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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한기욱,
「사유 •정동 •리얼리즘-촛불혁명기 한국소설의 분투」
『창작과 비평』
2019년 겨울 제47권 제4호 통권 186호 ©(주)창비 2019
개평
한기욱은 이 평론에서 개념들을 엄밀하지 않게 온통 뒤섞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개념작용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만, 프레드릭 제임스의 언급을 빌려서 정의한 문장을 바탕으로 하면, 몸으로부터의 정서적 충돌의 정동으로 보고, 지성으로부터의 추론적 작용을 사유로 보는 것 같은데, 정작 그가 들고 있는 예화들에서는 이것들이 과연 정서적인 것인지, 추론적인 것인지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예컨대 소설에서 [‘조그만 돌이 쪼개지는 듯한’ 야멸찬 때림]은 한기욱의 말처럼 그 자체로는 정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때림을 계속 사유하고, 강조하고, 선택하는 화자 혹은 작가의 시선은 정치적인 지성이다. 한기욱 스스로도 그 정치성을 해석하는 것으로 이 평론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그러니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것의 재분배’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쓰려했다면, 한기욱은 로고스의 작용과 파토스의 작용을 조금이라도 더 연구하고 이 글을 썼어야 했다. 그렇게 그는 검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략하고는, 마치 누스가 결국 로고스와 파토스를 ‘통합’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퍽 플라톤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촛불혁명을 긍정하는 듯이 글을 시작하지만 이러한 결론을 보면 그는 명백히 우파다. 문학의 미덕은 이러한 강고한 이데아론자의 단일성에 대한 욕망에 있지 않다. 반대로 그것에 끝없이 저항하는 정념론자의 순수성에 대한 신념에 있는 것이다. 그 신념이 만들어내는 다양체적인 생성에 있는 것이다. 사유에 포박된 정념이 아니라, 반대로 사유를 전복하는 정념 그 스스로의 무정부성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이 시대 평론가의 역할 아닐까.
결론: [사유와 정동이 본질적으로 대립적이거나 이율배반적인 것이라면 사유가 정동의 작용을 차단하거 나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사유가 정동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반면 정동마저 통합하는 사유가 있다면 그런 사유 야말로 어떤 상투성에 매이지 않으면서 정동의 아니키즘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따져보면 김수영이 시작에 대해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할 때의 사유는 이미 정동이 내재된 사유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이 글은 이 세대 작가들을 폭넓게 훑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한기욱에게는 현장비평가의 경탄할 만한 활기가 있다. 사실 한기욱의 평들을 기억하려고 이 평론을 정리한 것은 아니다. 이것들을 알아두고자 발췌한 것이다. 김세희의 「그건 정말 슬픈 일일거야」는 한 번 찾아서 읽어보아야 겠다.
정리한다. 알라딘인터넷서점 저자파일과 네이버 인물검색란을 이용했다. 2019년에는 이러한 소설, 소설가들이 주목받았다. 작가로 데뷔해서 수상후보에 오르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연혁을 보면 놀랍게도 이들에게는 수상이 쉬운 일이었다. 언제나 소수파 문학이 문학의 역동성을 끌어가지만, 적어도 이들이 주류 문학파의 이 세대 대표일원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타협을 존중하지는 않더라도, 파악은 해야 한다.
한기욱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 수/창작과비평」편집주간. 저서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 는가 등이 있음. kiwookh@gmail.com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다다의 우선』 창비 2019)
한강, 『채식주의자』(창비 2007)
조남주, 『82년생 김지영』(민옴사 2016)
황정은, 「양의 미래」「누가」「상류엔 맹금류」(『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
김세희, 「가만한 나날」, 「드림팀」, 「감정연습」, 「그건 정말 슬픈 일일거야」 (『가만한 나날』, 민음사 2019)
-박상영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등이 있다. 2019년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출생 1988년
학력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
데뷔
2016년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수상
2019년 제11회 허균문학작가상
2019년 제10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2018년 제9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김초엽
2017년 『관내분실』로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했고, 2019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4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 『원통 안의 소녀』와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펴냈다.
출생 1993년
학력
포항공과대학교 생화학 석사
포항공과대학교 화학 학사
-박문영
남쪽 지방 소도시에서 고양이 미세, 먼지와 함께 작업한다. 주로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루며 힘이 닿는 대로 그림일기를 남긴다.
