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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파미르종주기 -마침내 실크로드의 십자로, 오쉬로 입성하다.
* 회색말의 전설어린 카라쿨호수(Kara-kul, 黑湖)을 지나서
무르갑을 출발하여 다시 M41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 파미르하이웨이에서 제일 높은 아크바이탈(Ak-Baital,4,655m)고개를 넘어 조금 더 내 달리면 카라쿨호수에 도착한다.
중앙아시아에는 ‘검다’ 라는 뜻의 ‘카라(kara)’라는 단어가 들어간 지명이 아주 많아서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더하여 ‘카라쿨’이란 똑 같은 곳도 3개나 있어서 초행자의 경우 확인하지 않고 여행 스케줄을 잡을 경우 황당한 일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선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중국 신장위구르에 있는, 일명 중국인들이 카라쿨리[卡拉库里湖]1)라고 부르는 호수가 떠오른다. 이 호수는 카슈가르에서 타쉬쿠르간을 거처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유명한 산악도로인 카라코람하이웨이[Kkhy]상에 있는데, 카라코람 산계에 속하는 무스타그 아타산(7,545m)와 콩구르산(7,649m) 같은 거대한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주위의 빙하가 녹은 물이 모여 들어 이룬 아름다운 빙하호이다. 그래서 이 호수의 수면에는 항상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이 거꾸로 투영되어 있고 또한 언제나 호숫가의 넓은 초원에는 낙타를 비롯하여 말, 야크, 면양, 염소 같은 무리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인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이런 분위기에 이끌린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휴양형 리조트로 개발되는 중이다. 유목민들의 이동식 텐트인 유르트(Yurt)2)에 며칠 머물며 말을 빌려 타고 건너편 설선(雪線) 아래 까지 왕복하는 ‘승마 트랙킹’은 인상적인 추억으로 나그네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리라.
▼ 신장 위구르의 카라쿨리 호수의 인상적인 풍경
▼ 목가적인 카라쿨 호숫가
▼ 카라쿨 가는 길가의 야생 낙타들
키르기즈의 유명한 이식쿨 호수 동편에 있는 휴양도시 이름도 카라쿨3)이다. 지금은 이식쿨이라 부르는 옛 이름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나머지 한 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도착한 타지크 경내의 파미르에 있는 산정호수이다. 이곳 역시 파미르 알라이산맥과 레닌봉(Pik Lenin,7134m)이 병풍같이 둘러싸인 빙하호로 해발고도가 3,914m이니 신장의 그것보다 300m 더 높을 뿐이지만, 호수 둘레가 52km나 되는 면적과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에 분위기 상으로 훨씬 더 신비로운 곳으로 다가온다. 뭐랄까 신장의 카라쿨이 목가적이라면 파미르의 카라쿨은 신화적이라고 할까?
호수의 색깔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고 있어서 호숫가의 촌로들이 들려주는, 한 교훈적인 전설4)이 그럴싸하게 들리고 있다.
▼ 타지크 파미르의 카라쿨호수 위성지도
▼ 카라쿨호수를 배경으로 한 카라쿨 마을
▼ 카라쿨 마을의 홈스테이 안내 표지
▼ 카라쿨마을의 어떤 소박한 모스크
옛날에 한 목부가 카라쿨호수의 ‘호수의 입’이라 불리는 콜바쉬(Kol Bashy)란 곳에 왔을 때는 날씨가 매우 더웠다. 그는 그의 암노새가 풀을 마음대로 뜯도록 안장을 얹지 않고 너무 멀리서 걸어 왔기에 매우 피곤하여 풀밭에 누워 쉬게 되었는데, 때 마침 호수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결 때문에 바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부가 어떤 움직임에 놀라 일어나서 보니, 아. 어떤 늠늠한 회색 숫 말이 그의 암노새 근처에서 마치 도망치려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 목부는 놀람을 가라앉히고 약간의 안정을 취한 뒤에 먼저 간단한 저녁요기를 하고는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려고 우선 그의 암노새를 몇 번이나 불렀지만 헛수고였기에 할 수 없이 자신이 노새에게로 달려가 한참을 노새와 씨름한 끝에 겨우 붙잡아서 안장을 올린 후에 출발할 수 있었다.
