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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40살, 서정경(徐禎卿)의 도교 섭형화기(攝形化氣)에 대한 왕양명의 평가와 서정경의 왕양명 놀려주기
2018년 7월 11일
* 왕양명이 40살(1511)에 북경에 머물 때 서정경이 찾아와서 도교 양생술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왕양명은 듣기만 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담약수는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서정경이 두세 번 찾아왔고 하룻밤을 자면서 도교의 외단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왕양명이 지은 서정경의 묘지명에 따르면, 서정경이 왕양명에게 설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정경의 글을 보면 아주 반대입니다. 왕양명이 도교 양생술을 잘 몰라서 서정경에게 시 한 수를 요청하자, 서정경은 시를 지어주며 왕양명이 도홍경(陶弘景)의 수양공부는 물론이고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의 내용을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모른다고 놀렸습니다.
서정경은 명나라시기에 유명한 문장가인데, 양생술을 익히면서 사천성 노주(瀘州)에서 북경에 올라온 한씨 도사에게서 소위 섭형화기(攝形化氣, 煉形化氣) 방법을 배우고 심지어 외단(外丹)을 먹고 중독되어 몇 달 뒤에 죽었다고 합니다.
서정경이 한씨 도사에게 발원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면 수양공부가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양명이 줄곧 서정경의 도교 수련 설명을 듣고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왕양명과 서정경의 글을 보면, 왕양명이 몸이 여전히 아팠기 때문에 내단술에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왕양명이 담약수처럼 서정경을 단번에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서정경이 왕양명에게 외단을 먹으라고 채근하였지만 왕양명이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양명이 외단을 먹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웠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서정경의 글은 왕양명이 40살에 건강이 어떠하였고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나라 시기에 외단을 먹고 중독되어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명나라시기에도 외단을 먹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서정경의 죽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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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禎卿(1479-1511),攝形化氣之術
王守仁,「서정경 묘지명 (徐禎卿 墓誌銘)」:
정덕 신미년(1511) 3월 병진일에 태학 박사 서정경(徐禎卿,1479-1511,1505년 進士)이 세상을 떠났는데 나이 33살입니다. 지식인들과 관원들이 모두 부음을 듣고 울면서 “어!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났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자 문하의 70명 제자 가운데 안연이 가장 배우기를 좋아하였는데 혼자만 오래 살지 못하고 겨우 32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말하였더니, 다른 사람이 “안연은 배우기를 좋아하다가 지쳐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연이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다하여 배우면서도 하루 종일 바보처럼 지내고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연에 비교하여, 세상 사람들 가운데 명예와 이익을 도모하느라고 마음은 걱정하고 몸은 고달프게 하면서 얻어도 걱정하고 잃어도 걱정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바쁘게 일생을 마치고 정신과 기운을 소진하는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다른 것이 어찌 백배나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늙어가면서 얼굴이 누렇게 뜨고 비쩍 말라서 죽는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은 좋은 자질을 주셨으면서도 삶은 짧고 데려가는 것이 이토록 급합니까? 족제비와 날다람쥐는 밤에만 활동하고 찬바람이 불면 제비는 남쪽으로 떠나는 것처럼 모든 물체들도 성쇠에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곡식의 싹은 심기 어렵고 쉽게 말라죽고, 귀한 꽃은 아름답고 활짝 피더라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덩굴 풀은 베어내도 잘 자라고, 올빼미와 살무사는 세상에 가득한데 기린과 봉황이 나타나는 것은 몇 세대에 한번이나 볼 수 있습니다. 은나라와 주나라 이후에는 맑고 화목한 기운이 날마다 옅어지고 얇아지는데 탁하고 더러운 기운은 서로서로 도와주며 쌓여가니, 하늘과 땅의 기운도 이러한데 서정경의 짧은 삶에 대하여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서정경이 이몽양(李夢陽,1473-1530,1494년 進士)과 하경명(何景明,1483-1521,1502년 進士) 등 몇 사람들과 사귀면서 문장 짓는 것을 연마하였고 온힘을 다하여 깊게 생각하더니 우뚝하게 문단에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도교의 서적을 읽더니 뭔가 느낀 것이 있었는데, 탄식하며 “나의 정신을 쓸데없는 곳에 잘못 사용하느라고 몸이 죽어가는 것도 잊었으니 안다(知)고 말하겠는가? 문장을 교묘하게 지어 속세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하기를 바라느라고 부모님이 버려지는 것도 내놓았는데 착하다(仁)고 말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양생술을 배웠다. 