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은 왠만한 사람들도 제목은 들어봤을 만한 책이다. 또한, 주인공이 적들을 신랄하게 까는 내용이기에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고전을 처음 배울 때,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대충 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크라테스가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체계적으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 철학에 대해 배우고, 그리스 문학을 배웠다. 사실 나는 역사 다음으로 철학이 어려웠다. 아니, 서로 비등비등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서로 다른 방면으로 어려웠다. 철학이 싫지는 않고, 재미있긴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워서 조금은 부담스럽달까. 그리고 철학에 대한 체계가 머릿속에 정확하게 잡혀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철학 고전을 읽으려고 생각했고, 맨 처음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내가 놀라워했던 것은, 글을 읽는 속도는 느렸지만 소크라테스가 어떤 대목에서, 어떤 스토리로 변론하고 있는지, 그리고 변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거의 다 이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그것이 내게는 놀라웠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고, 오히려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을 질책하는 것도 굉장히 놀라웠다. 일단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고발당해 법정에 서서,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는 데까지의 이야기이다. 재판의 절차는 두 가지인데, 일단 첫 번째는 유무죄를 판결하는 재판으로, 여기에서 투표를 하는데 무죄 표가 많이 나오면 석방, 유죄 표가 많이 나오면 바로 두 번째 재판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재판은 형량을 정하는 것이다. 일단 고발자가 형량을 먼저 말하고, 그 형량을 기준점으로 피고가 자신의 형량을 정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유죄 표가 많이 나오면 고발자가 제안한 형량을 받고, 무죄 표가 많이 나오면 피고가 제안한 형량을 받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재판들 중간중간에서 연설을 하며 자기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의 고발 내용을 모두 해명한다. 그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악에 잡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굉장히 논리있고 당당하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의 시기심을 들추며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고발하고, 어째서 자신의 영혼의 잘됨을 신경쓰지 않느냐고 질책한다. 그는 재판관과 고발자들의 무너진 정의들을 비꼬며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른다. 그리고 마침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유죄 표를 던진 사람과 무죄 표를 던진 사람에게 각각 연설을 한다. 이때 감명 깊었던 말은 위에 말했던 것처럼,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악에 잡히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악에 잡히는 것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는데, 자신은 나이 든 사람이고 느려서 더 늦은 것에 잡혔지만, 자신의 고발자들은 능한다고 기민해서 더 빠른 것, 즉 악에 잡혔다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재판이 끝나고, 당신들은 살러 가고 나는 죽으러 간다며,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신만이 안다며 끝을 맺고 있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용기는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검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용기있을 수 있었다. 그는 죽음에 대해 검토함으로서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악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플라톤이 바라본 소크라테스는 존경한다. 그를 닮고 싶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