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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
변 상 구
태풍의 두려움에 잠 못 들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빌딩의 벌집들 목구멍에 올라오는 침을 삼키며 낡은 주택, 이게 집이냐 처마에 지어놓은 벌집이 부럽다
됫박 같은 틀 속에서 마음에 때를 벗고 속계에서 영혼으로 여행하려는 노쇠한 편린을 휴식으로 인도한다
새벽이 밝아오자 카톡이 작동하고 따뜻한 등허리는 구들장이 떠받친다
태풍이 밟고 간 두 평 화단에 익지 않은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졌고 손목의 힘 좋은 나뭇잎들 반짝반짝 눈을 뜨고 아침 햇살로 온 몸에 붙어있는 끈끈한 습기를 닦아낸다
경이로운 아침에 고층의 빌딩들 풋풋한 여인처럼 화장을 하는 모습 아래서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
변상구 빨간 날 / 오늘의 일기 (2019.10.3.목요일)
책을 보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잠결에 세찬 바람소리가 들렸다.
태풍 '미탁'의 위력이 꿈결처럼 어슴푸레 짐작됐다.
뒷마당의 그늘막이 태풍에 펄럭였다.
그 소리에 자다 깨다로 뒤척였지만 단층 주택에 살다보니 별다른 걱정은 없다.
다시 깊은 잠이 든다.
고요한 적막 속에 휴대폰이 울린다.
이른 시각, 이건 무슨 전화지.
딱히 올 곳은 없으나 정신을 차리며 벌떡 일어난다.
장림에 있는 친구다.
태풍 피해가 없는지 물어 보는 안부전화다.
내가 광안리에 있다 보니 바닷가와 붙어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통화를 하는 데 바깥이 조용하다.
지난 밤 몰아치던 태풍도 지나간 모양이다.
친구가 바깥 날씨를 알려준다.
태풍은 새벽에 부산을 지나갔다고 한다.
지금 햇볕이 쨍하다며 서로들 다행이라는 대화로 통화를 끝낸다.
다시 잠이 든다.
아주 깊은 잠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점심때가 가까워 졌다.
잠이 깼다기보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빈속에 계속 누워있기는 곤란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컴퓨터를 켰다.
보기에도 좋지않은 화면들이 뉴스로 도배됐다.
태풍 '미탁'을 비롯하여 서울 광화문 광장이 집회로 야단이다.
이번 주 일요일은 부산바다하프마라톤대회가 해운대에서 열린다.
대회 참가와 관련하여 또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통화를 끝냈다.
오늘도 할 일이 여러 개다.
문화센터를 찾아가 동아리방 장소를 섭외하고, 은행에서 돈도 이체 해야 하고, 이발도 하고, 체육센터에서 운동도 해야 한다.
먼저 순서를 정해야 한다.
은행 볼 일을 보고 문화센터를 갔다가, 이발을 하고 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해야겠다.
집에서 가까운 은행부터 갔다.
입구로 들어서자 자동화 기계가 보이고 내부는 셔터가 내려와 있다.
오늘은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아닌 데 왜 문이 닫혔지?
혹시, 지난밤 태풍에 그럴 수도 있겠지.
아하! 은행이라고 전산에 고장이 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가 묻고 자답한다.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고 문화센터로 갔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걸어서 갔으나 출입문은 잠겨있다.
고개가 찌우뚱, 왜일까?
두 쪽 문에서 한 쪽은 잠가두나.
이번에는 다른 쪽을 밀어본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꿈쩍도 않는다.
이러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
휴대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한다.
아뿔싸, 오늘이 개천절 빨간 날을 몰랐다.
완전 나의 실수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최근 들어 토, 일요일을 제외하면 공휴일은 없는 줄 알았다.
일주일에 몇 번 나가는 평생학습관 외에는 공휴일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다.
다시 집으로 왔다.
간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먼저 머리를 깎고 체육센터로 갈 생각이다.
내가 이발소로 갔을 때 주인 남자는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있었다.
덕분에 이발은 금세 끝났다.
그 길로 체육센터로 간다.
한 시간 반 운동에 옷이 땀으로 젖었다.
사워를 하고 나왔더니 몸이 가뿐하다.
집에 와서 달력을 보니 벽에 걸린 달력은 아직도 9월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하루하루 전쟁이다.
은퇴를 하고 백수가 된지도 5년이다.
처음에는 좌불안석에 매일 같이 달력을 봤으나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어느새 요일개념 시간개념도 무디어졌다.
자유로운 삶에 뒤죽박죽,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느날 해운대에서
영화의 거리를 걸으며
수영구 체육센터와 평생학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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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가 참 좋네요...고층아파트를 벌집으로 묘사했는데..그분들은 모를거에요...밖에 나와보면 벏집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