어느 도사가 서남지역(사천성 瀘州)에서 북경에 와서, 서정경이 만나 이야기해보다니 아주 좋아하였고 결국 도교를 연구하면서부터 세상과 더욱 멀어지고 반드시 장생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정덕 경오년(1510) 겨울에 양명 왕수인(王守仁,1472-1529)이 서울 북경에 왔다. 왕수인은 이전부터 이들과 가깝게 지냈고 일찍이 도교와 불교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에 서정경이 기뻐하며 달려와서 만나 도교의 섭형화기술(攝形化氣術)을 설명해주었다. 마침 이때 광동성 증성현(增城縣) 출신의 담약수(湛若水,1466-1560)도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서정경과 말이 맞지 않았고 서정경은 말뜻이 서로 막히자 가버렸다. 며칠 뒤에 다시 찾아와서 지난번에 설명하였던 것을 설명해주었다. 왕수인이 웃고 대답하지 않았고 하루 밤을 묵으면서 “내가 도사에게서 오금팔석(五金八石)의 외단(外丹),『周易參同契』:“三五既和諧,八石正綱紀。)을 받아먹었으니까 곧 하늘로 날아올라 신선이 될 텐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왕수인이 다시 웃고 대답하지 않았더니, 서정경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昔=夕)에서 부수고 나와서 하늘로 떠나려고 합니다. 『노자:“塞其兌,閉其門。”』와 『주역참동계:“閉塞其兌,築固靈株。”』에서 말하는 대로 몸의 구멍(七孔)을 모두 막고 몸 안에 금화(金華,內丹)을 길러 운행시켜서 영근(靈根)의 신(神)을 공고하게 하렵니다. 이렇게 하면 바쁘게 살아가는 속세와는 아주 멀어지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무슨 까닭에 저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왕수인이 다시 웃고 대답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더니 “당신은 내가 틀렸다고 여깁니까? 아니면 당신은 달리 숨기는 것이 있습니까? 유(有)에 머물면 유를 초월하여 무(無)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몸(器)만 수련하기 때문에 도(道)와 하나로 융합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벗들을 떠나 홍천세계 밖으로 나가서 살려고 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해줄 말이 있겠지요?”라고 말하였다.
왕수인이 대답하길 “내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말하면, 도(道)는 분명히 형체가 없으니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의 설명이 틀렸다고 말하면,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설명이 옳다고 여기더라도 제가 설명해보겠습니다. 당신은 유(有)를 떠나서 무(無)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무(無)는 어떻게 초월해야합니까? 당신은 몸을 버리고 도(道)로 나가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도(道)와 몸(器)은 서로 하나의 짝입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무(無)를 초월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도(道)를 몸과 하나로 융합하지 못하였습니다. 채웠다가 다시 비워지고 쇠퇴하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명(命)입니다. 아주 미세하거나 아주 커다란 것도 안에 있거나 밖에 있는 것도 모두 성(性)입니다. 감지하지 못할 만큼 적연(寂然)하다가도 감응하는 것이 마음(心)입니다. 『주역:“窮理盡性,以至於命。”』과 『맹자:“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에서 말하듯이 존심하여 진성하면서 천명을 다하여야합니다. 어찌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야할 곳이나 떠나야할 곳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서정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지만 다시 한참 지나서 “그렇다면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옛날이야기는 사실입니까?”라고 물었다. 왕수인이 대답하길 “소리개가 본성을 다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고, 물고기가 본성을 다하면 연못 깊은 곳까지 헤엄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서정경은 “그렇다면 하늘 높이 승천하였다는 신선도 있겠지요?”라고 되물었다. 왕수인이 대답하길 “사람이 본성을 다한다는 것은 『중용:“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에서 말하듯이 천지가 만물을 화육시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서정경이 엎드려 생각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말하길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제가 새로 눈을 틔운 싹이며, 얼었던 강물에 녹아 떠내려가는 얼음 조각이라면 당신은 저에게 따스한 봄날의 햇볕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며칠 지나서 다시 찾아와서 고맙다고 말하길 “도(道)는 끝내 여기에 있는데 어찌 멀리 다른 곳에서 찾아야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저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프기 시작하였으니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라고 물었다. 왕수인은 “무서워서 떨리십니까?”라고 물었다. 서정경이 “살아있는 것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이고 죽는 것은 영원히 되돌아가는 것인데 왜 무섭고 떨리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서정경은 이와 같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뜻을 두었다.
