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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은 생애는 이렇게 살렵니다
2026년 7월 19일 / 살전 5:15-18, 마 5:13-16 / ♬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유종의 미(有終之美)’란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여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것을 뜻한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살다 갔지만, 처음보다 끝이 더 아름다웠던 ‘유종의 미’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꼽으라면 몇 사람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한 대표적인 인물들과 그들의 삶이 주는 교훈을 나눈다.
❶ 사도 바울 :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시작은 비록 교회를 박해하는 자였으나, 회심 이후 평생을 복음을 위해 헌신했다. 수많은 고난과 감옥 생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고백을 남겼다.
딤후 4:6-8 /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인생의 종착역에서 후회나 미련 대신 주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담대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했다.
❷ 요셉 : 용서와 약속으로 장식하다
청소년 시절 형들의 배신으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애굽의 총리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복수 대신 용서와 화해를 선택했다.
창 45:4-8 /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 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❸ 여호수아 :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 그는 백성들에게 땅을 다 분배하고 노년이 되었을 때,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단호하고도 아름다운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선언은 큰 감동적이었다.
수 24:14-15 /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굳건히 심어주며 지도자로서 최고의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❹ 다니엘 : 평생을 한결같았던 기도의 사람
소년 시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3왕조에 걸쳐 총리의 자리를 지켰다. 그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한결같음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던 다니엘은 인생의 황혼기에도 여전히 영적으로 맑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 유종의 미를 거둔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➀ 시선은 오직 하나님께 세상의 성공이나 노년의 안락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② 변함없는 신실함 : 상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 젊을 때나 늙을 때나 첫 신앙의 순수함을 유지했다.
③ 아름다운 영적 유산 : 마지막 순간에 후손과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유산으로 남겼다.
설교 제목을 ‘나의 남은 생애는 이렇게 살렵니다’라고 하면서 ‘유종의 미’란 말을 나에게 적용하면서 먼저 은혜를 받고자 한다.
유종의 미란 말처럼 지금까지의 나의 생애가 부족하고 볼품없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나의 생애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루라는 시작과 끝을 주셨고 또 월(月)과 한 해(年)를 주시고 일생이라는 기회를 주셔서 시작과 끝을 살게 하셨다. 그래서 하루를 마감할 때도 혹 낮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 4:26)고 하셨으며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 6:34)고 하셨다. 하루 동안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그날 일은 그날에 마감하고 좋은 쪽으로 마무리해야 내일을 좋게 시작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우리의 후손과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성공적인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살아갔으면 한다. 내일은 오늘을 아름답게 장식한 사람에게, 내일은 오늘을 보람있게 준비한 사람에게 밝음으로 찾아올 것이다. 영원한 천국은 오늘이라는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행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 찬양사역자 김석균(현 76세) 목사가 쓴 찬양 ‘난 예수가 좋다오’라는 많은 크리스천의 신앙 고백적인 노래로 불리고 있다. 김 목사는 400여 곡의 찬양을 작사·작곡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찬양사역자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삶의 존재 이유’라고 밝히며 올해로 38년째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김 목사는 대중가수로 데뷔했다. “무대에 섰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 갈급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한참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답을 찾았습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1981년부터 찬양사역자의 길로 들어섰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96년 안양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학석사와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여 년간 서울 문일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찬양 사역을 병행한 것. “고3 담임을 맡았던 쉰 살에 문득 ‘하나님은 내 인생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의 계획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봐 걱정도 됐습니다.” 김 목사는 곧장 오산리 순복음기도원으로 향했다. “며칠을 기도한 후에 얻은 결론은 하나님이 상황을 통해서 답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답은 바로 왔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친 후 첫 식사 때부터 목이 따끔거리더니 이후 3개월 동안 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사의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명백한 신호였습니다.” 2000년 4월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그해 8월 퇴직했다. 목은 거짓말같이 나았다.
그의 대표작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곡이 있다.
사랑의 종소리, 주를 처음 만난 날, 돌아온 탕자,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금보다도 귀하다, 나의 참 친구, 고백, 예수가 좋다오, 눈물의 참회록, 나는 행복해요, 용서하소서, 내가 너를 도우리라,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주님의 빚진 자, 쓴잔, 주의 길을 가리,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해같이 빛나리, 하나님의 약속 등 다수
김석균 목사의 대표적인 복음성가 중 하나인 ‘나의 남은 생애는’은 2007년도에 작곡(완성)되었다. 곡이 완성된 후 곧바로 윤은주 사모(소프라노)에게 전달되었으나, 음반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면서 대중에게 공식 음원으로 발표되어 널리 알려진 것은 2018년이다.