제1회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파경>으로 수상, 제2회 SF어워드에서 중편 《사마귀의 나라》로 대상을 받았다. 시리즈 그림책 《그리면서 놀자》, 만화집 《봄꽃도 한때》(공저), 멸종위기종을 위한 웹툰 <천년만년 살 것 같지>를 만들었고, 이를 확장한 만화에세이집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는 2018년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에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창작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장편SF 《지상의 여자들》을 출간했다. 자리를 못 잡고 겉도는 것, 기괴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대상, 여성·어린이·청소년의 감정과 심리에 관심이 많다.
-한강
1970년 늦은 가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출간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생 1970년
학력
연세대학교 국문학 학사
-권여선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등단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숲》 《안녕 주정뱅이》, 장편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산문집 《오늘 뭐 먹지?》가 있다. 상상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생 1965년, 경상북도 안동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국문학 학사
-정이현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대 정외과와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등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황정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소설집 『디디의 우산』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제3회, 제4회 젊은작가상, 제5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조남주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같은 해 출간된 『82 년생 김지영』으로 2017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1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외 저서로 소설집 『그녀 이름은』이 있다.
출생 1978년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수상
2016년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조해진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생
1976년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
데뷔
2004년 문예중앙 등단
-김애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자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같은 작품을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한무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백수린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중편소설『친애하고, 친해하는』, 엽편집『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번역서 『문맹』을 출간했다. 젊은 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진영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집 『팽이』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학력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가 있다.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생
1979년 10월 10일, 부산광역시
학력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최은미
1978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가 있다.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은영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났다. 2013년 중편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출간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출생
1984년, 경기도 광명
데뷔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 당선
관련정보
이 단편이 대단하다 - <씬짜오, 씬짜오> 단편 보기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어비》,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가 있다.
-임솔아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있다.
출생
1987년
데뷔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시부문 등단
-김세희
1987년 목포 출생.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세계의 문학》에 「얕은 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가만한 나날』,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이 있다.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출생
1987년, 전라남도 목포
데뷔
2015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
본문
몇달간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조국사태’에서 자주 떠올린 것은 사유와 정동의 문제였다.
황정은은 중편「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다다의 우선』 창비 2019)에서 어떤 특정한 의견과 논리를 생각 없이 되풀이할 때의 해악을 거론한다. 소설의 화자는 한나 아렌트의『예루살렘의 아이히만j에 둥장하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에 대해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 말인 듯하다”라고 평한다. 화자는 보수신문 의 어휘와 논조를 따라 말끝마다 “종북과 좌빨”을 들먹이는 아버지의 말에 서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 식의 상투성”을 보고는,그것이 “말하기,생 각하기,공감하기의 무능성”이라고 지적한다.(219〜21면) 조국정국에서 이런 ‘무사유’를 특징으로 하는 상투성은 화자의 아버지 같은 수구•보수 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진보쪽의 ‘진영논리’도 이와 무관하달 수는 없다.
17~18.
조국사태의 두드러진 면모는 정동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시민들 다수가 ‘정동적인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는사실이다. 가령 ‘우리가 조국이 다’라는 구호는 정치적 선택의 차원을 넘어선다. ‘조국지지’나 ‘조국수호’는 검찰의 과잉수사에 직면하여 내걸 수 있는 구호지만, ‘우리가 조국이다’는 그런 합리적인 차원 이전의,‘몸’이 개입되는 구호다. 이런 정동적인 구호에 는 즉각 화답하여 동참하든지 아니면 ‘나는 조국이 아니다’라는 몸의 반응 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 만 후자의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청년세 대의 저항이 격렬했는데, 그것은 그의 공언과 달리 그와 가족의 실제 삶이 촛불정부가 내세운 평등•공정의 지표에 어긋날 뿐 아니라 청년세대 대다수 의 현실과는 판이했기 때문이다.
19.
이 글은 촛불혁명기의 작가들이 이런 어려운 현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몇몇 주목할 만한 소설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0.
‘대세’라고 한 것은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 2007)가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일이나 최근에 영화화된 조남주의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민옴사 2016)만을 염두에 둔 이야기는 아니다, 딱히 페미 니즘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전 세대와 달리 최근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는 여성이 자기 삶의 주체이거나 주체가 되려는 과정이 기본값으로 주어진 다. 이런 현상은 이 시기에 함께 부상한 퀴어문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 령 이전 시기에는 박상영의 ‘재희’ 같은 당당한 여성인물이 출현하기 힘들 었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SF 둥도 예외가 아니다. 김초엽과 박문영 등의 여성작가소설을 제하고 현단계 SF를 실답게 논하기 힘들다. 이처럼 여성의 ‘주체되기’라는 기본값을 공유하되 소재와 접근방법,감수성에 있어서 다양 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고,그것이 현재 한국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 는주된 원천이다. 이럴 수 있게 된 것은 20대에서 40대에 걸친 견실한 여성 독자층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주력이 어느새 여성 작가•독자들로 바뀐 데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문단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새로운 페미니즘 물 결이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전의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다. 상 당수 작가들이 2008년 용산참사와 2014년 세월호참사의 애도(60회를 넘긴 ‘304낭독회’ 포함)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약자: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경험 을가졌다. 그런 연대의 경험이 페미니즘운동과 결합되어 작가 개인의 윤리 만이 아니라 작품적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한강 권여선 정이현 황정은 조남주 조해진 김애란 백수린 최진영 김금희 최은미 최은영 김혜진 임솔아 김세희 둥의 주목할 만한 단편•중편•(경)장편들이 쏟아져
21.
