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원, 1987년의 문단사
목 차
* 1987년 4월 – 해안문학회 모임 안내장 * 1987년 5월 8일 – 강원아동문학회 원고 청탁
* 1987년 5월 8일 – 『물레문학』 6집 발간 원고 청탁
* 1987년 5월 8일 – 정선문인협회 설립
* 1987년 5월 8일 – 정선문협 설립, 안내장 발송 * 1987년 5월 13일–한국아동문학회 작가상 시상식 안내장
* 1987년 5월 25일 제2회 청소년 백일장 심사위원 선임 * 1987년 5월 27일. – 조약돌 15집 발간 원고 청탁
* 1987년 5월 – 원고청탁 논문, 한국국어교육학회 * 1987년 6월 – 관동문학 취지문 및 관동문학회 정관 * 1987년 6월 8일 – 호암시조문학회, 어린이 시조 청탁 * 1987년 6월 – 감사장 보냄(엄성기) * 1987년 6월 3일 -– 문협 정선지부 창립 인준 * 1987년 6월 10일 - 한국아동문학회 소식지 * 1987년 6월 12일 [어린이새농민] 잡지사로부터 동화 원고 청탁을 받았다. * 1987년 6월 22일 – 편지글 (진태하 국어교육학회 회장으로부터)
* 1987년 6월 24일. 해안문학회 김유진 회장이 공문을 보냈다. - 6월의 민속촌 모임 행사 안대장이었다.
1987년 6월 26일 한국국어교육학회 진태하 회장으로부터 원고를 잘 받았다는 감사의 편지가 왔다.
* 1987년 6월에 현대시조사로 부터 안내장을 받았다. * 1987년 6월 30일 국민시조선양회(회장: 경철) - 심상 시조 제1집 원고 동참 의뢰글을 보내었다. * 1987년 7월 1일 강원일보사에 창작 동화 ]금순이]를 보냈다. * 1987년 7월 2일 김신철 동시 작가께서 [한국 어린이 글짓기 연구소] 개설을 알려왔다.
*1987년 7월 4일 김남환시의 장녀 이주혜양이 서울 규수당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정완영 선생이었다.
* 1987년 7월 5일. - 미래시 11집 출판기념 및 7월 시낭송회 * 1987년 7월 10일 ‘87여름 세미나 참가자 파악
*1987년 7월 14일 – 산촌시인학교 강사 초빙 * 1987년 9월 5일 – 박경종 선생 편지글 * 1987년 9월 25일 - 태화산 제2회 시화전 안내장
1987년 10월 2일 한국아동문학회 이주숭 사무국장으로부터 업무 연락을 받았다. 회원신분증 제작 및 교부에 관한 건.
1987년 10월 18일 – 김진광 시인 편지글 강원아동문학상 시상식 장소 문제 의논 * 1987년 10월 29일 – 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시집 발간 강원일보 기사
* 1987년 10월 30일 - 우편엽서 받음 – 김원기 시인으로부터
** . 1987년 10월 26일 정인길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 ** 1987년 11월 26일자 [어린이 강원 기사] - 강원체신청 주최 편지쓰기 공모작품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하다
**강원아동문학회(회장: 박유석) 1987년 12월 20일
**강원문인협회(지부장: 황영찬) 강원문학 14집 출판기념 및 송년의 밤 - 춘천여성회관 2층 회의실 - 1987년 12월 23일
+++++++++++++++++++++++++++++++++++++++++++ 차례
* 1987년 4월 – 해안문학회 모임 안내장
1987년 연초에 해안문학회에서 전달 문서를 받았다. 해안문학 동인회장 김유진으로부터였다. 김유진(1926-1987)이 시인인 줄은 알았지만 해안문학회 회장을 맡았다는 것을 이 문서로 알았다. 김유진은 1952년대 강릉의 문학동인지 「청포도」 동인으로도 활동하였다.
