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독을 듣다 보면 이름과 모습이라는 말이 간간이 나오고,
이름과 모습에 휘둘려서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마음공부 관심있어 왔는데, 무슨 생뚱맞은 이름에 관한 이야기야? 할 수도 있는
주제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이름이 생기는 과정을 살펴보려합니다.
도대체 이름이라는 것이 어떤 경위를 통해 만들어지기에,
가상성이라고 하는건가 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여기 튼튼한 원목으로 제작한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물체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물체를 살펴보니 평평한 2.5m x 1.5m정도 되는
평평하고 두툼한 나무판의 네 끝 모서리 부분에 높이가 75m되는 튼튼한
4개의 다리가 붙어 있습니다.
이 물건에 이름을 붙여야겠는데, 뭐라고 붙여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책상, 어떤 사람은 식탁, 어떤 사람은 작업대~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각자의 다른 목적이란 다른 말로 표한하면, 각자의 다른 욕구를 말하는 것이겠죠.
책상으로 이름을 붙인 A라는 사람은,
이 물건을 평평한 판자 위에 책을 놓고 보고 싶은 욕구(의식)가 있었고,
그 욕구에 임시 붙인 이름이 책상인 겁니다. 미국이라면 Desk라고 붙였겠죠.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식탁으로 이름을 붙인 B라는 사람은,
이 물건을 평평한 판자 위에 음식을 놓고 먹고 싶은 욕구(의식)가 있었고,
그 욕구에 임시 붙인 이름이 식탁인 겁니다. 미국이라면 Kitchen Table이라고 붙였겠죠.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작업대로 이름을 붙인 C라는 사람은,
이 물건을 평평한 판자 위에 작업대로 이용하고 싶은 욕구(의식)가 있었고,
그 욕구에 임시 붙인 이름이 작업대일 겁니다. 미국이라면 Work Table라고 붙였겠죠.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어떤 악조건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물건이 땔감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죠.
역시 땔감이란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을 피워 따스하게 하고픈 욕구가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물건을 이용하려는 사람의 욕구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게 되니,
물건의 이름이란 결국 인간의 욕구를 무엇으로 존재화 하느냐의 과정에서
편의상 지칭하기 위해 붙인 언어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중 일어나는 일들을 이름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관찰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야 이름의 정체가 들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1) 결국 사물의 이름이란 그것에 해당하는 고정적인 이름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존재화 하면서 그것에 편의상 붙인 이름이구나.
2)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므로 하나의 물건에 여러 가지 이름들이
상황, 조건 따라 다르게 붙을 수 있기에
이것은 책상이다 라고 한 가지 고정된 이름으로 고집 할 수는 없겠구나.
3) 만일 A라는 사람의 욕구에 따라 책상이라고 이름 붙였더라고,
몇 달 후에 A의 마음이 변하여 이것을 작업대로 이용하고자 할 때는
작업대로 변해 버리는 것이니,
순간의 욕구변동에 따라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가변의 것이라면
이 물건의 이름은 정할 수 없는 것이었네.
4) 결국 이름 뿐이니 가상임시의 이름이었고, 모든 물체를 환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유는
내 눈 앞에 사물이 없어서가 아니고, 가상성 이름이 가리키는 물체였기에
가능한 말이었네.
5) 한 덩어리여서 나눌 수 없는 단일의식에 이름을 붙일 때,
책상, 식탁, 작업대, 땔감 등으로 억지로 분리가 일어나는구나.
원래는 나눌 수 없는 의식으로서 하나인데.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단일의식을 나누는 장본인이 바로 이름 이었기에
이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 할 수 있겠구나.
6) 이름이 개념을 만들고, 다른 이름들과 섞이면서
복잡다단한 새로운 이름이나 개념들이 만들어지니,
분리가 가속 세분화 되고 그것이 장시간 세뇌되고 보면
진실을 뒤늦게 알았다 해도, 바꾸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겠구나.
7) 한 가지 희안한 건 일단 이름을 붙여서 존재화 시켜 놓고 보면,
그 이름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다는 착각에 쉽게 빠져 버리곤하네.
8) 이 물건을 책상이라 명명할 때, 책상은 물질인 동시에
그것을 책상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의식(인식)이 동시에 있어 존재화 되는 것이니,
책상은 물질 책상인 동시에 책상이란 이름이고, 또한 동시에 의식이기도 하네.
9) 강독에서 이름을 붙여 창조한다고 했는데,
책상이란 이름을 붙이니 책상이 창조되었고,
식탁이란 이름을 붙이니 식탁이 창조되는 것이 맞네.
10) 12연기의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진행에서,
이름을 붙이는 순간이 명색(名色)에 해당이 되는데.
명색에서 욕구 따라 모습에 이름을 붙여 놓고,
그것에 갈애(渴愛)를 일으켜 책상이란 이름을 취(取)하니 유(有)기 되어
없던 책상이 책상으로 存在化 하게 되고
물체로 부터 책상이란 이름이 붙은 후, 책상으로 창조되는 과정이었네.
결국은 전부 자아가 마음을 조작하여 만들어 진 것이라 볼 수 있네.
11) 창조는 되었으나 임시 가상세팅이니 있다고 볼 수도 없었기에(실체없음)
색즉시공이라 할 수 있겠구나.
