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은 하늘밥을 먹음이니
하늘밥이란 빛입니다. 밥은 빛입니다. 빛은 하늘밥이지만 우리의 밥상살림살이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하늘밥인 빛이 없으면 우리가 먹는 밥은 목숨의 힘을 내지 못합니다. 빛은 밝음, 따스함, 모든 몸을 자라나게 하는 힘, 그리고 다른 밥들을 한울밥되게하는, 새롭게 지어 내는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늘숨이 하늘밥입니다. 산소를 비롯해서 질소, 수소 할 것 없이 하늘숨이야말로 모든 목숨을 살아 있게 하는 하늘밥입니다. 이 한울밥=하늘밥을 받아 모시지 못하면 우리 몸은 지탱할 수 없습니다.
하늘밥은 물입니다. 비가 내려서 다시 땅에 스며들어 가람으로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비로 내려 우리 몸을 지어나가는 목숨들은 하늘밥입니다. 물이 없음은 죽음입니다.
풀이 하늘밥이고 나무가 하늘밥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하늘의 짝이 땅이기 때문에 하늘밥은 곧 땅의 밥입니다. 땅의 밥인 쌀은 빛의 덩어리입니다. 땅의 밥을 땅젖(地乳-박제상,'부도지')이라고 말했습니다. 땅젖은 대지인 어머니의 젖입니다. 땅젖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의 밥을 먹어야 합니다. 사람의 밥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먹고 자라납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죽은 목숨입니다.
사람은 '살다+살리다'의 살림살이입니다. 사람이 '살다+살리다'를 온몸으로 다 이룸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람은 '살다+살리다'의 몸짓=몸일=몸함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듯이, 사랑하지 못함은 마찬가지로 죽은 목숨입니다. 사랑은 목숨받음입니다. 사랑은 나를 줌이고 너를 받음입니다. 너와 내가 '우리'로 목숨 주고 받음=받고 줌인 것입니다. 사람의 밥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한울이기 때문에 사람은 한울의 밥인 것입니다.
21세기 자연수행은 사랑의 다이룸=다사랑함입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 남김없이, 다 주고 다 받음-다 받고 다 줌입니다.
더 주고 다 받음은 한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쪽=오쪽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더/덜 없는 한가운데 자리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일방은 타방에 대한 침략, 공격입니다. 주고받음의 사랑은 고른 살림살이의 살림입니다.
법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더/덜 없음의 길입니다. 더 먹어서 너무 배불러서도 아니 되며, 덜 먹어서 너무 배고파서도 아니 됩니다. 밥통이 바라는 그만큼으로 넉넉해져야 합니다. 사랑-한울사람의 밥-도 그러합니다. 더/덜 없는 사랑이야말로 사람의 밥인 한울사람의 밥이 됩니다. 한울사람의 밥인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한울사람의 밥인 '사랑'은 '살다+살리다'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바로 하늘밥을 제대로 먹을 때 생겨납니다. 바로 따앙밥을 제대로 받아 모실 때 이루어지는 사람의 힘입니다. 사랑은 사람의 힘입니다. 사람은 '살다+살리다)의 집행자(실현자,수행자)입니다. '살다+살리다'를 수행하는 일이 다름아닌 '사랑'입니다. 자연수행입니다.
나만 잘 산다는 건 욕심 집착 아집 교만입니다. 너만을 잘 살게 한다는 건 환상 종교 거짓 편경입니다. 나도 잘 살다+너도 잘 산다=우리 모두가 잘산다(살다+살리다)야말로 참사랑입니다.
참사람만이 참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참'이란 "하늘밥으로, 따앙밥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밥으로 차다"를 뜻합니다.
'참'은 하늘의 것으로만 채워집니다. 따앙의 것으로만 채워집니다. 사람다운 사람의 것으로만 채워집니다. 참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것으로 따앙의 것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것으로만 채워진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4)'바라보다'의 아름다움-바보(머슴)의 미학
하늘바라기, 따앙바라기, 사람바라기... 하늘만 바라다보는, 땅만 바라다보는, 사람다운 사람만 바라다 보는 그러한 사람을 '바보(머슴)라고 합니다. '바라보다'의 바+보입니다.