*** 의논할 내용을 보냈다.
- 엄창섭 시인 <땅에 쓴 장시> 출판 기념 - 해안 제4집 원고 제출 내용 중에는 회원 장기 자랑도 있었다. 시간은 1987년 5월 2일 오후 5시 30분. 장소는 금학동 카페 [다랑]이었다.
* 1987년 5월 8일 – 강원아동문학회 원고 청탁
* 나는 강원아동문학회 사무국장으로, 1987년 5월 8일자로 강원아동문학회원에게 공문을 보냈다. 내용은 강원아동문학 12집 원고 제출이었다.
* 1987년 5월 8일 – 『물레문학』 6집 발간 원고 청탁
** 정선어라리문학 회장으로 회원들에게 <물레문학 6집> 발간원고청탁 공문을 보냈다. 사무국장은 있었지만 명목만 있고 활동은 하지 않았기에 내가 전부 보냈다. - 동시나 시 : 5편 - 동화나 소설 : 원고지 30매 이내 - 문학평론 : 원고지 50매 이내 - 수필 : 원고지 15매 이내 - 약력 1매 - 기한 1987년 5월 30일
* 1987년 5월 8일 – 정선문인협회 설립
나는 정선아라리문학회장으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게 공문을 보냈다. 안건 : 정선 문협 지부 설립에 대한 통보
1.일시: 1987년 5월 30일 토요일 오후4시 2.장소: 정선군 문화원 소강당 (회의실)
* 1987년 5월 8일 – 정선문협 설립, 안내장 발송
문학의 불모지인 정선에 문학의 씨를 뿌리지도 어언 8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라리문학회의 전임 회장인 전태규 시인을 중심으로 여러 회원들이 물레문학 5집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는 이를 발판으로 문학 인구의 저변확대와 우리 문학인의 권익 옹호는 물론 향토문학 발전을 위해 한국문인협회 정선군 지부를 창립하는 일이 필요불가결하게 되었습니다. {이하 생략}
그리하여 아래와 같이 문협 창립을 하겠다는 내용을 전했다.
1. 일시: 1987년 5월 30일 오후 4시 2. 장소: 정선문회원 소강당. 3. 안건: 정선 문협 설립에 따른 임원 조직.
발기인은 아라리문학 회언무두 17명으로 하였지만 박유석, 남진원, 전태규, 최도규가 중심이 되었다. 실제적인 모든 업무는 내가 맡았다.
* 1987년 5월 13일–한국아동문학회 작가상 시상식 안내장
한국아동문학회(회장: 박화목)가 제정한 제9회 한국아동문학 작가상 시상식 안내장을 받았다. 수상자는 동시 부문: 엄성기. 동화부문:고계영 1987년 5월 23일,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시상한다.
* 1987년 5월 25일 제2회 청소년 백일장 심사위원 선임 태백문화원장으로부터 심사위원 위촉을 받았다.
* 1987년 5월 27일. – 조약돌 15집 발간 원고 청탁
조약돌 아동문학회에서 조약돌 15집 원고청탁서를 보내왔다. <조약돌>은 엄성기가 맡은 후 줄곧 작고할 때까지 이어졌다. 만약 운영자나 책임자가 일정 기간 봉사를 한 후 바뀌어졌으면 아마 더 내실과 확장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강릉 지역 뿐만 아니라 욕구가 큰 자들이 맡거나 심사를 하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가 보다. 이는 강릉 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춘천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신문 신춘문예 심사도 같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하면 그 폐단이 얼마나 큰 것인가? 그러함에도 계속 장기적으로 같은 인물이 하는 모습을 보고 문학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자리를 꿰 차고 앉으면 내놓을 줄을 모른다. 비단 조약돌 뿐만이 아니다. 대개 다 그런 점이 공통점이었다. 강원아동문학회는 박유삭이 장기작으로 하다가 내놓은 후부터 회원도 확장되고 작품력도 높아졌다. 강원아동문학상 뿐만 안라 신인작품상 등단 제도까지 생겼다. 문학이든 행정이든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은 모든 것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 1987년 5월 – 원고청탁 논문, 한국국어교육학회 나는 당시, 한국구어교욱학회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마감 기한 :1987년 8월 31일
* 1987년 6월 – 관동문학 취지문 및 관동문학회 정관
* 1987년 6월 8일 – 호암시조문학회, 어린이 시조 청탁
성덕제(1936 - )는 강원도 춘천 출생시인으로, 1958년 강원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였다. 1985년 시조문학에 <바람>, <가치소리>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학교 교장으로, 장학사로 근무하면서 후반기에는 호암시조문학회를 만들어서, [어린이 시조]창작에 전념하였다.