불평등이나 계급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은 황정은의 「양의 미래」「누가」「상류엔 맹금류」(『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이다. 이 소설 들은 앞서 언급한 자본의 새로운 축적 방식에 따른 노동자 봉쇄 • 폐기 •축출 의 상과그것이 노동자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수치와 분노, 죄책감— 을 빼어나게 보여주는데, 특히 “불평등의 재현이 불평등의 ‘현실주의’에 포섭되지 않는 방식”인지를 논하는 데는「상류엔 맹금류」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소설의 1인칭 화자는 오래전에 남자친구 ‘제희’와 결혼할 마음이었으나 한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틀어져 헤어지고 만 사연을 들려준다. 화자는 제 희가 부모를 모시고 가는 수목원 소풍에 동행하게 되는데, 더운 땡볕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을 장소를 찾다가 궁여지 책으로 비탈 아래 계곡의 물가로 내려가게 되 었다. “직관적으로 그 장소가 싫었”(83면)던 화자는 계곡물에 몸 올 씻고 마시는 제희 부모에 대한 역겨움 내지 혐오감을 숨길 수 없었다. 점 심 후에 비탈길 위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맹금류 축사’라고 적힌 안 내판을 발견한 화자는 제희네 가족에게 “똥물이에요./저 물이 다,짐승들 똥 물이라고요”(86면)라고 마치 보복하듯 말한다. 화자는 제희와 즉각 헤어지지 는 않았으나 이 사건이 둘의 관계에 치명타가되었음을 감지한다.
이 소설은 계급/계층의 요소를 끌어들이되 어떤 해결책이나 전망울 제시하는 대신 대략 두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번째 질문의 맥락은 이 렇다. 번듯 하게 살던 제희 가족—누나 넷과 부모까지 총 7명 --이 제희 어머니와 가 까운 지인의 사기행각으로 거액의 빚을 뒤집어쓰게 되었을 때이다. 제희네 부모는 함께 죽는 것, 도망가는 것까지 포함해서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고생 을 하더라도 함께 살면서 빚을 갚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희네 집이 가난을 면치 못한 이유다. 이런 사연을 들은 화자는 그런 결정이 “부도덕하 다고 생각”한다. “제희네 부모님은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 자신들의 양 심과 도덕에 따랐지만 딸들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부도덕한 선택이 아니 었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69-70면) 도망가서 새출발하는 것과 고생하면 서 빚을 갚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옳은지도 하나의 질문이지만, 흥미로운 것 은 화자의 ‘부도덕하다’는 판단이다. 제희 부모가 자신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라 선택한 결정에 대해 ‘부도덕하다’고 느끼는 것은 도덕이라는 것도 상 대적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화자자신의 계급적인 편견이 그런 느낌을 유발한 것인가? 두번째 질문은 더 미묘하다.
이따금 생각해볼 때가 있다. 차라리 내가 제희네 부모님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흔쾌히 그 비탈에서 내려서서 계곡 바닥에 신나게 돗자리를 깔았다면 어 댔을까. 그편이 모두에 게 좋지는 않았을까. 그러는 게 옳지 않았을까.(87면)
화자가 이 런 자문을 하게 된 것은 지금의 남편보다 제희 에 게 미 련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그럴 땐 버려 졌다는 생각에 외로워진다. 제희와 제희네. 무뚝뚝해 보이고 다소간 지쳤 지 만, 상냥한 사람들에게”(87면)라고 생각할 정도다. 인용한 화자의 자문 을 작품의 마지막 발언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 다”(88면)—과 연결해서 읽으면,화자는 처음에는자신의 행동이 잘못이 아 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 자문에는 숨은 그림처럼 또 하나의 질문이 깔려 있다. 문제의 장소를 화자 가 ‘직관적으로’ 싫어한 것은 그 장소가실제로 그만큼 역겨운 것이었기 때 문인가,아니면 그런 정동에 빠지게 한 것은 화자의 계급적인 감수성 —가 령 하층계급과 그 환경에 대한 혐오감—이나 계급을 초월한 듯한 방관자 적인 태도 때문인가?
