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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과 사색(思索)의 이중주(二重奏)
-서경림의 수필집 《가시나무 자루》에 붙여
1. 들어가면서
우리 민족의 성격 중에는 과거를 중요시하는 면이 있다. 자신보다 선대에 이루어진 경험이나 문헌상의 기록은 불변의 진리가 되어 뒷일을 미루어 생각하는 데에 커다란 힘을 작용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정된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 전반에 걸쳐 민족의 행동을 지배해 왔다.
이런 의식은 학문의 자세에도 깊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민족의 학문하는 자세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어서 중국의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같은 위대한 저서를 저술한다든가 하는 꿈은 감히 시도하는 일도 없이, 오로지 그것에 주석을 달고 해석하는 데에 만족했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성격은 진취적이지 못하여 안전 위주의 사고를 지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늘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에 반하여 서양인들의 학문하는 자세는 ‘사색하다’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보다 좀 더 진취적이며 행동할 줄 아는 사색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실용에 입각한 사고로 짧은 시간에 멀리 갈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의 모방으로 오늘날 우리의 학문이 서구형을 지향하고 많이 서구화 되어 왔다. 이러한 서구화는 자칫 잘못하면 한단지보(邯鄲之步)의 결과를 초래하여 엉거주춤하는 꼴을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서경림의 수필을 보면 온고지신을 텃밭으로 하여 그 위에 사색을 가미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 준다. 그것은 우리의 것을 정확히 인식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충실히 이행되었기에 가능하다. 내 것의 특징이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녹여 넣을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흔들림이 없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받은 가정 안에서의 교육과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힘들이지 않고 견고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견고함에 사색하는 힘이 함께 어우러져 작가 나름의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 서경림 수필의 특징이다.
대부분이 고향 제주에 대한 애정이 토대가 되어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작가의 사색이 곁들여져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겨우 제주를 벗어나는 것은 참전했던 월남과 잠시 들른 하와이 등이 고작이다. 모두가 고향 제주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서 얻어진 것이라서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현악 이중주처럼 독자들의 가슴에 차분히 젖어든다.
그래서 서경림의 수필에는 유별나게 개척자 정신, 고향, 도덕, 본질, 봉사, 사명감, 생명, 생태학, 성실, 순수, 실천, 용기, 인내, 자립, 자연, 자유, 전통, 지혜, 직업윤리, 책임감, 평화, 헌신, 화합, 환경, 희생 등의 어휘가 자주 동원됨을 알 수 있다. 이 어휘들은 작가가 평소에 가슴에 담고 사는 화두들이다.
이러한 작품을 우리가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편의상 몇으로 나누어 본다.
2. 전승문화 속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
현전하는 전승문화는 다양해서 전래지명, 세시풍습, 통과의례, 민속, 민요, 설화 ․ 전설, 방언 등이다. 서경림의 수필집 《가시나무 자루》에는 이러한 전승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만큼 작가가 고향을 사랑한 흔적이 농밀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승문화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오일시장>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계승 ․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오일장도 전통문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면서도 천덕꾸러기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오일장의 효용은 사그라져 가는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앞선 미국에서도 오일시장과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전통적인 이 오일시장이 효용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비록 오일장에 대한 지적이지만, 다른 전승문화에도 유효하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온 역사적 사실이나 설화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에서는 김만덕의 애민정신과 출륙금지령 해제의 지혜를 보여주고, 제주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 ‘자청비’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끄집어내어 두 인물의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 <가믄장아기가 전하는 말>에서는 직업신이며 운명의 신인 ‘전상신’ 가믄장아기를 통하여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운명을 개척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법학교수인 작가는 우리의 전승문화를 법 지식을 동원하여 해석을 내림으로써 전승문화의 새로운 인식도 꾀하고 있다. <심청이와 심학규>에서 주인공 심학규가 앞도 보지 못하면서 외나무다리를 건넌 것을 질타하고, 물에 빠져 죽음 직전에 있는 상황에서 행해진 계약은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데도 한숨만 쉬며 딸 심청이가 몸을 희생하게 한 것은 무책임한 행위임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법보다는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전승되어 오는 의례나 도덕규범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려는 작가의 입장이 고집스럽게 나타나 있다. 흔히들 법이면 다라며 아무 데나 적용시키려는 법의식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이는 법을 모르는 수필가가 쓴 글이 아니고, 법을 강의하는 교수가 하는 말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 <법의 한계와 시민정신>에서는 민족과 더불어 장구한 세월을 두고 관행되어온 가정의례에 법이 끼어들어 간섭할 일이 아님을 지적하고, <규범문화와 의식개혁>에서는 ‘연화친목회’의 사람들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어른을 모시고 야유회도 갖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주는 미풍양속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혈연과 지연을 무시할 수 없는 풍토 속에서 살아오면서 몸에 익힌 생활방식이다. 이것은 윤리나 이성보다는 정(情)을 더 중시하는 행동규범으로, 민족의 오랜 역사생활 속에서 생성, 발전해 온 관습 내지 관습법이다. 따라서 이 행동규범은 국법을 능가할 때가 많음을 지적한다.
