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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전경_2017.05.04 설악산01
* 2017.05.04~06. 이재익 오윤표, 권기원, 한영교/ * 코스 ; 백담사(1박)▶ 영시암▶ 봉정암(1박) ▶ 오세암 ▶ 백담사
5월 4일 백담사 템플스테이, 경관
1. 백담사 / 전통사찰 제24호 * 보물 제1182호 목조 아미타불좌상 및 복장유물 * 내설악의 대표적 사찰.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을 조성. *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다. * 사찰 이름은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이란 의미다.
2. 봉정암까지는 10.6km *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 곳 백담사에서 삭발염의 하고 입산수도하여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란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개혁과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여 독립운동 유적지라고 할 수있다.
3. 백담사 전각 ; 극락보전, 나한전, 법화실, 화엄실, 산령각 등 5개동의 기존 건물 외에 일주문, 금강문, 무설전, 완허당. 봉정당, 각일당, 검인당의 수행공간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 선사의 불교정신과 문학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만해교육관, 만해기념관, 등 총32개의 전각 이 자리한 한국 대표적 고찰의 하나이다. *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4. 백담사앞 개울의 돌은 죄다 쌓였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5. 저 여인 좀 보세요. 제게 詩이고, 불교다. 생활이 죄다 불교다.
(전략) 길은 길대로/ 들은 들대로 / 산은 산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악보로 그릴 수도 그릴 필요도 없는/ 높고 낮고 길고 짧고 강하고 약하고 탁하고 맑은 소리들이/ 개울에서도/ 하늘에서도 들렸다. (문예지 <<시선>>58호, 2017.여름호에서/ 맹문재 <청명무렵> 중) 백담사의 5월 초 신록과 개울은 그러했다.
6. 수심교 다리가 놓이고 연등이 걸리고, 물이 흐르고 돌이 쌓이고~ 힐링이다.
7. 왼쪽에 보이는 꽃은 기룽나무꽃이고 오른쪽에 짙은 것은 야광나무꽃이다.
8. 백담사에는 무금선원이 있다
9. 솜씨들 좋다.
10. 아침에 해가 막 떠 올랐다.
11. 수심교
12. 수심교
13. 극락보전앞 소박한 석탑
14. 백담사 찻집, 너와집 형식이다.
15. 차 한잔 드는 것도 불도란다.
16. < 님의 침묵 > 한 용 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처럼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기에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일인 것 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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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특징 (2009 수능 출제 작품) - 임을 향한 영원한 사랑의 노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세련된 비유와 유장(悠長)한 리듬감 속에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사용하여, 작품이 연가풍(戀歌風)의 흐름속에서도 서정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깊이가 느껴진다 - 여성적 어조와 경어체를 사용하여 간절함을 드러내었으며, 서로 모순되는 시어를 대응시켜, 상반되는 심상을 합치시키고 있다 - 이별의 슬픔을 희망으로 전이(轉移)시키면서,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시적 허용(님)’이 사용되었고, 구도(求道)의 과정이 나타나 있다 출처: http://kwon-blog.tistory.com/1299 [여행과 인생]
17.
18. 두 개의 대문 너머로 수신교가 보인다. 만해 당시에는 이런 좋은 다리가 없었다. * 만해 한용운 선사는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다. 반성문을 쓰면 빨리 출옥시켜주겠다고 일제가 회유했지만 끝내 거절하고 3년 옥고를 치렀다.
19. 범종각
20. 힘껏쳐라. 삼라만상이 깨어나도록. 범종(지하 지옥 중생) , 북(지상 중생), 목어(물속 중생), 운판 (공중에 나는 중생) 모두를 위한 것이다. 실은 우리 마음 속에 이런 모든 중생의 마음들이 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다 듣고 느껴야 한다.
21. 스트레스가 풀리겠다.
