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집 문집 제5권 / 부(賦)
남정부 병서〔南征賦 幷敍〕 예전에 동정(東征), 서정(西征), 북정(北征) 등의 부(賦)는 있었지만 남정부(南征賦)는 없었으니, 어쩌면 나를 기다린 것인가.
내가 갑자년(1624, 인조2)에 능력도 없으면서 영남 관찰사가 되어 각 고을의 풍속을 모두 살펴보고, 그 지역의 풍토(風土)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을 가상하게 여겼다. 선비들은 모두 겸양(謙讓)의 태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 고을에 현달한 선배들이 있는지 물어보니, 또한 세상에 이름난 대가(大家)들이 많았다. 오현(五賢) 선생이 동방의 해와 달이 되어 몽매한 후학들을 깨우쳐 주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마다 뛰어난 선비들이 있음을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흔쾌히 아로새기고 있었으니, 이들이 선배들에게서 본받은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지역에는 또한 시의 재료가 될 만한 유적과 기록이 매우 많았다. 산천(山川)과 영악(嶺嶽)의 뛰어난 경치는 맑고 그윽하며 툭 트이고 멀리까지 뻗어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성정(性情)을 도야(陶冶)시킬 만하였다. 푸른 바다에 가서 일출을 보는 데 이르러서는 사마장경(司馬長卿)이 〈자허부(子虛賦)〉에서 펼쳐낸 자랑거리는 하루아침에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서둘러 창과 벽 사이에 종이와 붓을 마련하여 좌태충(左太沖)의 성대한 일을 모방하여 영남 지방을 드러내려고 하였으나, 공무는 바쁘고 재주는 모자라 세월만 보내며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지금 다행히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공무의 여가에 지난 시절 지나가면서 눈으로 보고 기억했던 것들을 차례로 엮어서 자문에 대비한다. 그러나 대부의 능사(能事)가 아닌 것을 가지고 장부(壯夫)의 경계를 어겼으니, 집안사람이 장독 덮개로 쓰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훌륭한 성인이 큰 공덕을 창조하여 / 粤玄聖之洪造兮
동방에 자리 잡아 나라 열고 / 跨震維而啓疆
자손들 널리 퍼지니 / 胤柯條之布濩兮
거룩하게 선원에서 흘러나왔네 / 皇導流于璿潢
세대가 멀수록 점차 빛나더니 / 世逾遠而寖光兮
사마에 이르러 크게 드러나고 / 逮司馬以龍驤
아름다운 명성을 길이 이어 / 懿烈聞之永嗣兮
옥 같이 맑은 덕 밝게 드날렸네 / 輝玉潔而明揚
선대가 쌓은 음덕으로 하늘이 복을 주어 / 載世德而錫羨兮
내가 명을 받아 상서로움 이었네 / 台受命以襲祥
북두성 자루가 맹추를 가리킬 때 / 魁杓紀乎孟陬兮
어머니 꿈을 꾸시고 아버지 점을 치시니 / 妣發夢而考貞
구고의 신령스러운 새가 / 曰九皐之靈禽兮
귀한 집에 날아들어 난간에 머물고 / 萃丹戺而稽衡
계수나무가 곱게 꽃 피우고 / 桂樹婀娜以敷榮兮
구름이 뭉게뭉게 휘장에 내렸다네 / 雲霏霏而承幄
내가 이미 이처럼 좋은 조짐을 크게 받고 / 余旣弘此俶曜兮
거기다가 꽃다운 은혜까지 거듭 더해졌으니 / 又重之以芳澤
형악에서 야광주를 캐낸 것이 / 掇夜光於荊岳兮
황하에서 구슬을 일어 낸 듯하였지 / 淘玉英於河源
여러 향초 섞어 성대한 예복 지었으니 / 雜群芳以袨服兮
어찌 오직 초나라의 난초 뿐이겠는가 / 豈惟楚國之蘭蓀
풍운에 의지하여 높이 일어서니 / 託風雲而高擧兮
봄볕이 아직 저물지 않았을 때였고 / 及春陽之未暮
금마문에 들어와 관적에 이름 올리니 / 入金馬而通籍兮
용문에 올라 발걸음 당당하였지 / 趿龍門以布武
어찌 짙은 구름이 / 何蓊浡之浮雲兮
밝은 해를 가리는가 / 掩白日之昭昭
임금의 총명하지 못함 한하노니 / 恨靈脩之不聰兮
오직 당인의 말만 따랐지 / 惟黨人之是要
단구의 어린 봉황도 / 鳳凰丹丘之弱羽兮
멀리 가기 위해 힘을 기를 줄 아는데 / 亦知夫遠逝而增厲
하물며 고요하고 종요로운 현사가 / 況賢士之靜約兮
무턱대고 행동하여 거듭 가려지게 하겠는가 / 可冥行而重蔽
궁액을 만나매 수행을 좋아하였으니 / 謇處阨而好脩兮
장차 화평함으로 세상 마치려 하였지 / 將以愉乎畢世
단정한 무명옷 걸치고 / 披毛褐之襜襜兮
기다란 호승을 매고서 / 綰胡繩之纚纚
남겨진 좋은 글 보며 세월 보내니 / 玩遺寶以愒日兮
하류에서 지내며 끝내 자취 감추려 했지 / 汩下流而終翳
큰 걱정거리가 진실로 오래가지 않았으니 / 固殷憂之不長兮
하늘의 뜻 정해지면 사람을 이기지 / 天有定而勝人
용이 노니는 것에 응하여 때를 만나고 / 應龍游以逢時兮
갈단새 울어 새벽을 얻었네 / 鶡鴠鳴而得晨
저 귀뚜라미 같은 미물도 / 彼蟋蟀之微品兮
시절에 맞춰 울 것을 생각하나니 / 思應候而振股
진흙길에서 더러워진 높은 관을 빨고 / 濯泥塗之軒冕兮
조정에 등용된 유생들 반열에 참여하였지 / 廁揚庭之章甫
반딧불과 촛불의 작은 빛까지도 거두어들이니 / 收螢燭之炯爝兮
대명의 끝자락 빛을 받았네 / 承大明之末照
그러나 능력 부족하여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하니 / 然襪線之莫補兮
변방에 나아가 충성 바치고자 하였건만 / 願乘邊而自效
사나운 알유를 만나고도 / 値猰㺠之頟頟兮
내가 그 뿔을 부러뜨리지 못했네 / 余未能乎折角
임금이 치욕 당하면 신하가 죽어야 한다 하니 / 蓋聞主辱而臣死兮
이 의리 따라 고난의 삶 살려 했는데 / 循此義以震剝
어이할까 넉넉한 은혜로 / 何惠風之優渥兮
도리어 허물 있는 죄인을 높이고 총애해 주셨네 / 反崇尤而寵罪
빛나는 인장과 인끈 차고 / 襲金朱之煌煌兮
펄럭이는 깃발 세우고서 / 設旂常之旆旆
옥 부절 잡고 지방 살피러 가니 / 秉玉節而省方兮
혁거세가 다스리던 지역이네 / 于赫居之四履
도성 나와 한강 건널 때 / 出國門而濟漢兮
신령스러운 산 바라보며 눈물 훔치고 / 望神嶽以掩涕
엄숙하고 위엄 있는 대궐 떠올리니 / 想宸居之肅穆兮
눈에 눈물 글썽이며 시선 머무네 / 目瀏瀏而凝睇
마음은 간절하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 魂營營以思返兮
백 리 길 가면서 수없이 마음 날아가는데 / 行百里而九逝
화려한 도성 등지고 / 背黃圖之赫戲兮
날마다 달려 지방으로 떠나가네 / 日駸駸而遙裔
치렁치렁한 고삐를 잡고 달려 / 攬余轡之瀰瀰兮
충주에 이르러 멈추고 / 戾中原而言稅
드디어 수레로 달천에 이르러 / 遂漸車於達川兮
화살 흔들어 원혼 부르노라 / 欸復矢之冤魄
장군의 군세는 약하고 적들은 강하여 / 將軍氣寡而敵彊兮
한 번 패배에 수많은 군사 죽었네 / 擠萬師於一覆
골짜기를 헤치고 올라 / 排雙峽以上襄兮
높고 높은 조령을 바라보니 / 𥇕鳥嶺之嶷嶷
산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아 / 山峻高以造天兮
남과 북을 나누어 경계 지었네 / 區北南而作閾
우거진 숲 아득히 하늘을 가리고 / 穹林窅而蔽虧兮
길은 구불구불 험하게 막혔도다 / 路倭遲以阻折
말은 지쳐 움츠린 채 전진하지 못하고 / 驂連蜷以不進兮
일행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비틀거리네 / 班迭睢而膠葛
주흘산이 우뚝 정상 드러내니 / 主屹㠂以表顚兮
멀리서 바라보고 제사하는 곳이라네 / 云望祀之攸秩
큰 시내를 따라 왼쪽으로 돌자 / 順洪流而左轉兮
비탈진 산골 마을 보이는데 / 睨巖邑之斜界
진실로 남방의 부드러운 기풍 강하니 / 固風氣之南强兮
백성의 풍속 살펴보고 속으로 옳다 여기네 / 考民俗而內契
노나라 사람처럼 느긋하고 자질 순박하여 / 魯人皐而材朴兮
매미처럼 부드럽고 표범처럼 빛나네 / 而蟬緩以豹炳
마름을 캐서 귀신에게 올리니 / 採蘋藻而羞神兮
장차 꽃과 이삭도 바치리 / 將以薦夫苕穎
개미가 봄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 觀玄駒之春步兮
교화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겠네 / 知不可以後化
함지를 따라 가다가 쉬나니 / 遵咸池而流憩兮
멀리 떠나온 회포를 긴 밤에 부치네 / 寄遠懷於長夜
문창에 들어서니 매우 피곤하고 / 入文昌而洪悴兮
험한 산골에 들어서니 위엄이 서질 않네 / 矢危邦以權挫
상주의 선비들 마음껏 유람하니 / 商山士之游肆兮
낙동강이 그 빼어난 모습 드러내고 / 洛水泄其英爽
향교들 날개 펼친 듯 거듭거듭 늘어섰고 / 儒宮翼以疊楹兮
유생들 겸양 익힌 모습이네 / 逢掖都其習讓
중모가 화령과 이어져 있으니 / 中牟接乎化寧兮
노 재상의 유풍 본받네 / 挹餘瀾於盧相
금오산이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았으니 / 金烏嶻其拔峙兮
손바닥으로 높이 받들어 신령함 드러낸 듯하네 / 高掌標其靈異
지주석에 올라 옛일 회상하노니 / 登砥柱以顧懷兮
유풍 소급해 떠올리자 눈물 흐르네 / 遡流風而悵泗
길재는 관지를 깎아 벼슬살이 부끄럽게 여겼고 / 冶削款以祿恥兮
김주는 강가에 임해 말고삐 돌렸지 / 澍臨江而回轡
위지는 목 잘려 명예 온전하게 했으니 / 緯地捐脰而完名兮
옛 임금 위해 죽어서 의리 지켰도다 / 殉故君以爲義
긴 봄날의 고사리를 읊으니 / 詠薇蕨之長春兮
백이숙제와 나란하다 한들 어찌 부끄러울까 / 儷首陽而奚愧
종직이 훌륭한 글솜씨로 명문 지어 / 宗直之炫藻以昌辭兮
백대에 명성 높이 드날렸지 / 振百代而駝翔
문장으로 말미암아 매서운 재앙 만났으니 / 由文靡以禍烈兮
뼈는 문드러졌어도 이름은 날로 드러났네 / 骨雖糜而名日彰
나의 배를 강가에 대고 / 絏余榜於江滸兮
산모퉁이로 내 말을 타고 가네 / 步余馬於山郛
금호강 건너 더욱 멀리 가서 / 涉琴湖而逾邁兮
달성의 높은 언덕에 올랐어라 / 升達城之高丘
성과 해자에 무성한 잡목 둘렀고 / 臺隍繞以灌莽兮
강물은 구불구불 흘러가네 / 焉乃逝而樛流
고아한 명성 울리던 서사원이 조적을 대신하여 / 徐鳴雅以代逖兮
갓 벗고 투구 썼네 / 蟬冕化爲兜䥐
임고서원에 경건히 배알하고 초상 바라보니 / 款臨皐而瞻像兮
흐르는 눈물이 내 옷깃을 흠뻑 적시네 / 霑余襟之淋浪
생각건대 성철한 인물이 세상에 태어나 / 夫惟聖哲之載誕兮
어찌하여 좋지 못한 때를 만났는가 / 何遭時之不昌
