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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 태양의 황경은 225도이고, 양력은 11월 8일경에 든다
▣겨울의 처음이라는 뜻에서 맹동孟冬이라고도 하지만,
이때는 어디까지나 태양상의 겨울을 뜻하는 것으로서
실제 기운은 아직 가을에 머물러 있는 시기이다
▣사람들도 수기水氣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복장을 검정색으로 바꾸며
추위를 막는 모피 옷을 입기 시작한다
▣각 마을에서는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놓으며,
이웃은 물론 농사에 힘쓴 소에게도 나누어주면서
1년을 마무리하는 제사를 올린다.
또한 각 가정에서는 이날을 기준으로 김장준비를 한다.
▣초후初候에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에는 꿩이 드물고 조개가 잡힌다
▣이 즈음 단풍도 저물고 낙엽이 떨어지면서 나무들이 헐벗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입동 무렵에 수확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곤 했는데,
점차 김장철이 늦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가에서는 입동 전후하여 한 해 농사에 힘쓴 소와 외양간,
곳간에 고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고 소에게도 고사 음식을 먹였으며
이웃간에 정을 나누었다.
▣입동에 어른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치계미雉鷄米라는 풍습도 있었다.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양로잔치였는데,
'치계미'라는 말은 꿩, 닭, 쌀을 뜻하며
마을을 다스리는 사또를 대접하기 위해
꿩이나 닭, 쌀을 추렴하여 거두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른들을 사또와 같이 대접한다는 뜻의 풍속이었다.
▣입동 무렵의 별미로는 추어탕이 있는데,
추수가 끝난 논 도랑에서
겨울잠을 위해 땅속에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를 잡아 끓인 것으로,
치계미를 낼 만한 사정이 아닌 집에서는 추어탕을 끓여 대접하기도 했다.
▣충청도에서는 입동을 전후하여
보리싹을 보아 두 개가 보이면 풍년이 든다고 기뻐했고,
제주도에서는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겨울 바람이 모질다고 여겼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야 제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가 되면 시장에는 무·배추가 가득 쌓이고,
또한 옛날에는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남도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씨 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독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이른바 고사를 지낸다.
그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 터줏단지· 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입동철에는 김장 말고도 무말랭이,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쓸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같은 일로 겨울채비에 바쁘다.
김남주 시인이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했듯이
집집마다 겨울채비로 바쁜 가운데도
날짐승들의 먹을거리를 생각할 줄 아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소설小雪】⇨ 태양의 황경은 280도이고, 양력 11월 22일- 23일에 든다
▣양의 기운은 점차 사라지는 대신 음의 기운은 더욱 심해져서
이때부터 점차 겨울로 들어서지만
아직 따뜻한 햇볕이 남아 있어 작은 봄(소춘小春)이라고도 부른다.
소설은 눈이 적게 온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첫얼음이 얼며, 첫눈이 오기 때문에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 호박오가리, 곶감 말리기 따위의
겨울나기 준비에 바쁘다.
▣소설 무렵인 음력 10월 20일께는
이날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원혼 때문에
'손돌추위'가 온다고 한다.
해마다 이날은 강풍이 불고 날씨가 찬데,
그래서 강화에서는 뱃길을 금합니다.
▣이 때에는 천기는 상승하고 지지는 하강하여
서로가 사귀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막히는 시절이다
▣사람의 장기 중에서 신장과 방광을 잘 단련하여 정기精氣를 잘 관리해야 한다
▣《농가월령가》의 한 대목이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 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창호지도 덧바르고 땔감도 준비해야 하지만
아낙들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김장이 가장 큰일이다.
◉핵가족화로 식구도 적은 데다가
예전과 달리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어 김치를 덜 먹게 되었지만
여전히 김장은 주부들이 치러야 할 큰 과제이다
오죽하면 "김장하니 삼동 걱정 덜었다"라는 말도 있을까?
◉한겨울에도 묻어둔 독에서 꺼내 먹을 수 있는 싱싱한 김치는
한국인의 영원한 친구요, 동반자이다.
소설엔 슬슬 김장채비를 해야 한다.
【대설大雪】⇨ 황경은 255도이고, 양력 12월 7일- 8일경에 든다
겨울의 중간이라는 뜻으로 중동中冬이라고도 한다
▣월동준비를 마무리하며 겨울을 맞는 농한기에 해당된다.