작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법에 따른 판결은 공정해야 함을 주지시킨다. 그 공정성의 유지를 위해 <숨 막혀 죽은 아기를 위하여>에서는 선입견이나 편견 또는 불완전한 지식이 나 고정관념에 물든 어른보다는 순진무구한 상태의 어린아이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제주도의 옛사람들이 저승에서의 인간의 죄를 최후로 심판 하는 자를 동자판관으로 믿고 있는 특이한 인식 세계를 소개한다.
어찌 보면 법과 전승문화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일지 모른다. 남다른 감성을 가진 작가는 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전승문화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경직된 모습보다는 전승되어온 마을의 관습이나 도덕규범에 가치를 두고, 그 전승문화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려는 작가의 슬기가 돋보인다.
「너는 인간세상에서 부모로부터 탄생하여 깊은 물에 다리를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느냐?」「너는 인간에서 배고픈 사람 밥을 주어 급식공덕(給食功德) 하였느냐?」「너는 인간에서 부모 효심 하였느냐? 일가 친족 화목하고 동내존장(洞內尊長) 하였느냐?」「너는 인간(세상)에서 함정에 빠진 사람 건져주고 질(路) 막는 사람 질을 터 주었느냐?」 -<국토를 조감하며>에서
위의 글은 <三無의 社會>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제주도 무속인 ‘시왕맞이’에서는 죽어 저승에 가는 사람에게 무당을 시켜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결국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 올바르게 살다가는 것을 요구하는 전승문화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전승문화 속에 묻어 있는 제주인들의 삶의 지혜를 찾아 나서고 있음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이는 전승되어온 문화를 깊이 아로새기고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를 사려 깊게 찾아 기리려는 작가의 의도가 서려 있음을 말해 준다.
3. 생태의식 속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
서경림의 수필집 《가시나무 자루》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사고가 많이 보인다. 본래 자연은 인간이 활용해도 되는 대상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할 때에만 삶의 질에 만족을 가져올 수 있다. 흔히들 자연은 인간의 소유이고, 마음대로 활용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기에 난개발이 초래되고, 그로 인해 자연의 분노로 인간이 멸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작가의 인식은 건강하게도 생태공경 사상에 가깝다. 뭐든지 함께 하고 공존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글감을 취해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계(四季)의 향수(享受)>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져 있음을 보여준다. 밭담 너머에서 자연에 묻혀 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아름답고 성스럽다 하였다. 또 제주의 자연은 단순히 즐기는 자연이 아니라 삶의 보람을 찾는 생활 속의 자연이라고 규명하고 있다. <무진년 새 아침의 기원>은 비슷한 환경의 하와이와 월남을 비교한 글이다. 하와이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는 곳으로 온갖 것들이 함께 뒹굴며 사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월남은 적들이 나의 목숨을 탐내는 지옥으로 묘사된다. 결국 비슷한 환경인데도 이러한 천당과 지옥의 차이는 인간들이 만들었다고 질타한다. 인간들의 탐욕과 아집이 지옥으로 만들고, 공평함과 타협이 천당으로 만들었다며 인간의 죄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보살통(菩薩桶)’이라 하여 잡은 이를 죽이지 않고 대나무 통에 담아 두었다가 깊은 산중에 갖다 버리던 풍습이 있었고, ‘조문효도’라 하여 부모님이 주무실 방에 미리 들어가 알몸으로 누워 있다가 모기가 피를 실컷 빨고 천장으로 올라가면, 부모님이 들어와 주무시게 하던 풍습도 있었다. 이 같이 자연의 미물과도 공존하려는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예로 아래 글 <자연과의 윤리>에서도 미물인 모기를 위해 모기장 밖으로 팔을 내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같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고승은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다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기에게까지 그의 자비심은 미치고 있다. 그 스님도 편안한 잠을 위해서 모기장만은 사용했다. 그렇게 되면 모기들이 굶을 염려가 있었으므로 잠들기 전 얼마 동안 팔뚝을 모기장 밖으로 내밀어 모기들의 식사를 마련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과의 윤리(倫理)의 극치를 본다. 인간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오늘날까지 자연에 대하여 시종일관 인간중심적인 태도를 취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연과의 윤리>에서
자연과 공존의 태도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자연의 모습을 인간과 동일시하고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인 예를 작가는 결코 흘리지 않는다. 제주인들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멋스러움이 전래지명에서도 찾아진다. 이러한 것들을 찾아 작가는 제주인들의 생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형의 모습을 보더라도 인체와 결부하여 바라본 그들의 골계가 보인다.