몇 달 뒤 그의 암노새는 회색 새끼를 한 마리 낳았는데, 과연 그 새끼는 전에 카라쿨 호숫가에서 만났던 그 회색 말을 닮아 있었다. 그 새끼 말은 튼튼하게 자라나서 근방에서 가장 잘 뛰는 말로 성장하였다. 이에 근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회색 말을 알아보고 그 아름다운 자태를 탐 내었다.
이에 그 말의 주인 목부는 자만심이 커져서 또 다시 말 새끼를 얻을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암노새와 그 새끼까지 데리고 예전의 그 회색 말을 만났던 그 호숫가로 가서 예전처럼 그 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이전처럼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음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목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호수의 출렁이는 물결뿐이었다. 황혼 속에서 회색 말이 다시 호숫가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말은 암노새와 새끼말을 데리고 셋이서 호수로 되돌아가더니 순식간에 물결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카라쿨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말들이 아직도 그 호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각설하고, 호수 곁에는 유목민들의, 같은 이름의 겨울 거주용 마을이 하나 있는데, 어떤 자료에 따르면 중간에 숙박시설이 전혀 없다는 정보도 있으나, 실제로는 이 호숫가 마을에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하루 밤 묵어 갈 수 있는 ‘홈스테이’도 몇 채 있어서 고소적응 차 하루 이틀 머물면서 신화적인 분위기를 느끼면서 쉬었다 가도 좋다.
카라쿨을 떠난 M41길은 동쪽으로 중국과의 경계선으로 길게 처 놓은 철조망을 따라 한참을 달려서 키르기즈와의 국경인 보르되보(4,282m) 출입국관리소에서 입출국수속을 하고 사리타쉬 삼거리를 거처 종점인 오쉬로 이어진다.
▼ 철조망으로 길게 가로막힌 중국과의 국경/ 아마도 건너편 설산이 사리콜산맥이리라. 그 너머에 총령진 타쉬쿠르간이 있을 것이고...
▼ 아크바이탈 고개 표지판/ 해발 4,655m란 글자가 선명하다
▼ 아크바이탈 고개길
▼ 티지크와 키르기즈의 국경선인 보르되보 검문소
▼ 보르되보 검문소에서 마약견을 동원하여 검문을 하고 있다./ 소변을 보는 척 멀리서 떨어져 당겨서 찍었다. 두든두근하면서
* 솔로몬 왕의 전설 깃든, 천년고도 오쉬(Osh)
▼ 오쉬를 중심으로 한 키르기즈의 지도 / 가는 선의 붉은 색 둥근 원이 페르가나 분지에 해당된다.
중앙아시아에서 사방팔방으로 십자로처럼 연결된 길을 따라 오쉬5)로 모여드는 나그네들은 배낭을 집어 던지자 마자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우선 시내 중심가에 솟아 있는 솔로몬 산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시가지를 내려다보게 마련이다. 이 솔로몬 산은 유네스코에 등제된 문화유산으로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의 참배대상이 되어 있다.
계단을 따라 한 참을 오르면 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그곳에 작은 모스크사원과 신통한 영험이 있다는 좁은 동굴이 있어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들이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아픈 곳에 바른다. 뭐 그러면 불치병도 낫는다는 믿는다는 것이다. 하기야 구약성서의 다윗왕의 아들이며 지혜제일 솔로몬 왕의 신통력이라면 시원찮은 병이야 낳지 못하게 하겠는가.
산 아래에는 박물관이 한 곳 있지만, 뭐 특별한 유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남쪽 술레이만의 산허리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농부들의 정착과 관련된 유물들과 잡다한 근대 민속품들이 진열되어 있을 뿐이다.