하늘이 이미 고려의 명을 거두고서 / 皇天旣訖夫麗命兮
어찌 이처럼 충정한 분을 내리셨나 / 曷又畀此忠貞
옥산서원에서 내 옷자락 잡아 올리고 / 攝余齊於玉山兮
유적 어루만지며 회상하네 / 撫遺塵而抽思
충과 신을 행하고 도덕 지켰으니 / 服忠信而秉迪兮
어찌 간사한 자들이 달가워했을까 / 胡不悅於奸回
그러므로 몸을 숨겨 도를 닦으며 / 故約身以董道兮
후진 가르쳐 도가 행해지기를 기약했네 / 詔來世而爲期
장군의 무덤을 살펴보니 / 略將軍之象冢兮
시림이 시들었구나 / 睋始林之黃落
옛날 세 성씨가 나라 다스릴 때부터 / 昔三姓以官國兮
법도를 쓰지 않음이 없었네 / 靡不用夫矩矱
뛰어난 인재 뽑아 나라 세우고 / 擢才傑以造邦兮
지혜와 용기 있는 이에게 맡겨 바로잡았네 / 任智勇而匡略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여 국운을 여니 / 統麗濟以開運兮
공명이 드러나고 국토 넓어졌네 / 功名著而境拓
문무의 위엄 갖추고 국운은 융성했는데 / 文武儼而祚隆兮
암탉이 새벽에 울어 나라 위태롭게 했지 / 牝鷄晨以邦削
누가 거센 물결과 같은 혼란한 시대 구제하랴 / 孰亂流之可濟兮
끝내 은나라 선비가 주나라의 객이 되었네 / 終殷士以周客
쑥 무더기가 겹겹이 무덤 두르고 / 蓬顆纍以匝壟兮
왕릉이 무너진 성곽에 줄지어 있네 / 互陵峛迤於殘郭
짐승들이 달려다니며 무리 짓고 / 獸走壙而逸群兮
올빼미가 떼 지어 날아와 엿보네 / 鴟鴞接翼以窺薄
최치원은 중국에 가서 배우고 / 崔阿飡之北學兮
설총은 충직하며 박식하였지 / 薛弘儒之謇博
화랑은 도의로 강마하고 / 郞徒輔以道義兮
열사는 임전무퇴 힘썼네 / 烈士勉以死敵
저 천 년의 벼슬아치들 / 彼千載之簪纓兮
모두가 한 언덕에 모인 담비와 같구나 / 咸一丘之聚貉
월성에서 〈맥수가〉를 부르는데 / 賦麥秀於月城兮
높이 솟은 누각에 구름이 흘러가네 / 緬亘雲之飛閣
긴 서까래의 화려한 단청 퇴색되었으니 / 廕脩榱之文雘兮
굽은 연못에서 잔을 비운 일 거울삼네 / 鏡曲池而寫爵
비단 짜서 무늬 이루고 / 織繢錦以成文兮
〈회소곡〉 부르며 유쾌하게 놀았지 / 理會蘇而縱謔
화려한 자취 안개 사라지듯 아득히 사라져 / 英華藐其霧歇兮
거센 파도에 뒤섞여 까마득히 멀어졌네 / 混驚波而冥莫
순박한 풍속 멀어져 보존을 생각해야 하는데 / 唐風遠而思存兮
오직 마을마다 방아타령만 울리네 / 唯萬井之碓樂
첨성대에 올라 하늘에 묻노니 / 陟星臺而天問兮
아득한 화표주에 학 돌아왔네 / 杳華表之歸鶴
황당한 이야기를 왕조의 자취에 부치나니 / 齊諧寓於龍跡兮
경계의 거울 포석정에 남아 있네 / 殷鑑存於鮑石
가시나무 떨기 사이로 유허 살펴보니 / 披遺墟於叢棘兮
민가보다 절간이 더 많구나 / 僧舍多於民屋
사람의 노력 홀시하고 자랑 일삼아 / 忽人功而務夸兮
그 종묘사직 망했네 / 于爾祀之顚覆
징험할 문헌 없음에 상심하며 / 傷文獻之靡徵兮
내 장차 남울산으로 가려 하네 / 吾將往乎南蔚
무기고에 번쩍이는 병기 살펴보고 / 閱武庫之霜電兮
산을 둘러싼 성가퀴 더듬어 보네 / 撫夷堞之嬰岪
애오라지 높은 바위에서 검에 기대니 / 聊倚劍於穹石兮
침울한 원숭이 울음소리 애통하네 / 痛猿蟲之沈鬱
굽은 물가 따라 배 띄우고 / 遵枉渚而方舟兮
사원의 경치 구경하네 / 候沙苑之雲物
듣자니 봉래산 매우 가깝다기에 / 聞蓬萊之孔邇兮
수레 타고 달려갔더니 / 偃輕蓋而載馳
훼복 걸친 이들 오가니 / 迺卉服之交會兮
어찌 신선들이 기약한 바이겠는가 / 豈靈眞之所期
유배객이 전하는 거문고 노래에 원망 남았고 / 遷客傳琴而留怨兮
충신은 의리 실천해 소신 굽히지 않았네 / 忠臣蹈義以不回
동쪽 문이 상수 물가에 임해 있고 / 靑門枕乎湘澤兮
활대가 강회에 맞닿아 있네 / 滑臺連乎江淮
임금의 도량 가없이 넓은 줄을 알겠으니 / 識王度之無外兮
원수에 대한 원한 풀고 편안히 오게 하네 / 姑釋讎而綏來
수군 진영을 펼쳐 무비 갖추고 / 橫水陣而詰戎兮
삼대를 잘 살펴 뛰어난 인재 선발하네 / 徧三臺以選奇
일렁이는 파도 너머에서 해 나오니 / 雲濤蕩而出日兮
동남을 기다림은 언제던가 / 待童男以何時
수많은 골짝의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걸 보고 / 瞰萬壑之朝宗兮
하늘과 땅의 높고 낮음을 알겠네 / 辨二儀之尊卑
치령에서 망부석 우러르고 / 仰貞石於鴟嶺兮
구포에서 북극성 맞이하네 / 邀罡始於龜浦
수로왕은 저녁에 하늘에서 내려오고 / 首露紛其夕降兮
허 황후를 풍사와 우사가 따랐네 / 從元妃以風雨
구름 수레 기다리지만 오지 않으니 / 望雲輧而不來兮
장차 가까워질까 했는데 멀리 떠났네 / 將若近以遠擧
지난 일을 설홍에서 징험하려 / 徵往事於雪鴻兮
전쟁터에서 이리저리 거니네 / 憑戰地而容與
봄 숲에 깃든 제비 서글프니 / 悲春林之巢燕兮
차마 같은 하늘 이고 살겠는가 / 忍戴天以終古
높다란 영남루에 누워 / 臥南樓之百尺兮
이어진 들판 굽어보네 / 俯莽蒼之相接
갈바람이 갑자기 새벽에 매서워져 / 秋風忽以晨厲兮
차가운 교외의 낙엽을 쓸어가네 / 卷寒郊之零葉
필옹이 문예를 닦을 때 / 當畢翁之游藝兮
김일손도 청도에서 분발했지 / 馹亦奮於淸邑
그 글을 꾸며 재앙 불렀으니 / 脩厥辭而招殃兮
간사한 무리의 공격에 걸렸네 / 罹淫昏之噂沓
문장이란 해서는 안 되는 것 / 文章不可爲兮
빛이 드러나기도 전에 재앙의 불꽃 닥쳐오네 / 光未顯而焰及
한훤당은 홑옷 걸치고 질박하였는데 / 寒暄之尙絅而衷質兮
어찌 기이하고 꽃다운 이를 함께 태웠던가 / 胡異芳以竝爇
초나라 늙은이가 남긴 글을 엮어 / 綴楚老之遺辭兮
사당 열고 경건히 배알하였도다 / 啓儒祠而虔謁
한 여름 멋진 배 타고 / 倚火王之麗譙兮
정암나루로 배 저어가게 하였네 / 指鼎津而命棹
회산은 마음의 상처 많았던 곳이라 / 檜山秀其情刃兮
군부가 지휘부를 옮겼네 / 軍府移其牙纛
둔영이 합포를 바라보고 있으니 / 屯營臨乎合浦兮
일찍이 물길 익혀 적을 물리쳤네 / 曾習流而九伐
황금 부절을 연삭에서 받아 / 分金符於燕朔兮
옥장 받들어 왜놈과 싸웠지 / 奉玉帳以戎羯
안타깝다 나루 잃은 전함들 / 慨迷津之鬪艦兮
신기루 따라 모두 사라졌지 / 隨蜃氣而共滅
외로운 구름은 멀리 바다로 떠가고 / 孤雲遠以海廓兮
오래된 누대에 차가운 달만 남았어라 / 留古臺之寒月
진양은 울타리 튼튼하니 / 晉陽雄其保障兮
도회지 이루어 백성들 많아라 / 都會繁其民物
여러 강씨들 중국에까지 명성 떨쳤고 / 諸姜振乎上國兮
조식이 풍절 닦았지 / 曺氏厲其風節
풍속은 부침을 반복하여 세상 변하니 / 俗升降以世變兮
선비들이 눈 부릅뜨고 어려움을 말했네 / 士瞋目而語難
지초와 난초는 물리쳐 곁에 두지 않고 / 却芝蘭而不御兮
사나운 매만 나오게 하였지 / 進鷹隼之䎒䎒
정화수를 서사에 떠놓고 / 酌明水於西祠兮
세 영혼 부르며 우두커니 서서 맞이하였네 / 招三魂而延佇
띠를 두르고 아홉 번 물리쳤건만 / 旣嬰帶以九却兮
사람은 죽고 일은 지나갔구나 / 人之亡而事去
촉석루에 눈물 남겼으니 / 血遺咀於矗石兮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귀신도 성내는 듯 / 天陰陰而鬼怒
세월은 가고 왕사의 노정 다급하니 / 日月徂而王程迫兮
산천은 아름다우나 돌아갈 생각 급하네 / 山川美以歸意速
수레에 올라 급하게 내달려 / 騰玉軑以橫騖兮
사수 지나며 쉬지 못했네 / 過泗水而不息
철성 남쪽 바닷가 바라보니 / 睹鐵城之南陼兮
통제영에는 영루가 많구나 / 夥統制之營壁
즐비한 배들을 통제하고 / 御樓船之鱗櫛兮
창과 갑옷 소리 울리는 군사들 살펴보네 / 按戈甲之戛札
깃발 걸자 하늘까지 선명하게 비추고 / 旌旗揭而燭雲兮
종과 북이 우렁차게 울리네 / 金鼓塡以鍧喝
파도신과 바다신도 함께 나아가고 / 陽侯海若竝出進兮
거북과 악어가 나란히 달리며 호위하네 / 龜鼉騈以奔衛
사람이 군대 규율 도모해 장점 잃지 않는다면 / 人謀師律不失其臧兮
사실상 동남 지방의 방패로다 / 實東南之扞蔽
원 절사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군사를 버렸고 / 元節使持成以棄師兮
이 장군은 패잔병 거느리고 개가를 올렸네 / 李將軍因敗而奏凱
우자와 지자가 달리 이용한 것을 헤아려 보니 / 忖愚智之異用兮
승전과 패전의 원인이 그에 달렸네 / 諒勝敗之攸在
소용돌이치는 물을 지나 곧장 건너며 / 淹回水而徑渡兮
여기저기 늘어선 많은 진들 순시하네 / 巡列鎭之布絡
배가 출렁이며 빠르게 나아가 / 帆低昂以飃逝兮
노량에 배를 대고 정박하네 / 艤露梁而西泊
드디어 하동으로 배를 몰아 / 遂揚舲於河東兮
횡포를 거슬러 올라가네 / 溯橫浦而上下
상국의 옛 마을 찾아오니 / 歷相國之故里兮
뛰어난 인재가 멀리 감을 알겠네 / 認長才之遠駕
어찌 공훈을 세우지 못했으랴 / 豈勳名之不立兮
새로운 교화에 풍미하였으리 / 而茅靡於新化
섬진강에 차갑게 저녁 파도 일렁이고 / 蟾江冷以夕波兮
악양산은 그윽하게 가을 경치 맑구나 / 岳陽窈而秋霽
쌍계의 푸른 물줄기 휘돌아가는데 / 雙溪轉其碧流兮
석문으로 들어가 쉬노라 / 石門開而遊憩
저 멀리 절간에서 저녁 풍경소리 들려오고 / 招提遠以暮磬兮
절 누각이 우뚝 솟아 아련히 보이네 / 寺樓騫而迢遞
용머리는 불탑에 아로새겨졌고 / 螭頭軼於雁塔兮
멋진 글씨가 벽려 사이에서 빛나네 / 金薤映於薜茘
맑은 바람 불어와 향기로운 눈 날리는데 / 淸風颯以蘭雪兮
푸른 학은 언제나 돌아오려는가 / 靑鶴返而幾歲
신선은 떠나가고 골짝은 폐쇄되니 / 仙人去而洞閉兮
원숭이와 새만 계수나무 숲에서 슬피 우네 / 猿鳥怨以叢桂
매화나무에서 묵은 가지 잘라내며 / 剔荒椔於梅楂兮
학사의 풍류 흠모하네 / 欽學士之風流
단성에서 이 마을에 대해 물으니 / 諏邑里於丹城兮
갈홍이 찾던 곳 아니구나 / 非葛洪之所求
반갑구나 산음의 정자 / 悅山陰之亭宇兮
같은 이름에서 고사 전하네 / 傳故事於仿像
강좌에 아득한 상상 펼치며 / 起遐想於江左兮
좁은 땅에서 보잘것없는 감회를 부치네 / 寓微感於偏壤
팔수를 건너 북쪽으로 올라가 / 亂八水而北上兮
홍류동 찾아가네 / 叩紅流之巖洞
산사가 아름답고 웅장하게 서 있는데 / 琳宮嵬瑋而傑構兮
일주문이 날듯이 높이 솟았네 / 一柱騫飛而高聳
긴 행랑이 검푸르게 골짝을 가득 차지했는데 / 脩廊黝以彌壑兮
넘쳐나는 불경이 건물에 가득하네 / 溢梵籍而充棟
복정에서 우인 만나니 / 仍羽人於福庭兮
느긋하게 오가며 지내는구나 / 得棲遲之𣶂躅
생각건대 세상에는 풍진 가득하니 / 想四海之風塵兮
군자가 달아나 빈 골짝에서 살며 / 君子遯而空谷
구름과 노을에 의탁해 해로움 멀리 피하니 / 托雲霞而遠害兮
대개 말세의 모습이지 / 蓋末路之物色
세대가 내려올수록 날로 편협해지니 / 世逾下而日狹兮
이런 사람들 생각하며 크게 한숨짓네 / 懷若人以太息
함양에서 일두를 조상하고 / 弔一蠹於咸陽兮
서원 바라보며 떠나지 못하네 / 瞻棟宇而不能去
