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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1장1~18절
제목 : 불임의 시대에 임한 기도의 응답
사무엘상하는 원래 히브리 성경에서는 한권의 책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누가 기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갓이나 나단의 회고록에서 발췌하여 사무엘이 기록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사무엘상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본서는 이스라엘 왕정의 설립과 이에 대한 사무엘의 역할에 관한 기사를 서술한 것인데, 이것은 왕정 제도의 수립 과정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통치 제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사무엘상의 핵심어는 “시기(猜忌)”와 “마음”입니다.
사무엘상은 시기심(猜忌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에게 왕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시기(猜忌)하였습니다.
또한 사울은 다윗이 승리하는 것을 시기(猜忌)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전체의 내용을 분해하면
1:1~7:17절은 사무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하여,
8:1~15:35절은 사울 왕의 통치에 대하여,
16:1~31:13절은 사울 왕정의 몰락과 다윗 왕정의 수립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불임으로 고통 받던 한나는 심장이 끊어질 듯 간절히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엘리를 통해 응답을 약속해 주십니다.
1. 한나의 불임과 고통(1~8절)
영적, 도덕적 타락이 절정에 이른 사사 시대의 끝은 어떤 의미 있는 것도,
가치 있는 것도 창조해낼 수 없는 ‘불임’의 시대였습니다.
불임의 여인 한나는 무기력한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의 시대를 끝내고 생명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것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삶을 그치고 오직 한 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간구하는 것입니다.
1) 엘가나의 족보(1절)
“[1]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입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개시된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제일 먼저 점령된 지역이었습니다.
-한편 이지역이 '에브라임 지파가 그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받았습니다(수17:15).
그러나 에브라임 산지에 에브라임 지파만이 거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의 남쪽은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역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수 18:11).
'라마다임소빔'은 에브라임 산지 중 베냐민 지파 거주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고지'(高地)라는 이름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라마'와 동일한 지역입니다(19절).
한편 '라마'(Ramah)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요,
그가 활동한 사역의 중심지이며, 또한 후일 사무엘이 죽어 장사된 곳으로,
사무엘 시대에 주요한위치를 점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특별히 '라마다임소빔' 이란 원지명을 사용한 이유는,
팔레스틴 지역에는 많은 '라마'(언덕 마을, hill town)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사무엘의 고향 '라마'와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이 지역은 후일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부자 요셉의 고향과 동일한 '아리마대'로 불리워졌습니다(요 19:38)
'엘가나'(Elkanah)는 본문의 족보와 역대기의 족보(대상 6:1, 27, 28)를
종합해 볼 때, 레위 지파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를 '에브라임 사람' 이라 칭한 까닭은,
그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가 그 지역에 거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엘가나’는 레위 자손중 가장 영예로운 가문인 고핫 자손이었습니다.
‘엘가나’는 사무엘의 아버지입니다.
‘엘가나’는 숩의 현손이요,-도후의 증손이요,-엘리후의 손자요,-여로함의 아들입니다. 즉, 숩-도후-엘리후-여호함-엘가나-사무엘
이들은 사무엘의 부친 엘가나 가문의 조상들입니다.
이와 같은 족보의 소개는 사무엘서의 역사성을 확증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대체로 어떤 주요 사건이나 인물을 소개할 때 그 사건이나 인물의 역사성(歷使性)부터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2) 엘가나의 두 아내(2절)
“[2]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당시 경건했던 엘가나까지 중혼(重婚)의 관습에 쉽게 물들었다는 사실은
사사 시대가 얼마나 영적·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암울했던 시기였는지를 명백히 보여줍니다.
(1)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브닌나'(Peninnah)는 '진주','보석','산호' 등의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이처럼 히브리 여성의 이름은 보석이나 꽃, 또는 동물의 이름과 관련된 것이 많이 나타납니다.
한편 여기서 '자식'(옐라딤)은 '어린이' 혹은 '아들'의 복수형으로서,
이는 브닌나가 최소한 2명 이상의 자녀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2) 한나는 무자였습니다.
한나(Hannah)는 '사랑스러움' 또는 '은혜 스러움'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히브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여기서 이 이름은 그녀가 자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5절),
또한 후일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많이 입었다는(2:21)실제적 사실과 잘 부합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초기에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번민과 소외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자녀의 출산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증거로 삼은 반면(신7:13,14 ; 시107:13),
무자(無子)는 하나님의 징계나 저주의 결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창 20:18).
3) 엘가나는 매년 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렸습니다(3절).
“[3]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경건한 레위인 엘가나는, 히브리 모든 남자는 매년 정한 기간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율법규정(출 34:23 ; 신12:5)에 따라 이 의무를 이행 하였습니다.