잘 알려져 있지만, 솔로몬왕(B.C 970-930년) 6)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을 최고로 번성케 한 인물로 매우 지혜로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실존적인 인물이 이스라엘에서 수만리 떨어진 이곳 오쉬에 직접 발길을 직접 남겼다는 것은 이방인의 생각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러나 오쉬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여러 나라 사람들은 솔로몬을 일명 술래이만으로 부르며 이를 사실로 믿으며 이 산을 무척 신성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쉬의 중요성은 그것보다는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일찍이 기원전 5세기부터 동서교역의 중심지로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또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서융합의 원대한 프로젝트가 실현된 후에 일찍이 실크로드의 중요 허브도시로서 지금까지도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지금도 중국 신장 위구르,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이 바로 연결되는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라는 말이다
오쉬 시가지를 관통하며 흐르는 아크부라(Ak-Buura)시냇물은 소그드지방의 젖줄 시르다리야(Syr Darya)7)의 시원지로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오기에 차갑고 수량도 많다. 필자도 당연히 다리 아래로 내려가 우선 간단히 세수를 하고 신발을 벗고 찬 물속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며 아이들의 물놀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수천 년 전부터 이름이 드높은 오쉬의 자이마(Jayma)바자르 구경에 나섰다. 나는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는 실크로드 상에 있는 유명한 바자르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설렘으로 가득 차 구경하기를 즐겨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아, 너무 늦게 왔구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적어도 한 세기 전에 왔었으면… 하면서 한스러워 하곤 한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한다. 오쉬 바자르 역시 중국의 싸구려 공장제품이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자르 구경에 지쳐 목이 마를 즈음에 인근 큰 길가에 있는 뻬킨호텔[北京] 광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내일의 교통편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뻬킨광장은 중국 카슈가르로 넘어가는 국제버스의 종점이고 또한 타지크 내의 장, 단거리 택시와 미니버스인 마슈르트카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특히 수도 비슈케크로 가는 마슈르트카는 아침과 저녁에 주로 출발하는데, 저녁에 출발하면 밤새 달려 다음 날 아침에 역시 비슈케크 오쉬 바자르 앞에 도착한다.
또한 파미르하이웨이를 타고 타직의 호로그까지 가는 차편8)도 여기서 물색할 수 있다. 필자 같은 개별 여행객의 경우 더취페이식 ‘세어드택시(Share)’방식이 경제적인 방법이다.
▼ 오쉬 시가지에서 바라본 솔로몬 산의 원경
▼ 유네스코 표지판
▼ 오쉬, 술레이만(솔로몬) 산에서 바라본 오쉬 시내 전경
▼ 솔로몬 정상의 박물관 키릴문자로 '뮤지엄'이라 써 있다.
▼ 시내를 관통하는 아크부라 시냇물/ 소그드의 젓줄인 시르다리아의 시원지이다.
▼ 오쉬 바자르의 뻬킨광장/ 오른 쪽에 노천카페가 있다.
▼ 뻬킨광장에서 출발준비를 하는 중국 카슈가르행 국제버스
▼ 국제버스 표지판/ 중국 喀什[캬슈가르]-키르기즈스탄 오쉬간
* 중앙아시아 초원의 역사
오쉬는 솔로몬이나 알렉산더 뿐만 아니라 인도대륙 최후의 대제국 무굴왕조를 세운 바부르(Babur, 1483~1530)의 고향으로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가진 곳으로 바부르가 직접 세운 모스크도 현재 솔로몬 산 아래 남아있다.