▶ 나의 남은 생애는 (작곡 줄거리)
아랫글은 2020년 4월부터 시작한 <김석균목사와 함께>라는 유튜브 계정에 올린 글이다. 그곳을 방문하면 김석균 작품들의 작곡스토리와 함께 찬양곡들을 들을 수 있다.
* 나의 남은 생애는 / 작사·작곡 김석균 / 찬양 윤은주(소프라노)
29,200의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인 남자의 평균 수명은 80세가 조금 넘는다. 대략 80세로 가정했더니 사는 날 수가 29,200일이다. 지금 60세라면 7,300일, 70세라면 3,659일이 남았다. 4,000일이 아니라 100일이 남았다면. 아니, 더 좁혀서 한 달이 남았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며,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삶의 어떤 것을 바꾸어보겠는가? 그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헬렌 켈러가 53세에 쓴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 떠올랐다.
【만일 내게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나는 내 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이나 가르쳐준 내 스승 에미 설리번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손끝으로 만져 익숙해진 그 인자한 얼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몸매를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둘 것이다. 그 다음엔 내 친구들을 찾아갈 것이며,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리라.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잎사귀들, 들에 핀 예쁜 꽃들과 저녁이 되면 석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일어나면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광경을,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전시장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사흘 동안이나마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헬렌 켈러의 유일한 소원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내가 평생 누리고 산 것을 그녀는 소원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남들이 평생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나도 소원으로 삼고 살아보리라는 깨달음이 왔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한 달을 살지 일 년을 살지 모르지만 남은 생애는 이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1) 나의 남은 생애는 복음의 편지가 되어 살리라. 주님이 내게 맡긴 소중한 사명인 복음의 편지가 되어 바울의 고백처럼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사명의 길을 달려가리라. 이 사명의 길에서 죽으리라.
2) 나의 남은 생애는 섬김의 향유가 되어 살리라.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성실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라고 권면했다(골 3:23~24).
W. Harris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쳐지는 섬김이 종류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수행될 때의 정신에 따라서 영예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성실한 섬김이 낳은 이 열매는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며 사람으로부터도 존경과 감사를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섬김의 참 뜻은 자기희생이다.
3) 나의 남은 생애는 주님의 기쁨이 되어 살리라. 그동안 나의 신앙생활은 이랬다. 예배는 나의 기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기도는 나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이었으며, 찬양은 내 귀를 즐겁게 하는 것만 골라서 들었다. 순간순간을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해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를 드리리라.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부르리라. 주님의 필요가 되어 하나님을 감동시키며 살리라
4) 나의 남은 생애는 사랑의 샘물이 되어 살리라.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 되어, 하나님 사랑의 편지가 되고 사랑의 통로가 되어 살리라.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을 넘어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으로 살리라.
5) 나의 남은 생애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살리라. 나는 너무나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 복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특혜였다. 헌데 그 복을 나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만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이 있는 사람으로 살리라.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죄인들을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밤낮 묵상하는 자이다’(시 1:1~2)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살지 않고 주님(성경)이 가르쳐준 대로 살리라.
6) 나의 남은 생애는 순백의 영혼으로 살리라. 순백의 영혼의 산다는 것은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항상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분의 통제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성령님이 인도하실 것이다(골 1:22).
내가 죽고, 내 안에 주가 살면 순백의 영혼으로 주 앞에 서게 되리라.
7) 나의 남은 생애는 맡은 일 충성하며 살리라. ‘주님, 제가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서 특별히 한 일이 무엇입니까?’ 평생 이 질문을 하며 사역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원을 끌어다 쓴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사탄의 하수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어 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일 뿐이다. 무슨 특별한 일을 했다고 주인에게 보상을 요구하겠는가? 빚진 자의 삶은 오로지 충성일 뿐이다.
8) 나의 남은 생애는 행복한 전도자로 살리라. 행복한 전도자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전도의 시작은 내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 영과 육이 총동원이 되어야 한다. 시간, 재물, 섬김, 인내, 사랑, 긍휼, 나눔과 베풂.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올 때 맛보는 그 행복은 수없는 투자의 열매이다. 행복한 전도자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복음과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9) 나의 남은 생애는 정직한 예배자로 살리라. 정직한 예배자는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다. 정직은 겉과 속이 같은 것을 말한다. 신앙이 곧 생활이요, 생활이 곧 신앙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다. 거듭난 자, 회개한 자가 정직한 예배자이다.