어진 사람이 무슨 죄로 죽임 당했던가 / 賢何辜而葅醢兮
하늘에는 먹구름만 짙게 얽혀 있네 / 天霮䨴以回互
문효공의 정려에 예를 갖추며 / 軾文孝之棹楔兮
옥계의 빛나는 행적을 떠올리네 / 攬玉溪之光漪
몸과 명예 모두 온당함을 찬미하며 / 美身名之俱泰兮
옛 철인이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슬퍼하네 / 悼曩哲之不時
가벼운 걸음으로 용유동 지나 / 散輕策於龍游兮
얼음과 눈 덮인 중봉을 오르네 / 犯中峯之氷雪
안개 헤치며 천왕봉에 올라 / 排天王之沆瀣兮
깎아지른 듯 높은 성단에 앉았네 / 踞星壇之嶄絶
팔방의 형세 바라보니 / 覽八荒之體勢兮
천지는 티끌이 쌓여 만들어졌구나 / 天地由其芥滯
아홉 고을이 겹겹 산중에 펼쳐 있고 / 九郡隱見於襞積兮
강물이 띠처럼 가로질러 흘러가네 / 江海橫流以襟帶
향적의 바람과 이슬 속에 머물며 / 棲香積之風露兮
신선을 만날까 내심 바랐건만 / 冀靈仙之可遌
무당들이 난잡한 제사 좋아하니 / 而巫習之好淫兮
또 어찌 오래 머물랴 / 又何可以久住
유서 깊은 거타 고을 지나 / 越居陀之古縣兮
안음에 이르러 수레를 멈췄네 / 抵安陰而輟軛
산은 가파르게 높고 냇물은 빠르니 / 山㠑嵬而流駛兮
그 사람의 강직함과 닮았구나 / 像夫人之伉直
권빈에서 수레 멈추니 / 留征牽於勸賓兮
용담의 풍토도 아름답구나 / 嘉涌潭之風壤
금천에서 늦도록 술 마신 몸 부축 받아 / 扶金泉之晩醉兮
약목을 돌아 더 멀리 가네 / 轉若木而彌往
구불구불한 옛길 더듬어 / 尋羊腸之舊路兮
한강의 큰 절의 그리나니 / 尙寒岡之姱節
소장 올려 대궐문에 부르짖어 / 抗尺疏而叫閽兮
끊어진 줄을 한 가닥 머리칼로 이었지 / 係絶綢以絲髮
어두운 거리에 일월처럼 밝게 걸렸으니 / 揭日月於昏衢兮
아아 의리 밝혀 선철 따랐어라 / 嗟明誼以迪哲
물가 따라 여정 바꿔 / 循河濱而改轍兮
효령에서 훌륭한 인물 찾아보네 / 採嘉名於孝靈
다인을 물어서 살고자 하니 / 詢多仁而願處兮
비옥에 살며 표창 받을 것 생각하네 / 舍比屋以思封
영화로운 이름 늙을 때까지 지킨 사람 / 保榮名於臷艾兮
오직 제명대로 살다 간 약포라네 / 唯藥圃之令終
예천에서 원화의 기운 마시고 / 飮元化於醴泉兮
문소에서 봉황이 춤추기를 기다리네 / 佇鳳儀於聞韶
얼음이 바람구멍에 맺히니 / 玄陰結於風隧兮
어찌 불볕더위인들 녹일 수 있으랴 / 豈朱炎以可消
높은 누대는 불타 사라지고 / 高樓蕩以灰燼兮
귀신의 노래 야담으로 기록되었네 / 紀野譚於鬼謠
사방이 산인데 북쪽 더 높아 / 山環衛而北起兮
냇물이 천천히 남쪽으로 흘러가네 / 水維緩以南注
거마가 자주 왕래하는 길을 따라가니 / 控一路之綰轂兮
안동의 풍수 빼어나구나 / 壯安東之龍虎
태사가 조짐을 밝게 알아 / 太師之炳幾兮
혼란한 군주 물리치고 참 임금 도와 / 襄僭亂而翊眞主
백성들이 재앙에서 벗어났으니 / 生靈旣脫於水火兮
봉토에 경사 넘치는 것이 마땅하네 / 宜慶流於胙土
어지러운 고려 말에 이르러 / 迄麗季之搶攘兮
현릉이 오랑캐에게 곤란 겪었는데 / 玄陵窘於草莽
백성들이 정선을 공손히 하여 / 士女虔其征繕兮
맑게 머물렀다가 왕의 거처로 돌아갔지 / 淸蹕返其王度
산하를 믿고 망할 짓을 좋아했다면 / 顧山河而娛亡兮
어찌 시를 지어 오랑캐 물리치랴 / 焉賦詩以却虜
인문이 매우 밝으니 / 相人文之競爽兮
성대하게 많은 인재들 태어났네 / 鬱群才之鍾聚
마을 노래에 현가가 섞였으며 / 絃歌雜乎里詠兮
학교가 관아에 이어져 있네 / 庠序聯乎廨宇
옛날 요순이 서로 이어 제위에 올랐어도 / 昔勛華之繼陟兮
하늘이 무서운 위세로 노여움 나타냈지 / 天疾威以僤怒
충정공 아니면 매서운 위세 맞서지 못하는데 / 微忠定不攝於霆擊兮
세상이 경시할까 나는 두렵네 / 吾恐擧世以纖趨
혼탁한 시대를 만나 귀양 가니 / 遭紛濁而遷謫兮
몸은 망가졌어도 의리 얻었네 / 謇身疚以義取
농암은 물러나 풍속을 바로잡고 / 聾巖退以厲俗兮
학봉은 그 의표 드높았지 / 鶴峯峻其標擧
낙동강의 서애를 바라보며 / 望河水之西厓兮
중흥시킨 어진 재상 생각하네 / 憶中興之哲輔
혼란한 세상에서 국운 안정시켜 / 恢天步於板蕩兮
우리나라의 풍우를 씻어냈네 / 洗一方之風雨
국난 극복에 뛰어난 계책 펼쳤으니 / 縻長策於拯濟兮
백성들 지금도 노래하고 춤추네 / 民到今而歌舞
태상시에서 업적 살폈으니 / 稽成績於太常兮
참된 선비의 공로 볼 수 있네 / 見眞儒之功敍
청부는 험한 산골에 자리하여 / 靑鳧介乎巖阻兮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네 / 周防繚以屴崱
사록의 그윽한 아름다움 경사스러우니 / 慶沙麓之陰休兮
두 번이나 임금 받드는 왕비 나셨네 / 再承乾而配極
영주의 유교 흡족하니 / 樂榮州之儒敎兮
학가산 넘어 드디어 가노라 / 踰鶴柯而遂徂
양양의 노인 비록 없어도 / 襄陽之耆舊雖亡兮
여남의 선현 속이지 않았으니 / 汝南之先賢不誣
집집마다 글을 외우고 강론하여 / 紛家誦而戶講兮
고을에 도포 입은 선비 많구나 / 盛邑子之襟裾
관할 지역 북쪽으로 소백산에서 끝나니 / 提封北盡乎小白兮
문성공 태어난 곳이지 / 乃文成之所興
후학들 교화시켜 선하게 하고 / 化蛾子以式穀兮
끊어진 학문 이어 넓힐 생각으로 / 紹絶學而思弘
시끄러운 세상에 홀로 외쳐서 / 發孤倡於群咻兮
불교가 흥성한 시대에 성인의 경전 내세웠네 / 揭聖經於佛乘
백록동 본떠 학문 연마하니 / 倣白鹿以藏修兮
주 선생 아니면 어찌 알았으랴 / 非周氏其焉徵
작은 고을에서 선현들 헤아려 보니 / 數前脩於十室兮
인접한 고을들 같은 풍조 이루어 좋구나 / 善比邑之同風
그러므로 선한 인재 키우는 데 근심 깊으니 / 故憂深於思善兮
어쩌면 이리도 척박한 땅에 인재가 많은가 / 何壤瘠而材豐
좨주는 도끼 아래 엎드려 간하였으니 / 祭酒伏斧以正諫兮
역린을 건드려 기휘를 드러내고 / 批逆鱗而明忌
《주역》을 안고 멀리 숨었으니 / 抱羲經以荒遯兮
신운은 막혔으나 도는 빛났네 / 羌身否而道賁
도산은 무이산과 닮았고 / 陶山像乎武夷兮
퇴계는 비유하자면 수사와 같구나 / 退溪比則洙泗
시서를 익히던 정신 어렴풋이나마 남아 / 詩書僾而尙存兮
그로 인해 예악이 실추되지 않았네 / 禮樂由之不墜
명성과 업적 광대해 후학 인도하였으니 / 聲猷廣以牖迪兮
전형이 아득히 멀어졌어도 풍의를 알 수 있네 / 典刑邈而風義
창랑의 물결에 씻고 뱃노래 부르며 / 濯滄浪以棹歌兮
월담을 따라가며 먼 옛날 생각하네 / 沿月潭而遐思
도는 한때에 드러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지만 / 道隱見於一時兮
사람들은 후세에 영향을 받았네 / 人後世以受賜
청량산 정상에 올라 / 登淸涼之絶頂兮
황지의 소재를 묻노라 / 問黃池之所在
절간에서 남긴 글 음미하나니 / 諷遺墨於禪莊兮
슬프다 옛사람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구나 / 悲古人之不待
군문은 고요하고 업무도 제쳐 두었는데 / 轅門靜而務屛兮
시절은 또 늦은 봄이라 / 時亦維其暮春
숲의 꽃은 향기롭고 새들은 지저귀며 / 林花馥而鳥嚶兮
들판은 아득히 평평하네 / 原隰敻以畇畇
마부 불러 채비하게 하니 / 召僕夫而俶裝兮
내가 장차 동해를 바라보리라 / 余將騁望乎東海
우뚝 솟은 관어대에 올라 보니 / 魚臺崷屼以上隮兮
큰 골짝이 쩍 갈라져 회오리 파도 일렁이네 / 巨壑呀而周滙
그 끝에 서서 저 멀리 바라보니 / 乘絶垠而游矚兮
하늘은 둥글게 탁 트여 있네 / 天形撱以開塏
드높은 청심각에 올라 / 升淸心之快閣兮
애오라지 나의 답답한 마음 풀어 보네 / 聊以抒吾怐愗
내연산 신성한 땅 거닐며 / 踐內延之神皐兮
노을 낀 길에서 오묘한 이치 궁구하네 / 窮幽眇於霞路
아홉 굽이 돌아가는 긴 강에 오니 / 臨長江之九曲兮
끊임없이 동쪽으로 흐르는 줄을 알겠구나 / 感東流之無已
두 마리 까마귀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 들었으니 / 聞雙烏之不返兮
해를 맞이했다는 옛 기록 살펴보네 / 摭迎日之古記
부상의 부드러운 가지 잡으려 / 攬扶桑之柔條兮
서쪽 물가의 절벽 위에 앉았네 / 據西涘之斷石
진나라 다리가 가까이에 있는 줄을 아노니 / 知秦橋之偪側兮
우이의 동쪽 경계 가깝네 / 狹嵎夷之東略
태양이 아른아른 모습 드러내더니 / 太陽杳杳以整駕兮
여섯 용이 고삐 매고 높이 오르자 / 六龍撰轡而高驤
희화가 채찍 멈추고 편안히 몰아가는데 / 羲和弭節以安驅兮
풍륭이 맴돌며 열렸다 가렸다 하네 / 豐隆離合而披纕
내가 여러 신들에게 수레 준비시켜 / 吾令衆神備御兮
하늘 가운데로 이끌게 하네 / 導以之於天中
구망에게 앞장서게 하고 / 命句芒而先路兮
열결에게 재빨리 끌게 하며 / 列缺奔以服箱
혜성을 잘라다가 깃발 만들고 / 屈彗星以爲旌兮
참창을 묶어 더 높이 날아오르네 / 繚攙搶而飛揚
둥둥 떠 있는 정기 속에 노니나니 / 游精氣之浮浮兮
금세 한 번 음이 되었다가 다시 양이 되네 / 倏一陰而一陽
누런 규룡이 뛰어올라 수레 옆에 맴돌고 / 黃虯躍以挾轂兮
난새가 오르락내리락 빙빙 나는구나 / 鸞鳥頡頏而回翔
고래가 물 뿜으며 구름 박차니 / 鯨鯢噴浪以蹴雲兮
물결 솟구치며 굉음 울리네 / 波水崩騰而雷硠
여섯 자라 떼어 내어 띄웠더니 / 劘六鼇以汎濫兮
내 뜻 알아 스스로 가는구나 / 按余志而自將
신들의 호위 받으며 올라가니 / 陪神衛以將上兮
천제는 고요하고 온화하면서도 영험함 드러내네 / 皇靚穆而揚靈
떠다니는 안개의 향기로운 옥액 마시고 / 吸游霧之芳液兮
옥녀의 경장도 마시네 / 嗽玉女之瓊漿
내 이윽고 혼탁하고 더러운 곳에서 벗어나 / 余旣蟬蛻於濁穢兮
죽지 않는 고장을 두루 유람하네 / 周覽乎不死之鄕
기수가 무성하게 물가 덮었고 / 琪樹蓁蓁以被涯兮
영지가 도방에 가득하네 / 靈芝旖旎乎都房
신선이 나를 맞이하여 더 멀리 가니 / 仙人邀余以增逝兮
어찌 영교와 봉방을 따질 필요 있으랴 / 焉問瀛嶠與蓬方
왕교가 내게 읍하며 사귀기를 청하고 / 王喬揖余以請交兮
안기생은 나를 대접하며 같이 노니네 / 安期儐余而相徉
바람을 타고 초탈하여 / 凌壒風以佚蕩兮
태을의 맑은 궁전에 나아가네 / 造太乙之淸宮
약목의 구슬 꽃을 꺾어 / 折若木之瑤華兮
저 동황에게 헌수하고 / 將以壽夫東皇
균천에 모여 음악 들으니 / 集鈞天以聆樂兮
마음 흥겨워지며 즐겁고 편안하네 / 心隆隆而樂康
양정의 심원함 엿보고 / 間陽精之沕穆兮
고요한 태초의 망망함 보았네 / 靚泰初之茫茫
만상보다 앞서 홀로 있었으니 / 超象先以獨存兮
가없는 홍몽의 처음이었네 / 極鴻濛之未央
고요히 무위로 하나를 지켜 / 湛無爲以守一兮
원화와 함께 그 장구함 같게 하리라 / 與元化而齊長
- [주-D001] 오현(五賢) 선생 :
-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을 가리킨다.
