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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시 낭송회 역사
남진원
1. 태동
여성회관에서 문학 창작 지도를 하다가 문득 시를 많이 읽고 낭송하며 시를 즐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시를 가지고 나와 한 편씩 읽으며 시를 향유하는 시간 말이다. 그래서 권순인시인을 만나 이야기 했더니 좋다고 하였다. 강릉은 호수와 바다가 있으니 바닷가의 어느 카페에서 하자고 했다.
9월의 어느 날, 권순인 시인과 나는 경포의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카페를 물색하였다. 바닷가 2층에 있는 한 카페가 관심을 끌었다. ‘참새를 태운 잠수함’이란 카페였는데 주인과 이야기해보니 좀 통했다.
매월 둘째주 토요일 저녁에 시낭송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낭송의 취지를 사람들에게 전화로 알리고 참석해 달라고 하였다.
2.바다시 낭송회 활동
이렇게 하여 2003년 10월 11일 오후 7시 강릉의 명품이 된 ‘바다시 낭송회’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처음 회장은 권순인이 맡았다.
처음엔 좋아하는 시를 직접 가지고 오게 하여 낭독하거나 암송하게 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이 시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 다음엔 낭송할 시를 30매 정도 복사해 오면 그 시들을 묶어서 나누어주고 시를 낭송하였다. 나중에는 시첩을 내가 직접 복사하고 손으로 만들어 가지고 왔다. 시첩을 복사하기가 힘들어 당시 강릉교육문화관에서 문학 강의를 하였기에 그곳에서 복사를 하여 만들곤 하였다. 이 시첩이 2005년 4월 9일 제19회 낭송의 19회 시첩부터이다. 한동안 시첩을 그렇게 만들다가 유지숙 시인이 손수 만들기도 하였다. 아주 정성들여 만든 시첩은 매우 친밀감이 있었다. 그 후 회비와 후원금을 모아 인쇄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2016년엔 강릉문화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
14년 동안 시 낭송을 해 오고 있으며 151회에 이르고 있다.
3. 바다시 낭송에 참여한 사람들
일일이 모두 소개할 수는 없어도 초반부터 시첩에 한 번 이상 오른 분들을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0여명 이상의 회원이 참여하였으며 매회 30명 내외 모이고 있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도 참여 하여 문학의 꿈과 아름다운 정서 기르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시 낭송을 계기로 하여 시인이나 전문 시낭송가, 전문 진행가가 된 분들도 많다.
유지숙 시인, 김명희 시인, 임춘자 시인, 조옥수 시인, 이연희 시인 등은 전문 진행자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분들은 바다시 낭송회의 무형 문화재들이다.
권순인시인(초대 바다시 회장), 김광자시인(황산시조문학상, 동백문학상 수상 작가, 강호시조문학회장 지냄), 김학주시인(강원문학상 수상), 최혜리시인, 이순희(여성문화센터 문예창작반), 박준영시인, 김기옥시인(강호시조문학회장 지냄, 강릉문학상, 강원시조문학상 수상), 조옥수시인(제8대 바다시 낭송회장), 임춘자 시인(한울림 문학회 회장, 강원시조작가회 회장), 조희균장자 연구가(저서에 『장자의 뼈』), 권오선시인(한울림문학회 회장 지냄, 강원시조문학상 수상), 서옥섭시인(생활문학회), 신완묵 시인(저서, 천무경 엮서 『수, 1의 비밀』), 정경헌시인(해람시 낭송회 회장 지냄), 공계열시인(강원문학 작가상 수상), 채정미시인(아르코문학상 수상 작가), 최돈섭(강릉평생교육정보관 문예창작반), 신정숙(한울림문학회), 남진원시인, 김정자시인, 홍승자시인, 이화숙(한울림문학회), 심은섭시인, 김수정시인(초대 시인), 신군선시인, 정계월시인, 심재칠시인(경포중학교 교장), 유지숙시인(현 바다시 낭송회장), 홍성희 시인(초대시인), 고혜정(동화작가), 정원교시인(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작가), 김희래수필가(한울림문학회 회장 지냄, 作故), 한경림시인(국악인, 국내 시조경창대회 다수 입상), 조봉규시인(전 영동대학 교수. 철학박사. 초대시인), 지은영 시인, 최경순시인, 전제선(국악인 초대), 주재남시인(강원문학상 수상 작가, 청송문학회 회장 지냄), 정민시시인(강원문학상 수상 작가), 이혜숙시인(전, 강릉대학 시낭송 지도), 박복금시인(초대시인, 문학박사), 정연기시조시인(강호시조문학 회원), 서혜숙시인, 김명희시인(현 바다시 낭송 진행가, 박사과정 수료), 박광남시인, 강복순시인, 박종금시인(한울림문학회 회장 지냄), 박세현시인(원주영서대학 교수. 