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코스모스
원신흥동성당 강동희 아가다(전 버드내문예반, 81세)
왜 나는 코스모스만 보면 그렇게 좋을까?
내가 황홀하다고 말하지 않는 그 코스모스를 ···!
내가 코스모스를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삼 학년 때다.
비가 오는 여름 어느 날 아버지가 꽃모종을 가지고 오셨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 꽃모종을 담 밖에 돌려 심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병이 났다.
나는 너무 어려서 무슨 병인지 몰랐다.
의사가 매일 집으로 왕진하였다.
아버지는 화장실 출입도 못하실 정도로 위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까봐 몹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우리 반 단짝 친구가 처음 보는 책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는 자기 가족들이 믿는 어떤 신에 대한 책이라며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천당과 지옥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다.
자기 가족들에게 일 년에 두서너 번 어떤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때 그 동안 잘못한 것을 빌고 그 사람이 주는 것을 먹고 자기 소원을 빌면 다 들어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죽어서는 천당에 간다고 했다.
이 엄청난 비밀을 나에게만 알려준다고 말하니 나는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 신이 내 친구의 신이니까 나는 친구의 신에게 빌었다.
“알지 못하는 친구의 신이시여, 우리 아버지를 꼭 살려주세요.” 하며 내 방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간절히 빌었다.
놀랍게도 아버지께서 병세가 좋아지더니 늦가을에는 일어나 앉아 마당을 내다보셨다.
그리고는 “동희야, 코스모스가 몽우리를 맺었네.” 하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봉우리가 아니고 꽃씬데요.”하고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그랬구나.” 하시면서 쓸쓸하게 웃으셨다.
아버지가 정신 없이 방에 누어 앓고 계실 나 홀로 한창 아름다움을 뽐낸 그 꽃들을 본 것이 미안했다.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시고 이듬해 봄에는 꽃씨가 떨어져 많이 솟은 코스모스를 솎아내고 물주며 가꾸셨다.
아버지께서 열심이 가꾸신 그 코스모스가 그 해 가을에는 어찌나 예쁘게 피었는지 우리 집은 꽃 속에 파묻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처다 보며 “코스모스집이네!” 라고 감탄하였다.
그때부터 우리 집을 ‘코스모스 집’이라 불렸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매일 예쁜 꽃을 아버지와 함께 보면서 지내는 게 너무 행복했다.
6·25 사변이 일어난 그해 가을, 꽃도 그 집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와 코스모스를 기억 속에 남긴 채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었다.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동정녀 생활을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내게 성당에 가자고 권했다.
교리공부를 하면서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비밀을 지키겠다고 한 그 신이 천주님이고, 그 천주님을 믿고 공경하는 종교가 천주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내게 왜 비밀을 지키라고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아버지를 낫게 해달고는 열심히 빈 것은 진심이었다.
나와 함께 가족들도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나는 자식 셋을 데리고 혼자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핑계로 성당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느님도 잊고 살았다.
신앙생활보다 시간을 쓰고 돈을 쓰며 사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내가 잘나서 모든 게 되어 가는 줄 알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 멋대로 살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나를 잊지 않으셨고, 여전히 당신 홀로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
나는 멀리했는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내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나를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셨다.
당신께로···.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면서 내 모든 것을 다해주셨다는 것을 깨우칠 무렵 나는 사랑의 매를 호되게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엎드려 “주님께 바친 몸이오니 제 영혼을 지켜주소서.” 라고 뉘우쳤다.
그리고 이제부터 하느님을 내 기쁨으로 내 모든 것으로 삼고 살겠다고 결심하였다.
화분은 코스모스에게 너무 좁다.
집 정원도 좁다.
시가지 길은 시끄럽고 오염된 바람 때문에 살지 못한다.
한적한 시골 길가와 시골집 울타리에서 맑은 바람 맞고 높은 하늘을 보며 산다.
그 가냘픈 몸매를 바람결에 살살 흔들며 예쁘게 방긋방긋 웃는 코스모스!
오가는 이들을 반기는 코스모스!
넓은 땅에서 서로를 살피며 무리지어 피는 코스모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멈추게 하고 사진 속에 함께 담고 싶어 하는 코스모스!
그럼에도 코스모스는 가을마다 나를 쓸쓸하게 만든다.
내가 코스모스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상한 아버지의 얼굴!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빛!
코스모스에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과 눈빛이 있어 나는 그리움을 안고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첫댓글 감동 깊은 글을 읽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 홀로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 란 고백이 진실임을 공감합니다.
초동시절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순간에도 크나큰 선물로써 아버지를 치유해 주심도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코스모스가 만개한 이 가을,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아가다 자매님, 눈 앞에서 서로 지켜보는 그런 마음으로 읽었네요. 글 쓰기 동무했음은 저렇게 만발한 코스모스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이었지요. 그립네요. 부디 건강하소서!!
보내주신 댓글 감사합니다 잘 쓰지도 못한 글 친찬해주셔서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