- [주-D002] 푸른 …… 버렸다 :
- 동해에서 본 일출의 장관이 비견될 것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는 말이다. 장경(長卿)은 전한(前漢)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이다. 〈자허부(子虛賦)〉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초나라 운몽택(雲夢澤)의 거대함과 풍물의 아름다움이 묘사되어 있다.
- [주-D003] 좌태충(左太沖)의 성대한 일 :
- 서진(西晉)의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던 것을 말한다. 태충은 좌사의 자이다. 좌사가 10년을 구상하여 지은 〈삼도부〉는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 [주-D004] 그러나 …… 것이다 :
- 글이나 지어 남기는 것이 높은 벼슬아치의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겸사이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권2 〈오자(吾子)〉에 어떤 사람이 “그대가 젊어서 부를 좋아하였는가.[吾子少而好賦]”라고 묻자, 양웅이 “그렇다. 동자 시절에 조충전각과 같은 일이었다.[然. 童子雕蟲篆刻.]”라고 하고, 잠시 뒤에 다시 “장부가 할 일이 아니다.[壯夫不爲也]”라고 말한 내용이 보인다. 부부(覆瓿)는 장독의 뚜껑인데, 유흠(劉歆)이 양웅의 《법언》을 보고 “나는 후대의 사람들이 장독을 덮는 데 쓰지나 않을까 염려된다.[吾恐後人用覆醬瓿也]”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87下 揚雄傳》
- [주-D005] 훌륭한 …… 열고 :
- 조선 태조(太祖)가 왕조를 창업했다는 말이다. 진유(震維)는 동방(東方)을 가리킨다. 《주역》 문왕 팔괘(文王八卦)에서 진괘(震卦)는 방위로 동쪽에 해당한다.
- [주-D006] 자손들 …… 흘러나왔네 :
- 조선 왕족의 후손이 널리 퍼졌다는 말이다. 이민구가 태종(太宗)과 효빈(孝嬪) 김씨(金氏) 사이에서 태어난 경녕군(敬寧君)의 후손으로, 전주 이씨(全州李氏)이기에 한 말이다.
- [주-D007] 세대가 …… 드러나고 :
- 이민구는 경녕군의 후손으로, 5대조는 모양군(牟陽君) 이직(李稙), 고조는 선사군(仙槎君) 이승손(李承孫), 증조는 하동군(河東君) 이유(李裕)이다. 그의 조부 이희검(李希儉)에 이르러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조부에 이르러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다.
- [주-D008] 북두성 …… 때 :
- 이민구가 태어난 때를 말하는 것이다. 맹추(孟陬)는 정월을 의미한다. 이민구는 1월 14일에 태어났다.
- [주-D009] 구고(九皐)의 신령스러운 새가 :
- 《시경》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 [주-D010] 내가 …… 더해졌으니 :
- 이민구의 어머니가 상서로운 태몽을 꾼 뒤에 이민구를 낳았고, 이민구가 태어난 뒤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말이다.
- [주-D011] 형악(荊岳)에서 …… 듯하였지 :
- 초(楚)나라 형산(荊山)에서 야광주(夜光珠)를 얻은 것이 황하에서 구슬을 일군 것과 같다는 말로, 덕성과 소질을 잘 닦았다는 뜻이다.
- [주-D012] 여러 …… 뿐이겠는가 :
-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기하를 마름질하여 저고리를 짓고, 부용을 모아서 치마를 짓네.[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라고 하였고, 또 “아침에는 모란의 이슬방울 받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 주워서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고결함보다 이민구 자신이 못하지 않다는 말이다.
- [주-D013] 풍운(風雲)에 …… 때였고 :
- 이민구가 일찍 출세했음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 [주-D014] 금마문(金馬門)에 …… 당당하였지 :
- 이민구가 관직에 나아갔다는 말이다. 금마문은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문으로, 인재들이 이 문에서 대기하다가 벼슬에 임명을 받는다는 고사가 있다.
- [주-D015] 임금의 …… 따랐지 :
- 광해군(光海君)의 혼란한 정치를 말한 것이다. 영수(靈脩)는 신명원견(神明遠見)의 덕을 지닌 사람이란 뜻으로, 군왕(君王)을 상징한다. 굴원이 〈이소(離騷)〉에서 초 회왕(楚懷王)을 가리켜 “영수의 걸걸함을 원망함이여, 끝내 사람의 마음 살펴주지 않는구나.[怨靈脩之造蕩兮, 終不察夫人心.]”라고 하였다.
- [주-D016] 단정한 …… 매고서 :
- 관직에서 물러난 이민구가 초야의 선비로서 지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모갈(毛褐)은 짐승의 털로 만든 옷이다. 호승(胡繩)은 향초의 이름인데,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계수나무를 들어 난초 꿰어 달고, 호승으로 노끈을 길게 꼬리라.[矯菌桂以紉蘭兮, 索胡繩之纚纚.]”라고 하였다.
- [주-D017] 남겨진 …… 했지 :
- 광해군의 혼란한 정치가 계속되므로, 초야에서 인생을 마치려 했다는 말이다.
- [주-D018] 큰 …… 이기지 :
- 광해군의 혼란한 정치가 오래가지 못하고, 하늘이 뜻을 정해서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성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또한 능히 사람을 깨뜨린다.[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라고 하였다. 뒤에 소식(蘇軾)이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또한 사람을 이긴다.[人衆者勝天, 天定亦勝人.]”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東坡全集 卷25 用前韻再和孫志擧》
- [주-D019] 용이 …… 얻었네 :
- 인조반정 뒤에 출사(出仕)하여 자신의 경륜(經綸)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는 말이다. 갈단(鶡鴠)은 새 이름이다. 《예기》 〈월령(月令)〉에 “갈단새가 울지 않는다.[鶡旦不鳴]”라고 했는데, 정현(鄭玄)의 주에 “갈단은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새이다.[鶡旦, 求旦之鳥也.]”라고 하였다.
- [주-D020] 진흙길에서 …… 참여하였지 :
- 초야에서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조정의 관리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장보(章甫)는 유생들이 쓰는 관이다.
- [주-D021] 반딧불과 …… 받았네 :
-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른 뒤에 인재를 널리 등용하므로, 이민구 자신처럼 능력이 없는 사람도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다는 겸사이다. 형촉(螢燭)은 반딧불과 촛불이라는 말로 미력(微力)을 뜻하는데, 자신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글에 “반딧불과 촛불은 하찮은 빛이지만, 해와 달에 광휘를 더하리이다.[螢燭末光, 增輝日月.]”라고 하였다. 《曹子建集 卷8 求自試表》 대명(大明)은 인재를 구하는 인조를 비유한 말이다.
- [주-D022] 그러나 …… 하였건만 :
- 이민구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지방으로 나아가 일하고자 하였다는 겸사인데, 여기서는 이괄(李适)의 난 때 도원수 장만(張晩)의 종사관(從事官)이 된 것을 말한 듯하다. 말선(襪綫)은 버선을 꿰맨 실이라는 말로, 재주가 부족한 것을 비유한다. 촉(蜀)의 한소(韓昭)는 거문고와 바둑과 글씨와 산수와 활쏘기와 법률을 모두 섭렵하였으나 정밀하지 못하였으므로, 이태하(李台瑕)가 말하기를 “한 팔좌의 재주는 버선 꿰맨 실을 끊어 놓은 것 같아서, 한 가닥도 긴 것이 없다.[韓八座技藝, 如拆襪線, 無一條長.]”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山堂肆考 卷47 才如襪線》
- [주-D023] 사나운 알유(猰㺠)를 만나고도 :
- 알유는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전설상의 맹수이다. 여기서는 이괄의 난을 가리킨다.
- [주-D024] 임금이 …… 주셨네 :
- 이괄의 난이 발생하여 인조가 공주까지 몽진하는 치욕을 겪었으므로 신하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도리어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는 은혜를 입었다는 말이다.
- [주-D025] 빛나는 …… 세우고서 :
- 관찰사의 행차를 읊은 것이다. 금주(金朱)는 금인주수(金印朱綬)의 준말로, 고대에 제후가 차던 황금 인장과 붉은 인끈이다. 여기서는 관찰사의 직책을 의미한다.
- [주-D026] 도성 …… 훔치고 :
- 한강을 건너면서 임금을 생각했다는 말이다. 신악(神嶽)은 대궐 뒤쪽의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주-D027] 마음은 …… 날아가는데 :
- 도성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구서(九逝)는 생각이 간절하여 마음이 그쪽으로 향해 가면서 불안한 모습을 말한다.
- [주-D028] 드디어 …… 부르노라 :
- 충주(忠州)에 가서 신립(申砬)의 군대가 패했던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전사한 장군의 혼을 부른다는 말이다. 달천(達川)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을 거쳐 충주시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탄금대(彈琴臺)를 지난다. 복시(復矢)는 화살을 내저으며 초혼(招魂)하는 것이다. 당(唐)나라 조군언(祖君彦)이 이밀(李密)을 위해 지은 〈위이밀이군현격(爲李密移郡縣檄)〉에 “대저 병기는 불과 같은 것이라서, 단속하지 않으면 자기 몸을 태우고 마는 것이다. …… 이에 복시하며 서로 돌아보고, 좌조하며 줄을 이루었으므로, 의부는 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장사는 화가 나서 팔짓을 하였다.[夫兵猶火也, 不戢將自焚. …… 復矢相顧, 髽弔成行, 義夫切齒, 壯土扼腕.]”라고 하였다.
- [주-D029] 장군의 …… 죽었네 :
-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대패한 사건을 읊은 것이다.
- [주-D030] 주흘산(主屹山)이 …… 곳이라네 :
- 주흘산이 망사(望祀)를 지내는 곳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다. 망사는 산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 [주-D031] 진실로 …… 여기네 :
- 백성들의 풍속을 살펴보고서 남방의 풍기가 듣던 대로임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자로(子路)가 강함에 대하여 묻자, 공자(孔子)께서 “너그럽고 부드럽게 가르쳐 주고, 무도함에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가 여기에 처한다.[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0章》
- [주-D032] 노나라 …… 순박하여 :
- 경상도 사람들의 성격을 말한 것이다. 노인고(魯人皐)는 《춘추좌씨전》 애공(哀公) 21년 기사에 “노나라 사람들이 느긋하여 몇 해 동안 알지 못한다.[魯人之皐, 數年不覺.]”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고는 느긋한 것이다.[皐, 緩也.]”라고 하였다. 한편 《기보통지(畿輔通志)》 권55 〈하간부(河間府) 노(魯)〉에 “사람들이 덕을 귀하게 여기고, 풍속이 순박하다.[人多貴徳, 俗皆淳樸.]”라고 하였다.
- [주-D033] 개미가 …… 보니 :
- 봄에 돌아다니는 개미를 본다는 것은 서민(庶民)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보살펴야 함을 비유한 말이다. 현구(玄駒)는 개미로, 깜깜한 땅속을 달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이 되어 양기가 오르면 개미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진(晉)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옛날에 하내 사람이 일찍이 수천만의 인마를 보았는데, 모두 기장알 만큼 자잘한 것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리저리 분주하게 왕래하므로, 가인이 거기에 불을 질러 태우고 보니, 사람으로 보였던 것은 모두 모기였고 말로 보였던 것은 모두 큰 개미였으므로, 모기의 호칭을 서민이라 하고 개미의 호칭을 현구라고 했다.[昔河內人見有人馬數千萬, 有皆如黍米, 遊動往來, 從旦至暮, 家人以火燒之, 人皆蚊蚋, 馬皆大蟻, 故呼蚊爲黍民, 蟻爲玄駒.]”라고 하였다.
- [주-D034] 함지(咸池)를 …… 쉬나니 :
- 날이 저물어 유숙한다는 말이다. 함지는 해가 지는 곳이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해는 양곡에서 떠올라 함지에서 목욕한다.[日出於暘谷, 浴於咸池.]”라고 하였다.
- [주-D035] 문창(文昌)에 …… 피곤하고 :
- 문경새재를 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문창은 문경(聞慶)의 옛 지명이다. 새재를 넘어 문경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렇게 읊은 것이다.
- [주-D036] 중모(中牟)가 …… 본받네 :
- 경상북도 상주(尙州) 출신인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의 인품과 유풍을 읊은 것이다. 중모와 화령(化寧)은 모두 상주 주변에 있던 고을로 상주에 편입되었다. 상산(商山)은 상주의 옛 이름이다. 노상(盧相)은 노수신을 가리킨다. 그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穌齋)ㆍ이재(伊齋)ㆍ암실(暗室)ㆍ여봉노인(茹峰老人),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선조(宣祖)가 즉위하자, 19년간의 긴 유배에서 풀려나와 교리(校理)에 기용되고, 1585년 영의정에 올랐다. 상주의 봉산서원(鳳山書院)에서 유생들에게 강학하였다. 봉산서원, 도남서원(道南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 [주-D037] 금오산(金烏山)이 …… 듯하네 :
- 금오산의 우뚝한 모습을 말한 것이다.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거령이 힘차게 손바닥으로 높이 떠받들고 발로 멀리 차 버려, 하수를 흐르게 하였다.[巨靈贔屭高掌遠蹠, 以流河曲.]”라고 하였다.
- [주-D038] 길재(吉再)는 …… 여겼고 :
- 고려가 망하자, 길재(1353~1419)가 조선에서 주는 벼슬을 부끄럽게 여겼다는 말이다. 야(冶)는 야은(冶隱) 길재를 가리킨다. 그의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ㆍ금오산인(金烏山人),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는 조선 왕조의 부름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으로 그의 학맥이 이어졌다.
- [주-D039] 김주(金澍)는 …… 돌렸지 :
- 김주의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농암(籠巖)이다. 1392년(공양왕4)에 하절사(賀節使)로 명(明)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에 이르러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개국 소식을 듣고, 동쪽을 향하여 통곡하며 부인 유씨에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였으니, 내가 강을 건너가면 몸 둘 곳이 없다.”라는 편지를 쓰고, 중국으로 돌아가 다시 귀향하지 않았다. 그가 중국에 들어가자, 명나라 태조는 그에게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임명하였으나 끝내 사양하므로, 평생 동안 그에 해당하는 녹(祿)을 주었다고 한다.