초대시인), 박유석원로 시인(전 문협 강원도지회장, 강원아동문학회 수석 고문), 유금숙시인(문협 강릉지부 사무국장), 유금옥시인(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작가), 이광식소설가(초대 작가, 관동문학회장 지냄, 현 문협 강릉지부장), 공병호시인(솔바람 동요 문학회 회원) 김종영시인(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솔바람동요 문학회 회장), 진호섭시인(전 강원아동문학회장), 이갑창동화작가( 강원펜클럽 회장),김유묵님(전 중앙초교 교장, 색소폰 연주 초대), 엄장섭시인(시조창 기능인, 전주대사습 시조창 장원, 황산시조문학상 수상작가), 이충희원로시인(현대문학 추천작가), 이훈시인(작고. 전 도의원, 강원도 의회 의장), 차명자시인, 한재성시인(전 바다시 낭송회장), 권재이 시인, 이종태님(행복한 시읽기), 황명남시인(시 낭송가), 정현교수필가, 강수근시인, 남명숙 님, 김혜령님(행복한 시 읽기), 유옥렬시인, 김순덕시인, 최송자시인(전 바다시낭송회장, 시낭송가), 정연심님(행복한 시 읽기), 남옥화님(행복한 시 읽기), 김영희님, 정경숙님, 전영선낭송가, 김언희님, 목필군님, 강인숙시인, 권혁연님, 박진희님, 백선자님, 서정아시인(강호시조문학회), 서태원수필가, 장영미시인, 전재규 님, 조임환시인, 허정구님, 함인수수필가, 홍영실님, 탁순희님, 조병금 님, 이종경시인, 이문이님, 이영희님, 최옥규님, 김종해님, 김정미님, 김효정님, 최종훈시인(전 강호시조문학회 초대회장), 박용옥님, 김남구시인, 강미영시인, 전현실님, 이종완시인, 장정임님 .김혜경 시인, 변정연 시인, 김인숙 시인, 신은순 시인,김수임 시인, 김기순 시인 , 엄재원 시인, 김남권 시인(시문학 추천 시인) (無順)
(혹시 누락된 분 연락 주시면 올리겠습니다.)
나이 51세 되던 2003년 초엔 강릉여성회관 문예창작반 회원을 중심으로 시 낭송회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다시 낭송회였다. 14년이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 권순인 시인과 함께 다니며 장소도 물색하였고 초대 회장에는 권순인 시인, 진행 신정숙님, 총무 채정미 시인이 선임되어 바다시낭송을 이끌었다. 낭송회 이름이 바다시였기에 경포바닷가에 있는 카페를 물색하였다. 그런 끝에 ‘바다를 태운잠수함’이란 카페 사장과 이야기가 되어 첫 낭송회를 11월에 시작하였다. 낭송회원들은 강릉여성회관 문학반에 나오는 일반인들이었는데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시낭송이 좋아서 일일이 나올 사람을 전화하여 불러냈다. 시첩도 직접 복사하여 만들어 배포하였다. 시를 함께 읽고 낭송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도 누구나 좋나하는 시를 가지고 나와 낭송하는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14년째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경포와 안목 해변의 찻집에서 시낭송을 하다가 강릉의 시내 중심가인 성남동 카페에서도 낭송을 하였다. 지금은 ‘카페남문동’에서 낭송회가 열리고 있다.
☘. 바다시 낭송의 회장은 아래와 같이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초대 회장 권순인 시인(2003. 10 – 2004. 10)
제2대 회장 권오선 시인(2004. 11 – 2005. 10)
제3대 회장 임춘자 시인(2005. 11 - 2006. 10)
제4대 회장 김광자 시인(2006. 11 - 2007. 10)
제5대 회장 신완묵 시인(2007. 11 - 2008. 12)
제6대 회장 한재성 시인(2009. 1 - 2009. 12)
제7대 회장 박준영 시인(2010. 1 - 2010. 12)
제8대 회장 조옥수 시인(2011. 1 - 2012. 12)
제9대 회장 최송자 시인(2013. 1 - 2014. 12)
제10대회장 유지숙 시인(2015. 1 – 2016.12)
제11대회장 유지숙 시인(2017.1 – 2018. 12)
제12대 회장 김기옥 시인(2019.1 – 현재 )
2020년에 돌아보는 나의 바다와 시
남 진 원
나는 2000년에 강릉시 여성문화센터 문예창작 강의를 맡았다. 그때는 강원도립대학에 대학 강의를 나갈 때였다. 돌아보니, 내 평생의 일은 교육이었다. 21살(만19살)에 초등교단에 나와 20여년, 그 이후 태성전문대학, 강릉영동대학, 강원도립대학에서 10여년의 대학 강의 생활, 강릉여성문화센터 및 강릉예총, 강릉평생교육정보관 등에서 25여년 문예창작 강좌를 하였으니 48여년의 星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2000년이 끝나갈 무렵 강릉여성문화센터 문예창작반 회원들과 의논하여 문학회를 만들었다. 그것이 「한울림문학회」였다. 2001년에는 첫 작품집 [나뭇잎 만큼 열리는 숲의 말]이 탄생하였다.