*- 『한국문예사전』어문각, 1991. 참조
<어린이 시조> 8집에 시조 작품을 싣고자 청탁서를 보냈다. 어린이 시조 10편 이내. 1987년 6월 25일까지였다. 이 당시 성덕제는 양구교육청 장학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 1987년 6월 – 감사장 보냄(엄성기)
엄성기(1940- 1998)는 한국아동문학회에서 시상하는 [한국아동문학 작가상]에 선정되어 시상을 하고 돌아왔다. 이에 따른 감사장을 보내왔다.
엄성기는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59년 강릉사범학교 졸업. 1970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동시 ‘별 열매’ 당선으로 문단 활동 시작. 동시집 <박꽃>, <산골아이>, <그림위에 누워서> 등이 있다.
* 1987년 6월 3일 – 문협 정선지부 창립 인준에 관한 서류 제출 요청을 공문으로받음
* 1987년 6월 10일 - 한국아동문학회로부터 원고청탁 - 한국아동문학회 소식지 - 제34차 정기총회, 박화목 회장 유임 임원 명단, 이사 – 남진원, 최도규
** 1987년 6월 12일 [어린이새농민] 잡지사로부터 동화 원고 청탁을 받았다.
남진원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어린이 새농민] 편집실에서 선생님의 창작 동화 1편을 부탁드립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25매이고 원고 마감 시간은 6월 말입니다. ( 이하 줄임) 1987년 6월 12일 농협중앙회 홍보국 , 어린이 새농민 편집실 김봉익 올림
* 1987년 6월 22일 – 편지글 (진태하 국어교육학회 회장으로부터) 회비를 보낸 데 대해 감사 인사의 편지글.
** 1987년 6월 24일. 해안문학회 김유진 회장이 공문을 보냈다. - 6월의 민속촌 모임 행사 안대장이었다.
초여름의 무성한 잎들이 짙어가고 있습니다. 회원간에 못다 나눈 이야기와 숨은 기량을 마음 껏 펼쳐보이며 시심을 다지는 6월의 민속촌 모임이 이번주로 다가왔습니다. (이하 생략 )
이 무렵 소수의 회원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며 아기자기한 문학 행사를 한 것 같았다. 당시 성산에 ‘민속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6월 27일 토요일 오후 7시에 모여 7시 30분에 ‘다랑에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1987년 6월 26일 한국국어교육학회 진태하 회장으로부터 원고를 잘 받았다는 감사의 편지가 왔다.
* 1987년 6월에 『현대시조』사로 부터 안내장을 받았다.
시조의 중흥과 발전을 위해 원고 모집을 한다고 하였다. 1. 제1회 신인문학상 작품 모집 창작 시조 5편 이상 작품 모집은 연 2회로 하고 심사위원은 기성 시인으로 한다고 하였다.
2. 독자 원고 모집 – 시조. 평론. 수필 등이었다. 당시 계간인 [현대시조]는 서울 종로구 교북동 10-6에 소재하였다.
* 1987년 6월 30일 국민시조선양회(회장: 경철) - 심상 시조 제1집 원고 동참 의뢰글을 보내었다. 국민시조선양회는 경철이 주도하는 시조 모임으로 광주에서 ‘국민시조선양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 1987년 7월 1일 강원일보사에 창작 동화 ]금순이]를 보냈다.
