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가득했던 7월의 첫 날, 숲속작은책방에서는 청량하고 따스한 사람들의 웃음과 감동 가득한 북토크가 펼쳐졌습니다.
이날 행사는 한수영 작가님이 오랜만에 단편집 <바질 정원에서>를 펴내신 걸 계기로 독자며 팬이며 오랜 친구인 이들이 책방에 제안해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한수영 작가님은 이날 처음 뵈었지만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눠주셨는데요, 같은 50대 중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인지 작가님도 친구들도 모두 제 친구처럼 친근하고 공감대가 컸습니다. 등단 이후에 부지런히 작품을 내고 장편소설도 여럿 출간하셨지만 북토크 행사를 많이 해보지 않아 혼자 강연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셔서 이날은 제가 대담자로, 함께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북토크를 준비하기 위해 저는 한수영 작가님 책 세 권을 읽었습니다.
한수영 작가님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 생활을 약 6년 정도 하셨다고 해요.
원래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는 문학 지망생이었는데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부모님 말씀에 따라 약대를 진학했다고요.
그런데 약사 생활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의약분업 시기 전이라, 약사는 손님들에게 영양제 등 비싼 약을 팔아야 업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런 걸 권하고 약을 파는 일이 너무 싫었다고 해요. 그때의 경험이 여지껏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서 아직도 가끔 약국에서 손님들에게 비싼 약을 팔았다고 항의를 받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아이도 셋을 낳고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지않다보니 약국을 그만두게 되었고요. 주부로 살면서 자신의 존재,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기간 동안 텔레비전 퀴즈쇼(주부 퀴즈왕)에 나가 우승을 해서 자동차를 받기도 했다고요. 이때의 경험이 <바질 정원에서> 수록작 중 하나인 '파이'에 녹아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며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약 2년 동안 소설창작을 배우면서 쓴 소설 <나비>로 2002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아 등단하게 됩니다. 이어서 2004년에 장편소설 <공허의 1/4>로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합니다. 작가로서 꿈을 이루고 승승장구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어디서도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글을 발표할 지면을 얻지 못하고 멈추게 됩니다. 그후로 오랫동안 새로 소설을 공부하고 습작하고 선배 문인들의 글을 필사하는 등 자기 공부를 계속하며 글쓰기를 이어갑니다.
그렇게 해서 <플루토의 지붕> <그녀의 나무 핑궈리> <조의 두번째 지도> 등 장편소설을 계속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약 20년 동안 여기저기 발표했던 단편들과, 미발표작을 모아 총 9편이 수록된 소설집 <바질 정원에서>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한수영 작가님의 등단 과정과 소설 이야기를 들어본 이후에는 참석하신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약학대학 선후배 동료들이 자리를 많이 해주셔서 약국 이야기에 많이 공감도 해주셨고요. 평소 소설이라곤 읽지 않던 분,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에 생전 처음 참석해보신다는 분도 계셨는데 그런 분들에게도 공감되는 좋은 작품이었다는 말씀, 어느 작품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다 좋았다는 말씀, 다양한 소재와 장르에 도전하며 글을 써오신 노력에 대한 감동 등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삶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셨고, 가까운 친구들이 애정으로 마련하고 참석한 자리 그 우정과 사랑의 힘이 더해져 이날의 북토크는 아주 다정하고 따뜻한 자리가 되었어요. 오늘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앞으로도 내 삶의 큰 기쁨이자 살아있게 하는 원천인 소설쓰기를 계속하겠다는 작가님의 말씀으로 멋진 자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날은 특별히 오카리니스트 '아리'님이 자리를 함께해주셔서 맑고 청아한 음악으로 우리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직접 만든 곡들로 음반을 꽉 채운 <첫사랑> 앨범을 발매하고 코로나로 쇼케이스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발매 쇼케이스를 하셨다는데요. 들려주신 음반 수록곡들이 숲속의 새소리처럼 우리 마음을 청량하게 해주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인데다 책방 마당이 공사로 어수선해서 20명 정원만 받아서 옹기종기 만나려 하였으나 신청이 너무 많아 30명을 꽉 채워 진행된 북토크. 모인 분들의 따스한 기운이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전해져 흐뭇하고 행복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친구 분들이 김밥과 샌드위치, 음료를 준비해오셔서 끝난 후에 사인을 받으며 삼삼오오 음식과 수다로 뒷시간을 가졌어요. 그 화려한 식탁을 사진으로 남기지도 못하다니......
한수영 작가님과 오늘이 첫 만남이었지만, 마지막 만남은 아닐 듯한 예감이 드는 가운데....
준비하고 계신 작품이 마무리되면 또 이렇게 반가운 자리 만들자 약속하고 헤어졌어요.
지인께서 준비하신 "중쇄를 찍자" 꽃바구니처럼 좋은 작품이 독자들에게 널리널리 가닿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