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등산길에서
칡넝쿨과 등넝쿨이
서로 엉켜 뒹구는 걸 본다
나는 그 누구와 단 한번이라도
저토록 껴안아 본 적이 있는가
바람을 안고 위를 향해 올라가는
저 눈물겨운 모습 앞에서
비로소 아름답다 말하리라
서로의 몸이 길이 되고
길을 만들어 나아가는 저 뜨거운 넝쿨도
어둠에 발이 걸려 수십 번 넘어졌을 것이다
넘어질 때마다 길 하나 새로 생겼을 것이다
새벽을 달리면서 어둠을 툭툭 털고 나면
케케묵은 나의 관념들이 방뇨한다
곧은 줄기가 햇빛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걸
새벽 등산길은 내게 넌지시 일러준다
아, 내 몸 철철 수액이 흐른다
소 싸 움
자 봐라
수놈이면 뭐니뭐니해도 힘인기라
돈이니 명예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
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
뿔다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
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
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
봐라, 저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
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
뿔다구가 확 치솟을 땐
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인연
술은
아예 못마십니다
담배는
피우다 끊었습니다
이제 하나 남은
님과의 인연마저 끊어지면
나는,
돌이 되겠지요
폭포 앞에서
물이 벼랑 끝에 서 있다
뛰어 내릴지언정
물러서지는 않을 기세다
저건 오기가 아니고 천성이겠지만
뛰어 내리는 데는 다 사연이 있을 거다
부딪혀서 깨어지면서도
겁도 없이 뛰어 내리는 저 폭포수처럼
지금 내가 벼랑끝의 물이 되어
사정없이 뛰어 내린다
너에게로....
명함정리
손 한번 뜨겁게 잡고
눈빛 한번 부딪힌 인연,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화투패 가르듯 명함을 정리 한다
버릴 것 다 버리고
잘 챙겨두고 싶은 이름은
내 마음에 바짝 당겨 꽂는다
그러나, 이미 저세상으로 가버린
저승길 이름표 같은 명함은
쉬 버리지 못하고 망설인다
가끔 전화 드릴테니
휴대폰 관리 잘 하시라고 전하면서
내 명함의 행방도
씁쓸히 생각해 본다
세 잎 클로버
달팽이처럼
욕심 등에 업고
네 잎 클로버 찾으려다
세 잎 클로버 그 여린 잎을
너무도 많이 짓밟아 버렸다
놀라서 한 발짝 물러서면
알게 모르게 내게 짓밟힌 클로버들
허리 펴는 소리가 아프게 들린다
밟혀서 질겨지고
밟혀서 싹 틔우는 것도 있다지만
그것이 아픔인 것을 깨달은 나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늘을 등에 업는다
소주 한 병
나도, 남들처럼
소주 한 병쯤 거뜬하게 들이키고 싶다
파도처럼 취해 동쪽 하는 가지고 싶다
소주 한 병!
혈관으로 힘차게 쏟아 부어
까맣게 잊고 지냈던 저녁 별 하나
내 앞에 당장 불러내고 싶다
소주 한 잔이면
남루한 무릎 베고 있으면
어머니의 자장가가 아득히 들려온다
어젯밤 피할 수 없는
소주 대신 마셨던 사이다 거품이
내 가슴에 콸콸 솟아오
숯가마골
텔레비젼 화면에
눈썹 같은 달이 뜬다
갑자기
향 맑은 그곳
하늘이 보고싶다
나이테를 호미질 하다
잃어버린 추억 몇 개
별빛 물나불에 밀리어 온다
내 고향은
경주의 숯가마골
거기 잔솔밭 가득
참꽃이 피어 있었다
봄, 보문호
한동안, 갈증의 나를 푹 빠지게 하던 저 보문호가
오늘은 낮달을 끌고 와서 또 다른상에 빠뜨린다
몸 안에 또 한 몸을 잡아 넣어니
물이 막 부풀어 오른다
벗꽃이 환히 지켜보는 데도 그 짓을 계속하고 있다
오래도록 보문호 맛을 경험한 나는 잘 안다
저 낮달,
한동안 저 안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물도 많고 정도 깊은데 어찌 쉽게 헤어나겠는가
청도에 오면
산이 산을 업고
동해의 한 자락처럼 출렁이는
청도에 오면
바람마저도 미나리 향 같은
청도 바람만 분다
복사꽃 따스한 마을 마다
아름다운 사람 들이
팽이버섯처럼 모여 사는
청도에 오면
햇살은 하얀 맨발로 들녘을 누비고
새벽별은 주먹만하게 다가온다
미나리 새순같이
추억 몇 개 돋는 날
청도에 오면
감꽃이 줄지어 선
맑은 길 하나 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소뿔처럼 서서
청도 하늘을 안고 있다
황인동
-경주 숯가마골 출생
-대구 교육대학 졸업
-1992년 대구문학신인상수상
-경상북도공무원문학회. 솔뫼문학회.경주문맥 회장
-대구문인협회.청도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경상북도 문화예술과장 .청도 부군수 역임
-청도 공영사업공사 사장 역임
-시집 <비는 아직 통화중> < 뻔 한 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