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 [북한의 국보 23] 금강산 4대명찰 '신계사'..전쟁으로 파괴됐으나 남북공동 복원으로 화해의 상징 - 남북경협뉴스 (snkpress.kr)
일제강점기 시절 촬영한 외금강 신계사. 임진왜란때 서산대사 등이 승군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던 금강산 4대명찰중 하나였다(자료사진)
신계사는 강원도 고산군 외금강 면에 위치한 사찰로 북한에서는 국보 제95호로 지정했다.
519년(법흥왕 6)에 보운조사가 창건했으며 이름은 이 절 옆에 있던 신계천에서 유래했으며 창건 이후 신라시대이후 고려 때까지 여러번에 걸쳐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전부 불타버리기도 했다.
이후 17세기 이후 2백여 년간 중건 작업이 이루어져 1885년 조정으로부터 직접 모연금을 받아 절 전체를 중수하는 대역사를 이루기도 했다.
신계사는 장엄한 건물들과 외금강에서 유려한 경치 덕분에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와 함께 금강산 4대 명찰로 널리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때 서산·사명대사가 승군을 일으켜 지휘하기도 했다.
또한 근대에 와서는 해방이후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으로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효봉스님이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산내 말사로 미륵암, 보광암, 문수암, 상운암, 보운암, 법기암, 대승암, 삼성암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어 석탑만 남은 폐사지가 되었고 북한은 남은 빈터를 국보로 지정하였다.
신계사는 2007년 10월 13일 복원사업이 모두 끝내고 남북불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을 봉행했다.(방송화면 캡쳐)
이같이 폐허만 남은 신계사는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남북불교계 공동으로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98년 3월 체결된 ‘금강산 문화재 복원을 위한 합의서’를 바탕으로 남측의 ‘금강산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이 복원작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복원 공사는 남한이 자재 등 약 70억 원의 공사비를 지원하고, 북측은 주로 공사 인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2004년 11월 대웅전이 완성되는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이후 2005년에는 만세루, 요사채, 산신각. 3개동의 전각과 삼층석탑 공사가 마무리됐고, 2006년에는 극락전, 칠성각, 나한전 등 7개동의 공사가 진행되면서 마침내 2007년 10월 13일 복원사업이 모두 끝나고,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로서 신계사는 남북 불교 교류와 민족 화해의 상징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 과정에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북핵 문제로 인한 정세 변화 속에서도 복원사업은 일관되게 진행되었다.
신계사 복원이 마무리 되자 유점사 등 내금강 유적들도 복원하는 방안을 타진하기도 했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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