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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현대시조의 고향성>이라는 박사학위 논문 중의 일부분이다. 본 논문에서 김상옥, 리태극, 정완영 세 분의 시조시인을 다루었는데, Ⅰ. 서론, Ⅱ. 고향의식의 발현 양상, Ⅲ. 고향상실감과 향수, Ⅳ. 귀향의식과 유토피아, Ⅴ.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5년 <시조문학>의 요청에 의해 본론 부분의 하나인 Ⅱ. 고향의식의 발현 양상(김상옥, 정완영, 이태극)을 6회에 걸쳐 연재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일단 <시조문학>에 발표했던 이후의 부분인 Ⅲ. 고향상실감과 향수, Ⅳ. 귀향의식과 유토피아, Ⅴ. 결론을 <제3의문학>에 연재하고자 한다. 이번호에는 김상옥 시조의 고향성 중에서 ‘고향상실감과 향수’ 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김상옥시조에 나타나는 고향상실감과 향수
김민정 (시조시인, 문학박사)
앞의 논문 Ⅱ. 고향의식의 발현 양상에서 김상옥의 시조를 ‘전통으로서의 고향의식’으로 보아 ’토속적 정서 공간‘과 ’민족정신의 뿌리 공간‘으로 분류해서 살펴보았다. 그런 김상옥의 시조에서는 ’전통정신과 전통미에 대한 향수‘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본고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 傳統精神과 傳統美에 대한 향수
가. 精神的 고향상실감
김상옥의 작품에서 정신적 고향상실감을 느끼며 전통정신과 전통미에 대한 향수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艸丁 金相沃은 1939년 文章지에 「鳳仙花」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일제말에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그때는 민족문화말살정책이 심했던 때라 한글말살정책도 심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으로 민족이 자기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판단될 때 그는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에서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뿌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민족의 정신적 고향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1947년에 간행된 그의 첫 시조시집 草笛에는 10년에 걸쳐 써온 시조시 40편이 가람의 서문과 그의 후기와 함께 실려 있다. 1부 <잃은 풀피리>에는 10편, 2부 <집오리 노래>에는 17편, 3부 <노을빛 구름>에는 13편이 실려 있다. 3부에 실린 13편은 모두가 우리의 문화적 유물․역사적 유적에 관한 것이다.
민족문화가 발달했었던 신라시대의 조상들에게서 자주정신을 찾고, 그 정신이 깃들어 있는 문화적 유물․역사적 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찬양함으로써 그것들 속에 깃든 우리민족의 얼과 민족정서를 찾고자 했다. 또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등을 찬양함으로써 민족전통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민족에게 자긍심을 주도록 노력했다.
또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인물 중에서 충신이나 위인의 이야기가 깃든 곳을 의도적으로 찾아 그 인물을 찬양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여러 번 일본 경찰에 붙들려 감옥에 갇힌 그의 애국적인 정신을 보아도 알 수 있고, 草笛의 후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한 의식이 그로 하여금 우리의 전통정신을 추구하게 하였고 민족의 얼과 민족문화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지를 작품에 반영하게 하였다.
헐린 城廓을 둘러 江물은 흐르고 흐르고
나루에 빈배 한채 몇몇날로 매었는지
갈밭속 해질 무렵에 기러기떼 오른다
흰모래 깔린 벌에 대숲은 푸르른데
무너진 흙담 안에 祠堂은 벽이 없고
비바람 추녀에 들어 窓살 마자 삭는다
욱쓸어진 古木을 돌아 다락에 올라서면
옷 빠는 안악네는 끼리 끼리 모여앉아
蒼蒼한 傳說을 띄워 물과 함께 보낸다
-「矗石樓」 전문
위 작품은 논개의 충절과 관련이 있는 진주의 촉석루를 노래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2차 진주성싸움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적들은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였다. 이 때 관기였던 논개가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 에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조선 여인의 기개를 유감없이 보여준 곳이다. 그녀는 전쟁으로 원혼이 된 6만 진주성민의 원수를 갚으려 했던 것이다.
보통 ‘江물’의 원형상징은 ‘시간의 영원한 흐름, 죽음과 재생, 생의 순환의 변화상’ 등을 나타낸다. ‘빈배’는 ‘쓸쓸함, 적막함, 실려야 할 것이 실려 있지 않음으로 하여 오는 허전함’ 등으로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안고 조국을 위해 젊은 목숨을 바쳤던 그 뜨거운 충절이 돌보아주는 이 없어 삭아가고 퇴색되고 있다. 하나의 전설이 되어 아낙네의 이야기거리로나 남아 있는 것에 화자의 안타까움이 나타난다. ‘흐르고 흐르고’라고 반복 표현함으로써 덧없는 세월의 흐름을 강조했으며, 쓸쓸한 심상을 나타낸다.
‘대숲’은 ‘변함없는 푸르름’을 나타내어 ‘절개’를 상징한다. ‘사당’은 ‘신성한 곳, 거룩한 곳, 조상의 혼을 모신 곳’이란 의미가 있고, ‘논개의 사당’은 ‘논개의 충절’을 상징하며, 또한 ‘그러한 정신’을 모신 곳이다. 논개의 사당인 ‘의기사’는 ‘사당은 벽이 없다.’라고 하여 벽조차 헐어지고 없는 상태로,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논개의 이야기를 ‘창창한 전설’로 표현하고 있는데, 전설은 원래 구체적인 배경과 특정의 증거물이 제시되는 영웅적 인물의 기행담이다. 여기서는, ‘논개의 애국심’이 전설이 되어 아낙네들의 심심풀이 이야기거리로나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물’의 원형적 상징이 ‘시간의 흐름, 사라짐,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소생, 정화와 속죄, 풍요와 성장’이라면 여기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짐’을 상징한다. 결국 「촉석루」에서 화자가 느끼는 것은 소중하게 아껴야할 논개의 애국정신을 방치하여 역사의 흐름 속으로 흘러가게 두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표현의 이면에는 정신적 지주를 잃고 정신적 고향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민족 상황을 나타낸다. 잃어가는 조국애와 민족애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민족의 조국애를 살리고 싶어하는 화자의 의지가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김상옥의 작품이 이렇게 내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자각성을 일깨우려 했다고 해서 그의 시가 목적시를 의도했거나 교시적 기능을 중요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러한 교시적 내용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상옥의 시조시는 어디까지나 서정시이다. 낭만주의 표현론처럼 원래 서정시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자기표현(self-expression)이다. 주관적 경험, 내적 세계의 ‘표현’이 서정형식이다. 서정형식은 세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직접적 관계 속에 자신의 이미지들을 제시한다. 주관․객관은 장르를 구분하는 낯익은 전통적 기준들 중의 하나다. 슈타이거에 의하면 서정적인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시적 세계관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는 분리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대결하지도 않는다. 서정적인 것은 적대감정이 아니라 조화의 감정이다.
