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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렷’ - ‘경 례’ -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전통 -
“국악은 우리 계레의 얼” “국악을 국민의 음악으로” 란 목표를 내걸고 밖으로는 국악인구의 저변확대와 대중화를 외치며, 안으로는 수많은 강습을 통하여 국악을 알리기 시작한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흘렸습 니다.
초창기,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로 대변되던 80년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젊은이들이 단소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관심사요, 취재의 대상이 되기도한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단소를 배우고자 무료강습에 몰려들었고, 이들을 기초부터 가르쳐서 어느 수준에 오르면 전공반별로 나누고, 다시 강훈련을 시켜 수 차례 무대를 만들면서부터 점차 조직의 틀을 가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각 반 수업시간에 ‘차려, 경례’ 하고 구령을 붙여,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전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학원으로만 생각하고 배우러왔다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점차 익숙해지더니, 이제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직업도 다양한 사회 각계 ·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그저 국악을 좋아한다는 하나만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도 어느 고참회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차려와 경례’ 의 가장 단순하고 형식적인 절차가 결국은 20년의 전통을 세우고, 국악의 맥을 사회적으로 이만큼이나마 잇게 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굳이 공자의 예약사상을 논하지 않더라도 예를 배우며, 악을 즐기고자하는 이들의 마음자세가 오늘의 「한소리국악원」을 존재케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척박한 땅에 「한소리」란 이름을 태동케 했던 창립회원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고비마다 붙들어준고참회원들, 회원님들, 물심양면으로 용기를 주신 고문님들과 자문위원님들, 그리고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묵묵히 봉사해주신 각 반 선생님들과 모두 함께 20주년의 영광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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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0년 10월 15일(일) 2시. 6시 2회 공연 -
아마도 예악당이 개관하고 800석 규모의 극장에 아마도 2,000명은 족히 입장했으리라.
깔판을 깔고 복도에 수많은 관중이 들어와 극장측에서 항의하고 난리를 친 기억이새롭다....
오전 10시 의상 리허설 . 2시. 6시 공연에 - 김태성 고문님은 자기 평생
하루에 옷을 14번-잠옷까지- 갈아입기는 처음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셨다.....
옥주의 - 대금산조. 청삼 - 집박, 대취타 - 등채의상. 창작음악 - 양복 .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