[창작 동화] 금 순 이 남진원
“애, 금순아?” “네?” “내일이 며칠이냐?” “12일이어요, 어머니.” “그런, 정선 장날이구나.” 어머니는 장을 보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산에서 금순이가 캔 약초를 팔러 나가야 합니다. 5일 마다 한번 씩 오는 장날이 되어야 금순이네는 돈 구경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금순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읍내로 버스가 들어서자, 벌써 장터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장날이 되면 우리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광하리, 가수리, 귤암리, 석곡리 등에서도 장을 보라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골목을 헤집고 들어서자 한 곳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둘러서있고 그 속에서 여자 아이의 노랫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금순이도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얘야,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 “아무 것도 아니어요. 그냥 가세요, 어머니.”
금순이는 어머니의 팔목을 끌었습니다. 괜히 화가 치밀었습니다. 사람들이 둘러섰던 그곳에는 늙은 장님 할머니가 쭈그려 앉았고 그 옆에는 금순이 도래의 여자 아이가 땟물이 흐르는 옷을 입고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노래가 끝나면 백원 짜리 동전을 아이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 던졌습니다. 금순이는 누구에겐가 놀림을 받고 있는 것처럼 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엄마도 장님이다. 그런데 저 할머니도 … ’ 이런 생각을 하니 노래를 부르던 핼쓱한 아이가 금순이인 자신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약초를 팔고난 뒤 금순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중, 버스 속에서도 자꾸만 노래를 부르던 여자 애와 장님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해가 설핏하게 기울고 있었습니다.
금순이는 빨랫감을 들고 개울로 나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심하구나! 다른 집 애들 같으면 어머니에게 응석이나 부릴 나이인데 … .” 이웃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빨랫감을 들고 개울로 나가는 금순이를 보고 말끝도 채 잊지 못했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 말씀처럼 아닌게 아니라 때로는 금순이도 응석을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또 마음 아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 못 보시는 것만 해도 속상한 일인데, 어머니의 속 마음을 상해 드린다면 얼마나 힘드실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애들처럼 응석 한 번 부리지 않고 이날까지 생활해 왔던 것입니다.
빨래를 하며 금순이는 생각했습니다. 같은 반에 있는 명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외롭게 살아갑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신은 훨씬 행복하다고 여겼습니다.
먹은 후 숙제를 하곤 나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산 숲에서 반닷불이 날아다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자리에 누우니 문득 4학년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넷째 시간은 체육이었는데 금순이는 몸이 아파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교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4교시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온 옆 짝 영남이는 필통을 열어보고는 돈을 잃어버렸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영남이는 금순이를 흘끔흘끔 보며 책을 모두 꺼내어놓고는 책가방을 툴툴 털었습니다. “분명히 여기에 뒀는데 ….” 필통 속의 연필을 꺼냈다가 들여놓았다가 하며 법썩을 떨었습니다.
금순이는 입장이 매우 난처했습니다. “ 너 이 필통 안에 넣어둔 돈 못 봤니?” 영남이는 마치 내가 가져간 것이 아니냐는 말투였습니다. “나는 못 봤어. 얼만데?” “천 원.” 영남이는 뾰루퉁한 모습으로 대답했습니다. “난 모르겠는데?” “흥, 넷째 시간 교실에 만아 있던 아니는 너 밖에 없었단 말이야.” 이젠 숫제 도둑놈으로 몰아대는 눈치였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순정이, 혜란이도 저희끼리 눈을 찡긋거리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금순이는 몸이 아파서 줄곧 책상 위에 엎드려만 있었는데 도둑의 누명까지 쓰게 될 형편이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난 정말 모르는 일이야.” 금순이는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퉁명스러워졌습니다. “야, 너 말고는 교실에 아무도 없었잖아. 그렇게 여우 같이 시침이 떼지 마.” “뭐라고? 이겔 누굴 도둑 취급해?” “봉사 딸 주제에 참 별꼴 다 보겠다. 이제는 남의 돈까지 훔치고?”