오름들은 젊은 여자의 젖가슴이나 둔부처럼 한없이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누워 있었다. 생전에 느낄 수 없었던 평화가 자연에 가득 차고, 그것은 한 아름 나의 가슴에도 흘러들었다.
잠들고 싶었다. 자연이 주는 평화와 부드러움 속에 포근히 안겨 잠들고 싶었다. 그때 하나의 오름이 불현듯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젖가슴도 둔부의 모습도 아니었다.
나는 지도를 펴서 그 오름의 이름을 찾았다. 거기에는 ‘보’자와 ‘자’자로 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허, 자연의 오묘함이란 바로 저기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봉긋한 오름 양쪽의 산자락이 다리를 뻗은 듯 앞으로 펼쳐 있고, 그 사이의 자그만 둔덕에는 상록수들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成佛 오름>에서
서경림의 생태의식의 복원은 <뱀과의 동거>에서 한층 더 확연해진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복원되고 그 속에서 뱀과의 동거로 완전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경림의 자연관은 급기야 인간과 자연에 대하여 기본적인 윤리관이 설정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나서게 된다. <위험한 사회>에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자연을 이용할 때에도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그쳐야 한다. 낚시를 할 때에도 주린 배를 채우는 선에서 만족해야지 도락으로 남획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 것은 자연 친화적인 작가의 태도를 쉽게 감지하게 해 준다.
4. 작품 속에 나타난 제주인의 강렬한 삶
작가 서경림은 권력이 있거나 힘 있는 자에게는 눈을 주는 법이 없다. 언제나 그의 눈은 힘이 없고, 나약한 소시민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들에게 늘 마음을 빼앗기고, 그들에게서 삶의 예지와 슬기를 배운다. 결국 이런 소시민은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고, 비록 작지만 힘이 있는 작은 거인이다. 비록 목소리는 낮은 듯해도 그 힘은 강렬하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삶의 의미를 두고 추구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 행복이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터득한다. 손자의 모습만 바라봐도 행복하고, 조그마한 수석에서 만물의 조화를 바라보니 행복하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은 수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발견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여 기쁨을 나누는 자세는 결국 탐욕을 억제하게 하여 우리의 사회에 화합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치를 두고 소망하는 세계는 모두 작은 것에서 비롯되고, 보통사람의 따뜻한 마음속에서 그 면면이 드러난다. 이러한 작가의 소시민적인 생활인의 철학이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다.
<손으로 쓰는 연하장>에서처럼 연하장 하나를 쓰더라도 발송인의 정성과 사랑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수신자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보내지는 오만과 편견과 자기 과시의 연하장은 가치가 없다. 받는 이의 처지를 헤아려 손으로 쓴 연하장에는 사랑과 화해, 겸양과 존경, 평화와 염원 등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스며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눈이 따뜻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선이 언제나 이런 소시민에 대한 애정에 가 있기에 법을 적용하는 데에도 약자 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지간하면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공평’을 외칠 텐데 오히려 약자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法曹의 큰 길>에 나타난 작가의 인식은 그동안 법이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으니, 이제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것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소망한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수재가 아닌 범재이고, 그 보통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할 때에 사회는 발전하게 된다. 인간의 가치는 본인이 타고난 재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했느냐에 따라 가름된다. 부모에 효도하고, 동네 어른 존중하며,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는 보통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의 장래는 어둡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다고 지적한 <보통사람들>에서 작가가 소망하는 사회를 읽을 수 있다.