10) 나의 남은 생애는 하늘에 속한 자로 살리라.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시라.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육체의 욕망과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은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것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신과 분열과 이단과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이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한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다(갈 5:16~21).
하늘에 속한 자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제라도 나의 남은 생애는 이렇게 살아보리라.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빚을 갚으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주님을 찾으며 살리라.
김성주 박사는 “성공이란 얼마만큼 돈을 벌었느냐 얼마만큼 유명해졌느냐 얼마만큼 영향력 있는 지위에 올랐느냐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판단하는 기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느 순간엔가 데려가신다. 육체의 숨이 멎고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 그 순간 하나님께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을 듣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라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는 모습을 본 적이 드물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배우고, 따르고, 본받는 사람이 제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제자이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서 날마다 그 삶 속에서 예수를 드러내는 사람이 제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를 배우는 것인데 지금까지 거꾸로 배웠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에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4복음서 다음에 사도행전이 나왔다는 것이다.
오늘도 ‘겸손’이란 곡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❶ 슬픔 속에서도 울지 않는 것 억울해서 울지 않는 것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도 걱정하지 않는 것 사랑할 수 없는 사람조차도 사랑하며 품어주는 것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용서하여 주는 것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후렴> 겸손은 겉 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속사람이 드러나는 것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❷ 참을 수 없어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조건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것 칭찬이나 비난 가운데서도 침묵하며 살아가는 것 말씀 순종하길 어려울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한 분들을 본받으련다.
1.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무엘 선지자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응답으로 태어났다. 한나는 그의 서원대로 아직도 어린 사무엘을 멀리 떨어진 실로로 보내어 제사장 엘리에게서 나실인으로 자라게 했다. 사무엘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손길도 받지 못했지만 건강하게 자랐다.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가 죽자 제사장, 예언자, 사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무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도했다. 나이가 많아 늙자 백성들은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하는 수 없이 사무엘 선지자는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라는 걸출한 청년을 왕으로 세웠다. 청렴결백한 사무엘 선지자는 모든 권력을 왕에게 물려주고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했다.
삼상 12:2-3(현대어성경) / 그 왕이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가 여러분 앞에 서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나는 이미 백발노인이 되었으며, … 나는 젊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을 인도하며 살아왔으나 3) 이제는 그러한 자리를 떠나면서 여러분의 정직한 판단을 받고 싶습니다. 내가 그동안에 무슨 불법을 행하였다면 지금 여호와 앞에서 나를 규탄하고, 우리가 세운 왕 앞에서 나를 고발하십시오! 내가 어느 누구의 소나 나귀를 빼앗은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어느 누구의 물건을 강탈하거나 어느 누구를 억압한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뇌물받고 그릇된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습니까?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전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무려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5년, 10년, 20년도 아닌 40년인데, 사무엘에게 아무런 부정, 비리도 없었을까? 그러나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삼상 12:4 / 이스라엘 백성이 대답하였다. ‘저희 중에서 어느 누구를 억압한 일도 없으셨고, 어느 누구에게서 무엇을 강탈하거나 무슨 뇌물을 받은 일도 없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노년이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백성들과 약속하였다.
삼상 12:23 / 나도 계속 여러분을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드리고, 가장 옳고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내가 만약 기도하기를 그친다면 스스로 죄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사직에서 물러난 후 바로 하나님 말씀 사역에 힘을 기울였다. ‘선지자 생도들’을 모아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쳤다. 고향 마을 라마(삼상 19:18-24)와 기브아(삼상 10:5-7)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나중에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도 학교가 세워졌다(왕하 2장, 왕상 20:25).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도록 나이 든 세대에게 명하셨기 때문이었다(신 11:18-20).
신 11:18-20 / 그러므로 내가 전하는 이 명령을 모두 여러분의 마음과 가슴에 새기고 항상 이것을 기억하도록 여러분의 팔목에 매달아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으십시오. 19) 또 이것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치십시오. 여러분의 집에서 앉아 있을 때나 여행을 할 때, 잠자리에 누울 때나 잠에서 깨어날 때 등 여러분은 언제든지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가르치십시오. 20) 여러분의 문기둥과 성문에도 이 말씀을 기록해 두십시오.
2. 다윗처럼 인내로 참고 살련다.