김상옥의 작품에서 보듯 서정시는 주관적 장르이기 때문에 일인칭의 화자가 채용되며, 개인의 정서를 드러낸 것이다. 그것이 읽는 독자에게 교훈을 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독자의 자유이다. 위의 시조도 시인의 의식지향점이 돌보지 않아 초라해진 역사적 인물의 옛사당 모습에 대한 서글픔이라고 간단히 보아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시대의식과 결부시키고 시인의 꼿꼿한 정신과 결부시켜 해석했을 때, 위와 같은 상징적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초라히 남은 碑閣 비바람이 마자 헐고
풀잎 욱은 속에 메어진 얕은 새암
여기를 임의 집자리 우물터란 말인가!
그 님이 칼을 들고 北伐하러 가시던 날
이 앞을 지나치다 말우에 오르신채
한 손에 고비를 쥐고 타는 목을 추기시다
千有年 한결같이 물은 상기 솟아나고
흰 구름 푸른 하늘 그대로 잠겨있어
이젠날 임의 后裔는 다시 이를 마시다
-「財買井 - 金庾信將君의 舊址」 전문
비교적 자수율이 잘 맞는 3수로 된 연시조이다. 신라시대의 장군으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제1등 공신이었던 김유신의 집터 우물 ‘재매정’은 천여 년이 지난 지금 물이 솟아나고 있다. 화자는 비바람 속에 초라히 남은 비각의 모습과 풀잎 우거진 속에 메워진 얕은 새암을 보고 그 옛날 신라시대의 장군 김유신을 생각한다.
원래 ‘물’의 원형 상징은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소생, 정화와 속죄, 풍요와 성장’ 등이다. 그 물이 솟아나는 ‘새암’은 그러한 상징 위에 ‘맑음, 신선함, 순결함, 영원한 생명’등의 상징이 추가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재매정’이란 새암은 어떠한 상태인가 하면, ‘풀잎 욱은 속에 메어진 얕은 새암’이라 하여 그 ‘창조력 또는 생명력이 무디어진 상태, 사라진 상태'를 말하고 있다. ‘여기를 임의 집자리 우물터란 말인가!’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옛날 유명하고 화려했던 장군의 집터이고 우물이건만 돌보지 않아 초라해진 역사의 모습을 놀라와하고 한탄한다. 과거의 영광은 이렇게 사라지고 잊혀져 간다. 이 작품의 주제를 김보한은 ‘퇴색되고 변모되는 인간 역사의 허망함’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가 정작 말하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김유신 장군의 일화는 전쟁 중이던 그 때, 상황의 긴박감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김유신의 마음은 사사로운 감정을 넘어 국토 통일을 꿈꾸고 있었다. 가솔들에게 향하는 마음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 애국심이 더 컸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칼’은 무장임을 상징하는 것이고, ‘북벌’은 고구려 정벌이라고 볼 수 있다. 돌보지 않아 초라한 비각과는 달리 지금도 한결같이 솟아나는 재매정의 샘물을 ‘이젠날 임의 후예는 다시 이를 마시다’라고 하여 임의 후예인 화자는 그 물을 지금 마시고 있음을 말한다.
‘새암의 물’의 원형상징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탄생, 소생, 창조력, 생명력’ 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솟아나고 있는 물, 천년이 지난 다음에도 생명력을 지닌 ‘새암에서 솟는 물’은 아직도 계속되는 김유신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 시의 화자는 천년 전 나라를 사랑하던 김유신의 정신이, 아직도 솟아나는 그의 집 우물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그 물을 마시며, 나라를 사랑하던 그의 정신까지도 마시고 있다. 우리민족은 그러한 애국정신을 가졌던 김유신의 후예들일 것이므로 그 ‘재매정의 물맛’처럼 변함없는 애국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들어 있다. 돌보지 않아 초라해진 비각 등에 대한 비판과 안타까움이 나타나며 조상들의 애국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교훈성이 깔려 있는 작품이다.
어느날 문득 먼 귀울림, 내가 짐짓 네 房 안에 있는 줄 아는가?
내 한쪽 둘레에 쬐그만 싸리꽃 피고, 바람에 묻어온 코발트의 나비, 또 한 五百年 幼稚園엘 다녀온 鐵砂의 龍. 그리고 내 무릎앞에 네가 있고, 네 房안 세간과 네 妻子, 그리고 火藥庫와 성냥개비. 네 눈치, 네 수염, 네 사랑, 그리고 숨바꼭질과 또 어디메 눈꼽만큼도 세도 없는 나라. 그 나라의 티끌, 꽃도 龍도, 배슬어 낸 너희 어머님! 그리고 저 유유히 잇닿은 因緣의 강.
진실로 고얀지고. 네가 날 어찌 몇푼의 銀子로 바꿀라는가? 내 인제 이가 좀 빠지고, 허리에 얼룩진 醬물이 배었다기로.
-「내가 네 房안에 있는 줄 아는가」 전문
나재균은 이 작품을 ‘중장이 길어진 사설시조’라 하였으나 이 작품에서 길어진 것은 중장뿐이 아니다. 중장이 특히 길긴 하지만 초, 중, 종장 모두가 길어진 상태다. 때문에 변형의 사설시조로 보아야 한다. 본고에서는 이 작품을 초․중․종장 모두가 길어진 한 편의 사설시조로 보고자 한다.