서정경을 못 만난지 한 달이 넘었을 때쯤 서정경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들었습니다. 왕수인과 담약수는 함께 달려가서 곡하고 슬픔을 다하고 그의 집안을 도왔습니다. 그의 큰 아들 백규(伯虯)가 말하길 “아버지께서 묘지명을 양명선생께 부탁드려라.”고 말씀하시고, 기운이 점점 떨어지자 손바닥에 “점점 마음이 어두워질수록 더욱 고요해지는구나(冥冥漠漠).” 네 글자를 써주셨고 그 뒤에는 의식이 없어지셨지만 정신은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한다.
아! 내가 내 말을 끝까지 다하지 않고 서정경이 이해할 때를 기다렸는데 그가 여기에서 그쳤으니 나는 정말로 유감이네! 죽으면서 부탁하였으니 내가 어찌 거절하겠는가? 서정경은 이름이 정경이고 대대로 강소성 소주(蘇州)에 살았다. 1505년(26살)에 진사에 합격하여 대리시(大理寺)의 평사(評事)가 되었는데 성격에 맞지 않아 부모님 봉양을 이유로 지방관 발령을 요청하였으나 담당관이 이상하게 여기고 보류하였다. 뒤에 강등되어 국자감 오경박사가 되었다.(다른 기록에는, 서정경이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한림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리시(大理寺) 좌시부(左寺副)에 임명되었고 나중에 범인을 놓쳤기 때문에 국자감(國子監) 박사(博士)로 좌천되었다.) 북경에서 몇 년 동안 관원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끝내 부모님을 봉양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겼다. 그의 저서는 『담예록』과 고금 시문 몇 수가 있지만 그의 최고 경지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 서정경을 학술이 3번 바뀌었지만 끝내는 도(道)에 뜻을 두었다. 묘지는 강소성 호구(虎丘) 서쪽 기슭에 있다.
비석에 새기는 글을 지었는데,
아쉬워요, 서정경! 나는 당신이 도(道)에 입문한 것만 알았고 아직 최고 경지에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려서는 문장 짓는 것에 힘쓰더니 중간에는 모두 버렸고, 더러운 잘못을 깨끗이 씻어내고 형(形)과 기(氣)를 수련하고, 정(靜)을 지키면서 허(虛)에 이르려고 하였으며 유무(有無)의 경계선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공자님 말씀대로 아침에 도를 배우고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는데 당신이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좀 더 오래 사는 명(命)이었고 남는 것은 도(道)를 이루겠다는 당신의 목표입니다. 옥돌 재료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으니 어찌 단단하고 모진 숫돌을 견뎌낼 수 있었겠습니까? 산과 물이 있은 곳에 묻어드리니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오릅니다. 나중에 백년 천년 뒤에 사람들이 당신이 이루려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명문을 몇 글자 지어드립니다.
王陽明,「徐昌國墓志(辛未)」:
正德辛未(1511, 양명 40세)三月丙寅,太學博士徐昌國卒,年三十三。士夫聞而哭之者皆曰:“嗚呼,是何促也!”或曰:“孔門七十子,顏子最好學,而其年獨不永,亦三十二而亡。”說者謂:“顏子好學,精力瘁焉。”夫顏雖既竭吾才,然終日如愚,不改其樂也;此與世之謀聲利,苦心焦勞,患得患失,逐逐終其身,耗勞其神氣,奚啻百倍!而皆老死黃馘,此何以辨哉?
天於美質,何生之甚寡而壞之特速也!夫鼪鼯以夜出,涼風至而玄鳥逝,豈非凡物之盛衰以時乎! 夫嘉苗難植而易槁,芝榮不逾旬,蔓草剃而益繁,鴟梟虺蝮遍天下,而麟鳳之出,間世一睹焉。商、周以降,清淑日澆而濁穢熏積,天地之氣則有然矣,於昌國何疑焉!
