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원형과 그 문화적 특징 1(김연재, 『비유적 사유에서 본 용의 문화적 원형과 그 정신적 기질』에서)
용의 관념화의 과정은 하나라의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夏代에 禹王은 아버지인 鯀(곤)의 사업을 이어받아서 九州의 부족들과 협력하고 그 백성들을 단결하여 治水의 사업을 공동으로 완수했다. 그 사업의 과정에서 곤이 죽어서 黃龍이 되었다든가 우왕 자신도 용이라는 전설이 형성되었으며 “응용이 땅을 나눈다(應龍劃地),” “기용이 명을 부여한다(夔龍授命)” 등의 내용도 담기게 되었다. 여기에서 용은 여러민족들을 통합시키는 상징적 매개로 활용되었으며* 용의 개념의 포용성이나 다양성에는 인간의 삶의 활동에 관한 주체적 역량도 반영되었다.
이러한 용의 개념을 인간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시켜 보자면, 인문적 세계의 관문을 열었던 춘추전국시대 이후에는 용의 개념과 성격에서 어떻게 문화적 원형과 그 정신적 기질이 반영되어 있는지를 찾아볼 수 있다. 용의 문화는 국가의 차원과 민간의 차원 양쪽에서 유행되었다. 우선, 국가의 측면에서 보면, 사마천은 진시황을 ‘祖龍’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漢高祖인 劉邦은 용의 신비주의적 관념을 이용하여 자신을 ‘眞龍天子***’로 포장하여 봉건적 황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송나라의 太祖인 趙匡胤은 黃袍, 즉 黃龍의 도포를 입고서 황권의 합법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특히 지방의 절도사의 兵權을 없애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黃龍은 중앙권력의 합법성, 합리성, 권위성 등을 대표했으며 따라서 천부적이고도 절대적인 불가침성의 神聖의 황권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元代에 들어와 군주전제주의로 국가 전체가 경직화되는 과정에서 용은 황권지상주의적 성격을 지닌 皇龍으로 표현되었다. 황제는 용의 문양이 새겨진 복장이나 의복을 입을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명문화되었다. 명대에는 이러한 복장이나 의복은 황제의 전유물이 되어 봉건적 황권과 종교적 神權의 의의, 즉 위엄성, 단정함, 중량감 등까지도 지니게 되었다.
다른 한편, 용의 문화는 민간에서 농업사회의 집단적 혹은 사회적 심리의 측면에서 인간의 命運과 관련하여 광범위하게 유행되었다. 원래 고대중국의 신화에는 水神으로서의 河伯이 있었고 唐宋시대 이전에도 자연숭배의 대상으로서 龍神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龍王처럼 아직 인격화되지는 않았다. 송대에는 하백을 대신하여 용왕이 등장하였다. 용왕은 그 이전의 하백이나 용신과는 다르게 인격화되면서 백성들에게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는 神靈의 水神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러한 용왕은 원래 불교와 도교의 문화에서 유래한다. 불교의 문헌에서 중국본래의 용과 비슷한 신령스러운 짐승이 있었는데 梵語로 ‘나가(Naga)’라고 부른다. ‘나가’는 몸이 길고 다리가 없는 거대한 구렁이이다. 그것은 ‘天龍八部’의 여덟 가지 護法神 중의 하나인 ‘龍衆’으로서 上天 다음의 지위에 있으면서 龍王이라고 불리었다. 이 용은 佛法을 보호하고 중생을 계도하고 또한 비를 불러오고 복을 내리고 재앙을 피하게 해주는 수호신이었다. 예를 들어, 德華經에서는 8대 용왕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며 華嚴經에서는 11대 용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도교의 문화에서는 五方의 용왕, 즉 동서남북의 四海의 용왕과 그 중앙에 黃帝의 용왕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祈福의 法術과 관련된다. 이러한 용의 문화는 농업사회에 수용되어 집단적 혹은 사회적 심리의 측면을 반영하였으며 인간의 命運과 관련하여 민간에 광범위하게 유행되었다.****
송대에 용의 문화는 민간에서 유교, 불교 및 도교의 서로 다른 성격들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송대 徽宗 1108년에 민간에서 추종했던 龍神은 정식으로 용왕으로 봉해졌다. 특히 민간에는 용이 다원화되고 다양화되는 경향에서 “龍生九子說”*****이 있었다. 명대에 용의 문화는 이미 광범위하게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용의 개념이 형성되는 맥락을 보자면, 용의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은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다.
제1단계, 용은 자연의 동물에서 신령스럽고 영험한 동물로 바뀌면서 신성한 존재로 생각되었다.
제2단계, 그것은 인간사회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인간의 뛰어난 능력이나 황제와 같은 권위로 상징화되었다.
제3단계, 그것은 정신적인 吉祥과 같은 정신적 문화의 차원으로 고양되었다.
제1단계는 동물의 속성이나 변화의 양상에 중점을 둔 것인 반면에, 제2단계와 제3단계는 동물의 속성을 넘어서 연역적으로 확장하여 인간의 권위나 정신성을 표현한 것이다. 제1단계가 신전이나 제사의 종교적 용도로 쓰이는 神聖化의 과정이라면 제2단계와 제3단계는 광범위하게 일상적인 세속적 용도로 확장되는 용의 文化化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는 송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꽃피우는 전성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가 일정한 틀을 갖게 되는 시기였다. 이 시대에 용의 형상과 그 특징도 전형화되어 용의 원형의 종합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송대에 완성된 용의 모습과 그 특징은 그 이전의 용의 형상에 비해 보다 규범화되고 보다 표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형상 속에 모종의 내면의 세계도 반영되어 있는 통일화된 용의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용의 이미지와도 일치한다. 따라서 용의 관념은 원시적 토템의 신앙에서 비롯되었지만, 상징적 부호의 체계와 창조성의 기질을 발휘하면서 吉祥이나 福生, 더 나아가 國權을 상징하는 문화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聞一多, 伏羲考, 「伏羲考」 (上海: 上海世紀出版集團, 2011), 28-30쪽.
**司馬遷, 史記, 「秦始皇本記」, 제1권
***司馬遷, 史記, 「高祖本記」, 제2권
****불교와 도교의 용에 관해서는 龐進, 龍之魅: 中華龍文化50講 (天津: 百
花文藝, 2012), 66-70쪽을 참조할 것.
*****龐進, 龍之魅: 中華龍文化50講 (天津: 百花文藝, 2012), 84-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