직업관에서도 작가의 생각은 확실하다. 흔히 사람들은 하는 일의 종류나 성질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에 더 관심이 많음을 개탄한다. 투철한 직업관에 따라 성실히 일에 임하는 것이 아닌 지위의 정상을 향해 무던히 갈망하는 인간들에게 작가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도 직업을 ‘일’로 보기보다는 지위로 보는 경향이 짙다. 즉 직업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은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의 종류나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오로지 저 높은 자리 속에 직업의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돈을 벌면 국회의사당에 가고 싶어 한다.학문을 조금만 해도 정치인이 되고 싶어 한다. 군인이 별을 달면 국회의사당이 가까워지는 것 같다. 변호사가 되면 한번 국회의원이 되는 꿈을 꾼다.……그러므로 탐욕스런 사람은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위대한 소시민>에서
이와 같은 의식은 바로 <무명씨의 묘비명>으로 맥이 이어진다. 고관들의 묘에 가 보면 그의 비행은 세월 속에 묻히고, 무덤 앞 비석에는 벼슬 이름만이 남아 빛을 발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전해야 할 것은 고관들의 사회적 지위나 벼슬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입을 통하여 전달되는 무명씨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은 역사책에 이름 석자 올라 있지 않았어도 참으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간 사람들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먼저 몸을 던져 희생했고, 가난한 이웃을 제 식구처럼 돌봤으며, 불의를 보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이들은 갔어도 선행은 남아 우리의 고달픈 삶에 보람과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니 묘비에다 이들의 선행을 새겨 길이 후손에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가이기에 만리장성에 가서도 그 광대한 장성(長城)을 보고자 함이 아니었다. 축성술을 보러간 것은 더욱 아니었다. 이 성을 쌓기 위해 흘렸을 백성들의 피땀이었던 것이다. 오로지 듣고 싶은 것은 백성들의 가슴에서 곪아 터져 나오는 고통스런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작가 서경림에 있어서 삶의 가치는 보통사람들의 삶에서 얻어지는 진실된 삶의 지혜였다. 뜨거운 가슴이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작가는 한순간도 놓지 않고 독자들에게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5. 작품 속에 나타난 제주도 여인상
《가시나무 자루》에는 제주 여인의 삶이 많이 등장한다. 그 여인들은 언제나 역사 속의 인물이거나 설화 속의 인물들의 도움을 얻으면서 제 자리를 확보한다. 생활환경의 특이함 속에서 여성들의 기능이 남달랐기에 더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싸우며 삶을 영위해 나가기 때문에 강인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다시 바다로>에 그려진 제주 여인은 왕성한 책임감과 강인한 개척정신의 소유자다. 그 모진 자연과 사투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눈물겹도록 진한 것으로 등장한다. 바다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모자반은 집을 삼고, 연이어 몰려오는 큰 물결을 어머니처럼 안아, 날마다 살아 왔으니, 어느 바다이건 거칠게 없다는 그녀들의 노래에서 강인한 여장부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해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슬퍼하고만 있을 여유가 없다.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바로 동해안을 비롯하여 본토 각 연안에 이르기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바다 밑을 뒤지고 다녀야 했다. 심지어는 일본, 중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행동반경이 되었던 것이다.
해녀들의 이러한 여장부다운 면모는 어디에서 왔을까. 작가는 이것의 근원을 제주도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설화에서 찾고 있다. 《가시나무 자루》에는 전설적인 인물이 셋이 나온다. ‘자청비’, ‘김만덕’, ‘가믄장아기’가 바로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은 많은 공통점도 가지고 있고, 모두 여장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 사람의 행적을 담은 이야기를 우선 살펴보면 작가가 그리려는 제주 여인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자청비는 제주 도민들의 신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여성 영웅이며,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여성상이다. 게다가 강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스며 있다. 자기가 죽인 종을 환생시키고,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을 꽃감관의 딸에게 보내 번갈아서 살게 하고, 멸망꽃으로 적을 섬멸하여 나라를 구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에서
제주의 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 ‘자청비’에 비견되는 인물이 실존 인물인 김만덕이다. 조선 정조 때 인물로 본래는 사족 집안의 고명딸이었지만, 열 살에 부모를 여의고, 큰 오빠는 머슴으로 떠나고, 작은 오빠는 외삼촌 집에 남고, 자신은 퇴기의 수양딸이 되어 기생이 된다. 타고난 미모와 자상하고 활달한 성격, 뛰어난 기예로 많은 유혹을 받게 되나 제 스스로 머리를 얹고, 고선흠의 아내가 되길 자청한다. 끈질긴 하소연으로 기적에서 제적한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돌림병으로 죽은 배필 고선흠의 두 딸들을 길러낸다. 객주가 되어 두 오라비를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재물을 모아 제주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그것을 풀어 오 개월 동안 수십 만 명의 목숨을 구해낸다.