그 이듬해인 2002년에는 시를 강의하면서 낭송에도 관심을 갖았다. 시에 대한 감동의 효과적인 방법은 시낭송이 매우 유용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어느 누구나 좋아하는 시를 가지고 나와 읽거나 낭송한다면 얼마나 즐거움을 갖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03년 9월 경포 바닷가에 있는 상가를 다녀보았다. 마침 바닷가에 있는 한 카페가 마음에 들어 주인과 의논을 하여 성사가 되었다. 그 카페의 이름은 「참새를 실은 잠수함」이었다.
첫 낭송회는 10월 토요일 둘째주 7시에 하기로 정하였다. 나는 강릉의 시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며 시낭송에 나오라고 권유하는 데에 분주하였다. 그리고 낭송할 사람들의 시의 내용을 복사하여 가지고 나갔다. 이렇게 하여 바다시 낭송이 시작된 것이었다. 세 번째인 12월 낭송에는 시첩을 직접 만들었다. 모양은 볼 품이 없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매우 귀중한 자료인 것 같았다.
낭송시간은 2003년 12월 13일 오후 7시였다. 12월의 저녁 7시면 매우 밤이 깊은 한밤중이었는데 …. 그때는 내 나이가 51살이었으니까 한창 젊은 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3회 낭송이 12월이니 자연히 송년낭송 모임이 되었다. 그래서 타이틀도 「송년 바다시 낭송회」였다.
인사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시첩에는 이런 내용만 있지, 누구의 글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나는 내가 당연히 쓴 글로 알았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쥐락펴락 하시면서’이나 ‘슴벅거리며’ 등의 고향맛이 나는 글귀를 나는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권순인씨가 쓴 글을 내가 옮겨 적은 것인 것 같았다.
- 인사말의 글 -
「바다시 낭송회는 주인이 누구시냐고요?
참석하시는 모든 이가 그날의 주인이 됩니다.
낭송을 원하는 작품을 들고 매월 둘째주 토요일 7시 언제나 그 자리로 오세요.
시를 한 편 들고 오셔서 주인이 되십시오.
당신의 고운 목소리로 외는 시는,
조용히 꽃이 되어 가슴에 내릴 것입니다.
쥐락펴락 하시면서 엉구렁치듯 매달려도 보시고
슴벅거리며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응시하고 있는 님들을 향해
진한 향기도 건네십시오.」
시첩의 제목도 『벽에 걸린 그녀』라는 글귀였다. 단번에 들어오는 강렬한 느낌이 있다. 모던(modem)한 현대적 감각의 구절이다. 이 구절은 내가 채정미 시인의 시낭송 제목인 <벽에 걸린 그녀>를 뽑아 붙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이 글귀에서도 보듯이 채정미 시인은 날카롭고 참신한 시어로 현대적 감각의 동시를 써서 이제는 중견작가로 한국아동문단에 자리를 잡았다.
축하의 말도 있었다. 영동수필문학회 회장을 맡은 박종철 선생께서 오셔서 축하의 말을 해주셨다. 그뿐이 아니었다. 초대낭송가의 시낭송도 있었다. 또 내가 출강하는 학생도 나와서 시낭송을 하였다.
시첩에는 2003년 11월 낭송했던 2회 시낭송 참가기도 실렸다. 시낭송 참가기는 제목이 ‘훈훈한 사랑’이었다. 나도 2회 감상기를 썼는데 ‘훈훈한 사랑’이었다.
훈훈한 사랑
최유진
훈훈한 사랑이
옹기종기 모여
내미는 손 글 솜씨는
열린 가슴에 춤을 춘다
알싸한 분위기
목줄기 적시는 한잔의
커피 향에 취해
살가운 시선
마주 앉아
현악기의 선율을 타고
들려오는 듯
눈빛 한 줌 미소를
바라보며
감춰진 가슴이 보이는데
그래도 제 멋에 겨워 한마음이 되어
한자락 오려낸
떨리는 그리움 심연의 꽃 피우며
훗날
귀뚜리 자장가 소리가 들리듯
추억의 한 페이지가
어디 쯤 망울져 있을까!
최유진 씨는 글을 처음 시작한 때였다. 그때 이미 이처럼 좋은 시를 쓴 걸, 이제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는 후에 원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도 글을 열심히 써서 문단에 등단하였다고 하였다.
지금 보니 내가 이런 글을 쓴 것 같지 않았다. 그 정도로 신기하였다.
제목은 (훈훈한 사랑)이었는데 처음 부분은 이랬다.
- 이번에도 시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오붓한 시의 잔치를 벌렸다.
참새처럼 날아든 사람들의 얼굴 모습은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신정숙 앵커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낭송은 1회 때보다 한결 성숙된 모습이었다. 낭송하는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도 격이 있어 좋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들이 참석하여 시 낭송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이하 줄임) -
이때에도 수필가 박종철 선생, 신정숙씨, 이미숙씨, 권순인 시인과 부인, 박성동 씨, 한경임 시인, 김지영 시인 등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박성동씨는 마이크를 잡은 뒤에 말이 너무 길어서 사람들에게 민망스러웠다. 그 친구는 점술가로 시인이 아니지만 내가 친구로 참여시켰는데 마이크를 잡고는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곤 하였다. 나는 참으로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 친구의 말을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에도 이런 일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미숙씨도 그 후 원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지금은 대학원까지 다니고 시인으로, 시낭송가로 활동하고 있다. 가끔 강릉에 들릴 때면 전화가 와서 살아가는 사정을 들었던 것이다.