- [주-D040] 위지(緯地)는 …… 지켰도다 :
- 1456년(세조2)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은 하위지(河緯地, 1412~1456)의 절개를 읊은 것이다. 하위지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천장(天章)ㆍ중장(仲章), 호는 단계(丹溪)이다. 경북 선산 출신이다.
- [주-D041] 긴 …… 부끄러울까 :
- 길재, 김주, 하위지의 절의(節義)는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아사(餓死)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에게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 [주-D042] 종직(宗直)이 …… 드러났네 :
-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인해 발생한 일을 말한 것이다. 김종직의 본관은 선산, 자는 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이다. 1498년(연산군4) 사관(史官)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이 사초(史草)에 적어 넣은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당시 훈구파인 이극돈(李克墩), 유자광(柳子光) 등이 사화를 일으켰으니, 이것이 바로 무오사화(戊午士禍)이다. 이 사건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고, 그의 문집이 모두 소각되었으며, 김일손, 권오복(權五福) 등 많은 제자들과 사림(士林)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 [주-D043] 고아한 …… 썼네 :
-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을 했던 서사원(徐思遠, 1550~1615)에 대해 회고한 것이다. 그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미락재(彌樂齋)ㆍ낙재(樂齋)이다. 《東州集 卷9 戶曹正郞樂齋徐公墓碣銘 幷序》 대적(代逖)은 조적(祖逖)을 대신한다는 말로, 서사원이 국난 극복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동진(東晉)의 조적이 중원의 회복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 초모(招募)한 군대를 이끌고 장강(長江)을 건널 때, 뱃전을 두드리며 “중원을 평정하지 못하면, 이 강을 다시 건너지 않겠다.”라고 맹세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2 祖逖傳》 선면(蟬冕)은 선관(蟬冠)과 같은 말로, 한나라 때 시종관(侍從官)들이 쓰던 관인데, 여기서는 유생이었던 서사원을 상징하는 말이다.
- [주-D044] 임고서원(臨皐書院)에 …… 내리셨나 :
-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임고서원에 가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를 회상한 것이다.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한 임고서원은 1553년(명종8)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03년(선조36)에 재건되었다.
- [주-D045]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 회상하네 :
- 경건한 자세로 옥산서원에 들어가 배알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옥산서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있으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 [주-D046] 충(忠)과 …… 달가워했을까 :
- 이언적이 윤원형(尹元衡)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도의를 지켰다는 말이다. 이언적은 윤원형 등이 주도한 을사사화(乙巳士禍) 당시 추관(推官)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1547년(명종2)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 [주-D047] 장군의 …… 시들었구나 :
- 김유신의 무덤을 바라보면서 멸망한 신라의 모습을 회상한 것이다. 시림(始林)은 신라 초기 경주(慶州)의 지명이다. 65년(탈해왕9) 3월에 계림(鷄林)으로 고쳤다.
- [주-D048] 세 성씨 :
- 신라의 왕위에 오른 박씨(朴氏), 석씨(石氏), 김씨(金氏)를 가리킨다.
- [주-D049] 암탉이 …… 했지 :
- 신라 제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 ?~897)의 실정(失政)을 지적한 것이다. 진성여왕의 실정으로 인해 후삼국(後三國)이 정립하게 되었다.
- [주-D050] 누가 …… 되었네 :
- 신라가 망하는 것을 누구도 구제하지 못하여, 신라의 신하들이 고려의 신하가 되었다는 말이다. 《시경》 〈문왕(文王)〉에 “은나라 선비 중에 아름답고 민첩한 자들이 주나라 서울에서 강신제를 돕는다.[殷士膚敏, 祼將于京.]”라고 하였다.
- [주-D051] 최치원(崔致遠)은 …… 배우고 :
- 최아찬(崔阿飡)은 최치원(857~?)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ㆍ해운(海雲)이다.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 [주-D052] 설총(薛聰) :
- 설홍유(薛弘儒)는 설총(655~?)으로, 자는 총지(聰智)이다. 1022년(현종13)에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가 추증되고, 최치원과 함께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 [주-D053] 저 …… 같구나 :
- 신라를 망친 사람들의 용렬함을 지적한 것이다. 《한서(漢書)》 권66 〈양창전(楊敞傳) 양운(楊惲)〉에 “옛날과 지금은 같은 동산의 담비와 같다.[古與今, 如一丘之貉.]”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주에 “동류라는 의미이다. 낙은 짐승 이름인데, 여우와 비슷하면서 잘 존다.[言其同類也. 貉獸名, 似狐而善睡.]”라고 하였다.
- [주-D054] 월성(月城)에서 맥수가(麥秀歌)를 부르는데 :
- 옛 왕조의 도성을 지나며 흥망의 역사를 되새긴다는 말이다. 월성은 경주이다. 〈맥수가〉는 기자(箕子)가 은(殷)나라의 옛 도성을 지나던 중, 궁궐터가 모두 보리밭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패망의 슬픔을 읊은 노래이다.
- [주-D055] 긴 …… 거울삼네 :
- 일락(逸樂)을 신라 패망의 한 원인으로 본 것이다. 곡지(曲池)는 포석정(鮑石亭)을 가리킨다. 927년 신라의 경애왕(景哀王)이 이곳에서 연회를 벌이다가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三國史記 卷50 列傳10》
- [주-D056] 회소곡(會蘇曲) :
- 회악(會樂)이라고도 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그 유래가 전한다. 신라 유리왕(儒理王)이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왕녀 둘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아, 7월 보름부터 8월 한가위까지 길쌈 경쟁을 하게 하였다. 이 경쟁에서 진 쪽이 이긴 쪽을 춤과 노래로 대접했는데, 이 때 진 쪽의 여자가 “회소, 회소.”라는 감탄구를 가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 〈회소곡〉이라 했다고 한다.
- [주-D057] 방아타령 :
- 대악(碓樂)은 방아타령의 기원이 되는 음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의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던 가난한 백결 선생(百結先生)이 세모(歲暮)를 맞아 가야금으로 방아 찧는 소리를 내며 부인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그 곡조가 대악이란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져 방아타령의 기원이 되었다.
- [주-D058] 아득한 …… 돌아왔네 :
-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때 요동(遼東)의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도를 배우고, 천 년 뒤에 학으로 변하여 고향의 성문 화표주(華表柱)에 날아와 앉았다. 이때 한 소년이 활로 그를 쏘려고 하자, 공중으로 날아올라 “새여, 새여, 정영위가, 집 떠나 천 년 만에 비로소 돌아왔네. 성곽은 예와 같은데 사람들은 다르구나, 어찌 신선되기를 배우지 않고 무덤만 늘어서 있는가.[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搜神後記 卷1》
- [주-D059] 황당한 …… 있네 :
- 경주에서 신라의 유적을 살펴보며, 신라 패망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포석정(鮑石亭)에서의 일락(逸樂)에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해(齊諧)는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제해는 괴이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다.[齊諧者, 志怪者也.]”라고 하였는데, 일설에는 괴담(怪談)을 잘하는 사람의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이민구 자신의 말을 제해라고 한 것이다. 은감(殷鑑)은 《시경》 〈탕(蕩)〉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서, 하후의 세대에 있느니라.[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는 은나라의 후손은 마땅히 하나라가 멸망한 것을 거울로 삼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신라가 멸망한 원인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 [주-D060] 가시나무 …… 망했네 :
- 통일신라가 불교(佛敎)를 신봉하다가 나라를 망쳤다는 의미이다.
- [주-D061] 사원(沙苑) :
- 미상이다. 원래는 중국 섬서성(陝西省) 대려현(大荔縣) 위수(渭水) 가에 있는 지명이다. 이곳은 목축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당(唐)나라 때 사원감(沙苑監)을 두었다. 일반적으로 조정의 말을 목축하는 곳을 의미한다.
- [주-D062] 듣자니 …… 달려갔더니 :
- 현재의 부산광역시 일대를 향해 가는 모습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봉래(蓬萊)는 본래 동해에 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신선이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부산광역시 영도(影島)에도 봉래산이 있다.
- [주-D063] 훼복(卉服) …… 바이겠는가 :
- 지명이 봉래이기 때문에 한껏 기대를 품고 찾아갔지만, 훼복 걸친 왜인(倭人)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는 말이다. 훼복은 풀을 엮어 만든 옷으로, 《서경》 〈우공(禹貢)〉에 “섬 오랑캐는 훼복을 입는다.[島夷卉服]”라고 하였다. 영진(靈眞)은 도가에서 도를 체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봉래산이 본래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신선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주-D064] 유배객이 …… 않았네 :
- 동래(東萊)로 유배 와서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썼던 정서(鄭敍)의 일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정서의 본관은 동래, 호는 과정(瓜亭)이다. 1151년(의종5)에 참소를 받아 동래 및 거제로 유배되었다가 1170년(명종1)에 풀려났다. 〈정과정곡〉은 오랫동안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지 못한 억울한 마음과 왕에 대한 충정을 읊은 것이다. 정서가 동래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거제도에서 지은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 [주-D065] 동쪽 …… 있네 :
- 유배지이면서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었던 곳의 지형을 읊은 것인데, 어디인지 자세하지 않다. 청문(靑門)은 동쪽 문을 말한다. 활대(滑臺)는 본래 하남(河南) 활현(滑縣) 동쪽에 있었던 성루(城壘) 이름으로, 예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꼽혔던 곳이다. 여기서는 동래성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 [주-D066] 임금의 …… 하네 :
- 임진왜란 당시 왜인(倭人)들이 조선(朝鮮)을 유린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자유롭게 부산 지역에 와서 왕래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수래(綏來)는 《논어》 〈자장(子張)〉에 “부자께서 나라를 얻으신다면, 이른바 ‘세우면 이에 서고 인도하면 이에 따르고, 편안하게 해주면 이에 따라오고 고무시키면 이에 화하여, 그분이 살아 계시면 영광스럽게 여기고, 돌아가시면 슬퍼한다.’는 것이리니, 어떻게 미칠 수 있겠는가.[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라고 한 데서 원용한 것이다.
- [주-D067] 수군(水軍) …… 갖추고 :
- 부산 앞바다의 수군 방비를 말한 것이다. 힐융(詰戎)은 《서경》 〈입정(立政)〉의 “능히 너의 갑옷과 병기를 다스린다.[其克詰爾戎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주-D068] 삼대(三臺)를 …… 선발하네 :
- 조정에서 동래성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조정의 훌륭한 인재를 선발해 파견했다는 말이다. 삼대는 본래 한(漢)나라의 중대(中臺), 헌대(憲臺), 외대(外臺)를 가리키는 말로, 조정을 의미한다.
- [주-D069] 일렁이는 …… 언제던가 :
- 일출을 보면서 진 시황(秦始皇)의 명령으로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이끌고 장생불사약을 구하러 바다에 들어갔다는 서불(徐巿)을 생각한 것이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 [주-D070] 치령(鴟嶺)에서 망부석 우러르고 :
- 치령은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와 울산광역시 경계에 있는 치술령(鵄述嶺)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눌지마립간의 동생인 미사흔(未斯欣)을 구하러 갔다가 죽은 박제상(朴堤上)의 아내가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어 치술신모(鴟述神母)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정석(貞石)은 박제상의 아내가 변했다는 망부석을 가리킨다.
- [주-D071] 수로왕(首露王)은 …… 따랐네 :
-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과 허 황후(許皇后)에 얽힌 전설을 읊은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하늘로부터 붉은 줄이 내려와 땅에 드리워지고, 그 줄의 끝에 붉은 보자기로 싼 황금 상자가 있어 열어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이튿날 여섯 개의 알들이 사내아이로 변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수로왕은 15일이 지나자 키가 9척이나 되었다. 처음 나타났다는 의미로 수로라 이름하고, 그가 세운 나라를 가야(伽倻)라고 불렀다. 나머지 다섯 알에서 태어난 아이도 각각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한편 수로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4년이 지날 즈음, 꿈에 상제의 계시를 받은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많은 종자를 거느리고 김해의 남쪽 해안에 도착하자, 그녀를 배필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 [주-D072] 지난 …… 징험하려 :
-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옛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 본다는 말이다. 설홍(雪鴻)은 설니홍조(雪泥鴻爪)의 준말로, 눈 녹은 진창에 남아 있는 기러기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얼마 안 가 그 자국이 지워지고, 또 기러기가 날아간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하여, 모호하거나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 [주-D073] 봄 …… 살겠는가 :
- 임진왜란 뒤에 백성들의 참혹한 삶의 현장을 보면서 왜인(倭人)에 대한 원한을 피력한 것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26 〈송기(宋紀) 태조문황제(太祖文皇帝)〉에 “봄 제비가 숲의 나무에 깃들었다.[春燕歸巢於林木]”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민가가 모두 불타서 제비가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숲의 나무에 깃든 것이다.[室廬焚蕩, 燕無所歸, 故巢林木.]”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임진왜란 이후 백성들의 참혹한 삶을 비유한 것이다.
- [주-D074] 영남루(嶺南樓) :
- 남루(南樓)는 현재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영남루를 가리킨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뛰어난 건축미로 유명한 누각이다.
- [주-D075] 필옹(畢翁)이 …… 분발했지 :
- 김종직(金宗直, 1431~1492)과 그의 제자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행적을 읊은 것이다. 필옹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계온(季昷)ㆍ효관(孝盥),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이다. 벼슬은 형조 판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조선 초기 성리학의 대가로 평가된다.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김일손, 유호인(兪好仁), 남효온(南孝溫) 등을 제자로 두어 영남학파의 종조(宗祖)로 존경받았다. 일(馹)은 김일손으로,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청읍(淸邑)은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김일손이 태어난 곳이다.