1. 믿음으로 인내한 다윗 / 사무엘상 24:1-2의 기록을 보면 사울이 온 이스라엘 전국에서 선발된 최고 정예병들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 일행을 제거하려고 엔게디 광야의 험한 산지에 이르렀다. 다윗을 따르는 사병들은 600명 정도이니 이보다 다섯 배가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에 다윗 일행을 섬멸하려고 작정하였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보호 아래 있는 다윗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모두 15번이나 도피하였다. 다윗은 유다광야를 중심으로 도피하느라 젊은 나날을 다 보냈다. 유다광야의 날씨는 사해바다 옆에 있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덥다. 보통 40-45도로 가장 더울 때는 54도가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닌 십여 년을 피난민으로 살아야 했다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다윗은 해냈다. 15번의 도피생활 중에 사울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절망하거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내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문제도 결국 믿음과 사랑 그리고 인내의 문제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는 믿음의 후배인 우리에게 이렇게 다윗의 삶을 예로 들어 권면한 것 같다. 야고보서 1:2-8을 여러번이라도 읽고 그대로 실천하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이 있는데 여러 가지 시련이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오며 피할 수 없다. 그것도 한두 가지 시련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그때 우리가 할 것은 인내이다.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순간이 있는데, 이것을 ‘포기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문제는 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어떻게 뛰어넘느냐?’이다. 누구나 거룩함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더는 못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고 그 다음은 못 한다.’ 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뛰어넘는 것이 진짜 인내이다. 승리하는 비결은 끝까지 참는 것이다.
2. 처참한 상황에서도 경건한 모습을 잃기는커녕 빛 된 삶을 사는 다윗 / 다윗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거룩하고 신령한 사람인지? 아니면 바보같이 멍청한 사람인지? 자기에게 해가 될지라도 그리고 남의 조언(助言)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기준을 두고 있는 다윗은 사울이 그처럼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한 번도 사울과 맞서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사울을 해칠 수도 있었다.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사울이 던진 창을 주워 다시 사울에게 던질 수도 있었지만, 창을 던지기는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윗의 마음 한쪽 귀퉁이에서는 ‘너도 사울을 향해 창을 던져라’라는 악마의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만약 그때 다윗이 창을 사울에게 던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 마음에 꼭 맞기는커녕 다윗 역시 사울 왕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
사무엘상 24장이나 26장에 나오듯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되시오.’라고 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인다 해도 정당방위로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다. 직접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울을 죽이도록 가만히 있을 수도 있었지만, 다윗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류하며 자기를 원수처럼 끈질기게 죽이려는 사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피하기만 하였다.
▶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다윗은 원수 같은 사울왕의 목숨을 맡기면서 자기는 결코 왕을 해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하나님! 임금님의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사 악한 영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이다. 이 대목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모범 답안이다.
길보아산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즉시 자기 옷을 갈기갈기 찢고 슬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와 함께 있던 부하들도 모두 옷을 찢으며 행동을 같이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사울과 요나단을 비롯하여 길보아 전쟁에서 전사한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들을 위하여 슬퍼하면서 저녁때까지 단식하고 울었다(삼하 1:11-12).
3.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성도답게 살련다.
마 5:38-42 / 또 모세의 율법에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의 눈을 상하게 하였거든 자기 눈도 상하게 하라. 만일 남의 이를 부러뜨렸거든 자기 이도 부러뜨리라'고 하였다. 39)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➊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➋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40) ➌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겉옷까지 벗어주라. 41) ➍ 비록 가고 싶지 않더라도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➎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➏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
마 5:43-48 / 또 모세의 율법에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있다.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➊ 원수를 사랑하라! ➋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미덕이 되겠느냐? 세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47) 만일 너희가 너희 이웃들과만 가까이 지낸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이방인들도 그렇게는 하고 있다. 48) ➌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용서하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수 있지만, 용서하면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복수하면 사람을 잃지만, 용서하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원수를 선으로 갚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평안과 더불어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지만, 원수를 악으로 갚으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면, 우리 또한 남을 용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마태복음 18:21-35에서 용서에 대해 교훈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8:35 /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지만, 만일 너희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음과 생각 속에 증오를 품으면 밤에나 낮에나 한순간도 이 증오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것을 해결하기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한순간 혹은 수년에서 일평생 지속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분노의 습관들은 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체하게 하여 혈액순환을 막는다. 점점 혈액을 탁하게 만들고 몸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긴장되고 뻣뻣해지게 된다. 용서 못할 미운 대상을 품고 있으면 그 증오의 독이 상대에게 미치기 전에 먼저 나의 간을 먼저 상하게 하는데 내 몸에 먼저 독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움과 증오는 먼저 자신을 찌르고 계속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이 시간 우리도 사무엘이나 다윗처럼 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남은 생애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는 것이다.