이때부터 초목이 지하에서 잠을 자고
냉혈동물도 이미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때 눈이 많이 내려 보리밭을 얼지 않게 충분히 덮어주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때 오는 눈을 서설瑞雪이라고 해서 좋아했다
▣대설 무렵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나,
실제로 눈이 오는 날은 많지 않으며,
본격적인 추위는 동지 무렵부터 시작한다.
◉이는 재래역법의 발생지이며 절기의 기준점인
중국 화북華北 지방의 기후상황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요즘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날씨가 옛날과 많이 달라진 이유도 있다
▣대설 즈음 가장 큰일은 콩을 삶아 메주를 쑤는 것이다.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동면에 들어가고,
중후中候에는 호랑이가 새끼를 가지며,
말후末候에는 여주가 돋아난다고 기록했다.
▣대설은 이미 겨울에 들어선 시기여서,
농촌은 추수와 김장 등 월동준비가 거의 끝난 후의 농한기에 해당된다.
보통 이 무렵에 콩으로 메주를 쑤어 다음 해 담글 장을 준비한다.
대설 무렵에는 제주도에서 올라온 귤이나
가을에 따서 말린 곶감을 먹었고,
이른 동지 팥죽을 대설 때에도 끓여 먹었다.
▣이때 눈이 오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도 서설瑞雪이라고 해서 좋아한다.
그리고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면서 놀았지요.
또 지금과는 달리 옛날 눈은 깨끗했기에 눈을 먹기도 했다.
특히 섣달 그믐날 밤에 내리는 눈을 남모르게 혼자 받아먹으면
그해에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믿음도 있었다.
▣대설 즈음 가장 큰일은 메주 쑤기이다
◉콩을 삶아 메주를 쑤면 며칠 방에 두어 말린 뒤,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이때에 곰팡이가 잘 번식하게 하려면 이불로 덮어야 하는데,
이때 이불은 합성섬유가 아닌 천연섬유로 된 것이 좋다.
또 알맞게 뜨면 나일론 끈이 아닌 짚을 써서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둔다.
◉이 역시 메주를 띄우는 푸른곰팡이의 번식이 왕성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전 서양 사람들은
이 메주에 아플라톡신이란 발암 물질이 있다고 했지만,
아플라톡신은 메주를 씻는 과정에서 없어지고
오히려 발효되면서 항암 식품으로 변신하게 된다
◉포근히 눈 내리던 날 메주 쑤는 어머니 곁에 앉아
한 국자 받아 먹던 메주콩 맛을 기억하는 추억이 있다
▣ 《농가월령가〈11월령〉》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 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동지冬至】⇨ 황경은 270도이고 양력 12월 22일경에 든다
▣1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는
음기가 극도로 성할 때이지만, 한편으로는 양기가 고개를 드는 때로
이날부터 낮 시간이 하루에 2분씩 늘어나게 된다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동짓날은 밤이 가장 길기 때문에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간 음기에 밀렸던 양의 기운이 서서히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음양이 서로 다투는 까닭에 만물의 내부에서 생명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로 과거부터 이날을 명절로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이때에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양의 기운을 돌보기 위해
목욕재개하고 몸을 근신하여 색욕 등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초후初候에는 지렁이가 움츠러들고,
중후中候에는 큰 사슴의 뿔이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샘물이 얼어 붙는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일 때 붉은 팥죽 국물을 떠서
집의 문 안팎과 담장, 집앞의 고목 둥치 등에 뿌려서 귀신을 쫓았다.
팥죽이 다 끓으면 사당에 올려 동지차례를 지냈고,
집안에서 모시는 가신에게 올린 후 가족이 먹는 것이 관례였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애동지가 드는 해에는 동짓날에 팥죽을 먹지 않았는데,
아이 귀신을 물리치는 팥죽의 위력이
집안의 아이한테도 미쳐 탈이 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었다. .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설날의 떡국과 같이
동지팥죽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악귀를 쫓고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
▣동짓날 궁 안에 있는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白薑· 정향丁香· 계심桂心, 청밀淸蜜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짓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사各司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이러한 풍속은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것과 함께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한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大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賜餐(임금이 음식을 내려줌)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베와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멀리에서 왕은에 감화되어 진기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
▣고려시대에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하고,
고려와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모든 영육간의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농업을 중시했던 고대에는 태양이 죽음에서 새로 태어나며,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보아 매우 중요한 절기였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정조 때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설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 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군신의 연예宴禮를 받기도 하였다.
