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 예고안에 대한 입장 표명
국가 교육과정을 편향된 이념 실현의 도구로 전락시킨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
▲ 교육부는 지난 11월 9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함.
▲ 이번에 발표된 행정예고안은 연구진이 발표한 공청회 안보다 여러 면에서 후퇴하였음.
▲ 총론 교육 목표에 ‘생태전환교육’과 ‘노동교육’을 반영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묵살하고 교과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 등의 표현을 해당 연구진의 동의 없이 넣은 데 이어, 심의기구의 회의 내용을 왜곡하고 연구진을 압박했다는 정황이 언론에 보도됨.
▲ 이는 국가 교육과정 개정 최종 단계에서 연구진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동시에 이는 교육부가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 줌.
▲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마련하면서 법정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를 시안 공개 전날에 단 한 차례만 연 것으로 확인되었고, 법령에 규정된 심의·의결 절차도 거치지 않았음이 밝혀짐.
▲ 이에 대한 우리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음.
1. 윤석열 정부는 이념 편향적인 구시대적 발상으로 국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교육과정 개악을 중단하라.
1. 교육부는 교육의 세계적인 흐름을 인식하고 생태전환교육, 노동교육과 성평등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여 연구진이 제안한 교육과정(안)을 그대로 반영하라.
1.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 교육과정이 정치 놀음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중립을 유지하라.
교육부는 지난 11월 9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 고시문」에서 교육과정 개정의 이유로 ‘디지털 전환, 학령인구 감소 등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포용성과 창의력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초·중등 교육과정 체제 전환 필요’를 내걸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가치중립적인 교육과정의 숙의 시간을 정치와 이념의 시간으로 만들고 ‘미래 사회’, ‘포용성’, ‘창의력’, ‘주도적인 사람’과 같은 표현을 한낱 수사적 표현으로 전락시켰다.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학부모와 선생님의 입장에서 지난 수년 간 국민과 함께 만들어 온 이번 교육과정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이 정권의 편향된 이념적 기준에 맞추느라 미래 교육 비전을 함부로 잘라버린 잔인한 ‘개악’의 결과물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주였다.
교육부는 생태전환교육과 노동교육을 총론 교육 목표에 반영하라는 요구는 묵살하고, 연구진에게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게다가 교과 교육과정에서 ‘성평등’과 ‘성소수자’라는 표현은 삭제했으며, ‘노동자’를 ‘근로자’로 바꾸고 ‘경제생활’을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로 바꾸는 한편 ‘기업의 자유’를 강조했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는 연구진과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민주주의’와 ‘생태전환’, ‘노동인권’, ‘성평등’과 같은 용어를 전 정권의 좌편향 이념 프레임을 덧씌워 폐기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미래 사회의 민주시민이자 노동자의 삶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교육과정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 간 모든 국민과 함께 숙의하여 연구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면서 급격한 퇴행의 길로 걸어갈 조짐을 보여 주고 있다. ‘국민들의 뜻을 묻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식’의 반민주적인 행태가 계속되는 것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교육 3주체와 시민사회, 학계, 연구진 모두의 간곡한 요청을 묵살하고 행정 예고안 발표가 강행된 이후부터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미래를 여는 시간’, ‘학생의 시간’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인 동시에 ‘정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반 년 간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학교 교육을 경제 발전을 위한 산업 인력 양성의 수단적 가치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았다. 만 5세 취학 연령 하향 시도,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수도권 규제 완화, 고교체제 개편 무력화와 같은 정책은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 표기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장관의 말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희극같은 상황과 많이 닮았다.
교육부는 더 이상의 교육과정 개악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현재의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은 현 정부가 쥐어 준 이념의 창을 가지고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방패를 찌르고 있는 모순적 행위이다. 삶으로 가르치고 삶 속에서 배우며 삶을 위한 교육을 누려야 하는 학생들이 정치와 이념의 시간을 거치느라 삶과 유리된 교육과정에서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기는 어렵다.
학교에서 민주주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배려와 나눔, 협력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 ‘노동·인권 교육’, ‘생태전환교육’, ‘성평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삶을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국가교육과정 총론에서 명확하게 명시해 주어야 한다.
국가 교육과정 존재 이유이자 정체성의 방향은 ‘미래지향’이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고 함께 준비하듯이 국가 교육과정에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모든 국민들의 고민과 성찰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교육을 정권 유지와 획득, 정치적 이익 추구, 기업의 사적 이익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종종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국가 교육과정 개정과 숙의 과정에 정권이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원칙과 절차도 무시한 비민주적 행태를 공공연하게 보여 준 경우는 군사 독재 시절에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현재의 사태가 다름 아닌 학생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학교교육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큰 우려와 개탄을 감추기 어렵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는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학생과 함께 꿈꾸게 할 교육과정을 이념과 정치가 지배하도록 방치하고 오히려 비교육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보여 준 교육부와 그 핵심 관계자를 규탄한다. 그리고 이미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하여 국가 교육개혁의 중책을 맡을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심의를 즉시 중단하고 미래지향적 교육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처음 취지를 훼손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22년 12월 14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