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27일(목) 아가 3:1-5 찬송 382장
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3.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개역 개정)
- 신랑을 그리는 신부의 노래 -
오늘 말씀은 제 1부의 마지막 단락으로서 술람미 여인이 꿈 속에서조차
신랑될 솔로몬을 찾아헤맬 정도로 그에 대하여 간절하고도
정열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노래로써 표현하고 있다.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연인인 솔로몬을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는 꿈을 꾼 것은 그녀가 혼인(3:6-11)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혹시라도 자신의 사랑이 깨어지지나 않을까하는 조바심과 함께
신랑인 솔로몬과 한시라도 빨리 연합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연인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자의 행방을 묻기까지 하는 꿈을 꾼 사실은
솔로몬과의 결혼을 진심으로 원하는 그녀의 신실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술람미 여인이 그토록 바라던 신랑을 만나
다시는 헤어짐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다짐을 하기라도 하듯 붙잡고
자신의 집으로 가기까지 놓지 않는 모습은
솔로몬을 향한 술람미 여인의 순수하고도 애틋한 열정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짙게 각인시켜 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① 상대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둘 사이의 사랑을 더욱 증폭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동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이다.(고후5:14)
② 우리는 영적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 교제하고자 하는
신앙적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항상 점검해야 함은 물론
그리스도와 잠시라도 격리되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할 만큼 민감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시51:10-12)
2절)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술람미 여인은 성중으로 돌아니며 사랑하는 자를 찾아 돌아다녔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찾아도 자신이 그리워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였음을 토로한다.
연인을 찾아 헤매는 그녀의 움직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3절에서도 이어진다.
이처럼 성안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하는 자의 행방을 묻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 속에서
그녀의 그리움과 연모의 정,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함으로 겪는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꿈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꿈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 이는 하나님과 교제와 사랑을 나누는
우리들 역시도 체험할 수 있는 일이다.
즉 하나님은 보통 우리들의 죄악으로 인해 얼굴을 가리우시지만
우리들이 경건하고 의롭게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처럼 얼굴을 숨기시고 찾도록 만드신다는 것이다.
구약을 보면 당대의 의인 욥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되 찾지 못하자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탄식했으며(욥23:8.9),
다윗 역시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주께서는
대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여러번 호소하였다.(시10:1; 13:1; 22:2; 30:7)
또 신약을 보아도 그리스도께서는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간절한 소원을 짐짓 물리치셨고(마15:22-26)
병들어 죽어가는 나사로를 살려달라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요청에도 발걸음을 늦추셨다.(요11:1-6)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이는 대단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이 부르기 전에
응답하시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들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사65:24)
따라서 여기에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계획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빌라의 테레사나 십자가의 성 요한과 같은 영성의 대가들은
이것이 성도의 연단과 성숙 때문이라고 말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어느 일정한 시기가 되면 하나님을 찾는 자들로부터
얼굴을 숨기심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내면의 죄악을 씻어내도록 하실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더욱 깊은 겸손과 믿음, 순종의 경지로 나아가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성의 대가들은 이러한 상태를 가리켜
‘수동적 정화’의 단계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빛이 그침으로써 잠시 캄캄한 밤처럼 된다고 하여
‘영혼의 밤’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때로 이러한 일을 겪을 때 이는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연단과 정화, 성숙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꽃의 성장에는 햇빛 뿐아니라 밤과 그늘, 달빛과 이슬 또한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이러한 영혼의 밤을 기도와 인내, 믿음으로 통과함으로써
마치 밤에 훌쩍 크는 아이들처럼 더욱 정결하고 성숙한 성도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