도자기가 의인화되어 나타나는 이 작품은 상징성이 많다. 이 작품의 ‘먼 귀울림’이란 도자기가 하는 말이 '귀에 들려온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저 유유히 잇닿은 인연의 강’에서의 ‘강’은 실제의 강은 아니다. 그건 話者인 도자기가 만들어지고 그 집에 있게 되기까지의 오랜 세월의 '유구한 인연의 흐름'을 상징한다. 이 작품의 화자는 오래된 도자기인 장물이 배고 이가 빠진 鐵砂龍紋磁器이다. 이 도자기는 노인처럼 대상을 향하여,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몇 푼의 돈으로 바꾸려는 것에 노기를 띄고 호령한다. ‘허리에 얼룩진 장물이 배었다’는 의미는 실생활에 쓰이던 것임을 상징하고, 조선시대의 자기였을 가능성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고려시대의 청자는 귀족들이 주로 사용했고, 조선 시대의 도자기는 서민들이 실생활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네 방에 내가 있는 줄 아느냐’고 큰소리치는 것은 비록 그것이 '한 개인의 방에 있더라도 그것은 오랜 시간 조상의 숨결이 담긴, 인연의 강을 따라 여기까지 흘러온 우리 조상의 유물임'을 상징한다. 즉 그것은 개인의 것이되 결코 개인의 것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정혜원은 앞의 논문에서 “호령소리와 함께 그가 차지하는 정신적 용적은 불어나서 인간을 무릎 앞에 거느리도록 거대해지고 500년 세월은 童心조차 지울 수 없을 만큼 짧아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 화자인 도자기가 말하는 쬐그만 싸리꽃, 코발트 색깔의 나비, 유치하게 그려진 용 등 자기에 그려진 이 모든 유치하게 보이는 것들은 바로 ‘우리 조상의 숨결’을 상징한다.
상상 속의 동물이며 특히 동양인들이 좋아하는 용,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굳이 미술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도 한국사람이었으므로 용을 좋아하고 유머스럽게 그려넣었을 용을 ‘한 五百年 유치원엘 다녀온 龍’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싸리꽃과 코발트 빛깔의 나비’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꽃과 나비지만 그것 나름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멋있고 균형 잡힌 그림이 그려졌다면 더 가치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유치하면 유치한대로 조상의 멋과 운치, 슬기와 아픔이 배어나온다.
이 작품에서 호령하고 있는 도자기는 그러한 멋과 운치를 실생활에 적용할 줄 알았던 우리 조상의 숨결과 지혜와 손때와 애정이 깃들어 있는 예술품이다. 이러한 우리조상들의 손때가 묻고 얼이 깃들어 있는 생활용품들에 대해 가치를 전혀 인식 못하고 있는 우매성을 안타까와하는 작품이다. 도자기에 대해 유난히 애정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김상옥 시인은, 우리의 전통이 배어 있는 유물의 문화적․정신적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 작품에서 호령하는 화자는 바로 우리의 전통적 유물들을 우리민족이 무지하여 헐값으로 외국으로 팔아 넘기는 것에 대한 시인 자신의 나무람이다. 도자에 대한 애정은 「詩와 陶磁」라는 그의 수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詩와 陶磁는 사실상 별개의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자기를 詩와 더불어 이야기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비유컨대 詩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시’라고 말할 수 있겠기에 말입니다.
여기 ‘言語’라는 말이 나왔지만, 소리로써 의사를 전달하는 우리네 일상의 ‘언어’가 있고, 또 소리 아닌 어떤 造形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이른바 ‘造形言語’라는 말도 있습니다. 때문에 詩란 반드시 언어로만 빚어질 것이 아니라, 흙으로 즉 ‘조형언어’로 빚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여태껏 詩를 썼지만, 詩에서 詩를 공부하기보다는 차라리 도자기에서 더 많이 詩를 공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陶磁’를 향해 신앙에 가까운 애정과 함께 ‘陶磁’를 많은 작품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병기가 난과 매화를 사랑했다면, 김상옥은 陶磁에 대한 애정이 깊음을 알 수 있다. 陶磁에 대한 김상옥의 관심은 소재의 선택이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이들 대상에 영혼을 불어넣은 후 자유로운 상징의 기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다.
위의 작품에서는 우리의 傳統文化遺産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민중들의 우매함에 대한 준엄한 경계이며, 이러한 우매함에서 정신적 고향상실감이 드러난다.
저 굽은 돌틈으로 물과 함께 盞이 돌고
조을던 어린 舞姬 수심도 어여쁜채
질탕한 풍악 소리에 몇몇밤이 새드뇨
우수수 落葉만이 이리 저리 구으는 날
그의 后裔들은 어디로 헤매는지
지켜 선 마른 古木도 하는 말이 없더라
-「鮑石亭」 전문
鮑石亭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해 오고 있던 ‘신라왕이 이곳에서 風流만 일삼다가 나라를 망쳤다’는 부정적․비판적 시각에 의해 이 작품은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수에서는 鮑石亭은 놀이잔치를 벌이던 즐거웠던 장소였으나, 둘째 수에서는 슬픈 역사의 장소가 된다. 그 흥망성쇠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鮑石亭 옆의 마른 고목은 말이 없다. 한 나라의 망함과 더불어 화려했던 과거의 자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 찬란한 역사의 후예들도 낙엽이 구르는 것처럼 방황하고 있다.