22. □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 32세 때 저술, 데카르트, 칸트 같은 서구철학의 학설을 인용할 정도로 서구의 신지식에 밝은 선구자. -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 방관자이다. 인류를 해치는 도둑이라고 표현, 승려계의 방관자는 * 세계 정보에 어두운 혼돈파(渾沌派), * 나만의 이익을 노리는 위아파(爲我派), * 날마다 탄식하고 한숨만 짓는 오호파(嗚呼派), * 남이 등 뒤에서 비웃음 섞인 비판만 하는 소매파(笑罵派), * 될 대로 되라고 만사를 포기하는 포기파(暴棄派) 등 6가지로 분류. - 승려 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 중시, 해외 유학까지 주장함. - 적극적 포교 중시. 사원 위치도 혁신. 중생이 살고 있는 현장으로! 사원이 깊은 산간에만 있으면 ① 진보 사상이 없어지고 ② 모험적 사상이 없어지고 ③ 구세의 사상이 없어지고 ④ 경쟁하는 의지를 잃는다. - 승려의 인권회복은 생산에서, 노동을 수도와 고행의 과정으로 간주할 것.
23. 만해당의 주련은 만해의 오도송이다. 만해당의 주련은 만해 한용운 선사가 1917년 12월 3일 오세암에서 참선중 읊은 <오도송悟道頌> 이다.
남아란 어디메나 고향인 것을 그 몇 사람 객수 속에 길이 갇혔나 한 마디 큰 소리 질러 삼천대천세계 뒤흔드니 눈 속에 복사꽃 붉게 붉게 피네.
男兒到處是古鄕 幾人長存客愁中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紅 * 마지막 구절의 끝자는 원래 紅이고, 주련에는 飛로 바꿔썼다. 큰 차이는 없다. 飛로 바뀌면 '눈 속에 복사꽃잎이 분분 휘날리네' 홍자의 화려함보다는 절의 정취에 맞기는 하다.
24. 1917년 오세암 좌선 중 바람에 물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아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 1919년 3.1운동 시에 민족 대표로 참여하여 3년 옥고를 치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참회서를 써내면 석방하겠다는 회유에 맞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문의 개요「조선독립 이유서」를 작성 제출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25. □ 만해의 조선독립이유서 1) 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확신 ; 인류 역사는 몽매한데서부터 문명으로 가고 쟁탈에서 평화로 발전…군국주의와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아들이니 어찌 무궁한 생명을 지탱하겠는가? 2) 우리나라의 독립은 모든 물질문명이 완전히 구비된 뒤에야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할 만한 자존의 기운과 정신적 준비만 있으면 충분하며 또 누가 독립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국가라 선언함으로써 족한 것이다. 3) 3.1 운동 후 ① 참전론 ② 독립 청원 ③ 내정독립론 ④ 자치론(친일파의 투항주의)가 나왔으나 한용운은 ‘즉시 독립’ 을 주장하였다. 독립은 마치 산꼭대기에서 굴러 내리는 둥근돌 같이 갈 때까지 가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확신하였다.
26. 백담사 동틀 무렵 ◇ 1918년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했으며 1935년 이래 일제탄압이 심해지자 조선일보 등에 연재소설을 썼으며, 그는 만년에 심우장에서 거처하다가 1944년 6월 입적하였다. ◇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는 생가와 사당 시비(나룻배와 행인), 홍성읍 남산공원에는 시비(님의 침묵)가 있고 승려 생활을 시작했으며, 님의 침묵을 탈고한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는 만해기념관이 있다. 만해의 묘는 망우동 공동묘지에 있다.
27. 요사채, 무설전에 방 하나. 각방 명칭이, 보리, 해탈, 인드라 등의 이름이 있었다.
