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란 “ 신분이나 명예, 직무를 나타내기 위하여 옷이나 모자 따위에 붙이는 표”이다. 우리는 대표적인 배지 세대다. 초등학교는 배지가 없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철저하게 배지를 달고서 다녔다.
중고등학교 배지는 교모에 달고 다니는 묘표가 있다. 배지 가운데서 가장 커서 멀리서도 어느 학교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모자에는 흰색 띠를 한줄 또는 두 줄로 감아서 학년을 표시하는 학교도 있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달고 다니는 위치가 다르지만 동복은 검은색 옷깃 한쪽에는 학년 표시를 또 다른 한쪽에는 학교 표시를 하는 배지를 달고 다녔다. 학교에 따라서는 허리띠를 장식하거나 결합시키기 위한 금속제 부품으로 만든 버클이 있다. 띠고리에는 타원형 또는 직4각형으로 구부린 형태로서 긴 걸쇠를 고정하여 띠의 다른 쪽에 뚫린 구멍에 찔러 넣는 교구(鉸具)와, 안쪽 면에 있는 단추 모양의 돌기를 띠의 한쪽에 고정시키고 반대편의 구부러진 고리를 띠의 다른 쪽에 뚫린 구멍에 찔러 넣는 대구(帶鉤)가 있다.
교문에서는 선도부가 있어 배지 검사를 했다. 동복은 한번 갈아입으면 계절이 끝날 때 까지 입는 경우가 많아 배지를 잊고 달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하복은 자주 빨아 입어 배지를 달지 않고 등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지를 달지 않아 선도부에 지적되어 얼차려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에게 행악을 하는 날이 많았다.
이렇듯 다양한 배지는 학생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직장마다 회사를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다니는 기업이 많았다.
회사 배지도 대기업이나 큰 회사를 다니는 사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한마디로 배지는 군대의 계급장과도 같은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따라지 학교를 다니거나 작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배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학교나 회사 앞에서만 달고 나니는 학생이나 회사원도 있었다. 일류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자랑스럽게 배지를 달고 다녔다.
대학교 가운데는 초급대학과 본 대학이 같은 캠퍼스를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배지 모양은 같았으나 색깔로 구분하여 초급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가운데는 아예 배지를 달지 않거나 본 대학 배지를 구매해서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복 자율하와 베이붐 세대들이 졸업을 하고 학생 정원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씩 배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배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달고 다니는 금배지 외에는 배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배지가 사라지게 된 원인에는 일제 강점기 잔유물 이었던 교복이 사라진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일류학교의 개념이 바뀌게 된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고교 평균화로 인한 일류학교의 개념이 무디어 졌다. 시대에 따라 상업계 고등학교가 경쟁률이 높은 때도 있었지만 산업화와 그에 따른 인력 수급의 필요로 기술계 고등학교가 인기가 많을 때도 있었다.
이제 학벌의 개념이 바뀌어야 할 때이다.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고 직장을 구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직까지 부를 축적하는데 최고라고 여겨지는 의학과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문을 닫는 병원도 많다. 권력을 향유하면서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법학과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우수생들이 대학의 의학과 정원을 다 채우고 법학과 등 차 순위 인기학과에서 전공을 찾는다. 그러나 월수입이 일반 봉급생활자에 미치지 못하는 변호사가 늘어나고 있다.
인도는 한반도 전체 면적의 15배가 되며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나라이다. 세계에서 찻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미래 학자들 가운데는 인도가 언젠가는 미국을 능가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인도는 넓은 땅과 많은 사람, 오랜 역사가운데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유산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인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불평등한 카스트제도이다.
조선 시대 주요 산업인 농업 경제의 상당 부분은 노비의 노동력에 의존했다. 특히 수백 섬을 추수하는 양반 가문에서는 많은 수의 노비가 필요했다. 이를 통해 농업 생산량을 극대화했다.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자유가 없었으며,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결혼이나 재산 소유도 불가능했다. 조선은 시대에 따라서는 인구 절반 정도를 노비 삼아서 하대하고 천시하고 가혹하게 부렸던 노비제도가 성행한 나라다. 관습의 힘은 강하고도 질기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과거 신분제의 유습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도 과거에서 이어받은 문화와 관습은 오랜 세월 남아 있다.
노예근성이란 말이 있다. 19세기 말까지 우리나라 인구의 약 70%가 소, 돼지 같은 가축의 분뇨 명칭으로 불리어 졌다. 노예 낙인의 표시로 이름을 수백 년 동안 짐승 명칭 붙여서 사용했다. 자유의지가 없는 배지와 같은 낙인을 달고 살았다.
자긍심으로 넘쳐 목에 힘을 주어 달고 다니던 일류 학교의 배지는 본인의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학창 시절의 영광만을 되뇌며 살아서는 아니 된다. 노예근성처럼 태생적 한계를 원망하며 살아서도 아니 된다.
금배지와 같이 빛나는, 나만의 삶 가운데 혼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영광의 배지를 보람으로 달고 싶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