물론 성경은 매년 세 차례씩 올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출 23:17>.
그러나 극히 타락했던 사사 시대의 정황 속에서 엘가나가 이정도 나마 신앙적 열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실로는 당시 법궤가 보관된 곳, 곧 성소(Tabernacle)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법궤(언약궤)는 처음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길갈(Gilgal,수 4:19)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가나안 정복 후 땅 분배할 동안에 '실로'(Shiloh, 수 18:1)로 옮겨진 후 이때까지 이곳 실로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 북쪽 약 32Km 지점에 위치한 '실로'는
여호수아 시대 말기로부터 사사 시대 및 사무엘 시대 초기까지,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요,
정치적 주 무대이며, 군사적 요해지(要害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시대 말기에 블레셋 족속에게 법궤를 빼앗기고 실로가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실로의 영광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5:1 ; 시78:60-64).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리즈보아흐).
제물과 감사의 현물, 그리고 기도가 포함된 광의적 의미의 제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특히 여기서는 엘가나가 제사 완료 후 그 제물을 가족들에게 나눠주었고(4절) 또 그들이 그것을 함께 먹었다는 점(9절)에서 볼 때,
여기서 엘가나가 드린 제사는 제사장의 몫 이외의 나머지 부분을 자신과 가족 또는 공동체 전체가 일정한 장소, 곳 성막의 뜰이나 성막의 별채<1:18>에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던 '화목제'(和睦除,Peace-offering)를 가리키는 듯합니다(레 7:14, 30-36 ; 민 6:20 ; 신 18:1).
'엘리'는 제사장 가문 중 유력한 비느하스 가문의 후손이 아니고,
이다말(민 4:28, 33)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혼란한 사사 시대 말기에 대제사장직과
사사직을 동시에 갖고 있었음을 볼 때,
그는 유명하면서도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녀 교육 실패의 결과, 방탕한 두 아들로 인해 결국 불운한 말년을 맞게 됩니다(2:27-36=엘리아 집에 네린 저주 ; 3:11-14 ; 4:18).
*2: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추측 하건데, 엘리는 제사장직 업무를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주로 일임하고, 자신은 사사의 직무만 감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들로서 제사장의 소임을 감당하기에는 부적격자들이었고(2:12, 22),
이는 결국 엘리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4) 제물의 분깃을 나눔(4~5절)
“[4]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5]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제사를 드리는 날 - 모세 율법상 모든 히브리 남자가 일년 3차씩 중앙 성소에 올라가 준수해야 할 절기는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오순절, 칠칠절),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었습니다(출 23:14-17).
그런데 이중 엘가나가 택하여 제사를 드린 날은 무교절(유월절)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1)이 세 절기가운데 유월절이 가장 큰 절기였고,
(2)또한 이때는 전 가족이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1년 1차 유월절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던 관습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눅 2:41).
*눅2: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제물의 분깃을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도 주었지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습니다(5절). 갑절은 '두 사람의 몫'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를 사랑함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한나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 것은 '사라'(창11:30), '리브가'(창25:21),'라헬'(창 29:31),'마노아의 아내' 등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로 말미암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친히 모태(母胎)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잉태하지 못하던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자녀를 낳는 예가 많습니다.
(창18:10-15; 21:1-4; 25:21; 30:22-24; 삿13:3; 눅1:7,57).
그러한 의미에서 여기 한나의 불임(不妊) 역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서, 곧 꺼져가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처럼 '육적(肉的)인 출생'에 관한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는 역시
'영적(靈的)인 출생'(중생)에 관한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롬11:36 ; 엡4:6).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엡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5)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게합니다(6~7절).
“[6]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7]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그녀의 태(胎)를 닫으셨기 때문에'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태의 문'을 여닫으시는 생명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의 적수인 부닌나가 그를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여기서 '격분하다'(카이스)란 말은 '괴롭히다','약올리다','슬프게 하다','충동 질하다','화나게 하다'등의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브닌나가 무자(無子)한 한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여자로 보고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3절>.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7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린 후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가족에게 나눠줄 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는 일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를 향한 엘가나의 호의가 단순한 동정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근거했음을 깨닫게 되나, 바로 이 일로 인하여 브닌나는 시기(猜忌)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나를 더욱 격분시키게 되었을 것입니다(Keil).
6) 엘가나의 위로의 말(8절)
“[8]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이말은 엘가나가 한나의 우는 이유와 먹지 아니하는 이유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말은 무자(無子)로 인해 겪는 그녀의 고통을 깊이 헤아리고,
그녀의 슬픔에 동참하면서 진정으로 달래는 애정 어린 위로의 말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은 형제들과 회식을 자주하는데, 브닌나에게는 조금 주고 한나에게는 배를 주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받았으나, 하나님의 은총은 입지 못했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괴로웠습니다.