▣중국 주나라 때에는 동지를 새해의 첫 날로 삼았으며,
역경易經에서도 일년의 첫날을 동지로 삼았다.
이런 전통은 당나라에도 이어져,
당나라의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서도
이날을 기점으로 역曆을 헤아렸는데,
당나라의 역법을 받아 썼던 고려 시대까지는
동지를 새해의 첫날인 설날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통은 고려 말까지 이어지다가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받아들인 충선왕(1309) 때에
지금의 설날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까지 동지는 설날과 함께 공식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절기였다.
동지에는 중국에 예물을 보내는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했다
【소한小寒】⇨ 황경은 285도이고, 다음해 양력 1월 5일경에 든다
▣이 때 농부들은 그해 농사일정을 짜면 농기구를 정비하거나
곡식의 종자를 좋은 것으로 고르면서 봄을 기다린다
▣낮의 길이가 차츰 길어지기 시작하지만
대륙에서 발달한 차가운 고기압이 이 무렵 본격적으로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날씨는 대개 맑지만 추위는 오히려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름은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한국에서는 다음 절기인 대한보다 더 추운 날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국 기상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 30년간(1981년~2010년)
소한과 대한의 전국 평균 기온을 조사한 결과
소한이 대한보다 0.2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속담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절기상으로 보면 대한이 가장 추운 때지만
실제는 소한이 1년 중 가장 추운데
이는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 지방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가고,
중후中候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꿩이 울음을 운다
▣농가에서는 추위가 가시는 입춘 무렵까지 혹한과 폭설에 대비해서
땔감과 먹을 거리를 집안에 준비해 놓기도 한다.
▣이때쯤에는 눈도 많이 오는데.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라며
눈을 좋은 조짐으로 보았다
▣예전 우리는 겨울엔 쌀밥을 먹고, 여름엔 보리밥을 먹었다.
그렇게 식생활을 한 까닭이야
물론 철 따라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까닭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려는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 때문이다.
여름 내내 따가운 햇볕을 받아 익은 쌀은
음기가 많은 겨울에 먹는 것이 제격이고,
추운 겨울바람을 버티고 자라난 보리는
양기가 많은 여름에 먹어야 음기보강에 좋다는 것을
그 옛날부터 우리 겨레는 알았던 것이다.
이러한 음식궁합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
차가운 눈 속에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자라는
보리를 가꾸기 시작할 때부터 나온 것이다
▣소한은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이다.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까요?
◉《동의보감》에 보면
"겨울철 석 달은 물이 얼고 땅이 갈라지며 양(陽)이 움직이지 못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뜬 뒤에 일어나야 한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많은 동물이 겨울에 겨울잠을 자듯
사람도 활동을 줄이고 잠자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인은 겨울이라 해서 활동을 줄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신 햇볕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길어지듯이
사람 몸 안의 양기도 점점 움트기 시작하는데
이때 양기가 찬 기운을 이기지 못하면, 호흡기에 병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이를 보완해주려면 햇볕을 쐬어주어야 합니다.
◉또 혈 자리에 뜸을 떠 몸속으로 따뜻한 기운을 넣어
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도 좋다.
햇볕 말고도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한방차와 신맛이 나는 과일이다.
◉한방에서 '총백'이라고 부르는 '파뿌리'를 물에 넣고 끓여 마시면
땀을 내주고 기침, 가래를 삭여주며, 항균 작용도 있어
평소 자주 마시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그밖에 비타민C가 많은 유자나 단백질과 당류,
유기산 따위가 풍부한 대추로 차를 끓여 마시면
피로 회복과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매실, 오미자, 모과, 산수유,
귤처럼 신맛이 나는 과일은 흩어져 있는 기운을 모아주기 때문에
겨울철에 자주 먹어줘야 할 것이다
【대한大寒】⇨ 황경은 300도이고 양력 1월 20일경에 든다
▣24절기 중에서 마지막 절기로 추위가 가장 혹독한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절기의 이름으로만 보면,
대한이 가장 추운 것으로 판단을 할 수가 있겠으나,
실제로는 양력 1월 중순이 가장 춥기 때문에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초후初候에는 닭이 알을 낳고,
중후中候에는 새가 높고 빠르게 날며,
말후末候에는 연못의 물이 단단하게 언다
▣농가에서는 찰밥을 짓고 시래깃국을 끓이며,
동치미와 녹두전을 시절 음식으로 즐겼다.
또한 해넘이라는 뜻으로
방이나 마루에 콩을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기도 했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께 이므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었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는데,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