여기서 ‘물’의 원형상징은 ‘흘러가는 것, 사라지는 것’이다. ‘물과 함께 잔이 돌고’란 ‘찬란했던 역사가 술잔과 함께 떠내려갔다’는 것을 상징한다. 결국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을 즐기다가 그 술잔과 함께 화려했던 역사가 흘러갔다. ‘낙엽’은 나무라는 모태(?)로부터 떨어진 ‘외로운 존재, 죽어가는 존재’를 상징한다. ‘후예들’도 결국은 낙엽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모태로부터 떨어진 쓸쓸한 존재, 소외된 존재로서 방황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 후예란 바로 조국을 잃어버리고, 고향도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으로 김상옥 시인의 정신적 고향상실감에 관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김상옥은 일제시대에 민족정신의 사라짐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민족에게 그것을 상기시켜 민족정신, 자주정신을 고취시키려 했다. 곧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게 하려는 의지가 담긴 작품들이다. 「矗石樓」에서는 논개의 얼을 상기시킴으로서 일제시대에 일본 장수를 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꽃다운 나이로 숨진 논개의 충절과 애국심을 기리고 그의 정신을 우리민족에게 알리고 본받게 하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신라시대의 ‘김유신’을 상기시키는 「財買井」이란 소재를 택함으로써 국토를 통일하고 사랑했던 그의 애국애족하는 마음을 본받게 하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또 「내가 네 房안에 있는 줄 아는가」라는 작품에서는 우리 민족이 무지하여 헐값으로 우리의 유물들이 팔려나가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유출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판정신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도자기의 입을 빌어 호된 꾸지람을 함으로써 우리의 소중한 유물들을 지키려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또 「鮑石亭」이란 작품에서는 역사의 흥망성쇠가 주는 교훈을 생각하고 낙엽처럼 방황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난다. 민족의 정신적 고향상실감을 인식하고 그것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드러난 작품들이다.
나. 精神的 뿌리에 대한 향수
정신적 고향상실감에 대한 안타까움은 곧 정신적 뿌리에 대한 향수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 즉 정신적 고향을 찾고 싶어하는 의식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전통적 정서가 나타나는 여러 가지 소재를 택하여 민족 정서가 깃들어 있는 것들을 찾고자 노력하며 우리의 실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러 소재를 택하여 우리의 생활 가까이에서 민족 정서를 찾고자 한다.
솔씨가 썩어서 송진을 게워내기까지
송진이 굳어서 반쯤 蜜花가 되기까지
용하다 李朝의 흙이여 너는 얼마만큼 참았는가.
슬픈 손금을 달래던 마음도 네게로 가고
그 숱한 비바람도 다 네게로 갔는데
지금쯤 李朝의 흙이여 너는 어디만큼 닿았는가.
하룻밤 칼을 돌려대고 五百年 훔쳐온 이름
어느 골짜기 스스로 그 無垢한 눈을 길러
끝끝내 찾아 낸 네 乳白의 살은 또 어디로 옮겼는가.
-「李朝의 흙」 전문
정혜원은 앞의 논문에서 이 작품에 대해 “솔씨가 썩어서 송진을 게워내기까지, 송진이 굳어서 반쯤 밀화가 되기까지 영겁의 시간을 참아온 이조의 흙은 몸을 받고, 혼을 받아냈다.”고 보고 있는데 그 몸과 혼이란 결국 도자기로 변화된 모습이라 볼 수 있다.
나재균은 이 작품을 평하면서 “김상옥의 언어 감각은 그의 작품을 더욱 더 빛나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범한 언어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구슬처럼 맑고 투명해지며, 그의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은 특히 그것이 시조일 때는 더욱 더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며 김상옥의 언어구사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정작 이 작품의 내용이나 상징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은 전혀하지 않고 있다.
‘흙’의 원형적 상징은 ‘흙으로 이루어진 대지’를 뜻하기도 하고, 대지는 ‘모든 것을 생산하는 풍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흙의 원형직 상징은 ‘대지’, ‘생명 탄생’, ‘풍요’, ‘어머니’ 등이다. 이 작품의 흙은 바로 질그릇을 만들던 재료, 즉 질그릇의 모습이 되기 전의 원형인 태토이다. 질그릇의 밑감으로 쓰는 흙이 태토인데 태토에는 백자를 만드는 고령토가 있다.
하나의 암석이 부서져 고령토가 되기까지도 수많은 시간이 걸렸을 그 흙은 다시 도자기로 구워진 후 또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화자는 ‘너는 어디만큼 닿았는가, 네 乳白의 살은 또 어디로 옮겼는가.’고 궁금해 하고 있다. ‘유백의 보오얀 살결’이란 표현에서 조선시대 백자를 만들던 ‘백토’ 즉 ‘고령토’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조의 흙인 ‘조선 백토’의 영원한 삶은 도자기로 변화된 삶이다. 도자기로 변화한 후 어디에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조의 흙’이란 ‘조선 시대 백자를 만들어내던 태토’란 단순한 의미외에 ‘이조의 도자기에서 느껴지는 조상에의 숨결’을 상징한다.
이 시조는 이조 백자의 근원을 추구해 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시인은 지금 현재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근원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만든 아름다운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그 재료는 흙이었다. 그것은 나라이름이 고려이건, 조선이건 상관없이 무구한 흙일 뿐이다. 흙을 빚어 뽀오얀 살결의 유백색 도자기를 만들기까지 어느 도공의 정성과 인내와 인고의 세월이 거기에는 담겨 있다. 바로 우리 조상의 정신, 민족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네 앞에 있으면 그저 멍멍하구나. 어디에 대질렸던지 산산이 금간 저 靈魂의 거죽. 이제사 나도 너처럼 나를 놓아버리고저!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는 기나긴 旅行이던가.
저희가 손끝으로 날리던 名目의 새는, 공중에 표표하는 나뭇잎 부스러기 종이 조바기… 너는 또 이네들을 하나하나 옷입히는 자상한 術師. 일찌기 너를 기웃거린 그 많은 구경꾼, 숫제 다른 박수와 눈물을 찾아 길을 떠났지만.
그러나, 또 무슨 꿈으로 요량하는가. 어느새 손바닥에 宮闕이 서고, 머리 위에 내려앉는 머언 斗牛의 물빛! 여지껏 광을 내던 나의 金은, 嗚呼라 네 앞에서만 이렇게 마구 넝마처럼 뒹구는구나.