한나가 이 괴로운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의 갈등을 가지고 있고, 가정의 갈등을 가지고 있고, 교회의 부패가 일어 났고, 육신적 사랑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이와 같은 괴로운 환경을 다른 길로는 해결할 길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11절 까지에서 한나의 기도가 나옵니다.
2. 한나의 기도와 서원(9~11절)
“[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 한나는 기도하러 가기위해 일어섰습니다(9절)
“[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엘가나의 위로를 받은 한나는 공동 식사의 의식이 끝나자,
곧장 기도하러 가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회식의 쾌락도 그에게는 아무런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은밀히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으로 갔습니다.
들어가니 엘리 제사장님이 계셨습니다.
당시 제사장 엘리는 자신의 고유한 제사장 직분을 수행키 위하여 문설주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2)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하면서 흐느껴 울며 애원하였습니다(10절).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진정 한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처 오르는 모든 인간적 슬픔과 고통을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내놓고 애절한 심정으로 간구 기도를 드림으로써, 고통과 번민을 눈물의 기도로 승화시꼈던 것입니다.
3) 한나는 서원기도를 드립니다(11절).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라도 하나 주시면 잘 키워서 레위인으로 바치면 좋겠는데 -자기 남편은 아무리 권해도 할 수 없고,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키워서 바쳐야 되겠는데 아들도 없으니,
“하나님, 하나님을 위해 좀 살고 싶은데,
하나님을 위해 드리고 싶은 이 마음을 좀 이루어 주옵소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원했습니다.
한나의 서원은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맹세가 수반됐다는 점에서,
구약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 '나시리인의 서원'과 맥을 같이 합니다
(민 6장 ; 삿 13:15).
그런데 이 나실인(Nazirite, 민 6:2 주석 참조)의 서원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자기 자식이 소명되었음(렘1:5 ; 갈1;15)을
확실히 인식한 어머니에 의하여<삿 13:12 이하>,
태어날 자식의 평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는 신앙적 결단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서원은 전쟁과 관계되어 있으나,
사무엘의 경우는 성전 봉사와 관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한편 나실인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이유는
(1) 머리털을 보존함으로써 자신 위에,
자신을 주장하는 자가 있음을 나타내며<고전 11:3-10>,
(2) 또한 머리를 길름으로서 자기 생명의 근원을 인식하고,
아울러 자기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오직 그 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자 함입니다(민6:5).
만군의 여호와. - 하늘과 땅의 만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하나님의 명칭이다<3절>.
한나는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뢰하면서,
자신의 무자(無子)의 수치가 거두어질 것을 확실히 믿고,
소망 중에 그분께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 '나실인(Nazirite)으로서 자신을 구별시켜
여호와께 드리고자 할 때 서원자는 그 기간에 따라
(1) 일정 기간동안, 또는
(2) 일평생 동안 그 서원 준수의 기간을 작정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한나는 아들을 낳을 경우, 그를 일평생 동안 하나님의 성소
봉사를 위한 나실인으로서 구별해 드릴 것을 서원한 것입니다.
<민 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나실이란 거룩한 사람이라 해서 평생 머리를 안 깎습니다(민6:5)
①머리를 안 깎을 뿐 아니라, ②포도주(술)는 절대로 안 먹고,
③ 포도씨 같은 것도 안 먹습니다.
곧 세상 쾌락(快樂)을 멀리하고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순종(順從)하는 사람이 됩니다.
한편 이에 대하여 혹자는 주장하기를,
사무엘은 본래 레위 족속이기 때문에
한나의 이러한 헌신의 서원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정식 성소 봉사는 30세 이상(민 4:3)으로 정해진 반차를 좇아 일정기간동안 행해졌기 때문에, 한나의 서원과 같이 아들을 어릴 적부터 성소에 거처토록 하면서 일평생 성소 봉사를 위해 구별하여 바치겠다는 서원(誓願)은 분명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한나의 이 서원(誓願)은 후일 그대로 지켜지게 되는데(27, 28),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사무엘)을 선지자로 소명(召命)함으로써(3:20)
더욱 고상한 형태로 한나의 서원(誓願)을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3. 제사장 엘리의 오해와 축복(12~18절).
1) 엘리는 한나가 취한 줄로 생각 했습니다(12~14절).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 한나는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큰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당시의 상황에서 한나는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당시 한나의 기도는 자신의 기도에 스스로 완전히 몰입하여,
하나님 앞에 온 심령을 토로하는 깊고도 은밀한 내적 기도였습니다.