수필가 박종철 선생을 만난 것은 어느 식당에서였다. 그날 문인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젊고 잘 생긴 40대 후반의 멋진 분이 나를 불러 앉혔다. 수필을 하는 박종철 선생이었다. 그 후 그분의 인품이 훌륭한 것을 알았다. 내가 강릉여성문화센터에서 문예 창작반을 그만 둘 때에 박종철 선생을 추천하여 그분이 그곳에서 수필 강좌를 열게 안내해 드렸다. 그 후로 많은 분들이 수필작가로 등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릉의 수필문학은 그 분에 의해 확장되고 발전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은 몸이 많이 불편하여 병원에서 보내고 계신다.
바다시 시첩 3집을 보다가 그곳에 발표한 임춘자씨의 작품을 대하였다. 정말 괄목상대라는 말을 할 정도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겨울날
임춘자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는 날에도
창호지 한 장으로
엄동을 가리던 때가 있었다네
방구들이 뜨뜻해져오던 새벽녘이 정말 좋았지
이불 속에서 새끼 돼지들처럼 빠져나오면
벌건 화로가
방에 남아있던 찬 공기까지 후끈후끈 데워주었어
구유에는 김에 묻혀 소가 여물을 먹고
방안 두레반에선 아버지와 아들들이
방바닥에선 어머니와 딸들이
밥을 먹었어
노란 조밥에 시퍼런 무짠지를 척 걸쳐먹던
그 밥상이 새삼 그리워지는군
우리 속의 고구마처럼 갇혀
긴긴 겨울을 지내던
감껍질처럼 뽀얗게 분이 나는 게야
새순 틔울 씨감자로 남게 되는 게야
(제3회 바다시 낭송시첩 [벽에 걸린 그녀], p.24.)
1960년대와 70연대엔 설날을 전후한 1월 말경에는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곤 하였다. 밖에 나가 세수를 하고 문을 열면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었던 그 때, 어머니는 화로에 잉걸불을 담아 문안에 들어놓으셨다. 얼마 못가서 방안은 후끈후끈 하였다.
할머니는 일찌감치 부엌에 나와 가마솥에 옥수수 대궁을 썬 더미를 넣어 삶으셨다. 잠시 후엔 구유에 있는 황소가 김을 뿜으며 여물을 먹었다. 그때 쯤 동쪽 햇살이 부엌 문틈을 비집고 들어찼다.
둥그런 반 주위에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밥은 좁쌀을 섞은 노란 조밥이거나 감자와 보리쌀을 넣은 시커먼 보리밥 또는 메밀을 타개서 넣은 메밀밥이었다. 반찬은 시퍼런 무짠지와 시래기를 끓인 국과 배추 김치 등이 놓인 반찬이었지만 가족들은 맛난 아침을 먹었다.
할아버지 밥상은 맏손자인 나와 겸상을 하였고 둥근 반에는 아버지와 삼촌 동생들이 둘러앉았다.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들은 방바닥에 밥과 반찬을 놓고 먹거나 따로 어두운 도장방에서 먹곤 하였다. 지금 보면 성차별적인 밥상이라고 할지 모르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문화였기에 아무도 그 자체에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던 듯하다.
60년이 지난 세월이지만 그때의 일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얼마나 아름답고 그리웠던 시간이었던가. 시 한편이 상기시켜주는 정서의 힘이 이렇게 크게 행복을 안겨주고 있다.
그때 발표하고 낭송한 내 작품 ‘눈과 잉크 물’도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눈과 잉크 물
남진원
눈 오는 밤이면
꿈 하나에 말 하나 씩 매달고
눈을 맞았다. 사랑이었다.
그 날,
외투에 날아들던
회색빛 바람소리
그대 숨결.
내 사랑은
검정 잉크 물이다
이렇게 눈이 올 듯한 밤
이렇게 눈이 오는 밤
차창을 스치는 나무처럼
스며드는 기쁨이여
밤 12시
기적 소리 속에
눈물 이별 고독의
긴 입맞춤
눈오는 밤이면
내 사랑은 지금도
검정 잉크 물이다.
(2003. 12. 13. 제3회 바다시낭송집)
그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사람들도 물결처럼 흘러오고 흘러가기도 했다. 한 번 가면 돌아오기 어렵고 한 번 와도 내일에 대한 기약이 없는 게 세월이 아니던가. 꿈같은 인생사, 길재의 시조 한 수가 변치 않는 명시로 다가온다.
-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2005년 4월 9일 오후 7시엔 바다시낭송 제19회 째였다. 안목의 [금빛 파도] 카페에서 진행하였다. 주인은 남자 분이었는데 젊고 성품이 좋았다. 이때는 작고하신 조희균씨가 나와 장자의 ‘忘筌妄言’에 대한 글을 읽었던 게 새로웠다.