오쉬는 유명한 페르가나 분지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페르가나는 바로 중원문화권에도 일찍부터 널리 알려진 곳으로 한나라 때 대원국(大宛國)9)으로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한혈마(汗血馬)라는 명마의 산지로 유명하여 한 무제10)가 여러 번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다. 7세기부터는 돌궐 등 터키계 민족의 지배하에 있다가 한 때 고선지가 점령하기도 했다. 그 후 아랍의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근세까지 내려와 러시아의 점령을 거처 현재 우즈벡, 타지크, 키르기즈의 3개국의 영토로 분할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혜초사문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귀국길에 강국 사마르칸트에서 페르가나, 즉 발하나국(跋賀那國)11)을 거처 타지키스탄의 두산베 아래에 있는 골탈국[Khuttal)국12)을 거처서 와칸주랑으로 들어가서 귀국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오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무굴제국의 기원은 몽골제국에 이어 16세기에 인도와 중동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티무르까지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무굴이란 인도어로 몽고가 아니고 페르시아말로 몽고이다. 중아아시아에서 부르던 이름을 페르시아말로 표시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무굴제국을 대제국으로 키운 왕은 악바르(1542~1605)이지만, 그 토대를 마련한 인물은 티무르의 5대 손인 바부르였다.
▼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 황제 초상화
▼ 솔로몬 산 아래 바부르가 세운 모스크
12살 때 부왕에게서 페르가나왕국을 물려받은 바부르는 국력을 키워 1504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내친 김에 델리에서 아그라로 진격하여 그곳에 대제국 무굴왕조의 토대를 놓았지만, 그는 고향 페르가나와 오쉬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슬람 역사에서 그만큼 오쉬의 비중이 무겁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 카슈가르에서 카라코람 고속도로를 타고 타쉬쿠르간으로 가는 도중에 191km거리에 해발 3600미터에 위치한호수로 접근성이 좋아 점차로 관광지화되고 있다.
3) 이시쿨호수 동편에 있는 휴양 트레킹 도시로써 서편의 촐폰알타에서 138Km 떨어져 있다. 근처에 러시아의 탐험가 푸르제발스키(Przewalski)의 기념관이 있다.
5) 오시(키르기스어: Ош, 러시아어: Ош)는 키르기스스탄 서남부 우즈베키스탄 국경 부근에 위치한 도시로 수도 비슈케크 다음가는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이다. 인구 약 255,800 며, 약 255 800 주민은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러시아인, 타지크인 등 여러 민족을 포함하고 있다.
페르나가 분지의 비옥한 지대에 있는 오시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혼잡한 야외 시장이 있는 활기찬 곳으로 구소련 시절 동안 구축되었던 산업 기반은 연방 해체 뒤에 크게 붕괴되었다가 최근 차츰 소생하기 시작한 상태이다.
6) 솔로몬왕 성경속의 등장하는 인물로 이스라엘의 다윗왕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을 가장 번성하게 한 왕으로 구약성경의 잠언과 아가서를 직접 쓴 지혜로운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오쉬에 발길을 직접 남겼다는 일은 사실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냥 그런 전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7) 시르다리야는 천산산맥 서쪽에서 발원하여 오쉬를 거처 페르가나분지를 흘러내려 속디아나의 대지를 적시며 서북쪽으로 흘러내려가다가 내륙의 바다인 아랄(Aral) 호수로 들어간다. 이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사이의 땅을 소그드 또는 트랜스옥시아나라고 부른다.
8) ‘파미르하이웨이’를 횡단하자면 우선 키르기즈와 타직을 운행할 수 있는 국제면허증을 가진 4륜구동을 구해야 하는데, 키르기즈의 비슈켁의 오쉬바자르나 오쉬의 오쉬바자르 근처에서 그런 차량을 수배할 수 있다. 이때 협의사항으로 카라쿨호수나 무르갑에서 일박하고 가는 옵션을 정확하게 정해야 한다. 당일에 주파하려면 너무 무리하기도 하지만, 밤에 이동하다 보면 안전문제 뿐만 아니라 사진 한 장도 제대로 찍을 기회도 없기에 힘들게 파미르를 주파하는 의미가 없으니 가능하다면 중간에 일박을 군하고 싶다.
9) 현재의 페르가나(Ferghāna, 비이간費爾干)이다. 『사기』와 『한서』같은 고대 사서에 「대원전」이 있고 후에 『위략(魏略)』에는 ‘발한(拔汗)’으로, 원위 때는 ‘파락나(破洛那)’로, 수대는 ‘발한국(鏺汗國)’으로, 당대에는 ‘발한나(拔汗那)’ 또는 ‘영원(寧遠)’으로, 명․청대에는 ‘곽한(霍罕)’ 혹은 ‘호한(浩罕)’으로 불렸다.