또한 실로 이런 기도는 간절한 소원과 깊은 신앙심 없이는,
아무나 힘든 차원 높은 고상한 기도였습니다
(2)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포도주를 많이 먹고 취한 줄로 착각 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 제사장은 그 같은 한나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잔치에서 포도주를 많이 먹고 취한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는 음주가 다양한 종교적 행사와 관련되 있었고,
<1:24 ; 10:3>,
따라서 엘리는 때로 사람들이 술에 취하여 성소를 소란스럽게 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바로 이 같은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슬픔이 많은 한 여인의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엘리의 판단처럼 때로 술에 취한 상태로 성소의 규율을 어지럽힌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엘리는 이 말은 분명 이스라엘의 사사요 제사장으로서,
엘리의 쇠퇴한 영향력과 감화력을 반영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엘리 제사장 자신이 한나의 기도와 같은 영적이고도 내적인 조용한 기도의 경험을 많이 체험했더라면, 그는 한나의 기도 모습을 '주목하는 동안' 충분히 그 진면목을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년의 엘리 제사장은 그 미미한 판단력으로 한나의 참된 기도의 모습을 단지 술 취한 자의 주정쯤으로 생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한나의 엘리 제사장에게 답변(15~16절)
“[15]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16]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한나의 눈언저리가 붉게 물든 것은 결코 '포도주나 독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자(無子)한 여인으로서 겪는 모든 인간적인 고통과 수모를 하나님 앞에 모두 아뢰면서 흘린 그 '눈물'때문이었습니다.
(2)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포도주'(야인)는 발효된 포도즙을 가리키는 상용어입니다.
그리고 '독주'(쉐카르)는 '취하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서,
과실이나 곡류로 만든 취하게 하는 술입니다.
이것은 넓은 의미로는 포도를 포함한 모든 재료로 빚어진 것을 가리키지만(민 28:7), 일반적으로는 곡류로 만들어진 것만을 뜻합니다.
한편 이것들은 전적으로 헌신된 나실인들에게 금지된 것인 만큼(민6:3 ),
헌신의 자세가 요구되는 한나와 같은 성막 출입자에게도 마땅히 금지되어야 했습니다.
(3) 나의 심정을 통한것 뿐이오니
문자적으로는 '내가 나의 심령을 쏟아 놓았다'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쏟아 놓았다'(솨파크)라는 단어는 '부르짖다'의 의미로도 쓰입니다(시102:1).
아울러 '신뢰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시 62:8).
따라서 '내가 나의 심령을 쏟아 놓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 자신의 어려움을 전적으로 의뢰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을 부탁하는 온전한 신앙의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벧전 5:7).
*벧전5: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4)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16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여기서 '악한 여자'란 다른 사람에게 해나 끼치는 사악하고 전혀 무익한 여자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엘리의 대답과 한나의 평안(17~18절)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18]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1) 엘리의 축복(17절)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한나의 겸손한 해명을 듣고 난 제사장 엘리는
자신의 섣부른 꾸중(14절)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한나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한나가 간절히 간구한 것이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축복을 받습니다.
(2) 한나는 은혜를 입어 근심 빛이 없어졌습니다. (18절)
“[18]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이 말은 지금 엘리가 한나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고,
대신 복을 빌어주는 호의를 베풀어 주었듯이(17절),
앞으로도 그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호의를 계속적으로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심령의 모든 괴로움을 토로한 깊은 내적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제사장의 축복을 통하여,
모든 근심과 슬픔을 해소한 한나는 성소의 뜰을 떠나 성소에 딸린 여러 방 중의 하나, 곧 자신의 가족들이 제물을 나눠 먹고 있을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진정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엘가나는 “한나”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두 번째 아내 “브닌나”를 얻었습니다.
브닌나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실로에 나가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브닌나와 그의 자녀에게 주었지만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하므로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습니다.
그 같이 하매 브닌나 그를 격분시키므로 한나는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엘가나는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위로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1) 엘가나가 레위 족속이면서 자기의 본연의 직분을 망각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그 직을 버리므로 결국 가정이 평안하지 못하고,
2) 실로에는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깡패 같은 자들이 판을 쳤고,
3) 한나는 남편의 사랑은 받았으나 하나님의 은총은 입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괴로웠습니다.
한나가 이 괴로운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의 갈등을 가지고 있고, 가정의 갈등을 가지고 있고, 교회의 부패가 일어 났고, 육신적 사랑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이와 같은 괴로운 환경을 다른 길로는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11절 까지에서 한나의 기도가 나옵니다.
1) 한나는 심정을 통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2) 깊은 기도는 구원의 역사를 이룹니다.
*약4:1~3절까지를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해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른 목적으로 기도합시다.
그리고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마6:33).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한나는 축복을 받고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우리 모두 한나 같은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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