낭송에 참여한 분들은 최복녀, 권오선, 이순희, 김학주, 박준영, 김기옥, 조옥수, 임춘자, 조희균, 서옥섭, 신완묵, 정경헌, 채정미, 최돈섭, 신정숙, 남진원 등이었다. 때는 4월이라, 김동환의 시 ‘산너머 남촌에는’을 애창하였다.
현재 2019년에도 참여하는 분은 김기옥, 임춘자, 정경헌, 남진원 등이었다. 무상한 세월이 아닌가.
나는 그날 ‘할아버지 고드랫돌’을 준비하였다. 이 작품은 시집 『어초』에 수록된 작품이다.
내가 할아버지와의 생활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몇 가지 손꼽을 정도이다. 통나무인 소나무를 종일 톱으로 자르고 있던 모습이가. 또 동네에서 반장을 맡으셔서 찢어진 10원짜리 돈을 허리를 구부리고 밥풀로 붙이는 모습, 소주 한 병을 채 못 마시고 술에 취해 움직이지 못하시던 모습, 그리고 밤이면 윗방에서 자리를 매는 소리를 듣던 일이었다. 고드랫돌 넘기는 소리가 잠자다가도 깨어보면 들려왔다. 그 모습을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께서 일을 하면 매우 끈기 있게 하시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고드랫돌
남진원
소가 풀을 뜯어 먹을 때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손놀림,
일정한 간격으로 숨쉬던
돌의 호흡을 할아버지는 아셨다.
그 호흡과 함께
등잔불과 어둠이 살을 맞대고
그 사이로 미끄러지듯 스며들 듯
적막(寂寞)
4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걸 꺼내어 보고 있다.
소가 풀을 뜯어먹을 때처럼.
할아버지께서 자리를 매는 고드랫돌 소리를 들으면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고드랫돌이 넘어가고 넘어오는 소리가 너무도 일정하였다. 할아버지는 그때야말로 무심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커다란 통나무인 소나무를 자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쉼 없이 천천히 톱질을 당기는 것이 한결 같으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뒷산에 묻으셨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무덤 속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오실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생각에, 할아버지는 무덤 속에서 잠을 자고 계신다고 여겼다. 그런 믿음이 아주 강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무덤에서 집으로 오시지는 못했다. 그게 너무도 이상하였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에도 카페를 운영하였는데 카페의 이름이 [개여울에서 바다로]였다. 카페지기는 서옥섭씨였다.
2005년 5월 14일에는 20회 바다시낭송회가 열렸다. 역시 장소는 [금빛파도]였다.
참석한 분들은 권오선, 신완묵, 조옥수, 김광자, 김정자, 김기옥, 최복녀, 임춘자, 홍승자, 조희균, 남진원, 정경헌, 공계열, 김학주, 이화숙, 서옥섭, 최돈섭, 신정숙, 심은섭, 이순희씨 등이었고 나는 19회 감상문을 썼다.
김정자, 홍승자, 심은섭 씨등이 새로운 얼굴이었다. 김정자(춘설), 최복녀(그녀는 잘 뎁혀지지 않는다)씨 등의 작품은 언어에 대한 신선함과 새로움이 큰 작품이었다.
[19회 감상문]
「바다시 낭송회에 가면 한 동안 헤어져 있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또한 낯모르는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도 있어서 반갑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그런 사람 속에서 개여울이 바다로 흐르는 듯한 시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시 낭송을 후원해 주신 세분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바다시낭송의 현수막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 기증해주신 최경순님, 떡을 제공하여 낭송의 즐거움을 두배로 해 주신 공계열님, 싱싱한 비타민을 딸기에 가득 담아주신 김학주님! 처음으로 시낭송에 참여하였다고 토로하며 멋지게 시를 낭송하신 최복녀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항상 겸양의 미덕을 보여주신 김희래 수필가님(한울림문학회 회장)
~ 중략 ~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려져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바다소리, 바다시의 목소리가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05년 4월 10일 일요일 아침에)
이글을 읽고 나서 최경순, 공계열, 김학주 시인께 또 감사를 드린다. 작은 일인 것 같으면서 아무도 할 수 없는 봉사와 자기희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김희래씨 경우는 『수필문학』으로 수필 추천을 받은 작가이다. 성품이 곱고 아름다워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너무 착하여서 마음 상한 일을 안으로만 다스려서 그런가? 그 후 오래지 않아 지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셨다고 들었다. 여태껏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 분의 훌륭한 인격 때문인 것 같다.
2006년 8월 12일 저녁의 바다시 35회에는 12분이 이름을 올렸다.
남진원(장마), 홍오선, 채정미, 이종완, 정경헌, 조희균, 서옥섭, 장정임, 심은섭, 임춘자, 김학주, 박종금 등이었다.
2006년 12월은 바다시낭송 39회째. 2006년 12월 9일 토요일 늦은 7시 카페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열렸다. 김광자 시인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조용히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이 아름다웠다.