- [주-D076] 그 글을 …… 걸렸네 :
- 1498년(연산군4)에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史禍)에서 김종직과 김일손이 화를 당한 일을 읊은 것이다.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실은 것을 문제 삼아, 이극돈(李克墩), 유자광(柳子光)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사림이 화를 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김일손은 사형되고 김종직은 부관참시되었다. 준답(噂沓)은 시끄럽게 공격한다는 말이다.
- [주-D077] 한훤당(寒暄堂)은 …… 태웠던가 :
-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이 무오사화 당시 유배되었다가,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에 무오 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에 처해진 일을 말한 것이다. 김굉필의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簑翁)ㆍ한훤당,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는데,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熙川)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만난 조광조(趙光祖)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상경(尙絅)은 아름다운 자질을 감춘다는 의미이다. 《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걸친다.’ 하였으니, 그 문채가 드러남을 싫어해서이다.[詩曰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라고 하였다.
- [주-D078] 초나라 …… 배알하였도다 :
- 초로(楚老)는 유배지에서 죽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김굉필이 그와 같기 때문에 굴원의 뜻을 인용하여 글을 만들어 사당에 찾아뵈었다는 말이다.
- [주-D079] 멋진 배 :
- 여초(麗譙)는 본래 삼국 시대 조조(曹操)가 지은 누각의 이름인데,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화려한 누선의 의미로 보았다.
- [주-D080] 정암나루 :
- 정진(鼎津)은 현재의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에 있는 지명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권17에 “의령현(宜寧縣)은 낙동강(洛東江) 하류에 있으며, 한 갈래는 진주의 단성(丹城)으로 이르는데 이름이 기강(岐江)이고, 그 위로 15리에 정암나루가 있는데 제일의 요충지이다.”라고 하였다.
- [주-D081] 회산(檜山)은 …… 옮겼네 :
- 창원으로 군영을 옮겼다는 말이다. 회산은 경상남도 창원의 옛 이름이다. 아독(牙纛)은 절도사의 깃발이다. 군영을 창원으로 옮긴 사실은 정확히 고증할 수 없으나, 《선조실록》 34년 1월 28일 기사에 “지금 창원(昌原), 마산(馬山) 등 적의 소굴이었던 곳이 형세가 험한 것을 의거할 만하면, 병영을 그곳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마땅합니다.”라는 기록이 있고, 《인조실록》 16년 1월 15일 기사에 “본영(本營)은 옛날 웅천(熊川) 제포(薺浦)에 처음 창설되었다가, 얼마 후에 창원 합포(蛤浦)로 옮겼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점령하였던 창원을 요충지로 보아, 뒤에 군영을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 [주-D082] 둔영(屯營)이 …… 물리쳤네 :
-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일어난 합포해전(合浦海戰)을 읊은 것으로 보인다. 합포(合浦)는 경상도 마산의 옛 이름이다. 구벌(九伐)은 주(周)나라가 제후국을 다스릴 때 썼던 법제로서, 아홉 가지 죄악을 토벌한다는 말이다. 《周禮注疏 卷29 大司馬》 여기서는 합포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말한다.
- [주-D083] 황금 …… 싸웠지 :
- 임진왜란 당시 합포 부근에서 싸웠던 인물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누구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연삭(燕朔)은 미상인데, 아마도 임진왜란 당시 선조(宣祖)가 의주(義州)로 몽진(蒙塵)한 일이 있으므로, 의주를 연삭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옥장(玉帳)은 장군의 막부(幕府)를 가리키는 말이다.
- [주-D084] 진양(晉陽)은 …… 많아라 :
- 경상남도 진주(晉州)의 번화한 모습을 말한 것이다. 진양은 진주의 옛 이름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조간자(趙簡子)가 윤탁(尹鐸)으로 하여금 진양(晉陽)을 다스리게 하자, 윤탁이 묻기를 “부세를 많이 거두어들이는 정치를 합니까? 아니면 보장을 튼튼하게 하는 정치를 합니까?[以爲繭絲乎, 抑爲保障乎.]”라고 하였다. 이에 조간자가 “보장을 튼튼하게 하는 정치를 하라.[保障哉]”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國語 晉語》 진주의 옛 이름이 진양이므로, 이 고사를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 [주-D085] 여러 …… 떨쳤고 :
- 진주 강씨(晉州姜氏)의 명성이 중국에까지 자자하다는 말이다. 진주 강씨의 시조 강이식(姜以式) 장군은 598년에 수 문제(隋文帝)의 30만 대군을 물리쳤으며, 강감찬(姜邯贊, 948~1031)과 강민첨(姜民瞻, 963~1021)은 여진(女眞)을 물리쳤고, 특히 귀주대첩(龜州大捷)에서 거란(契丹)의 대군을 무찔렀다.
- [주-D086] 조식(曺植)이 풍절(風節) 닦았지 :
- 조식(1501~1572)이 진주에서 수양과 강학에 힘썼던 일을 읊은 것이다. 조식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이다.
- [주-D087] 풍속은 …… 말했네 :
- 조식의 수제자였던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의 일에 대해 말한 것으로 보인다. 정인홍은 문묘종사 문제가 대두되자, 소장을 올려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비방하였다. 이 일로 인해 전국의 유생들로부터 탄핵을 받아 청금록(靑襟錄)에서 삭제되기도 하였다.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켜 영창대군을 제거하는 데 동조하였으며, 인목대비의 유폐에도 가담하였다.
- [주-D088] 지초와 …… 하였지 :
- 광해군이 이이첨(李爾瞻)과 정인홍 등을 신뢰하여 영창대군과 김제남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한 일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지란(芝蘭)은 향기로운 풀로, 여기서는 어진 인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응준(鷹隼)은 송골매로, 여기서는 광해군이 신뢰했던 무리들을 가리킨다.
- [주-D089] 서사(西祠) :
- 진주의 창열사(彰烈祠)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거두고 전사한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 1554~1592)과 의병장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1537~1593) 등 39위와 모든 군졸의 신위를 안치하기 위하여 1595년(선조28) 진주 목사 정사호(鄭賜湖)가 건립하였다. 1607년 창열사로 사액되었다.
- [주-D090] 띠를 …… 지나갔구나 :
- 김시민을 중심으로 한 진주성 전투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 [주-D091] 촉석루에 …… 듯 :
- 진주 촉석루에서 논개(論介)를 떠올린 것이다.
- [주-D092] 사수(泗水) :
- 경상남도 사천의 옛 지명이다.
- [주-D093] 철성(鐵城) :
- 경상남도 고성의 옛 지명이다.
- [주-D094] 원 절사(元節使)는 …… 올렸네 :
- 원균(元均, 1540~1597)과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일에 대해 읊은 것이다. 원 절사는 원균으로,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평중(平仲)이다. 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며 공을 세웠으나, 이순신과 화합하지 못하고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사하였다. 그가 죽은 뒤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명량(鳴梁)에서 불과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왜군과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명량해전을 계기로 조선 수군은 다시 제해권을 장악하며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 [주-D095] 노량(露梁) :
-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에 있었다.
- [주-D096] 횡포(橫浦) :
-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었다.
- [주-D097] 상국(相國)의 옛 마을 :
-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 살던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정여창의 본관은 하동,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3년간 오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가 1504년에 사망하였는데,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1517년(중종12)에 우의정에 추숭되었다. 정여창은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덕은사 경내에 악양정(岳陽亭)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를 양성하였다.
- [주-D098] 어찌 …… 풍미(風靡)하였으리 :
- 정여창이 사화에 연루되어 죽지 않았다면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에 조정에 나와 공훈을 세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신화(新化)는 1506년에 일어난 중종반정(中宗反正)을 가리킨다.
- [주-D099] 악양산(岳陽山) :
-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산이다.
- [주-D100] 용머리는 …… 빛나네 :
- 국보 제47호로 지정된 쌍계사의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를 형용한 것이다. 금해(金薤)는 아름다운 글씨를 의미하는데, 진감선사탑비는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짓고 직접 글씨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 [주-D101] 학사의 풍류 흠모하네 :
- 최치원의 풍류를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신라 왕실의 타락과 무능에 실망하고 좌절한 최치원은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여 여러 곳을 소요하였는데, 지리산의 쌍계사(雙磎寺)도 그 은거지의 하나여서 그의 자취가 전설이 되어 전한다.
- [주-D102] 단성(丹城)에서 …… 아니구나 :
- 단성이 그 이름과는 달리 도교(道敎)의 연단술(煉丹術)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단성은 현재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일대이다. 갈홍(葛洪)은 동진(東晉)의 도사(道士)로, 자는 치천(稚川)이고, 포박자(抱朴子)라 자호(自號)하였다. 강소성(江蘇省) 단양(丹陽) 사람으로 불로장생의 연단술에 심취하였다. 《진서(晉書)》 권72 〈갈홍열전(葛洪列傳)〉에 “나이가 들어 연로하자 단약을 만들어 수명을 늘리고자 하였는데, 교지에서 단사가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자원하여 구루 령이 되었다.[以年老, 欲煉丹以祈遐壽, 聞交阯出丹, 求爲句漏令.]”라고 하였다.
- [주-D103] 반갑구나 …… 전하네 :
- 경상남도 산청군에 있는 환아정(換鵝亭)에 대해 말한 것이다. 산음(山陰)은 산청의 옛 이름이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8 〈한죽당섭필 상(寒竹堂涉筆上) 종단(終丹)〉에 “영종대왕 병술년에 산음현 어느 마을의 계집애 종단이가 6세에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상이 어사 구상을 보내 사실을 조사하도록 하여 간통한 남자를 찾아 유배형을 내리고 종단과 그녀의 아들을 흑산도로 귀양 보냈다. 그리고 산음현을 산청현으로 고쳤다.[英宗大王丙戌, 山陰縣村女終丹, 六歲生子. 上遣御史具庠, 按覈, 刑配所奸男子, 而配終丹及所生子于黑山島. 改山陰爲山淸.]”라는 기록이 보인다. 환아정은 1395년 산음 현감 심린(沈潾)이 객사 서쪽에 세운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권반(權攀)이 중국 왕희지(王羲之)의 고사를 인용하여 짓고 글씨는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韓石奉)이 썼다. 왕희지가 절강성(浙江省) 산음현에 난정(蘭亭)을 짓고 문인들과 교유하며 살았는데, 이곳의 한 도사가 키우는 거위가 탐나 도경(道經)을 베껴 주고 거위를 얻어왔다고 하는 우군환아(右軍換鵝)의 고사가 전한다. 우군은 우군장군을 지낸 왕희지를 가리킨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 [주-D104] 강좌(江左)에 …… 부치네 :
- 왕희지를 그린다는 말이다. 강좌는 중국 강동 지역으로, 여기서는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의 동진(東晉)을 가리키는데, 왕희지가 동진 사람이다. 편양(偏壤)은 좁은 땅이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조선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주-D105] 팔수(八水)를 …… 찾아가네 :
- 산청에서 합천의 해인사로 이동한 것을 말한다. 팔수는 미상이다. 여정을 감안할 때 산청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여러 물들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홍류지암동(紅流之巖洞)은 해인사 주변에 있는 홍류동 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주-D106] 긴 …… 가득하네 :
- 해인사에는 국보 제32호로 지정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보관되어 있다. 여기서 수랑(脩廊)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의 장경판전을 가리킨다.
- [주-D107] 복정(福庭)에서 …… 지내는구나 :
- 해인사의 승려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읊은 것이다. 우인(羽人)은 신선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산사의 승려를 가리킨다. 복정은 행복이 가득한 곳이라는 의미로, 신선이나 부처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의 〈천태산부(天台山賦)〉에 “도사를 단구에서 방문하여, 불사의 복정을 찾노라.[訪羽人於丹丘, 尋不死之福庭.]”라고 하였다.
- [주-D108] 함양(咸陽)에서 …… 못하네 :
-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濫溪書院)에서 정여창(鄭汝昌)을 참배했다는 말이다. 일두(一蠹)는 정여창의 호이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7)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고 1566년에 사액되었다.
- [주-D109] 어진 …… 있네 :
- 정여창처럼 어진 사람이 죄도 없이 죽게 되었으니, 하늘의 이치는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 [주-D110] 문효공(文孝公)의 …… 떠올리네 :
- 노진(盧禛, 1518~1578)의 정려문을 바라보면서 예를 갖추고 그의 충효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노진의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 시호는 문효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이 세워졌다. 《葛川集 卷2 玉溪盧公行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 있었던 당주서원(溏洲書院)에 배향되었다.
- [주-D111] 가벼운 …… 오르네 :
- 지리산에 오르는 모습을 말한 것이다. 용유(龍游)는 용유담(龍游潭), 또는 용유동(龍游洞)으로 불리는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 기사에 “군 남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임천 하류이다.”라고 하였다. 중봉(中峯)은 천왕봉(天王峯)으로 가는 길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다.
- [주-D112] 안개 …… 앉았네 :
-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도달한 모습을 읊은 것이다. 항해(沆瀣)는 깊은 밤중에 내리는 이슬 기운으로, 도가(道家)에서는 이것을 수명(修命)의 약으로 마신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천왕봉을 덮은 안개의 의미로 보았다. 성단(星壇)은 별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 [주-D113] 아홉 …… 있고 :
- 지리산에서 바라보이는 주변 고을들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벽적(襞積)은 원래 주름치마처럼 옷의 주름을 잡은 것인데, 여기서는 오르락내리락 뻗어 있는 지리산 자락을 가리킨다.
- [주-D114] 향적(香積)의 …… 바랐건만 :
- 향적은 본래 부처의 이름이기도 하고, 사찰을 의미하기도 하며, 불가의 음식을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이런 의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육(李陸)의 글에 “천왕봉에서 조금 내려와 서쪽으로 가면 향적사가 있다.[自天王稍下而西, 有香積寺.]”라는 내용이 있으므로, 실제 천왕봉 주변에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續東文選 卷21 遊智異山錄》 그러나 이어진 내용에 영선(靈仙)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향적사를 직접 가리키는 것도 아닌 듯하다. 아마도 향적사가 있던 곳 주변에 도가의 수련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주-D115] 거타(居陀) :
- 현재의 경상남도 거창군의 옛 이름이다.
