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나일론
냉연신법이 부리는 묘기. '지혜나 노력보다 운이 앞선다' 는 말이 있다. 고대 북 유럽의 무용담에 의하면, 바이킹들이 리이프 에릭슨을 따라서 북대서양의 거친 바다를 지붕도 없 는 배로 건너가는 위험한 일에 목숨을 건 이유는 그가 강하거나 용감하거나 지혜로웠기 때문에 아니라(설령 그가 이 모두를 다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운이 따른다고 바 이킹들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에 있어서 리이프란 행운(lucky)을 의미하는 것이며 '리이프 에릭슨' 이란 에릭의 행운을 타고난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 노르웨 이식 이름이다. 그는 북유럽의 그린랜드에 처음으로 식민지를 개척한 애릭 더 레드의 아들 이었다. 서기 1000년 경의 리이프 에릭슨에 의한 북아메리카의 발견은 세렌디피티의 또 하나의 예 이다. 리이프는 노르웨이 국와의 명령을 받고 그린랜드를 크리스트교국으로 선언하기 위해 아이슬 랜드로부터 그린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악천후 때문에 코스를 벗어나 멀리 떠밀려서 뉴펀들 랜드 섬에 표착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일론의 발견 이야기는 이 행운의 대표격이라고 할만하다. 월러스 흄 카로더스는 일리노 이대학과 하버드대학의 교수들로부터 '지금까지의 가장 우수한 유기화학자' 라는 추천을 받고 뒤퐁 사이의 새로운 기초화학 연구계획을 지도하기 위해 초빙되어 왔다. 카로더스는 셀룰로오스, 실크, 고무 등의 천연 고분자 구조를 해명하고 그것들과 합성물질 을 목적으로 계획에 착수했다. 그의 그룹은 1943년까지 귀중한 기초적 성과를 올리기는 했 어도 실크를 닮은 섬유를 만드는 것은 실패로 깥났다는 결론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였다. 제자인 화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느닷없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거기 서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그때까지의 실패를 1939년의 뉴욕 만국 박람회에서의 '석탄과 공기와 물로 만들 어진 합성실크! 나일론' 이라는 유명한 광고가 말하는 것처럼 대성공으로 바꾼 것이다. 'Journal of Chemical Education'지의 1981년 7월호에서 칼 S. 마벨이 나일론을 상업적 개발 로 이끌어간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일론(실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폴리아미드)은 이미 만들어지고는 있었으나 특벽하게 유용한 어떤 성질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특허 출원도 하지 않고 선반 위에서 잠자야 했다. 연구는 보다 잘 녹고 취급하기 쉬운, 따라서 실험실에서 조사하기 쉬운 폴리에 스텔의 계열에서 계속 되었다. 이와 같이 소프트한 재료를 연구하고 있을 때 줄리언 힐이 폴리머의 작은 덩어리를 유리 막대기 끝에 모아 그것을 잡아당겼더니 늘어난 모양은 외견상 으로 실크와 아주 비슷하였다. 이것은 그를 포함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보고에 의하면, 어느날 카로더스가 외출하고 없는 동안에 힐과 그의 동료들은 이 실험 재료 들 중의 하나가 어느 만큼이나 늘어나는지 시험해 보기로하여 작은 덩어리를 유리막대기 끝 에 붙여 넓은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실을 뽑아냈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뽑힌 실의 모양이 실크와 흡사하다는 것과 이렇게 해서 폴리머 올이 얻어지고 제품의 강도가 증가한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연구하고 있던 폴리에스테를 섬유 제품으로 만들게에는 용융점이 너무 낮았기 때문 에 이전에 방치해 두었던 폴리아미드류로 되돌아가, 이러한 섬유질 역시 냉연신하면 장력이 향상되어 우수한 직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라멘트나 톱니 바퀴 그리고 기타 성형 품 등도 냉연신법으로 질긴 폴리머로 만들었다. 마벨 박사가 나에게 말한 바에 의하면, 뒤퐁 사는 나일론에 관한 물질 합성법을 특허로 취득하지 않았으며, 오직 냉연신법에 관해서만이 라고 한다. 우연히 발견된 이 과정은 뒤퐁 사가 매우 중요한 제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되 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소란이 세계의 경제 및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진 것 은, 줄리언 힐과 그의 동료들이 장난삼아 폴리에스테르를 잡아당겨서 생긴 실이 모양과 물 리적 성질에 대하여 과학적 중요성으로 눈을 돌릴 줄 아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25-1에서는 냉연신법(냉동으로 뽑아내는 방법)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준다. 가 장 일반적이 나일론은 나일론-6,6이라고 한다. 두 개의 6은 두 종류의 모노머 단위인 탄소 원자의 수를 의미하며 하나는 육탄소인 디칼본산(산소원자 함유)이며 또 하나는 육탄소인 디아민(질소원자 함유)이다. 