바(ㅂ+ㅏ) : 참빛 드러내기 -살리기
라(ㄹ+ㅏ) : 한울-목숨의 힘 드러내기 -살리기
보(ㅂ+ㅗ) : 참빛으로 온누리 엮어내기 -살리기
다(ㄷ+ㅏ) : 모두, 다, 모든 몸(뜻) 이뤄내기 -살리기
'바라보다'에서 본 '바보'는 빛의 나라만=한울나라만=제물나라만=자연 온누리만 바라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빛의 나라만 바라보는 사람이야말로 그제나 저제나 이제나, 바보(사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 아름다움을 배울 만한 자리는 바보의 자리입니다. 빛의 나라만 바라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자연수행=제물살림살이의 자리입니다. '바보의 자리'가 바로 '빛의 자리'입니다. 빛의 자리가 다름아닌 태어날 자리, 자라날 자리, 사그라질 자리인 집입니다. 그 집이 바로 우주=한울입니다. 바보(머슴)의 미학은 해방의 미학이고 자유의 미학입니다.
해방한 사람만이 바보(바라보다)입니다.
자유한 사람만이 바보(바라보다)입니다.
인간중심의 문화와 물질은 바보의 미학을 거절합니다. 거부합니다. 역행합니다. 거역합니다. 바보의 미학을 저주합니다. 인간중심의 문화와 문명은 바로 하늘, 따앙, 사람다운 사람을 거역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늘거역자가 인간(人間, Homo sapiens)입니다.
따앙거역자가 인간(人間, Homo sapiens)입니다.
사람거역자가 인간(人間, Homo sapiens)입니다.
인간중심적인 문화와 문명은 바보의 사랑을 거역합니다. 인간중심적인 문화,문명에서 벗어나 한울중심의 문화, 문명으로 거듭나고자 함이 바로 텅 빈 넉넉함으로라는 21세기 자연수행의 길입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라는 21세기 자연수행=사람(살다+살리다)의 혁명=따뜻한=녹이는 혁명으로 바라보다=바보를 회복하고자 하는 거듭남의 제물살림살이입니다.
바보의 미학(바라보다, 빛의 나라만 바라보면서 살림살이하다)은 빛 된 살림살이만 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입니다. 빛이신 한울만 바라보는 사람=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의 종교적 죽은 가르침=목숨 없는= 살아 있지 못한 교리, 교의, 설법, 설교를 넘어서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빛의 나라(하늘나라, 땅의 나라, 사람다운 사람의 나라)=몸의 나라의 사람인 '바보'=빛의 나라만을 바라보다-됨을 가장 보람된 값어치로 삼자는 것이 '바보의 미학'입니다.
'바보'는 '밥보'입니다. 한울밥만 먹는 사람입니다. 한울밥이란 하늘이 내려주시는 하늘밥, 따앙이 지어주시는 따앙밥, 사람이 만들어 주시는 사랑(사람)밥을 말합니다. '바보'는 한울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나라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한울밥만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땅의 밥만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밥만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보'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바보의 미학은 사람다운 사람의 아름다움입니다.
5)큰절올림은 몸은 우주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우주입니다.
우주는 몸입니다.
씨몸으로
알몸으로
몸은 우주로 살아 있습니다.
우주는 몸으로 살아 있습니다.
좁쌀 한 알은
모래 한 알은
땅흙 한 알은
물 한 방울은
피 한 방울은
살 한 점은
털 한 줄은
우주입니다.
몸은 우주로 살고
우주는 몸으로 살아갑니다.
우주인 몸 앞에서
큰절 올림은...
이것이 따뜻한=녹이는 사랑의 혁명= 텅 빈 넉넉함으로 반드시 이루어 나가야 하는 21세기 자연수행의 길입니다. 다른 말로 '하늘,땅,사람들이 함께, 하나로, 한몸으로 살다'이고 죽는 한몸짓기살림살이입니다.
6)이 길 걸을 수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아닌
나로 피었다 진다
영근 씨알 공그리면서
매끄러운 숨결 아니라 해도
거치른-이 길 걸을 수 있어서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아라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아닌
나로 따슨 봄날 맞이한다
이 길 걸을 수 있어서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 , 제5부 '자연수행의 길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중에서)
첫댓글 현실에서는 바보이면서 여기서 말하는 바보는 까마득하게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