「金을 넝마로 하는 術師에게」 전문
본고에서는 이 작품을 한 수로 된 사설시조로 보기로 한다. 이 작품도 도자기와 관련된 작품이다. 너의 위력이 커서 나란 대질려 산산이 금간 영혼의 거죽임을 깨닫고 나를 놓아버리고자 한다. 지금껏의 삶이 부질없는 긴 여행이었다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있다. 話者는 自我를 놓아버리고 無爲自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老子의 道德經과 일치하는 구절이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는 道德經의 구절처럼 ‘道라 하여 항상 바른 道는 아니요 이름이라 하여 항상 바른 이름은 아님’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 시조에서 말하는 ‘술사’는 여지껏 광을 내던 금마저 초라하게 만드는 위대한 사람이다. ‘어느새 손바닥에 궁궐이 서고’처럼 손바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작품도 궁궐처럼 크게 보이도록 만든 그 위대한 도공의 예술성을 찬양하고 있다. 위대한 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력을 가졌던 도공, 그는 마술사처럼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김상옥은
…이조 백자만은 아무리 작아도 옹졸한 기색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커도 미련한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기에 이러한 조짐은 일찍 인간이 낳은 조형문화에의 도전적인 경이요, 또 불가사의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손바닥 위에 궁궐이 선다’고 한 귀절은 ‘손바닥 위에 놓일 만큼 작은 도자기도 오히려 궁궐같이 커 보인다’는 감격적인 표현입니다.
라고 밝히고 있어 위 작품은 도자를 극찬한 시조임을 알 수 있다. ‘지금껏 광을 내던 나의 금’이란 지금까지 빛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이라 볼 수 있다. ‘넝마처럼 뒹구는’것은 자만심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선인들이 과거에 남긴 그 위대한 遺作 앞에 자신을 겸허하게 반성하며 그들의 영광된 유업을 계승해야 한다는 화자의 의지를 알 수 있는 표현이다. 이 작품은 시조집 느티나무의 말에 오면 다음과 같이 단시조화 되어 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함박눈 쓰고 나오더니//
오늘은/ 이 손바닥 위에/ 드높이 솟는 소슬한 궁궐!//
여지껏/ 광을 내던 순금도/ 넝마처럼 뒹구는 것을.//
-「손바닥 위의 궁궐」 전문
후기로 올수록 단순화를 추구하는 단시조를 쓰고 있는 김상옥 시인의 변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옛날 甕器장수 舜임금도 지나가고, 眼鏡알 닦던 스피노자도 지나가던 길목. 그 길목에 한 不遇의 少年이 앉아, 도장을 새긴다.
田黃石을 새기다 田黃石의 고운 무늴 눈에 재우고, 象牙를 새기다 象牙의 여문 質을 손에 태운다. 향木도 홰양木도 마저 새겨, 동글한 도장, 네모난 도장, 온갖 도장을 다 새긴다. 하고많은 글자중에 사람들의 이름字, 꽃이름 아닌 사람들의 이름字, 꽃모양 새모양으로 篆字體를 새긴다.
그 少年, 잠시 칼질을 멎고, 지나가는 얼굴들을 바라본다. 그 많은 얼굴 하나같이, 지울 수 없는 도장들이 새겨져 있다. 찍혀져 있다.
-「圖章」 전문
순임금, 스피노자가 지나던 길목, 한 불우의 소년은 도장을 새긴다. 도장을 새기는 가난한 소년을 등장시켜 작품의 객관성을 유지시키며 관조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상징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순임금과 스피노자에는 상징의 변형인 인유가 나타난다. 순임금은 전설상의 인물로 백성을 잘 살게 한 어진 임금으로 알려져 있고, 스피노자는 철학자이다. 한때 옹기장수였던 순임금처럼 어진 성인도, 스피노자처럼 뛰어난 철학자도 지나가고, 평범한 사람들도 지나가는 골목에 앉아 소년이 도장을 새기고 있다. ‘그 길목’이란 삶의 길목을 상징한다. 그 삶의 길목에서 소년은 도장을 새기고 있다. 소년은 순임금같은 삶의 길을 갈 수도 있으며, 스피노자처럼 삶의 길을 갈 수도 있음을 초장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년은 길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도장을 새기고 있다. 전황석, 상아, 향목, 홰양목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동글한 모양, 네모난 모양, 꽃모양, 새모양 등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한다. 그러면 저마다 얼굴에 도장들이 새겨져 있고, 찍혀져 있다. 소년은 삶의 관찰자로 등장해 있다.
그리고 ‘도장’의 원형상징은 ‘한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다. 어떤 책임져야할 문서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자기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도장은 ‘그 도장에 새겨진 사람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대신하여 그 사람의 권리나 의무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인다.
특히 동양인들은 도장을 많이 썼다. 문서나 그림에 낙관을 찍음으로서 자기가 쓴 글과 자기가 그린 그림임을 증명했던 것이다. 옛날 임금의 도장은 한 나라를 통치하는 임금의 상징이었다. 문서에 도장을 찍음으로서 권력을 집행할 수 있었으니 국쇄가 찍힌 판결문이나 선언문은 임금의 명령이나 윤허를 나타내므로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에서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장이 틀리듯이, 얼굴에 새겨진 도장이란 다 각각 다른 얼굴 모양을 말한다. 그 얼굴에는 저마다의 살아온 삶과 저마다의 성격이 각인되어 있다.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가 만들어온 얼굴 모양이 거기에 있다. 삶의 다양한 모습과 희노애락이 서려있는 각자의 얼굴은 우리들이 도장으로 자기이름, 즉 자기존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듯이 자기 삶의 모습과 인격의 모습을 반추해 보여주는 아주 극명한 도장이다. 인자함, 험상궂음 등 그 사람의 성격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얼굴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도장이며, 상징이다. 똑같은 칠십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도 누구는 聖人으로, 누구는 哲學者로, 누구는 凡人으로 살아간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인상을 그 사람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도장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田黃石을 새기다 田黃石의 고운 무늴 눈에 재우고, 象牙를 새기다 象牙의 여문 質을 손에 태운다. 향木도 홰양木도 마저 새겨, 동글한 도장, 네모난 도장, 온갖 도장을 다 새긴다.’ ‘꽃모양 새모양으로 篆字體를 새긴다.’는 표현에서 도장을 새기는 그 자체도 하나의 아름다움이며 우리의 전통정서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전통정서에 대한, 정신적 뿌리에 대한 향수가 나타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철쭉이 진다. 全身에 철쭉이 진다. 滿山 철쭉이 점점이 어룽진다. 흥건히 떨어져 수북이 꽃잎은 쌓인다.