자청비와 김만덕은 분명 여장부다. 나라에 공을 세우고도 그 공을 제주 백성을 위한 데로 돌린다. 자청비는 오곡의 종자만을 청하여 제주도민의 먹을거리를 해결하였고, 김만덕은 대궐과 금강산 구경을 청하여 제주도 여인들에게 내려진 출륙금지령을 인조 이후에 해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가믄장아기가 전하는 말>에 나오는 가믄장아기는 거지였다가 졸부가 된 부모의 셋째 딸로 태어난다. 두 언니는 ‘누구의 덕에 먹고 입고 행위발신 하느냐?’는 질문에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이라 답하는데, 그녀는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이기도 하지만, 나 배꼽 아래 선그믓(立線) 덕으로 먹고 입고 행동합니다.’고 답한다. 부모의 노여움을 산 그녀는 쫓겨나는 몸이 되나 어머니는 부모의 정의로 찬밥에 물말이라도 하고 가도록 두 언니에게 시킨다. 하지만 언니들은 재산욕에 눈이 어두워 거꾸로 함으로써 나중에 청지네와 버섯으로 환생하고, 부모는 문설주에 부딪혀 장님이 되고 만다.
집에서 쫓겨난 가믄장아기는 초막에 들어 하룻밤을 지내면서 부모에 효하는 셋째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장님이 된 부모를 찾기 위해 장님잔치를 하고 효도를 하게 된다. 여기서 가믄장아기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운명에 도전하고 개척하는 여성상임을 알 수 있다.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째와 둘째를 선택하지 않고, 셋째를 선택한 것이 바로 개척정신의 발현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작가가 보여 주려 한 제주의 여인상은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한 인내하는 여인상인 것이다. 그것은 제주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며 가족을 책임졌던 그들의 강인한 삶이 형상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작품 속에 나타난 가족애
작가 서경림에 있어서 가족사랑은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가정이란 둥지 안에서 삶의 의미를 새기며 성장하였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의 성장기에 느꼈던 부모들의 사랑은 어찌 보면 아픈 기억만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부모의 끈끈한 사랑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외가에 얹혀도 살고, 4 ․ 3 사건과 같은 어려운 시대의 변천 속을 헤쳐 나오면서 바라본 부모의 삶이 그에게는 평생 동안 업보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월남전에 파병됨으로써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있어야 했던 기억이 그를 가정이란 굴레에서 늘 편안히 안주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그의 가족사랑은 병약한 몸으로도 가정을 일으켜 세웠던 부친의 모습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돌을 다듬는 일에 종사한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병약한 몸인데도 어려웠던 가정을 돌을 다듬는 일로 다시 일으켜 세운 아버지. 그 아버지가 작가에겐 커다란 존재로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 아버지가 쓰던 망치의 가시나무 자루를 손에 쥐어보고 자신의 손과 똑같음을 상기하는 것은 바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토록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기에 수필집의 표제도 아버지의 그 ‘가시나무 자루’에서 빌려왔다.