인사말
병술년을 보내는 동안
기상이변에 고생도 많으셨으며
거침없는 생활에 동분서주하시면서
아름다운 마음을 전해주러 오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얀 병풍으로 감싸주는 대관령을 쳐다보며
‘벌써 겨울이구나’
내 주변을 돌아보며 겨울 준비는 완전한가
하루하루가 걱정입니다.
산 아래 억새꽃도 제철인냥 따뜻한 솜털로
바람의 길을 재촉합니다.
자연에 순종하며 삶이 발전하듯 깊어가는 겨울 초저녁
님들의 가슴속에 사랑의 시어들이 심어지길 바라며
추억의 연말 되시길 기대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십시오.
이 밤도 행복한 꿈 꾸세요.
- 마을지기 김광자 -
이날 참석자들은 다음과 같았다. 권오선, 배지현, 남진원, 박종철, 김광자, 최혜리, 이장원, 심재칠, 서옥섭, 서혜숙, 하준형, 임춘자, 심은섭, 박준영, 전재규, 채정미, 신완묵, 김다올, 지은영, 유지숙 등이었다.
이때만 해도 박종철 선생은 좋은 시를 많이 쓰고 또 발표하셨다. 이날도 좋은 작품을 낭송하셨다. 그러나 수필 쪽으로 글을 쓰면서 시를 쓰시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개똥벌레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사람들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힘없고 저항력이 약한
우리들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십시오.
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 ‘개똥벌레의 꿈’ 박종철)
이곳 방터골에 산지가 10년인데 개똥벌레는 좀처럼 보지 못했다. 간혹 버스 정류장에서 들어오는 여름밤이면 한 마리 정도를 입구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내 방안에 들어온 개똥벌레를 보았다. 그 외에는 개똥벌레를 보지 못했다. 농약을 마구 쳐대니 개똥벌레가 농촌에서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니 내가 ‘걸음걸이’라는 시를 발표한 것을 알았다. 이 시를 쓴 기억이 어슴프레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
걸음걸이
남진원
천천히
길을 걷네
우리네 삶
눈물 섞인 걸음걸이 태반이네
이 길 걸으면 걸을수록
마르지 않는 눈물 보네
길을 가다가 만난 낯선 사람도
너무 닮아서
피붙이 같은 사람들
네 힘든 것
내 아픈 것
형제라네.
솔직히
이쯤에서 조금씩 나누어 갖고 싶네.
바다시 37회에는 내가 시 ‘의미’를 발표하였다. 어느 책에는 ‘아름다움의 의미’라는 제목을 쓰기도 했다.
의 미
세상살이가
시름에 겨워
더러는
잠들다 깨다가 하거니
때로는 울컥 토해내고도 싶고
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울고도 싶지만
슬퍼하지 마라
인생은
한 그루 나무 옹이 같은 것
가슴에 옹이를
쓰다듬으며
세월속에 흔들리며 가는 거라네
그렇게 흐르며 가는 거라네
아름답지 않은가.
37회 바다시낭송은 2006년 10월 14일 토요일 늦은 7시에 카페 「금빛 파도」에서 하였다. 참여한 사람들은 김준래, 정연기, 김광자, 지은영, 최종훈, 남진원, 권희경, 심은섭, 김학주, 최혜리, 장영미, 임춘자, 김명희, 권혁연, 심재칠, 김일남, 이화숙, 유지숙, 서혜숙, 박준영, 채정미, 서옥섭, 신완묵, 권오선 씨 등이었다.
권희경씨는 송명호 선생의 동시 ‘시골정거장’을 낭송하였다. 시골 정거장의 서경적 모습 속에 서정성이 물씬 배어나오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언제 읽어도 잔잔한 서정이 아름다운 시골 정거장의 외로움과 잘 호흡을 맞춘 명작이었다. 송명호 선생은 내가 1983년 계몽아동문학상을 받을 때 식장에 직접 오셨다. 그곳에서 한국화 한 장을 선물로 주셨다. 학이 은은하게 그려진 한국화였는데 그 그림을 분실하였다. 지금 강릉의 택시부 광장에 복권점이 있다. 그것은 당시 표구점이었는데 그 표구사에 그림을 표구하라고 맡겼다. 그런데 나중에 찾으러 가니 표구점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까운 그림을 그만 잃어버린 것이다. 송명호 선생의 아름다움 마음을 못내 잊을 수 없는 데 그분도 작고하셨다. 동시 ‘시골정거장’을 읽는 즐거움을 전하지 못한 것도 늘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은 기차가 지나는 마을은 아니지만 동시 속에 나타난 시골정거장의 이미지를 상상속으로 그리며 읽으면 그렇게도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워진다. 그 동시를 권희경 선생께서 낭송하시는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했겠는가.
바다시 낭송회 43회 역시, 「금빛파도」에서 이어졌다. 그때 걸린 현수막은 매우 넓고 큰 것이었는데 최경순 씨가 선물한 것이었다. 얼굴이 조금은 검은 편인데 누가 봐도 좋아보이는 모습이었다. 바닷가에 큰 건물을 가지고 있어서 한울림문학회 새해 모임도 그곳에서 몇 번 가졌다.