바람도 햇빛도 오지 않는 이세상 저승, 典獄署 監房안엔, 뒤척여 뒤척여도 굴신조차 할 수 없는 한분 囚人이 앉아 있다. 萬古에 외로운 囚人이 앉아 있다. 날이 날마다 그 濕하고 어두운 그늘에 묻히어, 바랠대로 바래져 흴대로 희어진 그의 살갗 위에 꽃잎이 亂杖으로 어룽진다. 어룽진 꽃잎은 또 어쩌면 그리도 영절스레 山을 그리고 江을 그리던가. 오오 大東輿地圖! 저기 千年묵은 지네처럼 山의 등뼈 갈비뼈를 새겨내던 그의 팔뚝, 그의 부르튼 손끝이 파르르 떨고 있다.
보아라 저 白頭山 天池, 漢拏山 白鹿潭 에도 한결같이 그의 푸른 마음은 떨고 있다. 달빛처럼 드푸른 마음은 떨고 있다. 지금 이 百年 後生의 가녀린 가슴에도 사시나무 떨듯 그렇게 떨고 있다.
-「古山子 金正浩先生頌」 전문
이 작품의 내용은 <大東輿地圖>를 만든 김정호에 대한 찬양이다. 김정호는 남들이 인식하지 못할 때 지도의 중요성을 깨달아 그것을 제작한 선구자로서 위대한 민족혼을 지닌 한 사람이다.
불과 150여 년 전의 인물임에도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는 건 그가 양반가문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지도제작을 하지 못하게 하던 시절의 인물이었고, 또 지도를 실생활에서 별로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당시 사회분위기 탓이기도 하다. 그는 지도의 중요성을 남보다 먼저 인식하고, 자신의 집념을 굽히지 않고, 수많은 산과 골짜기를 찾아다니며 <大東輿地圖>를 완성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민족에게 이롭고 편리하게 쓰여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것은 완성되었다.
‘천년 묵은 지네처럼 산의 등뼈 갈비뼈를 새겨내던 그의 팔뚝’이란 표현 속에서는 지네의 발을 그리듯 그 많은 산맥들을 선과 면으로 제작해 내던 김정호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역력하게 드러난다. ‘점점이 철쭉이 진다’는 의미는 꽃잎처럼 아름다운 삶이 소멸함을 상징한다. ‘꽃이 진다’는 것은 ‘소멸, 죽음, 결실’등의 원형상징이 있다. 꽃처럼 아름답게 살신성인한 그의 삶이 잊혀져 가고 있음(소멸해 감)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지도 제작의 어려움은 당시 실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미약함에서 오는 경우가 더 심했다. 개인이 지도를 제작할 경우, 천기를 누설한다 하여 당시로서는 금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불리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 가며, 수많은 고생을 무릅쓰고 지도를 완성한 김정호였다. 그는 불우한 생활 속에서 오직 지도제작과 지지편찬에만 온 정성을 쏟았다.
그는 죽어서도 굴신도 할 수 없는 외로운 수인의 모습으로 저승의 감방 안에 갇혀 있다. 흥선대원군집정 때 <大東輿地圖>의 인본을 조정에 바쳤던 바 그 정밀하고 자세함에 놀란 조정 대신들이 나라의 기밀을 누설시킬 우려가 있다는 혐의로 판각을 입수, 소각하고, 그도 옥에 가두어 마침내 옥사하였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작품이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大東輿地圖>나 <청구도>가 잘 보존되고 있어 그 이야기가 와전인 것 같다는 견해도 있어, 김상옥이 그 사실을 모르고 쓴 작품이 아닐까 추정된다. 만약 그가 옥사한 내용을 믿고 쓴 작품이라면 김정호는 억울하게 죽었으며, 죽은 후에도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계속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김상옥이 <大東輿地圖>나 <청구도>가 존재하고 있는 것과 그 이야기가 와전임을 알고 이 작품을 썼다면 그것의 의미는 다르다. 그것은 ‘그의 살아 생전의 고생하던 모습’을 상징한다. 대동여지도를 그리느라 날이면 날마다 방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이 산 저 산을 올라가 그 지방의 지형을 내려다보며 그것을 그리기에 바빴던 김정호는 생전에 너무 고생을 하여 죽어서는 굴신조차 하기 힘든 몸으로 죄인처럼 방안에 갇혀 있음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일생동안 오로지 정확한 지도를 그려야겠다는 꼿꼿한 신념과 의지로 일관했던 인물, 김정호의 정신은 달빛처럼 드푸른 마음이 되어 백년 후생인 화자의 가슴에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김정호에게서 받는 화자의 정신적 감동이 그만큼 깊음을 말하고 있다. 김정호처럼 살신성인하는 모습으로 자기의 신념에 일생을 바칠 수 있었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우리의 전통적 민족 정서의 하나라고 볼 수 있으며,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김상옥의 작품 중에서 정신적 뿌리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작품을 살펴보았다. 김상옥의 작품은 상징성이 강하다. 그는 시제 설정에서도 대상의 직접제시를 피하고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작품의 해석이 어렵다. 「圖章」에서는 도장의 상징성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관찰을 보이고 있다. 「李朝의 흙」에서는 이조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지던 태토로서의 흙의 원형을 추구하고 있으며, 「金을 넝마로 하는 術師에게」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술사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 술사는 도자기를 만들던 도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古山子 金正浩先生頌」에서는 대동여지도를 그렸던 김정호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김상옥이 이러한 작품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결국 민족정서 및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의도였다. 우리 민족에게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아줌으로써 우리 민족이 스스로 긍지를 갖고 민족의 자존심을 갖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다. 民族情緖 및 正體性에의 향수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 민족만의 정서가 있다. 우리민족에 깃든 민족정서를 찾아내어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자존심을 키워가는 일은 광복 전인 일제시대에도, 광복 후에도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김상옥의 작품 중에서 우리의 민족정서 및 민족정체성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접었다 펼친 華扇 춤출 때 알아봐라!