두 개의 모노머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폴리머를 만들 때는 제 각기 모노머 단위의 양끝 사이에서 일분자의 물(H2O)을 제거하여 그림 상부에 명시했듯이 두 종류의 모노머가 사슬 속에서 하나씩 서로 이어진다. 냉동으로 뽑아내는 과정에서 길다 란 폴리머 분자가 서로 평행으로 있으며, 하나의 폴리머 분자의 산소가 각각 옆 사슬의 질 소와 수소결합 되도록 놓인다. 로우프 속에 따로따로 놓여있는 실이 서로 꼬여서 케이블을 만들면 대체로 같은 방법으로 각각의 폴리머 분자는 결합되며, 길고 가는 폴리머 분자의 수 소 결함에 의한 집합 방법이 나일론 섬유를 매우 강인하게 만든다. 같은 원리가 실크 섬유 의 강인성의 설명에도 적용된다. 실크의 천연 폴리아미드 분자는 각 분자를 서로 끄는 수소 결합이 될 수 있게 놓여져 있다. 누에는 끈적끈적한 실크 섬유를 뱉아낼 떄에 냉연신을 한 다. (해설) 합성 섬유로서의 나일론의 성공의 기초가 된 냉연신법은 원래 폴리에스테르에서 발 견되었는데 카로더스의 폴리에스테르는 직물용의 섬유로서는 좋지 않았다. 나일론이 합성 섬유로서 생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화학자들이 몹시 질기고 우수한 섬유인 폴리 에스테르를 개발하여 테럴런(Terylene)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를 시작했다. 카로더스의 그룹 에서도 여러 디칼본산과 디알콜로 많은 폴리에스테르를 만들었는데, 아직 실험해 보지 않은 디칼본산이 테레프탈산이며 이것이야말로 우수한 섬유가 되는 바로 그 디칼본산이었다. 그러나 뒤퐁 사는 폴리에스테르 사업에서도 경영을 잘해 이익을 얻었다. 왜냐하면 영국에 서 테럴린에 사용된 폴리에스테르를 평면으로 잡아당기면 강한 필름이 된다는 것을 뒤퐁 사 의 필름 사업부에서 발견했던 것이다(섬유의 냉동식과 같은 원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 필 름은 마일러라는 이름으로 시판되었으며, 또한 거의 동시에 뒤퐁사의 테럴린이 데이크론 (Dacron)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나왔다. 몇 해 전에 내가 뒤퐁 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이 폴리에스테르섬유에 이름을 붙일 때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뒤퐁 사에서는 사내에서 이름 콘테스트를 실시했다. 이름이 발표되고 시상식 전날 밤에 콘테스트의 책임자 가 걱정이 되어서 그 선택된 이름이 이미 다른 상표로서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체크해 보았는데 걱정한 대로 마지막 체크에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몹시 서 두른 뒤에 차점이던 데이크론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선택되었다. 데이크론이라는 이 름이 달리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발음상의 오류가 있기 쉬운 상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뒤퐁 사의 기본 원칙에 위반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나일론(nylon)이나 올론(orlon) 은 이것 외에 다른 발름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데이크론(Dacron)의 a는 '아'라고도 ' 에이'로 발음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뒤퐁 사에 방문하여 누군가에게"Dacron을 어떻 게 발음해야 하는가?"라고 물어보았을 때 듣게 되었다. 데이크론은 그것만으로 또는 울과 섞어서 신사용 양복감의 섬유로서 보급되었다. 마일러 필름은 1950년대부터 마이크로 필름이나 오디오용 자기테이프에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콤 팩트 디스크의 재료로서 용도가 넓어졌다. 최근에 재미있는 응용으로는 1988년의 4월에 에 게해의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건너감으로 해서 신기록을 수립한 인력 비행기 다이달로스호 의 날개를 싸는 가장 얇고 가볍고 질긴 천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39년 뉴욕 만국 박람회에서의 나일론의 등장은 그 때까지 가장 볼만한 훌륭한 소비자 이 벤트 중의 하나였다. 뒤퐁 사는 '석탄과 공기와 물' 로 나일론을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방법 을 도표로 설명하는 전시를 하고 그 곁에서는 매력적인 모델이 거대한 유리 시험관 속에서 새 스타킹을 과시하고 있었다. 젊은 화학자였던 나에게 있어서 그 전시는 정말 충격적이라 고 할 만하였다. 1940년 5월 15일 뉴욕시에서 '나일론' 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 불과 몇 시간 동안에 400 만 켤레의 스타킹이 팔렸다. 그러나 바로 전운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여성이 이 새로운 섬유에 열을 올리기도 전에 주로 군사용 낙하산의 재료로 사용되어 이와 같은 판매 는 그 후 오랫동안 재개되지 않았다. 새로운 나일론을 파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가지고 있는 나일론까지 낙하산을 만들기 위해 공출할 것을 장려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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