『신당서』「서역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있다. 본래는 발한나(拔汗那)이고 일명 발한(鏺汗)이라고 하는데, 경사(京師)에서 팔천 리 떨어져 있으며 치소는 진주하(眞珠河) 이북에 있는 서건성(西鞬城, 아크시카트Akhsikhath, Akhsikant)이다. 큰 성이 여섯 개, 작은 성이 백 개 있으며 사람들은 장수한다.
10) 대외적으로는 장건(張騫)을 대월지국(大月氏國)으로 파견하고, 장군 위청, 곽거병, 이광(李廣) 등에게 흉노를 토벌시켜 흉노족 선우를 사살하고 다수 흉노족을 포로로 잡아왔다. 하서(河西)에 있던 흉노 혼야왕(渾邪王)도 항복했으므로, 그 곳에 4군을 두어 중앙아시아와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서역 제국의 입공(入貢)이 계속되었으나, 기원전 104년에는 이광리(李廣利)에게 명해 파미르 고원 북서에 있는 대완국(大宛國:페르가나)을 정벌하게 했다. 흉노의 방위와 서역 유지를 위해 요지로 한인을 이주시키고 둔전(屯田)을 두었다.
11) 헤초는 “다시 강국으로부터 동쪽은 곧 발하나(跋賀那, 페르가나Ferghāna)국인데, 왕이 두 사람 있다. 아무다리야란 큰 강이 한복판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강 남쪽에 있는 한 왕은 대식에 예속되어 있고, 강 북쪽에 있는 다른 왕은 돌궐의 관할하에 있다. 이 땅에서도 낙타, 노새, 양, 말, 모직물 같은 것이 난다. 의상은 가죽 외투와 모직옷이며, 빵과 보릿가루를 많이 먹는다. 언어는 각별하여 다른 나라와 같지 않으며, 불법을 알지 못한다. 절도 없고 중도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2) 또 발하나국 동쪽에 한 나라가 있는데, 골탈(骨咄, 쿠탈Khuttal)국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 왕은 원래 돌궐 종족 출신이고, 이곳 백성은 반은 호족이고 반은 돌궐족이다. 이 땅에서는 낙타, 노새, 양, 말, 소, 당나귀, 포도, 모직물, 모직 외투 같은 것이 나오며, 의상에는 모직옷과 가죽 겉옷이 있다. 언어는 토화라어와 돌궐어, 토착어를 뒤섞어 쓴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경신하고, 절과 중이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이 나라는 대식의 관할하에 있다. 외국에서는 나라라고 부르지만, 중국의 큰 주(州) 한 개와 비슷하다. 이 나라의 남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첫댓글 종주기가 클라이막스로 가나봅니다. 책 목록을 보니 고개를 넘어 타쉬쿠르간에서 마감을 하시려는 것 같던데...
자여우~~~~
맞습니다. 오쉬에서 이르케스탐고개를 넘어 다시 카슈가르로 돌아와 타쉬쿠르간으로 가서 공주성에서 마감을 할 생각입니다. 근데 막판에 힘이 들긴 합니다요.....
힘 내세유^^^
그 힘든 고개를 넘어야되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ᆞ
쉬시면서 넘어 가세요ᆞᆞᆞ
네, 힘내서 넘어가겠습니다.
무굴제국의 고향 중 하나가 오쉬라는 얘기군요. 가 보고 싶어...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힘내세요. ^&^~
고맙습니다. 힘을 주셔서
질문? 요즘도 카시에서 오쉬까지 그 국제버스가 운행하나요?
눈사태 때문에 한겨울만 못 다니고 아마도 지금쯤은(3월 정도) 다니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확인을 해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다정/김규현 예 더 확인해보죠. 5월초에는 확실하겠죠?
비단길의 십자로가 오쉬라는 말이죠?
클라이막스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