28. □ 한용운 만년의 거처 심우장(尋牛莊) * 서울 성북구 성북동221-1 번지 만해가 만년(1933~1944)을 보낸 곳. 원래 남향으로 설계되었지만 총독부 쪽을 바라보고 살 수 없다는 고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별난 방향 탓인지 조망이 시원하다. * 이집을 지은 것은 1933년 김벽산 스님이 땅을 대고 방응모 조선일보사장 등이 건축비를 도왔다. 여기서 일제탄압에 항거해 첫 장편 소설인 흑풍(조선일보 연재)들을 집필함. 만해는 광복 전년(1944년 5월)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 만해 생전에도 심우장엔 불을 땐 적이 거의 없다. 조선땅덩어리 전체가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 수 있느냐며 냉방에서 꼿꼿이 지내 별명이 저울추였다고 한다. ‘소를 찾는다는 뜻인 심우는 본성회복의 길을 소를 찾는데 비유한 불교 선종 용어’이다. * 1998 현재 심우장에는 만해의 외동딸 한영숙(64)씨가 거처. 성북구청은 심우장과 그 주변을 사적공원화.
29. 식당
30. 전두환 대통령 거처 흔적
31. 야광나무꽃
32. 만해 한용운 스님상. 왼쪽의 바위는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 시비
나룻배와 행인(行人) / 한용운(韓龍雲)
* 만해의 나룻배는 감정들을 실어 나른다. 장자도 빈배를 언급했다. 장자의 빈 배는 무심히 그냥 강가에 떠서 풍경이 된다. 오늘은 5월 4일, 5월 9일은 대통령 선거일, 백담사에 온 우리도 세상의 강을 건너는 빈배다.
33. 만해 한용운 스님상
34. 만해 ;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35. 보우스님 시, 조선 명종 모후 문정왕후 권세시에 불교 중흥
<한적한 곳> 암자는 겹겹 구름 속 / 본디 사립문도 없다네/ 늦푸른 삼나무와 / 저녁햇살 어린 국화라네./ 서리 맞은 열매 떨어지고 / 스님은 여름지난 옷을 꿰매나니 이 한적함이 내 옛 뜰이거늘 / 돌아갈 길 잊고 시 한편 읊네.
36. 조선 단종~세조시에 매월당 김시습은 생육신이다.
<저물 무렵> 김시습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에 새가 돌아 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 갈 꺼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 향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37. 야광나무. 백담사에 야광나무가 많다는 것은 佛法이 야광나무꽃같이 밤에도 환하게 주위를 밝혀주리라는 상징적 의미가 되겠다.
38. 야광나무. 같은 한그루 나무인데 한쪽은 꽃이 활짝 피었고 한쪽은 입만 무성하다. 이 절에 화려한 흰 꽃 나무가 4가지 피어있다. 야광나무, 기룽나무, 라일락. 작은 관목꽃으로는 옥매화도 희다.
39. 야광나무가 새아침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다.
40. 이 절에는 야광나무 향기 만큼이나. 만해 한용운 선사의 향기가 짙다. 별명이 <저울추>다. 진리와 진실을 말하고 대쪽같은 기개를 가진 분이었다.
정진명 시인의 시 <잔 9> 구절에 모든 잔 속에는 수평선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확고부동한 중력의 사상. ~ 수평선, 그걸 없애려는 방법은 잔을 더는 채우지 않는 것이다. (문예지 <<시선>>58호, 2017.여름호에서) 그렇다 저울추 한용운님 정신이나, 이 잔의 수평선, 확고부동한 중력의 사상이 일치하는 정신임을 백담사에서 느낀다.
41. 야광나무
42.토종 라일락은 예로부터 수수꽃다리라고 불렸다. 정향丁香, 혹은 라일락(서양 수수꽃다리)
44. 아침이다.
45. 옥매화
46. 김구용 < 冬 >
용트림진 고매등걸 밤에 눈 맞더니 이끼 툴툴 털고 하늘로 날아올라 먼 새벽 향기인가 하마 꽃이 피었다.
47. 오세영 <강 물 >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48. 금낭화. * 사찰에는 이 꽃을 많이 심어야겠다. 마치 연등을 단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49. 무설전 해탈의 방 앞에서
50. 제12대 대통령이 거처했던 방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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