日月도 三角山도 파르르 떨고만다
노잣돈 챙기던 處容, 온데간데 없어라.
으스름 달빛아래 방울소리 요란하다.
人造라 人工이라 요사스런 귀신들아
새벽이 열리기 전에 탈을 벗고 앉아라.
-「巫歌」 전문
위의 작품은 巫女가 巫歌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을 노래했다. 이것도 우리 민족의 정서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탈이 생기거나 원혼이 생긴다고 생각할 때 원혼을 위로해 주기 위해, 우환이 있을 때, 답답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 巫堂을 불러 굿을 했다. 이들 무당은 굿을 하면서 巫歌를 불렀던 것이다. 巫歌의 종류도 많아 부정거리, 성주풀이, 손님굿, 심청굿, 당금아기, 신중타령, 탈놀음, 사제타령, 바리공주, 씻김굿, 거리굿 등 다양하다.
이 작품에 보인 處容은 신라시대의 「處容歌」에서 유래된 처용이라 볼 수 있다. 處容은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며, 疫病을 막는 부적으로 處容의 얼굴을 그린다는 民間療法이 전해지고 있었다. 즉 신라의 「處容歌」에서는 「본디 내 것이건만 앗음을 어찌 하리오」로 處容은 관용을 베푸는 노래를 부르고, 이후에 처용의 얼굴을 그려 붙이는 辟邪進慶의 풍속이 생겼던 것이다. 잘못한 이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신라 처용에게서 우리 민족의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
굿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處容은 고려시대에 오면 용서나 화해가 아닌 대결상태를 보여준다. 고려 처용가는 궁중의 儺禮儀式 때 무녀들이 떼지어 나와서 춤과 아울러 부르는 긴 노래로서 잡귀를 불러내었다.
「巫歌」의 화자는 ‘인조라 인공이라 요사스런 귀신들아, 새벽이 열리기 전에 탈을 벗고 앉으라’고 위협적인 말을 한다. ‘귀신들’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의 ‘모든 인조로 된 것’, ‘인공으로 된 것들’은 그 탈을 벗고 본연의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이다.
‘탈’의 의미는 ‘원래 본 모습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다. 여기서 ‘탈’의 원형적 상징은 ‘가식적인 것, 진실성이 없는 거짓’ 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현대에 나타나는 인위적, 인공적인 것이 못마땅하여 巫歌를 불러 그들 귀신을 쫓으려는 화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요즘의 현대판 잡귀들을 쫓으면서 우리의 사라져가는 풍속의 하나이며 우리 민족의 한 정서였다고 볼 수 있는 巫俗信仰인 「巫歌」를 사용한 것이다.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옛 정서를 불러일으킴으로써 현재 우리 삶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찾고 싶은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 작품이다.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蝴蝶처럼
앞 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어룬님 기다릴까 가벼얍게 내려서서
포란簪 빼어 물고 낭자 고쳐 찌른 담에
오지랖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
-「鞦韆」전문
이 작품은 우리의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오월 단오날 춘향이가 향단이를 데리고 광한루에 나와 열심히 그네를 뛰는 모습, 그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사라질 듯 다시 뵈는’ 그네를 뛰는 주인공의 모습을 ‘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처럼’으로 비유하고 있어 그 가벼운 몸동작과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고 있다. 계절도 꾀꼬리가 울고, 신록이 우거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양력 5월쯤이다.
이렇게 즐거운 그네놀이인데도 사랑하는 님이 기다릴까봐 그네타기를 마치고, 머리를 다시 단정하게 다듬고 앞섶을 여미며, 아직도 가쁜 숨을 다듬고 있다. 한국적 여인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춘향전’의 춘향과는 달리, 그네를 타던 여인은 결혼을 한 여인이다. 비녀를 꽂았다는 것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상징하며 ‘어룬님이 기다릴까 가벼얍게 내려선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벼운 몸동작이 한 마리 나비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우리민족의 놀이였던 그네뛰기를 통해 민족의 정서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며, 또한 사라져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향수의 작품이다.
손에 쥐고 왔다 다시 옮겨 쥐어본다.
그가 데운 온기, 내 살에 스미는 백자
이 희고 둥근 모양을 어따 도로 옮기나.
흙이 불에 들어 한줌 뭉친 눈송이!
손과 손을 거쳐 오늘 여기 내온 모양
시시로 볼에 문질러 눈을 감고 찾는다.
눈에 묻은 때는 눈으로 씻어내고
마음 어린 그림자 마음으로 굽어보다
어디에 홈대를 지르고 다시 너를 채울까.
-「硯滴」 전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나에게까지 온 硯滴, 그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오면서 뎁혀진 온기로 내 살에 따뜻함이 전해진다. 이 작품에는 희고 둥근 모양의 연적, 또 언제 나의 손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갈 지 모른다며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흙이 불에 들어 한줌 뭉친 눈송이!’란 ‘눈송이 보다 희고 고운 연적의 모습’을 상징한다.
시인의 백자 연적에 대한 안목은 그의 수필에 잘 나타나 있다. ‘알같이 생긴 연적’이란 글에서
…사실, 이 연적은 구만리 장천을 난다는 저 대붕의 알은 아니라 해도, 거위나 백조의 알보다는 조금 크고, 타조의 알보다는 약간 작은 것이다. 눈도 코도 없이 다만 물을 머금고 물을 뱉는 두 개의 구멍이 있을 뿐, 이 수수께끼 같은 단순한 형태, 그러나 이는 다름 아닌 지난날의 어느 도공의 그 천명에 순종하던 마음을 태반으로 하여 낳은 한 개 무념의 알, 백자 연적일 따름이다.
라고 하여 그의 백자 연적에 대한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그러한 사랑을 다시 시조작품화 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한국다운 미를 꼽는다면 바로 ‘조선의 백자’라고 미술가 최순우는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조선 오백 년의 도자사상에는 이 분청사기와 아울러 백자․청화백자가 또 하나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쌓고 있었다. 원래 중국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청화백자의 풍조에서 자극된 것이지만 한국 민족은 흰빛을 그리도 좋아했다. 흰빛으로 빚어진 어리숙하게 둥근 뭇항아리의 군상들, 때때로 목화송이같이 따스하고 때로는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 조선시대 백자의 흰 빛은 그 아름다움에 참으로 변화가 많다. 우리의 미술 중에서 무엇이 가장 한국적이냐할 때 나는 서슴지 않고 조선시대 백자기를 들고 싶다.