또한 색즉시공이기에 책상이라 명명한 것이 식탁도 될 수 있고
작업대가 될 수 있기도 한 것이었네.
즉 책상 식탁 작업대 모두가 하나의 의식이기에 色卽是空이라 한 것이었네.
12) 이름을 실재하는 물체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객체라고 알고 있었고,
보이는 모습(물체) 뿐 아니라 안 보이는 이름 붙은 모습(수상행식)에 대해서도
역시 객체로 알고, 그것을 상대하는 나(자아)는 주체인 것으로 자주 착각 했는데,
이것도 바로 세워야 할 전도몽상 중 하나였네.
결국 이름도 전도몽상을 만드는 중요요소 중 하나였네.
* * * * * *
이상으로 물체에 이름이 붙여지는 과정과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름 붙인 것을 다 빼면 무엇이 남느냐는 말이 있죠?
이름 붙인 것들은 전부 가상 세팅이기에 빼고뺄 때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
남는 진짜가 무엇인지 보기 위해 이름 붙은 모든 것을 다 빼보라는 말 같습니다.
우리의 구하는 마음(바라는 욕구)이 결국 이름으로 존재화(물건)된 것 들인데,
이름 붙은 일체를 다 제거해 보면 우리의 구하는 마음이 다 사라져 버리죠.
구하는 마음은 결국 자아의 욕구 이었으므로 자아가 사라지는 겁니다.
결국 이름을 다 제거해 보라는 소리는
자아가 완전히 제 2선으로 물러나 있으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결국 자아가 2선으로 물러 났을 때, 자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단일의식이므로,
모든 붙인 이름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단일의식 뿐이지요.
이름 붙일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단일의식이니까요.
색즉시공에서 물체에 붙인 이름이 색이니, 이름이 곧 바로 의식입니다.
수즉시공에서 물체의 느낌에 붙인 이름이 수이니, 그 이름은 바로 의식입니다.
상즉시공에서 물체의 지각에 붙인 이름이 상이니, 그 이름은 바로 의식입니다.
행즉시공에서 물체의 의지에 붙인 이름이 행이니, 그 이름은 바로 의식입니다.
식즉시공에서 물체의 의식에 붙인 이름이 식이니, 그 이름은 바로 의식입니다.
이 모든 의식은 분리 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단일의식 이므로 그냥 의식 뿐이네요.
이름으로 시작해서 이름이 붙는 과정과 의미를 살펴보았는데,
없던 이름을 만들어 수 많은 이름을 만들었다가, 그것들을 모두 지워 버리니
남는 것은 역시 스피커님이 늘 강조하시는 단일의식 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강독에서 배운 대로 물체를 볼 때는
물체인 동시에 의식으로 보는 습관을 자주 가져 보고,
그 의식이 사실상 분리됨 없는 하나라는 사실을 반복 되새겨 볼 때,
우리의 딱딱한 얼음이 말랑해져서 본래의 고향인 물임을 알기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스피커 님이 강조하시는 '알파와 오메가의 궁극의 문답'에서도
이름과 모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죠.
이름이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이름을 주제로 이런저런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첫댓글 "이름"이란 단어 설명을 논리적 순차 배열로 잘 설명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름의 속성을 다시금 상기해 볼 수 있는 기회 였습니다.
도반 벗님 말씀 처럼~
의식이~
필요에 따라 이름과 모양을 바꾼 것이지~
각각 다른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 하게 되었습니다~
얼음이 물이고~
물이 얼음이듯~
이름과 모양이 바뀌었을 뿐~
속성은 물자체~
즉 의식이란 것을~
다시금 상기해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긴 글 열심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에 늘 핵심이 되는 요약의 몇마디를 해 주셔서 저 또한 다시 음미해 보게 됩니다^^
어떻게든지 자주 진실에 접하다 보면, 그래도 조금 더 진실에 다가가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은하수 스피커 교수님께서는 아마 이런 답변을 하지 않으실까 합니다.
진실은
"실제 있는 것은 온갖 이름과 모습의 배역을 연기하는 단일자각입니다.
단일자각은 그 배역을 연기하고 싶다는 최초의 선택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실의 속삭임은 척박한 오지든 야비한 위선자든 묻지 않고 크게 메아리치며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다만 듣지 않는 선택, 선택하지 않는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입니다.
속박될 자유, 몰입할 자유가 없는 자유는 자유조차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순간 안에서, 그 어떤 배역 몰입 안에서도, ‘진실의 속삭임을 듣는다’를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속박도 없었고 구제도 없었던 것입니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처음부터 실제로 있었던 것은,
온전한 자유
온전한 자각
온전한 깨달음
온전한 사랑
만이 홀로 있었습니다.
이 세상 전부 우리 모두 바로 그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선택 또한 단일의식의 선택이기에~
오늘 하루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각이 자각을 통해 자각합니다.
이런 답변을 하시지 않았을까??
하고 글을 남겨 봅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매 순간 진실에 대한 선택,
종종 잊고 살다가 그래도 하루에 수차례씩 상기해 보게도 되네요.
알파와 오메가 글은 늘 많은 의문들의 궁극적 해답을 줍니다.
임박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