토요일 오후 늦은 7시 4월 14일었으니 모양 좋은 봄날이었다. 김광자 시인이 회장으로 있던 시기였고 이때에는 현 문협지부장이신 심은섭시인과 사무국장인 정계월씨도 꾸준히 참석하였다. 김광자 시인은 인사말에서 ‘경포대 상춘객은 벚꽃 속에 꽃잎 위를 거닐며 화담을 합니다. 시인은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남들에게 시낭송으로 돌려드립니다.」라는 말로 봄날의 풍경을 각인시키기도 하였다.
나는 시 ‘의자’를 낭송하였다. 이 작품도 다시 보니 ‘어, 내가 썼구나’ 하면서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지금 보니 얼마간 산만하고 느슨한 표현으로 된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것도 이미 태어난 내 자식인 것을 ….
의 자
남진원
맛있는 음식을 탐내는
그릇처럼
높은 곳에 있지 않아도
의젓하다.
화려한 액자처럼
눈에 띄지 않아도
믿음직하다.
냄새나는 엉덩이를
종일 받치고 있어도
싫어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일을 하실 때에도 저런 모습이었지.
책 읽는 아이
소곤소곤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고민하는 아이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처럼 …
소란스러운 교실이
잠잠해지고서야, 의자는
조용히 생각을 내려놓는다.
부모님이 잠자리에 든 듯….
2017년 5월 22일은 바다시낭송 44회 째이다.
허정구 선생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대학을 다닐 때 비술관 무예에 했던 친구이기도 하여 각별하다. 그때 박성동 친구는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우리 도장에 나오곤 했다. 그는 늘 혼자 무공을 연마하였다. 가정이 괘 넉넉하여 개인지도를 받았던 것이다.
허정구 친구는 허리가 아프면서부터는 열심히 산을 다녔다. 특히 정동 쪽에 있는 안보공원을 자주 다닌다고 하였다. 그가 산을 다니면서 몸소 쓴 시를 이번 44회째에는 낭송하였다. 순수한 멋이 풍겨나는 진솔한 작품이다.
산 길
허정구
홀로 산길을 간다
신선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맑고 깨끗한 바닷가 공기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헤엄치듯 산길을 간다
생명력이 넘치는
초록색 나뭇잎
고귀한 생명을 잉태한
빨간 꽃봉오리
솔향기 그윽한
솔솔솔 솔바람
세파에 지친 온몸의 피로가 가시고
생기가 몸속에 들어와 새 힘이 솟는다
온갖 산들이 나를 품어준다
엄마의 품처럼 포근히 안아준다
거대한 자연에 안기어
자연의 일부가 된다
심신이 자유롭고 평안해진다
무한한 평안이 흐르는
피안의 세계에 이른다.
직접 산행을 하면서 겪은 느낌에 친근감이 든다. 산행을 하면서 행복감에 젖은 친구의 모습이 부럽기조차 하였다.
작년 그러니까 2019년 끝 무렵 명주예술마당에서 시낭송회가 있었다. 등 뒤로 보니 그 친구가 부부와 함께 앉아 있었다.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만년을 멋있게 살아가는 친구였다. 얼굴도 환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시를 읽으니 친구의 덕스럽고 환한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70이 가까운 나이에 부부가 함께 시낭송을 들으러 오는 행복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시를 생활화하며 사는 그가 진짜 시인 같았다.
김광자 시인의 시조 [저무는 들녘에]는 황혼의 쓸쓸함이 배어 있어서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편안하고 따뜻한 ‘침묵의 관조적 삶’이 돋보였다.
저무는 들녘에
김광자
산 아래 초가삼간 돌담만 남아있네
계절로 넘나들던 한가락 새 울음들
목화솜 실타래 감던 물레소리 그립다
옛 사연 줄로 엮는 석양의 그림자
봄바람 억새 소리에 단발머리 소녀가
노을 빛 징검다리 건너 묵정밭을 거니네
나는 어릴 때의 아름다운 고향 길을 걷던 모습을 상기시키는 동시를 발표한 것을 알았다.
골지리 양지 마을 거리의 중심부에는 큰 고모님 가게가 앞쪽 냇물을 향해 앉아있고 그 집 뒤에 집의 뒤뜰엔 배나무가 높다랗게 자랐다. 나는 배꽃이 필 때면 그 배나무 옆을 지나다니곤 하였는데 희디 흰 배꽃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3년 동안 그 고향마을에 가서 근무하였다. 그때 자주 그 배꽃이 핀 아래를 걸어보기도 하며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곤 하였다.
뻐꾸기 우는 날
남벽(남진원)
어릴 때 나를
찾아보고 싶어
어릴 때 살던 집을
찾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흘러 갔어도
고향집 풀포기는
그대롭니다
배나무 집 순희는
시집을 가고 없어도
순희네 배나무엔
올해도 배꽃이 피었다 지고
산너머
뻐꾸기가
자꾸 웁니다.
44회에 참여한 사람들: 채정미, 김광자, 조옥수, 김다올, 허정구, 남벽, 심재칠, 최혜리, 유지숙, 박준영, 신완묵, 한재성, 전재규, 심은섭, 지은영씨 등이었다.
