급한 나머지, 해결해야 할 일, 풀어야 할 관계, 처리해야 할 밀린 일, 갚아야 할 연체금, 치료해야 할 질병 등 땅의 문제들을 바라보기에 급급하다. 땅을 보는 순간, 우리는 희망이라는 최고급 약제를 놓칠게 뻔한 데도 말이다. 드넓고 청량하게 존재하는 하늘, 누구에게나 열린 하늘, 허나 올려다보지 않으면 없는것처럼 느껴지는 하늘, 하느님 역시 그러신분 아니던가!
+민수기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조급함이 백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급한 마음에 손해 봤던 일들이 얼마나 많고, 끊어진 관계는 또 얼마나 아쉬운지요! 주님께서는 이 조급함의 매듭을 통해 모세와 아론과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신 듯합니다. 악마의 조롱거리가 되어 저희를 이집트 종살이 시절로 다시 데리고 가버리는 '조급함'이라는 불 뱀을 드높이 솟은 구리 뱀으로 고쳐주소서.
불평불만과 불안, 의심과 불순종, 교만과 탐욕이라는 달갑잖은 죄들을 패키지로 끌고 다니는 조급함의 감정, 그것을 잘 다스려서 여유를 갖게 해주소서. 그래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그 하늘엔 자비로우신 주님이 계시고, 성인들과 천사들이 있고, 불가능이 없으신 당신의 분신 같은 구리 뱀이 존재합니다. 세상을 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은 우리의 조급함을 성모님 손을 통해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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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의 매듭
기다림의 모범이신 성모님,
하늘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시어 인간의 마음속에
시간 의식을 심어주셨습니다. (코헬 3.1~11)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조급함이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게 합니다.
더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세상의 목소리에
압도당하여 쫓기듯이 따라 갑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고 이르시며
아직 오지 않은 그분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조급함과 서두름을 조장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하느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름을 일깨우시어
하느님의 크신 시간의 안배안에서 자유로워지게 하소서.
'하늘 아래 모든 것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코헬 3, 1~11 참조)
[일상의 소소한 매듭풀기] 중에서 발췌.
첫댓글 18. 너 지금 조급하니? 그럼 하늘을 봐!
넘넘 고맙습니다
하늘아래 모든일에는 때가 있다. 늘 상기는 시키지만 조급함이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게 합니다.
묵상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