- [주-D116] 안음(安陰) :
-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옛 이름이다. 《영조실록》 43년 윤7월 30일 기사에 “안음을 안의로 고치고 산음을 산청으로 고친다.[安陰改以安義, 山陰改以山淸.]”라고 하였다.
- [주-D117] 산은 …… 닮았구나 :
- 안의의 지세를 보면서 안의, 또는 그 주변과 관련이 있는 사람의 강직한 기상과 비슷하다고 말한 것인데,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인지 미상이다. 다만 안의는 해평 길씨(海平吉氏)의 세거지이고, 함양군 유림면에 길재(吉再)가 우거했던 제계서재(蹄溪書齋)가 있으므로, 길재를 가리킨 것으로 추측된다.
- [주-D118] 권빈(勸賓)에서 …… 아름답구나 :
- 권빈은 현재의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권빈리 지역으로, 역참이 있었다. 용담(涌潭)은 미상이다.
- [주-D119] 금천(金泉) :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를 가리킨다. 금천 계곡이 유명한데 이곳에 광풍루가 있고, 상류에 농월정(弄月亭)과 거연정(居然亭)이 있다.
- [주-D120] 약목(若木) :
-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일대이다.
- [주-D121] 구불구불한 …… 그리나니 :
- 경상북도 칠곡군에 도착하여 절의를 지켰던 정구(鄭逑, 1543~1620)를 떠올린 것이다. 양장(羊腸)은 구절양장(九折羊腸)과 같은 말로, 구불구불 험한 산길을 가리키는데, 칠곡의 지명이 7개의 봉우리가 7개의 골짜기를 이룬다는 뜻에서 유래하였으므로, 그 주변의 험한 산길을 말한 것이다. 정구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칠곡의 사양서원(泗陽書院)에 제향되었다. 《旅軒集 卷13 皇明朝鮮國……寒岡鄭先生行狀》
- [주-D122] 소장 …… 따랐어라 :
- 광해군(光海君)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해치려 할 때, 정구가 소장을 올려 극력 간쟁한 사실을 말한다. 《한강집(寒岡集)》 권2의 〈계축차자(癸丑箚子)〉 3편이 당시 정구가 올린 글이다.
- [주-D123] 효령(孝靈) :
-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일대이다.
- [주-D124] 다인(多仁)을 …… 생각하네 :
- 도착한 곳의 지명을 염두에 두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읊은 것이다. 다인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을 가리킨다. 《논어》 〈이인(里仁)〉에 “마을의 인심이 인후한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인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고 하였는데, 고을 이름이 공자의 말과 유사하므로 말한 것이다. 비옥(比屋)은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일대를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5 〈경상도(慶尙道) 비안현(比安縣)〉 기사에 “본래 신라 아화옥현인데, 경덕왕이 비옥이라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다.[本新羅阿火屋縣, 景德王改比屋, 爲聞韶郡領縣.]”라고 하였다. 한편 한(漢)나라 육가(陸賈)의 《신어(新語)》 권상 〈무위(無爲)〉에 “요순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표창할 사람이 나오는데, 걸주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죽일 자들이 나오니, 이는 임금의 교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堯舜之民, 可比屋而封, 桀紂之民, 可比屋而誅者, 敎化使然也.]”라는 말이 나온다.
- [주-D125] 영화로운 …… 약포(藥圃)라네 :
- 약포는 정탁(鄭琢, 1526~1605)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ㆍ백곡(栢谷)이다. 그의 생애는 이민구가 쓴 시장(諡狀)에 자세하다. 《東州集 文集 卷6 議政府左議政西原府院君鄭公諡狀》
- [주-D126] 예천(醴泉)에서 …… 마시고 :
-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좋은 물을 마신다는 말이다. 예천이라는 지명은 좋은 우물로 말미암아 붙여졌다.
- [주-D127] 문소(聞韶)에서 …… 기다리네 :
- 문소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옛 이름이다. 소(韶)는 순 임금의 음악 이름인데, 《서경》 〈익직(益稷)〉에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춘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고 하였다.
- [주-D128] 얼음이 …… 있으랴 :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빙계계곡(氷溪溪谷)을 읊은 것이다. 현음(玄陰)은 겨울철의 극심한 음기(陰氣)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얼음으로 풀이하였다. 빙계계곡에는 빙혈(氷穴)이 있어서 이곳에서 찬바람이 일어난다고 한다.
- [주-D129] 거마(車馬)가 …… 빼어나구나 :
- 안동에 도착하여 풍수적으로 지세가 잘 갖추어진 모습을 보고 읊은 것이다. 관곡(綰轂)은 거마가 자주 왕래하는 요충지를 말한다. 용호(龍虎)는 풍수에서 말하는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를 말한다.
- [주-D130] 태사(太師)가 …… 마땅하네 :
-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세 명의 태사를 읊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안동(安東) 출신으로,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이다. 이들의 공적을 기린 태사묘(太師廟)가 안동에 있고, 그 안에 고려 삼태사 묘정비(高麗三太師廟庭碑)가 있다.
- [주-D131] 어지러운 …… 겪었는데 :
-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恭愍王)이 안동 청량산으로 몽진한 일을 읊은 것이다. 현릉(玄陵)은 황해북도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공민왕의 능이다.
- [주-D132] 백성들이 …… 돌아갔지 :
- 안동으로 몽진한 공민왕을 그곳의 백성들이 공손하게 모셨다가 개성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말이다. 정선(征繕)의 정(征)은 부세(賦稅)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선(繕)은 병기(兵器)를 수선하는 것이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15년 기사에 “정선하여 유자를 돕는다.[征繕以輔孺子]”라고 하였다.
- [주-D133] 마을 …… 있네 :
- 안동에 교화가 잘 행해진 것은 학교를 세워 잘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현가(絃歌)는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으로, 예악(禮樂)의 교화를 뜻한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遊)가 무성(武城)의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현가로 백성을 교화하였다. 《論語 陽貨》
- [주-D134] 충정공(忠定公) …… 얻었네 :
- 권벌(權橃, 1478~1548)의 절의가 평가 절하될까 염려하며 그의 행적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권벌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ㆍ훤정(萱亭), 시호는 충정이다. 1519년(중종14)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귀향하였고, 1545년(인종1)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尹任), 유인숙(柳仁淑) 등을 구제하려고 계사(啓辭)를 올리기도 하였다. 위사 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되고 길원군(吉元君)에 봉해졌으나, 얼마 뒤에 삭훈(削勳)되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1547년(명종2)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구례로 유배 갔다가 태천, 삭주로 이배되었으며 삭주에서 운명하였다. 《冲齋集 卷8 有明朝鮮國……五衛都摠府都摠管權公神道碑銘 幷序》
- [주-D135] 농암(聾巖) :
- 이현보(李賢輔, 1467~1555)로,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ㆍ설빈옹(雪鬢翁)이다. 1504년(연산군10)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있을 때, 서연관(書筵官)의 비행을 논박하여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聾巖集 卷4 附錄 行狀》
- [주-D136] 학봉(鶴峯) :
- 김성일(金誠一, 1538~1593)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이다. 《鶴峯集 附錄 卷2 行狀》
- [주-D137] 낙동강의 …… 생각하네 :
- 임진왜란을 전후로 발생한 혼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유성룡(柳成龍, 1542~1607)에 대해 읊은 것이다. 유성룡의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蒼石集 卷17 西厓柳先生行狀》
- [주-D138] 태상시(太常寺)에서 …… 있네 :
- 안동과 관련된 인물들을 나열하고, 그들의 시호(諡號)에서 그들의 공로를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태상(太常)은 태상시로, 국가의 제례(祭禮)를 주관하고 왕의 시호와 묘호 등의 관리와 제정을 담당하던 부서이다. 《서경》 〈군아(君牙)〉에 “그 이룩한 업적이 태상에 기록되어 있다.[厥有成績, 紀于太常.]”라고 하였다.
- [주-D139] 청부(靑鳧) :
- 경상북도 청송군의 옛 이름이다.
- [주-D140] 사록(沙麓)의 …… 나셨네 :
- 청송 심씨(靑松沈氏) 가문에서 두 분의 왕비가 나왔기에 말한 것이다. 사록은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비(妃)인 원후(元后)가 태어난 곳으로, 대개 왕비의 출생지를 가리킨다. 세종(世宗)의 비(妃)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이고, 명종(明宗)의 비 인순왕후(仁順王后, 1532~1575)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이다.
- [주-D141] 양양(襄陽)의 …… 많구나 :
- 영주에 유교가 흥성하여 집집마다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다. 양양지기구(襄陽之耆舊)는 양양 고을의 덕망이 높은 늙은이라는 뜻인데, 진(晉)나라 습착치(習鑿齒)가 양양에 살았던 방덕공(龐德公)을 위시한 여러 고사(高士)의 전기를 모아 《양양기구전(襄陽耆舊傳)》을 지었던 데서 유래하여, 고을의 덕망 있는 인물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특히 안향(安珦, 1243~1306)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고려 말에 주자학을 도입하여 유학 진흥에 공헌하였으며, 조선의 학자들로부터 동방의 주자(朱子)로 불렸다. 영주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사당에 안향을 배향하고 있다. 여남지선현(汝南之先賢)은 중국 하남성 여남에서 강학한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 [주-D142] 관할 …… 곳이지 :
- 경상도의 북쪽 경계가 영주의 소백산에서 끝나는데, 문성공(文成公) 안향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 [주-D143] 후학들 …… 내세웠네 :
- 안향이 불교가 융성한 고려 시대에 후학을 양성하여 유학 부흥에 노력했다는 말이다. 의자(蛾子)는 개미로, 《예기》 〈학기(學記)〉에 “개미는 수시로 흙을 물어 나르는 일을 배워 익힌다.[蛾子時術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개미가 흙을 물어 날라서 둑을 만들 듯이 오랜 노력이 있어야 학문을 성취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공부하는 선비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식곡(式穀)은 선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시경》 〈소완(小宛)〉에 “네 아들을 잘 가르쳐서, 선을 써서 너와 똑같게 하라.[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식은 씀이요, 곡은 선함이다.[式, 用也, 穀, 善也.]”라고 하였다.
- [주-D144] 백록동(白鹿洞) …… 알았으랴 :
-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중국 강서성 성자현(星子縣) 노산(盧山)에 있는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본떠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우고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말이다. 주세붕의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ㆍ남고(南皐)이다. 장수(藏修)는 《예기》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하여 마음에 간직하고 공부하며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고,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힌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학문을 닦는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 [주-D145] 작은 …… 많은가 :
- 경상북도 안동 주변의 작은 고을들이 모두 유학을 숭상하는 풍조를 이루어 많은 학자와 인재가 배출되었음을 예찬한 것이다. 십실(十室)은 작은 고장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께서 “열 집이 안 되는 작은 읍에도 반드시 나처럼 진실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 있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하였다. 《論語 公冶長》
- [주-D146] 좨주(祭酒)는 …… 빛났네 :
-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를 지낸 우탁(禹倬, 1262~1342)에 관해 읊은 것이다. 우탁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ㆍ탁보(卓甫), 호는 백운(白雲)ㆍ단암(丹巖),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충선왕이 충렬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를 간음하자, 흰 옷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멘 채 대궐로 나아가 간언하였다. 경상북도 안동으로 은퇴하여 학문에 정진하였고, 특히 역학(易學)에 밝아 역동선생(易東先生)으로 불렸다. 역린(逆鱗)은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로, 이를 건드리면 용이 노하여 건드린 자를 죽인다고 한다. 임금의 노여움을 샀을 때 흔히 비유하는 표현이다. 《韓非子 說難》 희경(羲經)은 복희(伏羲)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한 데서 유래하여 《주역》을 가리킨다.
- [주-D147] 도산(陶山)은 …… 같구나 :
- 이황(李滉, 1501~1570)이 거주하던 지역을 주희(朱熹)와 공자(孔子)께서 살던 곳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이황의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ㆍ퇴도(退陶)ㆍ도수(陶叟),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무이(武夷)는 중국 복건성에 있는 산으로, 산 가운데 구곡의 시내가 있고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주희가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로 읊었는데, 이황이 이를 본받아 〈도산구곡가(陶山九曲歌)〉를 지었다. 수사(洙泗)는 노(魯)나라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를 합칭한 말로, 공자께서 이 사이에서 강학하셨으므로, 후대에는 공자의 학문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 [주-D148] 창랑(滄浪)의 …… 생각하네 :
- 이황의 자취를 더듬어 보며 읊은 것이다. 창랑은 물 이름인데, 한 어린아이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빨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부르는 노래를 듣고, 공자께서 “소자들아, 저 노래를 들어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니라.[小子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 自取之也.]”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孟子 離婁上》 월담(月潭)은 월명담(月明潭)을 가리킨다. 《퇴계집(退溪集)》 권1에 〈혼자서 고산을 유람하고 월명담에 도착하여 물 따라 산 따라 내려가서 저물녘에 퇴계에 도착하였는데, 승경을 만날 때마다 곧바로 한 절구를 지었다[獨遊孤山 至月明潭 因竝水循山而下 晩抵退溪 每得勝境 卽賦一絶]〉라는 작품이 있는데, 두 번째 작품 〈일동(日洞)〉의 주에 “동은 월명담 위쪽에 있다.[洞在月明潭上]”라고 하였다.
