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장공비의 침투가 잦았던 1960년대 우리 군도 북파 작전을 벌여 북한군을 사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YTN 보도에 따르면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은 김관진 국방장관이 참석한 국회 국방위원회 간담회에서 자신이 북한에 3번 들어가 보복작전을 했으며 북한군 33명을 사살 했다고 말했다.
이진삼 의원은 북한군의 잇단 GP 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면서,
이 의원이 지난 1967년 당시 대위 시절에 특수요원들을 이끌고 황해도 개풍군 북한지역에 3차례 침투해 북한군 33명을 사살했다고 설명했다.
군의 방첩부대(현 기무사령부) 요원들이 1960년대 후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에 침투, 인민군 33명을 사살한 것으로
서부전선의 북한 개풍군에 침투, 13명의 인민군을 사살했다.
당시 북한군이 미군 GP를 폭파한 데 대한 응징 보복작전이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북한에 침투, 20명의 인민군을 추가로 사살했다.
그동안 비밀로 묶여 있다 최근 해제되면서 기무사령부가 일부 국방위원에게 공개해 알려졌다.
[이진삼 의원.자유선진당]
이듬해 김신조가 31명 데리고 청와대 습격한게 보복 차원에서 왔구먼..
그런줄도 모르고 어릴때 우리는 짐승같은 공산간첩 이라고 배웠지..
멀쩡히 수업료 내고 공부라고 했는데 북한이 더 가난하다고
거짓말을 배웠으니 박정희의 죄가크다..지금와서 당시 학교다닌
사람들은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군 4성장군 출신이 당당하게 정전협정 위반을 당당하게 인정하셨네
(사실 남한군은 정전협정당사자가 아니니 위반이라고 까지는 쩝)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김신조( 서울성락교회 목사)사건등 대남무력행동이 심각하고 남한을 적으로 삼는다고 알려져있지만 강원도 사찰에 모셔진
미귀환 HID요원이 7천8백명인 사실(1972년까지) ...내막을 알고보면 누가 정전협정을 많이 위반햇는지 호전적인지...깨어있는 백성의 몫
북한 호전적 포스타보면 남한민중을 적으로 삼지않고 전부다 100% 미제,미군척결내용이죠 ...
옛날 나이든동료와 숙소에서 이불 깔고 소주 들이키며 선배왈 야 절대 야그하면 ㅋ 안되 북에 침투하여 인민군 사살하고 부상당한동료
데리고 오지 못하는 이야기 군에서 나이든 상사가 하는 야그 ... 속이고 백성을 호도하는
3,8선 돌파한날이 국군의날이죠 이승만은 북진통일 정전협정에도 참석 안하고
...
HID,UDU,MIU등 이들은 보상비로 1억5천(70년대후반근무자까지)그후는 좀더 작게 받앗나...
그들은 또 소송중인데 광주민주화운동단체와 거의 같다
그레서 소송중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내막을 좀 알지만 그렇다면 대한민국전역군인 전부다 보상해주어야 합니다
첫댓글 '강원도 사찰에 모셔진 미귀환 HID요원이 7천8백명인 사실(1972년까지)'... 또하나 배웠네요..
▲ 짜가 정보사요원★
미귀환 정보요원이 7천8백명이면 요원들은 대체로 분대단위(5~7명)인데
얼마나 많은 적정침투작전이 잇었는지 돌아온자 포함 하면요
간첩은 제네바협정 적용을 받지않고 간첩죄로 다스립니다 정보요원들은 그레서
군번을 반납합니다 물론 자기 군번은 있지요 ...실미도요원은 민간인입니다(공군소속 )
정보요원들은 전부다 중앙정보부가 관할했습니다...
정보요원들 옛날에 공기업에 마니 취직시켜주었죠 노사분쟁때 잘 써먹었죠 80년대 후반에요 ^^
북파공작원은 대체로 혈기방장한 젊은이를 보냈고
남파간첩은 대체로 한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내려왔죠
위 사실은 한쪽은 무력을 한쪽은 사상전을 펼쳤다고 볼수있죠 ...
오히려 남한이 더 북쪽가서 지랄발광했군
설악산에서 동해로 뻗어내린 능선에 있는 양양 영혈사에 위패가 있더군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후원에 위치한 충용각에 안치
양양 영혈사 위패를 두곳에다 모신다 ...한국인 정서에는 안맞는데요
아님 별개의 신위를 모시는건지 혹 아시는분 설명좀 ...
현재 영각에 북파공작원 1백98위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서울 봉은사 망월사와 양양 영혈사에 등의 사찰에는 한국전쟁 이후 북파됐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북파 공작원 7천7백26명중 일부의 위패가 있다. 나머지는 국군정보사령부 충혼탑에 위패를 안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