始昌國與李夢陽、何景明數子友,相與砥礪於辭章,既殫力精思,傑然有立矣。一旦諷道書,若有所得,歎曰:“弊精於無益,而忘其軀之斃也,可謂知乎?巧辭以希俗,而捐其親之遺也,可謂仁乎?”於是習養生。有道士自西南來,昌國與語,悅之,遂究心玄虛,益與世洎(泊),自謂長生可必至。
正德庚午(1510, 양명 39세)冬,陽明王守仁至京師。守仁故善數子,而亦嘗沒溺於仙釋,昌國喜,馳往省,與論攝形化氣之術。當是時,增城湛元明(담약수)在坐,與昌國言不協,意沮去。異日復來,論如初。守仁笑而不應,因留宿,曰:“吾授異人五金八石之秘,服之,沖舉可得也,子且謂何?”守仁復笑而不應。乃曰:“吾隳黜吾昔而遊心高玄,塞兌斂華而靈株是固,斯亦去之競競於世遠矣。而子猶余拒然,何也?”守仁復笑而不應。於是默然者久之,曰:“子以予爲非耶?抑又有所秘耶?夫居有者,不足以超無;踐器者,非所以融道。吾將去知故而宅於埃壒之表,子其語我乎?”
守仁曰:“謂吾爲有秘,道固無形也;謂吾謂子非,子未吾是也。雖然,試言之。夫去有以超無,無將奚超矣?外器以融道,道器爲偶矣。而固未嘗超乎!而固未嘗融乎!夫盈虛消息,皆命也;纖巨內外,皆性也;隱微寂感,皆心也。存心盡性,順夫命而已矣,而奚所趨舍於其間乎?”昌國首肯,良久曰:“沖舉有諸?”守仁曰:“盡鳶之性者,可以沖於天矣;盡魚之性者,可以泳於川矣。”曰:“然則有之。”曰:“盡人之性者,可以知化育矣。”昌國俯而思,蹶然而起曰:“命之矣!吾且爲萌甲,吾且爲流澌,子其煦然屬我以陽春哉!”
數日,復來謝曰:“道果在是,而奚以外求!吾不遇子,幾亡人矣。然吾疾且作,懼不足以致遠,則何如?”守仁曰:“悸乎?”曰:“生,寄也;死,歸也。何悸?”津津然既有志於斯。已而不見者逾月,忽有人來訃,昌國逝矣。王、湛二子馳往哭,盡哀,因商其家事。其長子伯虯言,昌國垂歿,整衽端坐,托徐子容以後事。子容泣,昌國笑曰:“常事耳。”謂伯虯曰:“墓銘其請諸陽明。”氣益微,以指畫伯虯掌,作“冥冥漠漠”四字,餘遂不可辨,而神氣不亂。
嗚呼!吾未竟吾說以待昌國之及,而昌國乃止於是,吾則有憾焉!臨歿之托,又何負之?昌國名禎卿,世姑蘇人。始舉進士,爲大理評事,不能其職,於是以親老求改便地爲養。當事者目爲好異,抑之,已而降爲五經博士。故雖爲京官數年,卒不獲封其親,以爲憾。所著有『談藝錄』、古今詩文若幹首,然皆非其至者。昌國之學凡三變,而卒乃有志於道。墓在虎丘西麓。
銘曰:
惜也昌國!吾見其進,未見其至。早攻聲詞,中乃謝棄;脫淖垢濁,修形練氣,守靜致虛,恍若有際。道幾朝聞,遐夕先逝。不足者命,有餘者志。璞之未琢,豈方頑礪?隱埋山澤,有虹其氣。後千百年,曷考斯志!
* 明、項篤壽撰,『今獻備遺』,卷四十二,「徐禎卿」:
“初,授大理寺副,非其好也,上書乞改國子監博士。好飬生,習攝形化氣之術,久之,病死京師。”
명나라 항독수(項篤壽)가 편찬한 『금헌비유(今獻備遺)』에서도 서정경이 양생술을 좋아하여 섭형화기술을 배우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 글은 왕양명이 지은 묘지명을 참고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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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경,「王員外(王陽明)가 『참동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시 한 수를 요구하기에 지어주고 기분 좋게 놀렸다.」:
왕원외(王陽明)가 도교 경전을 열심히 붙들고 있으나, 읽어도 망연히 이해하지 못하네.
창용이 선천의 기운을 뿜어내어 몸안의 뿌연 연기를 녹여내는데,
십년 동안 수주전을 운기하여도 방법을 숨기고 글로 써놓지 않네
(직접 수양공부를 배워 따라해야지 도교 서적을 아무리 읽어도 방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
옛날부터 전해오는 초사와 사기를 읽어 伏羲、神農、黃帝을 알았던,
완적(阮籍,210-263)이라도 어찌 상제(上帝)께서 내리주신 붉은 색 명령문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도홍경(陶弘景,456-536)의 신묘한 비결부터 이해한 뒤에는,
서왕모(西王母) 계시는 구산(緱山)에는 밤마다 학들이 찾아와서 알려주겠지.