지금 내가 잡고 있는 가시나무 자루에 따스한 온기가 돌고 있다. 아버지가 잡았던 자국을 따라 꼭 맞게 잡혀진 이 자루를 보면 아버지의 손과 나의 손이 크기가 꼭 같음을 느낄 수 있다. 가시나무 자루 속에 아버지의 인생이, 온갖 시름이,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모두 담겨져 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국을 남기셨다. 강하고 질긴 가시나무에 어린 아기의 손보다 더 부드럽고 따스한 자국을 남기셨다. 이 자국을 통하여 당신의 삶의 본을 자식들에게 보이고 있다. -<가시나무 자루>에서
위 글은 수필집의 표제가 된 <가시나무 자루>에서 뽑은 한 대목이다. 이 글만 보아도 작가에게 아버지는 어떠한 존재였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모든 삶에 있어서 버팀목이 돼 주었던 것이다. 부친께서 평생 잡고 일하던 망치 자루를 자신의 손으로 쥐어 보고 꼭 같음을 발견하면서 추억하는 아버지의 삶은, 그 어느 교훈보다도 작가에게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루에 난 아버지의 손자국에 자신의 손을 맞춰보면서, 이어서 어린 아기의 부드럽고 따스한 자국에 비유한 것은 부모의 교훈이 자손들에게까지 내리 이어짐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가족간의 사랑을 기술한 곳이 많이 있다. 부부애를 그린 <천생연분>에서는 신혼 초 월남전에 참전하여 떨어져 있었던 기억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살아오면서 더러 반년 가까이 떨어져 있었어도 그 때를 생각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는 부부의 의미는 유별난 것도 아니다. 아주 평범하다.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가까이 있으면 편안한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농일망정 서로 더 살다 오라며 혼자 남아 있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어한다. 이게 진정 깊이 사랑하는 부부의 표상일 것이다.
가족애란 언제나 풍요로움 속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아픈 추억이 더욱 더 가족간의 유대를 깊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것이 어린 날의 것이라면 의미는 배가 된다. 마치 전쟁터에서 동고동락한 전우의 정이 깊은 것과도 같은 이치다. 어렵게 지낸 것이 가족애를 키운 경우도 있다. <가시나무 자루>에서 보면, 유년시절 작가에게 아버지는 엄한 존재였다. 일요일만 되면 자갈밭에서 김매기를 강요하신 아버지. 심지어는 일년에 두 번 있는 소풍날에도 공부하지 않으니 밭일을 거들길 요구하신 아버지. 그래서 소풍날을 알리지 않고, 소풍에 참석해야 했던 작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토록 다정다감하면서도 유독 작가에게는 무정했던 아버지를 지금에 와서 추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 작가의 삶에 힘이 되었음이리라.
끼니를 잇기도 어렵게 지내던 시절, 이 세상을 짧게 살다간 동생을 그리워한다. <아가야, 손녀야!>에서는 동생이 칭얼거린다고 꼬집으며 위협했던 과거 일을 후회한다. 그러나 그 동생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더욱 애절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어린아이를 그리면 동생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은 어찌하랴, 이것이 혈육간의 정인 것을.
작가 서경림에 있어서 가정은 삶의 근본이고, 모든 생의 근원이다. 그러기에 그 안에서 맺은 인연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그의 행동의 기저에 가족애가 서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7. 나가면서
수필은 작가의 체험에서 글감을 취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형상화의 글이다. 그러기에 수필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거환경을 떠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그 환경을 아끼고 사랑한다. 수필가 서경림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고향, 제주를 무던히 사랑하는 작가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는 나름의 특수한 전승문화가 있는데,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이러한 것들이 급속히 소멸되어가는 실정이다. 이것이 작가의 시선에는 안타까운 것이다. 하나라도 더 챙겨두려는 애정이 수필집 《가시나무 자루》에 흘러넘치고 있다.
수필가 서경림은 제주인들만의 삶의 지혜를 찾아 나서는 데에 부지런하다. 또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니 생태공경의 사상이 꽃을 피우고 있다.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립 되지 않은 현실에서 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말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에 소중한 가치를 두고 있다. 큰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작더라도 나름의 소임을 다하는 자에게 관심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이 서린 인간관계를 중요시한다. 이들이 온전히 대접받는 사회가 이루어질 때 국가는 발전한다고 믿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여인은 책임감이 있고, 개척정신이 있으며, 가족을 깊이 사랑하는 적극적인 인물이다. 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얼굴이리라.
작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은근하면서도 깊다. 이는 불편한 몸으로도 가정을 책임졌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수필집의 표제가 《가시나무 자루》인 것이 범상치 않은 것이다.
작가의 부친이 돌을 만지는 일을 하였기에, 작가는 그 아버지의 망치 자루에 부자의 손을 맞추어 보면서 체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수석으로 이어지고, 그 수석들이 수필집의 삽화로 등장하는 까닭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고향, 제주도를 사랑한 수필가 서경림의 《가시나무 자루》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 섬 지방의 전승문화가 더 사라지기 전에 다음 저서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면 나는 다시 제주도에 관한 공부로 긴 시간 즐거움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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