2007년 6월 9일 토요일 늦은 7시 30분에 바다시 45회째가 「금빛 파도」에서 열렸다.
참석한 분들은 남진원, 허정구, 김광자, 허후남, 임춘자, 박준영, 최혜리, 신완묵, 한재성, 박복금, 조옥수, 심은섭, 권순인, 손주은, 유지숙, 이영희, 정연심, 전현실 씨 등이었다.
강원도 정선의 ‘증산 국민 학교’에서 나는 1987년을 맞았다. 광산촌으로 학생수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곳에 새로 2층집으로 지어진 관사에서 아내와 두 아이들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며 지냈다.
아내는 딸아이가 학교에 갈 때마다 머리를 묶고 옷을 챙겨주었다. 그런 후엔 예쁜 공주님이 탄생하였다. 가방을 메고 나풀나풀 2층 관사를 내려가는 딸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내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쓴 시가 ‘어머니’였다.
이 작품이 1988년 12월 교과서에 수록된다는 연락을 강릉 집에서 받았다. 그 후 4학년 1학기 읽기 교과서에 7 – 8 년 수록되었다. 그 작품을 2007년 바다시 45회에 낭송하였다.
어 머 니
남진원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 가 봐
뒷모습을 지켜 보시는 그 마음
나도 알지.
내가 강릉에 내려와 문학 모임에 참여했을 때이다. 최정애 시인이 시낭송을 하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 한편이라고 소개한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이 바로 동시 ‘어머니’였다. 당시 교과서에 실린 이 작품을 최정애 시인이 그렇게도 아끼고 좋아하였다. 나는 하염없이 최정애 시인이 고마웠다.
내가 강릉에 내려왔을 때 장영철 시인이나 최정애 시인은 시를 잘 쓰면서도 등단하지 않고 있었다. 장영철 선생은 김철수 시인이 발행하는 [아동문학]에 소개하여 장영철 선생은 신인상 당선을 하여 문단에 나왔다. 최정애 선생은 [아동문예]에서 내가 동시 추천을 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후로 빼어난 동시집도 내었고 중앙의 아동문학상도 수상하였다. 그러나 몸이 약하여 일찍 타계하였다. 못내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최정애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증산 국민 학교에 있을 때엔 전태규 시인은 선배 교사로 함께 근무하였다. 당시에는 전태규 시인이 원주에 오갈 때엔 기차를 타고 다니셨다. 증산역에서 내리고 탔다. 그곳에서 가끔씩 전태규 시인과는 술을 먹으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증산에 계실 때엔 술을 과할 정도로 많이 드시기도 하였다. 홀로 계시는 외로움에 술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한 후 지금은 몸이 아파 원주 집에서 칩거하고 계신다고 한다. 많은 시인이 있지만 정말 시인다운 시인, 호감이 가는 편안한 시인이셨다. 함께 있고 싶은 시인이 전태규 시인이셨다. 시 문학 모임에 전태규 시인이 나타나야 문학회 같은 느낌이 물씬 날 정도로 온 몸에 문학의 체취가 흘렀다. 「시문학」에서 문덕수의 시 추천을 받고 또 「시조문학」에서 이태극의 시조 추천을 받아 시와 시조를 병행하여 쓰셨다. 정선군에 들어오셔서 정선문학의 터를 닦는 데 기여한 분이셨다. 이런 문학적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분이 또 있다. 춘천에 이무상, 이은무 형이다. 이분들은 1970년대에 춘천에서 문학 모임이 있어서 만난 분들이었다.
바다시 45회 시첩을 읽어보다가 임춘자 시인의 시가 또 눈에 들어왔다. 임춘자 시인은 강릉사투리 구사도 잘하여 시를 강릉사투리로 낭송하면 웃음이 터져 배꼽을 잡는다. 그건 순전히 그분의 피나는 노력 덕분임을 알 수 있다. 시낭송가로도 활동하고 자유시들이 문체가 친근하여 따뜻하다.
시가 되는 이야기
임춘자
화장을 지우고 편안한 옷을 입고 거울을 봅니다
거기
저물도록 피어있는 꽃 한 송이 있습니다
들찔레 같기도 하고 목단꽃 같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향기에 이끌려
한참 눈부시게 바라봅니다
마주 보며 웃어주는 그 여자의 웃음이
오늘 따라 화사합니다
이제 그녀와 나
어쩔 수 없이 오랜 정 나누고 있습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오래 바라봅니다
어느 날 내가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을 한다. 저물도록 피어있는 꽃 한송이 같다고 한다. 그 꽃은 들찔레 같은 모습 또는 목단꽃 같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목단꽃 같은 모습이기도하다. 나는 여태 그 생각을 못했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확연해지는 것 같았다. 가장 위대한 삶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그것도 자신에 대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가능할 것 같다. 임춘자 시인은 거울을 보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정적인 삶을 노래하고 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삶이고 시 작품이다. 13년 전의 시인데도 오늘의 일처럼 생생한 전달력을 갖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시적 언어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 나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