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은은한 산문 미학
유성호
1. 한국 문학의 성층에 기여하는 산문 문학
수필 문학이 최근 만만찮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시’나 ‘소설’에 비해 주변성과 외곽성을 면치 못했던 비허구 장르로서의 ‘수필(隨筆)’은 더욱 진솔하고 사실적인 체험 중심의 문학으로서 자신의 위상과 가치를 전향적으로 입증해가고 있다. 수필 전문지도 제법 많아졌고, 수필가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도 비교적 늘어났고, 개별 작가의 미학도 더욱 섬세한 예술성과 넓어진 시야를 든든하게 갖추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 문학의 성층(成層)에 수필 혹은 산문 문학이 의제를 제기해가는 품과 격은 한없이 넓어지고 높아져갈 것이다. 더욱 세련된 문장과 깊어진 사유로 한국 수필이 더욱 발전해가기를 희망해본다.
지난 문학미디어 겨울호에 실린 몇몇 작품은 수필이 가져야 할 이러한 인지적 충격과 정서적 친화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린 가작(佳作)들이었다. 인생론적 지혜와 함께 뭇 존재자들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작가 나름의 시선과 감각이 풍요롭게 전해지는 명품들이었다. 특별히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병리적 조건에서 삶의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미학적 시도가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살필 작가들은 순서대로 홍정자, 국중하, 구경모, 깁갑훈, 이은혜이다. 이분들의 실례를 통해 수필 문학이 주는 치유와 회복의 세계로 한번 진입해보도록 하자.
2. 감성적 미셀러니를 통한 사유와 감각의 아름다움
홍정자의 「삼대가 사려니 숲길을 걷다」는 작가, 딸, 손녀 이렇게 삼대(三代)가 제주에서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나눈 경험을 토로한 아름다운 수필이다. 작가는 오랜만에 제주에 와서 친구도 만나고 스승도 찾아뵙는데, 그 과정에서 “여행은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마력이 있다.”라면서 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졌던 상처며 굴곡을 듣게 된다. 착한 딸에게 순간적으로 깊은 연민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사실은 제주 여행의 가장 중요한 속살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삼대가 ‘사려니 숲’을 걸으면서 느끼는 ‘사랑’의 순간이 하염없는 빛을 뿌리는데, 그 안에 융융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들어 있어서 우리에게도 깊은 위안의 에너지를 선사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숲속에는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석이지만 사람들은 선뜻 앉기를 꺼렸다. 일상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나는 아이들과 자리를 잡고 통나무 의자를 하나씩 찾아 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두 발을 벌리고 두 팔을 올려 기지개를 폈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품고 살리라.
작가가 되뇌는 “아낌없이 사랑하고 품고 살리라.”라는 다짐이 이 ‘코로나 19’ 팬데믹의 한복판을 통과해가는 우리 모두의 잠언(箴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다음으로 국중하의 「무명선수의 투혼」도 일독에 값한다. ‘투혼(鬪魂)’이라고 했거니와, 작가는 완주 중앙공원에서 열심히 개인 연습을 하는 스스로를 무명선수라고 말하는 축구선수를 만나 그의 모습에서 ‘투혼’을 읽는다. 어린이집 꿈나무들과도 어울리면서 작가는 “베테랑 선수와 꿈나무 간의 간극”을 느끼면서도 이들 모두에게서 밝은 희망을 엿본다. 어느 날 꿈나무들은 훌라후프 대결을 펼치고 베테랑 선수는 골킥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작가는 이렇게 작품을 마무리한다.
중앙공원 축구장에서 혼자 연습했던 무명선수가 앞으로 더 발전하여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 선수처럼 2020~2021시즌 프리미어리그 10호 골을 뽑아낸 뒤 득점 선두가 되어 양팔을 벌리고 비행자세 포즈를 취하고 그라운드를 누비리라.
지금의 자칭 무명선수가 지금과 같이 지속적인,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세계 일류 축구선수가 되어 슈퍼스타로 발전하기를! 현대 어린이집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간절하게 기원하고 싶다.
우연히 만난 한 축구선수를 향한 응원과 격려의 마음이 훈훈하게 전해져온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웅크리고 있는 우리의 관계성이 다시금 문을 열고 소통을 해갈 가능성을 작가는 훤칠한 문장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수필 창작에 전념해가는 작가 스스로의 예술적 ‘투혼’일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구경모의 「유연성(柔軟性)」은 삶의 태도를 성찰하고 깨달아가는 인생론적 지혜의 수필이다. 계절이 바뀔 때만다 반갑지 않게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아 작가는 힘으로 제압하려고 체력을 강화하였다. 그러자 불청객 친구인 감기는 더욱 강한 힘으로 작가를 괴롭히고는 결국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끔 하였다. 이때 작가는 “불평 없이 부드럽고 유순하게 사랑하는 친구를 받아들이고” 나자 소리 없이 그가 떠난 경험을 토로하고 있다.
상대에 따라서 부드럽고 유순하게 달래주는 유연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수를 미워서 힘으로 싸워서 승리하면 그가 다시 힘을 길러 강자가 되어서 공격한다면 승패는 바뀌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여 친구를 만들면 원수는 영원히 없어진다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강한 이빨은 잘 부러지고 잘 썩기도 한다. 하지만 부드럽고 유연한 혀는 부러지는 법이 없고 좀처럼 병들지도 않는다. 이 진리를 깨달은 후에 내 몸에 날개가 달린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유연성을 소유하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가고 싶다.