그만큼 백자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닮아 있고, 우리 민족에게 사랑을 받아온 도자기이다. 하나의 단순한 ‘硯滴’에서 그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만든 어느 도공의 마음까지 읽으려는 화자의 마음은 진정한 우리 것에, 우리의 과거에 대한 애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유명했던 백자, 그 깨끗하고 조촐한 미, 바로 우리의 전통미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민족정서가 잘 드러나는 전통미와 정체성에의 향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으즛이 連坐우에 발돋움하고 서서
속눈섶 조으는 듯 東海를 굽어 보고
그 무슨 緣由 깊은 일 하마 말슴 하실까
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소리
옷자락 겹친 속에 살ㅅ결이 꾀비치고
도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
해마다 봄날 밤에 杜鵑이 슬피 울고
허구헌 긴 世月이 덧없이 흐르건만
황홀한 꿈속에 쌓여 홀로 微笑 하시다
-「十一面觀音」 전문
경주 석굴암의 「十一面觀音」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기에 만들어진 얼굴이 11개이고 높이 2m의 관음상이다. 그 조각의 섬세함과 정교함이 뛰어나 단단한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 한 신라장인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十一面觀音」 조각에 대한 심상이 위의 시조작품에는 생생하게 나타난다. 관음보살은 자비의 상징으로 착한 사람을 보면 자심을 내어 칭찬하면서 더욱 북돋아주고, 악한 사람을 보면 비심을 내어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고통에서 구하려고 하는 보살이다. ‘連坐 위에 발돋움하고 서서’는 세상을 살피려는 관음보살의 태도를 상징한다. ‘속눈섶 조으는 듯 동해를 굽어 보고/ 그 무슨 연유 깊은 일 하마 말슴 하실까’라고 하여 반만 뜬 눈은 동해를 굽어보고 금방이라도 무슨 말을 할 듯한 입술모양이라고 하였다. 이 시조는 조각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여 준다. 시인의 표현에 의해 비로소 피가 돌고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이 된다. 옷깃에 매어달린 수많은 구슬이 금방이라도 소리를 낼 듯하고, 하늘하늘한 옷자락 속에는 곱고 부드러운 살결이 곧 보일 것만 같고, 어여쁘게 내민 젖가슴에는 숨도 고르고 예쁘게 쉬고 있는 것 같은 보살의 모습이다. 세월이 흘러가도 언제까지나 미소짓고 있는 보살, 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황홀한 꿈속에 쌓혀 홀로 미소’하는 보살이다. 「十一面觀音」상에 흐르는 아름다운 우리민족의 정서이기도 하다. 미술가 최순우는,
나는 석굴암에 갈 때마다 그 자비롭고 원만한 본존 불상이나 보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잘생긴 한국인의 얼굴과 그 풍김을 다시금 그 모습들 속에서 되새겨 보면서 진실은 속일 수도 감출 수도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본존 석가여래불상 뒤에 숨어 서서 가냘프고도 깔끔한 모습으로 불타에 바치는 지성을 절절하게 표정짓고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신라 여성들이 지녔던 높은 절조와 청정한 풍김을 연상하면서 마음이 설레곤 했다. 이러한 아름다움이야말로 한국미의 본바닥에 흐르고 있는 선과 미의 음률이다.
라 하여 「十一面觀音」상은 한국미의 본바닥에 흐르고 있는 선과 미의 아름다움이라고 보고 있다. 다른 부조에 비해 강하게 돌출된 「十一面觀音」상은 6.5등신의 현세적 미인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이상적인 미인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김상옥은 이러한 아름다움을 시조작품화 하여 다시 한번 그 아름다움을 살아나게 하여 전통미를 발견한다.
이 시조작품을 통해 신라의 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며, 우리의 문화재를 더욱 가치있게 인식할 수 있다. 김상옥은 이렇게 문화재들을 시조작품화함으로써 우리민족에게 우리의 유물․유적을 새롭고 아름답게 인식하게 하여, 한민족의 자손으로서 긍지를 갖게 하려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상옥의「十一面觀音」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찾기의 한 작품이며, 민족정서 및 정체성에의 향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김상옥의 작품 중에서 우리의 민족정서 및 정체성에 향수를 느끼는 작품을 살펴보았다. 우리 민족이 아름답게 생각했던 우리의 유물․유적과 정서가 깃들어 있는 것들에서 전통정서와 전통미를 찾아 내어 이것을 시조작품화하였다.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인 유물․유적을 통하여 민족정서와 정체성을 찾는 일은 곧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찾고 자존심을 찾는 일이다. 앞의 작품들을 통하여 김상옥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정체성을 찾아 그것을 가치있게 만들고 보존하는 일이 우리를 우리답게 가꾸어 갈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며, 또 이 작품들은 우리의 민족정서와 정체성에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첫댓글 시조의 발전 방향을 써 달라고 하셨는데, KNS에 연재를 하기로 해서
같은 글이 여기저기 실릴까 봐, 차라리 예전에 썼던 논문을 실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 중 일부분입니다. 여섯 번 정도 나누어 실을 예정이며,
오늘 책이 나왔다고 사진을 보내오셨네요. 며칠 후 직접 방문하여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어 감사합니다. 한양대 교수였던
윤재근 박사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 2005년 시조 문학에 앞 부분을 실었는데,
그 뒷부분부터 연재하고자 합니다.
열심히 시조를 확대해 나가시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시조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궁금해 하며 이 글을 연재합니다. 제 시조도 싣겠다하여 5편을 골라 드렸습니다.
6회 정도 연재를 할까 합니다. 시조도 열심히 써야하고, 시조에 대한 논문도 열심히 써야 하고, 작품 발표도
많이 해야 합니다. 시조인들이 시조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