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검사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후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요. 그만큼 그동안 일반 시민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사항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연일 검찰발 기사가 쏟아졌고 자유한국당은 정부와 여당 공격에 여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부 여당은 검찰 개혁에 반발하는 검찰의 행태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여론도 두편으로 나눠져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임명되자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전 국회에서 공수처법과 검경수사 조정관련 법이 통과됐습니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누렸던 특권들이 많이 없어진 셈입니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 언론 등에서는 당연히 검찰내부에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단은 상당히 어긋난 판단으로 일단은 받아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의 생각은 무엇이고 어떤 기류가 검찰청사에 도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CBS노컷뉴스 구용회 기자가 오늘(2020.1.15)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설명한 것을 옮겨 옵니다. 그래도 언론사 가운데 가장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언론사의 분석이기 때문입니다.카페 매니저 註)
보수언론과 야당에선 2020년 1월 8일 검찰인사를 '대학살'이라고 명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대학살'인가, 대학살이라면 왜 일반 검사들의 집단항명이나 반발이 뒤따라 일어나야 하는데 왜 일어나지 않는가. 왜 조용한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맥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 야당입장에선 이번 윤석열 사단의 물갈이를 '대학살'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2020년 1월 8일 인사가 '대학살'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것처럼 '진짜 대학살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선 의견이 확 엇갈리고 있습니다.
'대학살'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적 어감과 일치하려면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과 함께 이뤄진 작년 8월 검찰 중간간부인사가 오히려 '대학살 급이다'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시 인사에서 부장검사급 검사가 무려 69명이나 옷을 벗고 나갔습니다. 해방 이후 가장 많은 검사가 한꺼번에 사표를 던진 경우입니다. 검찰총장이 무려 5기수를 뛰어넘고 윤석열 사단이 핵심 보직을 장악하다보니 이뤄진 일들입니다.
이번 고위급인사에서 32명이 자리이동만 했습니다. 물론 윤석열 사단이 이른바 '한직'으로 대거 물갈이됐지만요, 그러나 사표를 쓰고 나간 건 아니거든요. 이번인사를 전후해 3명의 고위간부가 나갔지만요. 근데 이분들은 박균택 전 법무연수원장처럼 '대학살 인사'와 상관없이 이미 나가기로 결심한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야당과 일부 언론에선 '정권수사 중단이 대학살 목적이다'라면서 '검란으로 이어질 거다'라는 주장들을 제기했는데, 분석과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검찰 안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원세력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대다수가 침묵하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지난 6개월간 조국수사와 울산사건에서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와대 수사에 대한 '당, 부당', 그러니까 "이게 마땅한 수사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번 인사에 더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가 검찰 내 많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작년 8월 인사 때문인데요. 윤 총장 취임 후 자기 측근 인사들. 그러니까 윤석열 사단 안에 있는 사람들만 챙겼다는 불만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심지어는 '그 라인 안에 들어간 사람만 주요 자리를 차지한다'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구요, 일례를 들면, 대검 공안부장까지 주요 보직을 윤석열 라인의 특수부 검사들이 모두 차지했는데.. 불만은 크게 표출되지 않았지만 윤 총장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불만들이 지난 6개월 간 어떻게 수면 아래 감춰져 있었을까요. 윤 총장이 권력에 대한 수사고삐를 한시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많은 검사들이 윤총장 인사에 내심 반대했지만 검찰이 권력기관, 청와대에 맞섰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한번도 해보지 못한 최고위 권력에 대한 수사 그러니까 검찰의 존재이유와 자긍심이랄까, 그런 위신을 세워줬기 때문에 참고 지지를 보내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극 검찰분위기에 대해 이쪽 사정을 잘 아는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청와대 수사나 이런 거에 대해 검사들이 우려를 안 한 건, 검사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니까. 검찰조직이라는 전체적인 면에서 조금 얕은 지지를 보냈는데,..최근들이 이 부분도 더 옅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서 물러섬 없이 추상같이 칼을 썼지만, 최근 공수처법이나 검경수사조정안에 검찰이 손 한번 못써보고 당했다는 불만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힘을 공수처법이나 검경수사 조정안에 더 쏟았어야 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검사들 사이에선 '윤석열 총장이 검찰을 진짜 사랑하는 것이냐, 아니면 칼을 사랑하는 것이냐', '이렇게 손 한번 못써보고 혼자만 강단있게 '영웅'처럼 달려가는 거냐'라는 허전함과 섭섭함 같은 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찰을 걱정하는 검찰 출신 원로들 일부가 최근 윤 총장에게 공수처법이나 검경수사조정과 관련해 시행령 제정이나 후속 작업에서 조직의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공수처 시대나 경찰의 수사종결권 시대에 검찰권을 어떻게 행사하고 조정할지가 더 긴요해졌다는 겁니다.
검찰 내부가 생각보다 조용한 이유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많이 변하고 또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전반적으로 '남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그런 세대들이 주류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검찰조직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때 '집단행동'을 하는 시대적 풍조가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검찰 조직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검사도 '샐러리맨 화'라고 할까요. 조직보다는 개인의 자아추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과거보다 훨씬 강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원랜드 사건이나 미투사건, 서울고검 감찰사건'에서 국민들은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사들은 이런 사건에서 '검사가 검사를 칼로 치는' 전대미문의 경험을 최근 많이 하게 됐습니다. 또 국정원 사건에선 수사 받던 검사가 스스로 목숨도 끊었구요. 그간 검사들은 내부적으로 비위가 있어도 조직이 보호해준다는 생각을 많이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젠 '검찰이 한 조직이 아니구나,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커졌다'고 합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존재하지만 내용적으론 '동일체 의식'이 깨져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집단행동이나 집단주의'가 자연스럽게 엷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검경 수사권에 대한 불만이 작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이 없어지는데 거부반응은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김웅 검사라는 사람이 검찰 내부망에 "수사권 조정은 거대한 사기극"이라며 사직의 글을 올렸습니다. 김웅 검사는 20년 검사일을 한 사람으로 자신이 지은 '검사내전'이라는 책을 토대로 모 방송사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요즘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의 글에 5백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는데요. 이 부분에서 검사들의 반발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어떤 집단반발로 이어지는 사안은 아닌 것 같고요. 검경수사권 조정은 워낙 오랫 동안 국회와 사법주체들 간 논쟁을 벌여왔고 이제 현실화가 됐거든요. 윤석열 총장도 "우리도 바꿀 것은 많이 바꿔 나가야 한다"고 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부에 불만이 없지 않지만 격려와 위로성 댓글 응원이 많았다는 해석입니다. 국민들 상당수가 검찰 개혁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것도 검사들의 집단 항의를 누르는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검사들의 움직임은 어떨 것인가 예측하기가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검사들이 현안 특수사건 수사에 많이 차출이 됐습니다. 그렇게 너무 많이 차출되다보니까 미제사건도 많이 쌓이고 일선검사들의 불만이 커져 있는 상태이긴 합니다. 일부 형사부 검사들이 숨지기도 했고요.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검사들도 국민들 민의와 따로 놀 수 는 없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대통령령 보완과정에서 그런 노력들이 뒤따를 것이라고 검찰 안팎에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