徐禎卿,『迪功集』,卷二
「王員外(王陽明?)不解『叅同契』,但索一詩許以遺,我率爾戲之」:
王烈持洞章,茫然不能讀。
石氣銷紫煙,十年秘空簏。
從來楚史識三墳,阮籍焉能辨赤文。
一自華陽(陶弘景)窺妙訣,緱山(西王母)夜夜鶴相聞。
서정경,「사천성 노주(瀘州) 하외산(霞外山)에 사시는 한씨(韓氏) 도인께 보내드리는 글」:
안개 끼는 고개 높은 곳에 새로 닦은 터에는 오래 된 동굴(洞天)이 있습니다.
신선이 금액(金液, 입안의 침)을 수련하여, 속세를 벗은 지 백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수련하는 과정을 끝내 설명할 수 없기에, 연단(煉丹) 서적에는 비워놓아 비밀스럽습니다.
(煉丹하는 수양공부는 직접 배워야하며 서적을 읽어서는 알 수 없다는 뜻)
갑자기 하늘에서 안개(霞子)가 날아 들어오더니, 초가집에 누워있는 뿌연 연기를 몰아냈습니다.
(정좌하여 후천의 精을 선천의 氣로 바꾸는 煉精化氣 과정입니다.)
마음에서는 찌꺼기들을 맑게 하더니, 영근(靈根)이 자연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찌거기가 없다는 것은 수양공부가 완성된 金仙이며,
영근이 자연조화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煉氣化神 과정입니다.)
검은 창룡이 머리의 신실(神室)을 지키고, 백호는 단전 앞에 엎드려있습니다.
(소주천 또는 대주천을 운기하는 방법입니다.)
마음은 푸른 하늘 밖으로 날아가서, 신선이 사는 곤륜산의 낭풍전(閬風巔)에서 노래 부릅니다.
(승천하여 곤륜산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煉神還虛입니다.)
한 줄기 기운이 옛날 물줄기를 흘러 온몸을 흔드니, 이치로만 알았던 것을 버렸습니다.
(태어날 때 첫 울음소리부터 임독맥이 떼어졌는데 수양공부로 선천의 氣가 다시 흐르도록 하였다는 뜻이며,
수양공부의 도리를 解悟하거나 眞을 해석하는 과정을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나는 사마상여(司馬相如,기원전179-118)의 『자허부(子虛賦)』를 읽으면서,
사마상여에게 날아가듯이 찾아가 흠모합니다.
푸른 소를 타고 가서, 서왕모의 금 부스러기 나오는 샘물로 밥 지어 천년을 살고 싶습니다.
지극한 도(道)를 어찌 헛되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인연이 얕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없이 발원해야하고 한없는 공덕을 쌓아서 인연이 성숙해야지요.)
곤륜산 꼭대기 요지(瑤池)의 모임에 참가하여, 도교 경전을 전해받기를 바랍니다.
徐禎卿,「寄題瀘州韓道人霞外山居」,『迪功集』,卷四:
霞嶺新刋處,由來古洞天。仙人煉金液,蛻此百餘年。
其事竟莫述,丹書空秘玄。忽有飛霞子,誅茅臥紫煙。
虛府澄物滓,靈根歸自然。蒼龍守神室,白虎伏階前。
遊心碧海外,高詠閬風巔。孤流振往泒,絶理悟眞詮。
余讀相如賦,飄飄竊慕焉。欲跨青牛去,思飡金屑泉。
至道豈虛想,銘心非薄縁。瑤池應有會,瓊笈願相傳。
明、項篤壽撰,『今獻備遺』,卷四十二,「徐禎卿」:
徐禎卿,字昌穀,吳人也。善屬文,弱冠作『談藝録』,以究詩體之變,斷自漢魏而止。舉進士,與北地李夢陽遊,李方以文雄海內,見禎卿所為文,異之,特相友善,人稱徐李。
作書與李夢陽論文,載集中。初,授大理寺副,非其好也,上書乞改國子監博士。好飬生,習攝形化氣之術,久之,病死京師。所著文集六卷,談藝録一卷,新倩集一卷,其文純雅,出入漢魏間,曹﹑陸弗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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