금순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습니다. 아프던 일도 말끔이 잊었습니다. “너, 말 다했니?” “그래, 대 했다. 도둑년아, 왜, 왜?” 금순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영남이의 머리채를 확 나꿔챘습니다. “도둑년이 사람 죽인다!” 영남이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렸습니다. 그때 입이 빠른 순금이가 쪼르르 교무실로 달려가 선생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다 불러놓고 주머니 검사와 책가방 검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렸다는 영남이의 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책 걸상과 책갈피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돈은 엉뚱하게도 영남이의 국어 책 책갈피에서 나왔습니다. 그때서야 영암이는 생각이 났습니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필통에 있는 돈을 꺼내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학용품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때 6학년인 원규 오빠가 창밖에서 보자는 말에 국어 책갈피에 급히 넣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영남이는 건망증이 좀 싶한 편입니다. 여느 때는 연필을 손에 들고도 연필을 찾느라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
“영남이는 정신이 그렇게 없니?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남부터 의심하는 버릇은 안 될 일이야!”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영남이는 금순이에게 사과를 했지만 급순이는 분이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봉사라고 아이들이 깔보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습니다. 앞을 못 보시는 어머니가 그날 따라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어머니, 앞이 안 보이시니 갑갑하시지요?” “원, 녀석두. 너만 곁에 있으면 이 어미는 온 세상이 환하단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말이 생각납니다. 금순이는 잠드신 어머니의 손을 만져보았습니다. 손등이 꺼칠하셨지만 금순이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손이었습니다. “어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
금순이는 방의 불을 끄고 어머니 곁에 누웠습니다. 여름밤이 깊어갑니다. 뒷산 숲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 모녀를 위해 풀벌레들이 아름다운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 강원일보. 1987. 7. 1. )
1987년 7월 2일 김신철 동시 작가께서 [한국 어린이 글짓기 연구소] 개설을 알려왔다.
김신철씨는 동아일보 문화센터에 출강하고 있었다.
1987년 7월 4일 김남환시인의 장녀 이주혜양이 서울 규수당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정완영 선생이었다.
* 1987년 7월 5일. - 미래시 11집 출판기념 및 7월 시낭송회
문학회 회원 전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때 회장은 김남환 시조시인이었다. 결산보고서도 보내왔다.
1987년 7월 10일 ‘87여름 세미나 참가자 파악 -ㅡ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리태극 )
1987년 7월 14일 – 산촌시인학교 강사 초빙
정선문화원으로부터 증산국민학교장 앞으로 공문을 보냈다. 그 학교에 근무하는 남진원 정선어라리문학회장 [산촌시인학교] 강사 초빙 내용이었다. 대상은 정선 관내 중교생 100여명. 정선읍 야외에서 펼쳐졌다. 정선군의 연규환 부군수를 비롯하여 박유석, 최도규, 남진원 등이었다. 당시 박유석은 동원 국민 학교, 최도규는 남선 국민 학교, 남진원은 증산 국민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 1987년 9월 5일 – 박경종 선생 편지글
박경종 선생께서 편지글을 보내주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늘 첫머리에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라고 시작하였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분이었다.
- - -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정성껏 보내주신 영지 버섯을 잘 받았습니다. 나 보다 집사람이 더 좋아하는 군요. 참 감사합니다. 먹고 건강하여 좋은 글 많이 쓰겠습니다.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이하 문면 생략 )
* 1987년 9월 25일 - 태화산 제2회 시화전 안내장
평창에서 문학 활동을 하며 후배들을 이끈느 정태모 선생께서 태화산 제2회 시화전 안내장을 보내주셨다. 정태모 선생은 당시 밧지 분학회 회장으로 계셨다.