- [주-D149] 청량산(淸涼山) …… 묻노라 :
- 청량산에 올라가서 낙동강의 근원지인 황지(黃池)가 어디인지 묻는다는 말이다. 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산이다. 《퇴계집(退溪集)》 권43 〈주경유청량산록발(周景遊淸涼山錄跋)〉에 “안동부의 청량산은 예안현의 동북쪽 수십 리 지점에 있고, 나의 선려가 그 길의 중간쯤에 있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산에 오르면 정오가 되기 전에 올랐고 배도 꺼지지 않았으니, 비록 경계는 다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실로 우리 산이다.[安東府之淸涼山, 在禮安縣東北數十里, 而滉先廬居其程之半焉. 晨發而登山, 則日未午而腹猶果然. 是雖境分他邦, 而實爲吾家山也.]”라고 하였고, 어려서부터 자주 올라 다녔다고 하였다. 그만큼 청량산은 이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오산당(吾山堂)에서 강학하기도 하였다.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이다. 《세종실록》 〈지리지(地理志)〉 강원도(江原道)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기사에 “부의 서쪽에 있다. 제전을 두었고 관리가 제사를 지낸다. 하류로 30여 리쯤 되는 부의 서쪽에 이르러 작은 산을 뚫고 북쪽에서 산 남쪽으로 흘러 나가므로 천천이라 하니, 곧 경상도 낙동강의 근원이다.[在府西. 置祭田, 其官行祭. 下流三十餘里, 至府西, 穿小山北出山南, 謂之穿川, 卽慶尙道洛東江之源.]”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이황 학문의 근원을 생각해 본다는 뜻을 내포한 말이다.
- [주-D150] 절간에서 …… 않았구나 :
- 이황의 글은 남아 있지만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김성일(金誠一)의 글에 “젊어서 청량산을 유람하고 〈백운암기〉를 지으셨는데, 절의 승려가 새겨서 암자의 벽에 남겨 두었다. 선생께서 만년에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없애게 하셨다.[少時遊淸涼山, 作白雲庵記, 寺僧刊留庵壁. 先生晩乃聞之, 卽令去之.]”라고 하였으므로, 여기서 유묵(遺墨)은 이 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주-D151] 군문(軍門)은 …… 두었는데 :
- 감영(監營)으로 돌아온 상황을 말한 것이다. 원문(轅門)은 본래 군진(軍陣)을 세울 때 수레로 울타리를 만들고, 드나드는 곳에는 두 수레를 뒤집어 놓아 문 역할을 하게 하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 [주-D152] 관어대(觀魚臺) :
-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목은시고(牧隱詩藁)》 권1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에 “관어대는 영해부에 있다. 동해를 바라보고 있으며 바위 벼랑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를 헤아릴 수 있으므로 이렇게 명명하였다.[觀魚臺在寧海府, 臨東海, 石崖下游魚可數, 故以名之.]”라고 하였다.
- [주-D153] 아홉 …… 알겠구나 :
- 경상북도 남동부를 흐르는 형산강을 바라보며 감회를 말한 것이다. 《순자(荀子)》 〈유좌(宥坐)〉에 공자(孔子)께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계셨는데, 자공(子貢)이 군자가 큰물을 바라보며 반드시 살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께서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가니, 이것은 의지와 유사하다.[其萬折也必東, 似志.]”라고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 [주-D154] 두 마리 …… 살펴보네 :
- 영일만(迎日灣)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살펴본다는 말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8대 아달라왕 때에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던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는데, 마침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천문가의 말을 따라 사자를 연오랑 부부에게 보내어 세오녀가 짠 비단을 얻어와 이것으로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하였다고 한다. 이 비단을 보관하는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고, 제사를 지낸 곳을 영일,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였다.
- [주-D155] 부상(扶桑)의 …… 앉았네 :
- 동해 바닷가에서 해가 나온다는 부상을 생각하며 일출을 기다리는 것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經)〉에 “탕곡 위에 부상이 있는데, 열 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이다.[湯谷上有扶桑, 十日所浴.]”라고 하였다.
- [주-D156] 진(秦)나라 …… 가깝네 :
- 해가 뜨는 곳이 가깝다는 말이다. 진교(秦橋)는 진 시황이 동쪽으로 유람할 때 지은 다리이다. 우이(嵎夷)는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희중에게 따로 명하여 우이에 머물게 하시고, 양곡이라 하니, 나오는 해를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라고 하였다.
- [주-D157] 태양이 …… 하네 :
- 동해에서 해가 나와 하늘로 오르면서 구름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을 형용하였다. 희화(羲和)는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몬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풍륭(豐隆)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구름과 우레의 신이다.
- [주-D158] 구망(句芒)에게 …… 하며 :
- 이민구가 신들을 시켜 하늘로 올라가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망은 봄을 담당하는 귀신이다. 열결(列缺)은 번개를 가리킨다. 하늘 높은 곳에 찢어진 틈이 있는데, 이곳에서 번개가 일어난다고 한다.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위로 열결에 이르러, 아래로 큰 골짜기를 바라본다.[上至列缺兮, 降望大壑.]”라고 하였다. 복상(服箱)은 수레에 짐을 싣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동(大東)〉에 “반짝이는 저 견우성, 수레에 멍에하지 못하도다.[睆彼牽牛, 不以服箱.]”라고 하였다.
- [주-D159] 혜성(彗星)을 …… 날아오르네 :
- 자신이 수레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여 말한 것이다. 참창(攙搶)은 천참성(天攙星)과 천창성(天搶星)으로, 혜성을 가리킨다. 흉조(凶兆)를 알리는 요성(妖星)으로 여겨, 이 별이 낮에 빛나면 전란의 조짐으로 생각하였다.
- [주-D160] 여섯 …… 가는구나 :
- 바다 위를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중국의 고대 신화에 의하면 발해의 동쪽에 대여(垈與),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州), 봉래(蓬萊)라고 하는 다섯 산이 있는데, 이 산들은 뿌리가 없어 파도에 밀려다녔다. 다섯 산에 사는 신선들이 상제에게 호소하자, 상제가 큰 자라 15마리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다섯 산을 떠받치게 하였다. 한편 용백국에 거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거인이 다섯 산에 이르러 한 번 낚싯줄을 드리워 여섯 마리의 자라를 잡아가자, 대여와 원교 두 산은 북극으로 흘러가 바닷속에 잠기고 세 산은 바다 위를 떠다닌다고 한다. 《列子 湯問》
- [주-D161] 떠다니는 …… 마시네 :
- 상상 속에서 맛이 좋은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경장(瓊漿)은 맛이 좋은 음료로, 송옥(宋玉)의 〈초혼(招魂)〉에 “화려한 술잔 이미 베풀어졌는데, 경장도 있네.[華酌旣陳, 有瓊漿些.]”라고 하였다.
- [주-D162] 기수(琪樹)가 …… 가득하네 :
- 신선 세계의 풍광을 묘사한 것이다. 기수는 옥을 드리우고 있다는 신선 세계의 나무이다. 한편 《초사(楚辭)》 〈구변(九辯)〉에 “저 혜초꽃이 핀 것을 슬퍼하노니, 도방에 가득하도다.[竊悲夫蕙華之曾敷兮, 紛旖旎乎都房.]”라고 하였는데, 유량(劉良)의 주에 “의니는 성대한 모습이다. 도는 크다는 뜻이고, 방은 꽃방이다.[旖旎, 盛貌. 都, 大, 房, 花房.]”라고 하였다. 《六臣註文選 卷33 九辯》 여기서는 선선이 사는 곳에 영지가 가득 자란 모습을 말한다.
- [주-D163] 영교(瀛嶠)와 봉방(蓬方) :
- 동해에 있다고 하는 산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의 동쪽에……그 가운데 다섯 개의 산이 있으니, 대여, 원교, 방호, 영주, 봉래이다.[渤海之東……其中有五山焉, 曰岱輿曰員嶠曰方壺曰瀛洲曰蓬萊.]”라고 하였다.
- [주-D164] 왕교(王喬)가 …… 노니네 :
- 여러 신선들과 사귀며 노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왕교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인 왕자교(王子喬)로, 구지산(緱氏山)에서 백학을 타고 생황을 불며 구름 속으로 사라져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안기(安期)는 동해(東海)의 봉래산(蓬萊山)에서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자기는 장생불사의 술법을 알고 있고 또 신선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하여 무제의 신임을 얻었는데, 그가 “제가 일찍이 해상에서 노닐 적에 안기생을 만났더니, 참외만 한 크기의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臣嘗遊海上, 見安期生, 安期生食巨棗大如瓜.]”라고 하였다. 《史記 卷28 封禪書》
- [주-D165] 바람을 …… 헌수하고 :
- 상제의 궁에 가서 즐기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동황(東皇)은 천신(天神)인 동황태일(東皇太一)이라고도 하고 봄을 주관하는 신이라고도 한다. 약목(若木)은 서해의 해가 지는 곳에 있다는 신목(神木)이다. 《산해경(山海經)》 권17 〈대황북경(大荒北經)〉에 “대황의 가운데 형석산과 구음산과 형야산이 있다. 그 위에 적색의 줄기와 청색의 잎과 적색의 꽃이 핀 나무가 있는데, 그 이름이 약목이다.[大荒之中, 有衡石山九陰山泂野之山, 上有赤樹靑葉赤華, 名曰若木.]”라고 하였다.
- [주-D166] 균천(鈞天)에 …… 들으니 :
-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는 말이다. 균천은 하늘의 중앙으로, 고대 전설상의 천제(天帝)가 머무는 곳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3 〈유시(有始)〉에 “하늘에는 구야가 있고, 땅에는 구주가 있고, 흙에는 구산이 있고, 산에는 구색이 있고, 못에는 구수가 있고, 바람에는 팔등이 있고, 물에는 육천이 있다.[天有九野, 地有九州, 土有九山, 山有九塞, 澤有九藪, 風有八等, 水有六川.]”라고 하였는데, 구야를 설명하면서 첫 번째로 “중앙은 균천이다.[中央曰鈞天]”라고 하였다.
- [주-D167] 양정(陽精)의 …… 보았네 :
-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양정은 하늘의 신이다.
- [주-D168] 만상(萬象)보다 …… 처음이었네 :
-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노자(老子)》에 “만물이 뒤섞여 있으니, 천지에 앞서 생하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이 홀로 서서 변하지 않고 어디를 가더라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지의 어머니로다.[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라고 하였다. 또한 “고요하도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하구나. 나는 누구의 자식인 줄 알지 못하니, 상제보다 앞서 있는 것 같도다.[湛兮似若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라고 하였다. 홍몽(鴻濛)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지 않은 아득한 상태를 형용하는 말이다.
- [주-D169] 고요히 …… 하리라 :
- 우주의 본원적 생명력을 지키며 우주 만물과 함께하겠다는 말이다. 무위(無爲)와 수일(守一)은 모두 도가의 요체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학의 대도(大道)이기도 하다. 《노자(老子)》에 “학문을 하면 날로 더해지고, 도를 하면 날로 덜게 된다.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면, 함이 없는데도 되지 않음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라고 하였고, 또 “성인은 하나를 품고 천하의 규범이 된다.[聖人抱一, 爲天下式.]”라고 하였다.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오승준 김문갑 정만호 (공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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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105] 팔수(八水)를 …… 찾아가네 : 산청에서 합천의 해인사로 이동한 것을 말한다. 팔수는 미상이다. 여정을 감안할 때 산청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여러 물들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홍류지암동(紅流之巖洞)은 해인사 주변에 있는 홍류동 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팔수는 미상이다. ->초계현을 가리킨다.
*도곡집 제1권 / 시(詩) / 내가 남쪽에 와서 한 해를 보냈는데 余來南經年....
일흔 번째〔其七十〕
팔계에 흐르는 물 더없이 깨끗하고 / 八溪流水十分淸
끝없는 구름과 안개 옛 성을 두르고 있네 / 無限雲煙護古城
모두들 말하기를 사가의 연구(聯句) 남아 있으니 / 共說四佳聯語在
이 고을 읊은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일컬어진다오 / 此鄕題品最稱精
초계(草溪)를 팔계라 한다. 서사가(徐四佳)가 읊은 시가 있다.
[주-D158] 사가(四佳)의 연구(聯句) : 사가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호이다. 그가 지은 〈관가대(觀稼臺)〉 시에 “사방의 산은 군을 에워서 가고, 여덟 줄기 물은 마을을 안고 흐른다.〔四山圍郡去 八水抱村流〕”라는 구절을 두고 말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0권 / 경상도(慶尙道) / 초계군(草溪郡)
【군명】 초팔혜(草八兮)ㆍ팔계(八溪)ㆍ청계(淸溪).
【형승】 사방 산(四山)이요 여덟 줄기 물(八水)이다. 군의 사면이 모두 산이면서 평평한 들판이 넓다. 대암(臺巖)ㆍ무월(舞月)의 여러 골 물 여덟 가닥이 구불구불하여 역력히 헤아릴 수 있다. ○ 서거정의 관가대(觀稼臺) 시에, “사방의 산은 군을 에워서 가고, 여덟 줄기 물은 마을을 안고 흐른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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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구름은 멀리 바다로 떠가고 / 孤雲遠以海廓兮
오래된 누대에 차가운 달만 남았어라 / 留古臺之寒月
->孤雲은 최치원이고 古臺는 고운이 마산에 남긴 유적 월영대(月影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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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현(河賓縣) ->하빈현(河濱縣)
*원문이미지 濱
동행성(東行省)을 치던 옛 터이다. ->정동행성(征東行省) 옛 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2권 / 경상도(慶尙道) /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
《대동지지(大東地志)》
【성지】 옛 우 병영성(右兵營城) 서쪽으로 10리이다. 고현(古縣)인 회원(會原)의 월영당(月影堂) 북쪽에 있다. 고려 때에 동행성(東行省)을 치던 옛 터이다. 이조 태종 때에 영을 두었다가 선조 때에 진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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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은 마음의 상처 많았던 곳이라 / 檜山秀其情刃兮->회산은 유명한 기생도 많은 곳이라 / 檜山秀其情刃兮
[주-D081] 회산(檜山)은 …… 옮겼네 : 창원으로 군영을 옮겼다는 말이다. 회산은 경상남도 창원의 옛 이름이다.
->사재척언 참고 각주
*鄭雲卿士龍。嘗奉使嶺南。愛昌原妓。相別到驛亭。吟一絶書柱間隱微處曰。斷盡愁腸無一寸。檜山情刃太尖銛。權觀察敏手。亦奉使往嶺南。繼踵至驛亭。適見柱間所書。墨猶未乾。認知爲鄭書。▣▣卽見雲卿曰。詩貴於哀而不傷。檜山詩句。無乃▣▣乎。鄭驚覺失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