‘유연성’을 찾은 후에 얻은 자유를 고백하는 그의 사유가 깊기만 하다. 가령 그것은 강골의 의지와는 또 다른 포용력과 친화력이 삶의 중차대한 기율임을 넌지시 암시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호에 실린 수필들은 여행 중의 가족 간의 친화와 사랑, 우연한 만남 속에서의 응원과 격려와 소통, 삶에서의 부드러운 유연성의 중요성 발견 등의 서사를 견지한 채 우리의 삶을 폭 넓게 위안하고 있다. 감성적 미셀러니를 통한 사유와 감각의 아름다움이 흠뻑 끼쳐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모두 수필이 하는 중요한 몫이 아닌가 한다.
3. 지성적 에세이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
지금까지 우리는 작가들이 겪은 구체적인 생활을 엿보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낸 감성적 미셀러니들을 읽어보았다. 다음으로는 중후한 지성적 에세이들을 읽어보자. 먼저 ‘시사 에세이’라는 연재 코너에 실린 김갑훈의 「인간의 기억과 인공지능」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리처드 캔델의 기억을 찾아서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기억이 삶에 연속성을 제공하고 나아가 삶의 찬란한 이정표로 작용하는 기쁨의 순간들을 회상하게끔 해준다고 자신의 논리 앞에 선행 문헌의 전경(前景)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의 현황과 발전 양상을 구체적 사실과 통계를 통해 알려준다. 특별히 인공지능 장착 로봇의 눈부신 발전이 위협해오는 인간 대체 기능을 제시한다. 그러다가 그는 인공지능이 주는 감계(鑑戒)의 균형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현실과 미래를 진단한다.
확신하건대 그 어느 때보다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으로 지어낸 글과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시대가 더욱 그리워지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지혜는 온갖 것을 기계에 내맡겨도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사유의 잠재력을 우리 자신 속에서 재발견하고 재탄생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여 말과 글로 의사를 소통하며 사는 사람들이 미래에도 주인공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공지능(AI)’이라는 첨단의 과학기술 발달에 공감하면서도,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기능과 위상에 대해서는 유보감과 저항을 표현하는 작가의 인문적 사유가 깊게 전해져온다. 말하자면 작가는 인간 고유의 능력과 유일성에 깊은 신뢰를 표하면서 인류의 앞날을 인문주의적으로 사유해야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든든하고 은은한 사유의 깊이가 그 안에 출렁이고 있다. 다음으로 ‘음악이 머문 자리’ 코너에 실린 이은혜의 예술 에세이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읽어본다. 작가는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교향곡에 얽힌 일화를 낱낱이 소개하면서, 이 곡이 실러의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이면서 ‘합창’이라는 부제를 달았으며 곡이 연주될 때 이미 베토벤은 청각을 잃어 박수갈채도 듣지 못했다는 전언을 들려준다. 그리고 합창 교향곡이 내장하고 있는 역사를 갈무리하면서 우리에게도 희망과 환희가 넘치기를 기원한다.
이제 얇은 종이 한 장이 남아 있다. ‘오늘’이라는 마지막 하루를 잡고 있는 달력이 애처롭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다. 베토벤은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훌륭한 곡을 써서 후세에 남을 명곡을 남기듯 몸은 쇠퇴하지만 마음은 새로워지는 내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한발 한발 내딛는 그곳이 환희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베토벤이라는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를 배면(背面)에 깔고, 작가는 결국 환희의 정점에서 피어나는 예술의 가능성을 엿본다. 예술가의 삶과 자신이 내디딜 새로운 시간들을 유추적으로 통합하면서 작가는 밝고 건강한 새해에의 다짐을 스스로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라는 과학기술의 첨단, ‘베토벤 교향곡’이라는 예술의 정점에 대한 소개와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가는 작가들의 지혜와 식견이 풍요롭게 다가오고 있다. 가멸찬 지성적 에세이들이 더 많이 씌어져야 하는 까닭도 이러한 계고적 순간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닌가 한다.
4. 한없는 위안과 희망을 주는 산문 문학
감염병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어느새 한 해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정부와 의료진, 국민 모두가 선방한 덕으로 그나마 우리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우리는 서구 제국이 얼마나 허약한 선진국이었는가를 알게 되었고 새삼 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한 객관적 사실에는 눈멀고 유튜브 가짜뉴스 같은 것에는 외진 눈을 뜨는 병리적 현상도 숱하게 목격했다. 제대로 현실을 파악하고 건강한 정보를 나누는 일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돌아본 수필 작품들은 이러한 악조건에서 한결같이 삶의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은은한 산문 미학을 보여주었다. 이때 우리는 수필이삶의 주변, 외곽, 상실된 것들을 향해 손길과 눈길과 발길을 여는 양식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아마도 작가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탈환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여전히 친근하고도 머나먼 대상들을 호명해갈 것이다. 여전히 부재하면서도 아득하게 편재(遍在)하는 이들을 찾아, 아니 찾을 수 없음을 때로 절감하면서, 그들만의 사랑의 마음을 들려줄 것이다. 그렇게 어떤 대상을 찾아가는 사랑의 마음은 두고두고 우리 수필의 근원적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팬데믹 사태에 한없는 위안과 희망을 주는 이러한 산문 문학이 더욱 우리에게 많이 그리고 역동적으로 다가오기를 마음 깊이 희원해본다. 이 글을 끝으로 그동안 써온 계간평을 마치게 되었다. 소중한 지면을 제공해주신 문학미디어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유성호
연세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저서로 서정의 건축술, 단정한 기억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