벗지문학회의 이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79. 10, 4. 임시 모임을 갖었다. 1980. 3. 19. 교육청 주관 초등 문예 써클을 조직하였다. 1981. 3. 20. 문예써클 명칭은 ‘벗지’, 책명은 ‘태화산’으로 결정하였다.
1981. 9. 22. 제1회 시화전 개최 1982. 12. 4. 태화산 제1집 발간 〜 1986. 12. 9. 태화산 제5집 빌긴 1987. 10. 1. 제2회 시화전 개최.
* 회원 정태모, 이연승, 박영훈, 박용옥, 이낙봉, 정진경, 김종철, 임병용, 류명환, 신대식, 이갑창, 김경순, 김옥수, 최연주, 윤용철 등이었다.
1987년 10월 2일 한국아동문학회 이주숭 사무국장으로부터 업무 연락을 받았다. 회원신분증 제작 및 교부에 관한 건.
1987년 10월 18일 – 김진광 시인 편지글 강원아동문학상 시상식 장소 문제 의논
* 1987년 10월 29일 – 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시집 발간 강원일보 기사
* 1987년 10월 30일 - 우편엽서 받음 – 김원기 시인으로부터
김원기 詩伯은 강릉이 낳은 拔群의 시인이다. 그의 동시 ‘산위에서’는 국정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워낙 겸손하고 훌륭한 인품이 있는 분이었다. 강릉교육청에서 장학사 직을 오래 하셨고 평창 호명 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시다가 돌아가셨다. .
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시집을 내자, 감사의 엽서 편지를 보내주셨다.
네 번 째 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축하합니다. 선생님의 시는 그 정서가 섬세하고 관찰이 예리하여 읽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표현 기교도 다양하여 자루하지 않게 읽히는 책이네요. 더욱 빛나는 세계 구축하시기 바랍니다. 1987. 10. 28.
** . 1987년 10월 26일 정인길 교감 선생님으로부터도 감사 편지를 받았다.
=============================================== ** 1987년 11월 26일자 [어린이 강원 기사] - 강원체신청 주최 편지쓰기 공모작품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하다
※심사평: 국민 학교 고학년 보다는 저학년에서 우수한 작품이 많았다. 저학년은 학생들의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편지로 써 읽으면서 가슴이 찡하고 따뜻한 어린이의 마음이 훈훈한 향기로 울려나와서 좋았다. 편지의 대상도 생활속에서 찾아 쉽게 썼다.
고학년은 편지글의 형식에 맞추어 잘 쓰고 있었으며 개성있고 발랄한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 학생 중에는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과장된 표현이나 미사여구가 잘 된 것이 좋은 편지인 줄 아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고쳐야 할 것이다. 편지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된 마음을 씀으로써 좋은 편지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중학생의 경우, 편지에는 전하려는 내용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 내용이 반드시 아름답거나 신기한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편지에 담긴 내용에는 글 쓴 사람의 정이 느껴져야 한다. 억지로 꾸며서 쓴 글일수록 읽는 사람에게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편지에 담긴 내용은 되도록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순서 없이 마구 써놓은 글은 명확하지 못해서 무슨 얘기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 심사위원 ⁍ 김영기 – 문학평론가. 강원일보 논설위원 ⁍ 노화남 - 소설가 ⁍ 박유석 - 아동문학가 ⁍ 남진원 - 시인, 아동문학가 ⁍ 유영식 - 강원일보 어린이강원부 부장 ⁍ 최정순 - 강원체신청 우무과장 ------------------------------------------------
**강원아동문학회(회장: 박유석) 1987년 12월 20일 강원아동문학 12집 출판기념 및 강원아동문학상 시상식- 김진광 ‘시루뫼마실 이야기’ - 장소:춘천시 교육청 내 어린이회관 2층
**강원문인협회(지부장: 황영찬) 강원문학 14집 출판기념 및 송년의 밤 - 춘천여성회관 2층 회의실 - 1987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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