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악산과 천자지지
한강을 따라 나있는 자유로를 싱쾌하게 달리다보면 파주출판문화단지뒤쪽으로 웅장하지는 않지만 눈에 확 띄는 산이 있다.
심학산이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동패리에 소재하고 있는 심학산은 한강하류에 있는 산으로 동편은 동패리, 서편은 서패리, 남편은 산남리등 3개리가 둘러 있다. 가운데에 우뚝 솟은 봉우리와 동체는 마치 대호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물위에 떠있는 큰 군함같기도 하다. 또한 장군 영병 비룡상천형이라고도 한다.
산봉우리 주위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로 둘러싸여 있으며(그래서 서측의 서패리를 돌곶이마을이라고 함) 중심부 10여평 남짓한 편편한 곳이 있는 이 자리는 수십자를 파도 비세황토 흙이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풍수지리설로 천자가 나올 자리(천자지지)라 전해져 욕심내는 사람들은 밤중 남몰래 수차에 걸쳐 시체를 암매장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자리에 시체를 매장하면 산이 울며 동네에서 병고가 일어나 동네 사람들을 일제히 동원하여 상봉에 올라 시체를 파헤쳤다 한다. 조선조 말 김포에 살던 예안이씨 이지열이 이 마을에 들어와 훈학을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곳에 몰래 시체를 암매 장하였다. 그러자 이 동네에 사는 김면제 성균관박사 댁 하인이 일자무식한 사람인데 별안간 미쳐서 이지열이가 여기다 산소를 써서 큰일 났다며 동네를 뛰어다니자 동네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파헤쳤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지금은 아예 묘를 쓸 생각조차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이 묘자리 턱 바로 아래 발복지지 묘도 2개소가 나란히 있다 한다.
옛날에는 이 산 주위로 물이 흘러 한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되어 있었다 한다. 그러므로 한강 물을 막고 있다하여 당초에는 수막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조선조에 내려와 언제나 홍수가 있을 때에는 한강물과 조수물이 넘쳐 수막산이 물속에 잠기게 됨으로 깊은 물에 들어갔다 하여 심악산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오악(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중에 하나로 불리우고 있다.
그 후 조선조 숙종대왕 시절 왕궁에서 학을 기르다가 학 두 마리가 도망을 치자 궁궐에서는 이 학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으러 다니다가 심악산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잡아간 후 숙종대왕께서 이 산에서 학을 찾았다 하여 심학산으로 명명하여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항간에는 수막산으로 불리우고 있으나 각종 문헌에는 심악산으로 명기하고 있으며 이 심악산 북측 중턱에는 약산사라는 절이 있어 심학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둘레길의 첫 출발지로 삼고 이 절 옆의 약수로 목을 축이기도 한다. 이 산은 조선조에 유명했던 송구봉선생께서 이 산의 정기를 받아 탄생하여 성장하신 명산이다. 따라서 일설에는 송구봉선생이 출생할 때 정기를 흡수하여 이 산에 초목이 일시 고사(枯死)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햇볕좋은 날 심학산 정상에 서면 남측으로 일산신시가지와 너른 송포들녁과 한강을 따라 인천의 계양산 그리고 여의도, 삼성동 무역센터, 더 멀리는 관악산까지 눈앞에 펼쳐진다. 눈을 돌려 북측으로는 교하신도시와 아직도 한창 공사중인 운정신도시, 도라산전망대 그리고 아주 운이 좋은날은 개성의 송악산까지도 그 윤곽을 드러낸다.
인근의 주민들에게도 또 이곳 심학산둘레길의 매력에 빠져 멀리서 산행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심학산은 자신의 속살의 모두 내어주고 있다. 이제는 지역의 명소가 되어버린 심학산에서 인간들의 삶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는 숲의 속삭임을 모두 같이 들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