이런 물음들을 끝까지 따라가면 이 소설의 한복관에 여러층의 애매성이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23~24.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는 여러 주제를 건드리는 풍부한 텍스트이지만 그 중심에는 극에 달한 자본주의체제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이 놓여 있다. 결혼을 고려하고 있는 진아와 연승 커플은 연승의 선배이자 독 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소중한의 점심 초대를 받고서울 변두리에 있는 중한 의 아파트를 방문해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와 함께 넷이서 하루를 보낸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주제는 여럿이지만 “더 늦기 전에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I2면)는 연승의 장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방문의 주된 목적 도 얼마 전 유통업체 직장을 사직한 연승이 학창시절에 심취했던 다큐멘터 리 작업을 해보려고 먼저 이쪽 일을 하고 있는 선배 중한으로부터 실제적인 조언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한은 연승이 기대한 조언은 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쪽 길을 택했으나 점점 자신의 선택을 세상에 원한을 품는 알리바이로 삼게 된 사람들에 대해”(47면) 말한다. 진아는 돌아오는 길 에 연승의 어두운 얼굴빛을 보고는 “네가 세상에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있을 까”라고 염려하고 “네가 일그러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라고”(52면)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 현재의 자본주의체제를 살아가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현실적이고 앞가림을 잘하는”(11~12면) 진아처럼 체제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어 사는 방식 이 있고 다른 하나는 소중한과 그 아내처 럼 “똑같은 시스 템 안에 있”(48면)되 체제의 논리나 요구에 일방적으로 맞추지는 않는 방식 이다. 연승은 진아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다른 방식의 삶가령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삶9>—을 살려는 기대를 갖고 이전의 직장을 사직한 것이다.
이 작품이 소중한 부부의 삶을 하나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체제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고 수행자처 럼 살고자 하는 소중한은 너 무 ‘거룩’하고, 그런 방식에 아무런 불만이 없되 예측불허의 언행을 하는 부 인은 너무 ‘푼수’처럼 보인다. 게다가 정동적 요소를 활용하여 이런 대안적 인 삶의 방식이 빠지기 쉬운 허점을 즉각 환기하기도 한다. 가령 소중한이 아내의 종용에 못 이겨 “분만하려고 누워 있으면 지나가던 의사가 불쑥 거 기에 손을 넣어 보”(33면)는 산부인과 의사의 행동을 언급한다든지, 아내가 죽염 섭취로 “생리혈이 맑아졌”(35면)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장면에서 부부 의 삶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요컨대 작품은 소중한 부부 의 삶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작품은 연승과 진아의 삶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데, 둘의 차이는 분별을 요한다. 진아는 소설의 인물들 중에 체제의 ‘감정 교육’이 가장 잘되 어 있는사람임이 분명하다. 가령 그녀는 소중한의 삶의 방식보다 소중한의 집이 서율 변두리에 있는 것이라든지 좁고 낡아서 물이 새는 것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그런 반응이 사실은 ‘감정 교육’의 효과일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에 비해 연승은 “수리 영역만 빼고 수능 성적이 전부 1둥급이었어”(39면)라고 자랑할 정도로 엘리트의식이 강하지만 다른 한편 그런 특권의식을 모두 버려야 가능한 대안적 삶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자 신의 분열된 양면을 직시할 만큼 자기객관화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32~33.
이제껏 사유와 정동을 화두 삼아 촛불혁명기의 소설문학을 살펴보았다. 글을 끝내면서 보완의 의미로 사유와 정동의 관계에 대해서만 한마디 덧붙 이고자 한다. 조국사태를 통해 드러났듯, 우리는 개인적 삶을 포함하여 사 회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정동의 작용이 매우 활발해진 현실을 맞이했다. 이런 새로운 현실에서 정동의 아나키즘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유 와 정동이 어떤 관계인가를 묻는 것이 요긴해진다. 사유와 정동이 본질적으 로 대립적이거나 이율배반적인 것이라면 사유가 정동의 작용을 차단하거 나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사유가 정동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반면 정동마저 통합하는 사유가 있다면 그런 사유 야말로 어떤 상투성에 매이지 않으면서 정동의 아니키즘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따져보면 김수영이 시작에 대해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할 때의 사유는 이미 정동이 내재된 사유라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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