3. 먼저 작은 결론을 맺으렵니다.
매일 매일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그의 일생을 좌우한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더럽고 추한 것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거기 동화되어 간다.
큰 바위 얼굴이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매일 매일 뒷산에 인자한 모습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바라는 큰 바위 얼굴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큰 바위 얼굴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큰 바위 얼굴을 닮으려 했던 주인공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큰 바위 얼굴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성경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 속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살전 5:15-18 /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언제나 서로 선을 베풀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느냐? 너희는 아무 데도 쓸모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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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몸의 80% 이상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만큼 물은 만병치료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몸이 산성화가 되면서 점점 우리 몸은 늙고 병들어 간다. 때문에 알칼리성이 중화시켜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알칼리성식품이라고 한다. 말기의 암 선고를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물치료법을 통해 암을 완전히 극복한 사연은 이미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으며 많은 일반인분들이 치료 후기를 올려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건강한 치료법인 물치료법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그런데 물의 파동을 연구하는 에모토 마사루 박사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이다. 감사, 사랑 고마움을 말로 하거나 글로 표시한 다음 물을 영하 4℃에서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형태에서는 물의 육각 결정체가 선명해진다. 또 같은 물을 가지고 분노, 짜증을 말하거나 글로 표시한 다음 위의 조건과 동일하게 촬영하면 물의 육각 결정체가 불안전하게 되는 사진을 봤다.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주어진 여건에 감사와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몸의 피가 육각수 형태의 좋은 피가 돼 전신을 돌며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수 있지만, 용서하면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복수하면 사람을 잃을 수 있지만, 용서하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지만, 원수를 악으로 갚으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면,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선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18:21-35에서 용서에 대해 교훈을 하시면서 이런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마 18:35 /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음과 생각 속에 증오를 품으면 밤에나 낮에나 한 순간도 이 증오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것을 해결하기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한순간 혹은 수년에서 일평생 지속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분노심의 습관들은 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체하게 하여 혈액순환을 막는다. 점점 혈액을 탁하게 만들고 몸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긴장되고 뻣뻣해진다. 용서 못할 미운 대상을 품고 있으면 그 증오의 독이 상대에게 미치기 전에 먼저 나의 간을 먼저 상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내 몸에서 먼저 독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움과 증오는 먼저 자신을 찌르고 계속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 예수님이나 스데반집사처럼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눅 23:34 /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행 7:59-60 / 그러나 돌들이 우박처럼 날아오는 속에서 스데반은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말을 남긴 뒤 그는 눈을 감았다.
■ 어느 목사님의 간증 / 내가 군대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한 때였다. 하루는 자취방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군대 고참에게 구타를 당한 생각이 났다. 그 고참은 나를 30분 동안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했다. 그때만 해도 군대에 구타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때였다. 그 생각이 나자 갑자기 내 마음은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이 맹렬한 불길처럼 타올랐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며 그 고참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있노라니 한 5분도 안 되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나는 하나님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성령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제 마음에 ‘그 고참을 긍휼히 여기고 기도하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고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자 정말 그 고참 역시 폭력과 악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나자 내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그 후로는 그가 생각이 나면 분노 대신 긍휼의 마음과 기도가 나왔다. 그 기도는 나 자신을 파괴하는 분노와 복수심으로부터 해방해 주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 5:44-48)고 하신 이유였다. 이렇게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은 거룩함이 있다. 우리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평화, 기쁨, 거룩함도 없다. 복수심을 버리고 원수를 사랑할 때 평화와 기쁨,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눅 11:9-13).
■ 벤허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을 지켜보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듣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자 갑자기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 영화는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기 직전에 먼저 벤허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증오와 복수심을 버리고 용서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을 암시하고 있다. 벤허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전에 자기 집의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된 에스더에게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면서 비로소 자기의 마음속에서 로마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사라졌음을 알려준다. “그때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고 그분의 그 음성이 내 손의 칼을 거두어 가는 것을 느꼈소.”
웨슬리 목사는 회개 열매와 믿음의 열매를 강조하였다. 웨슬리 목사는 ‘진짜 회개, 진짜 믿음은 반드시 선행(good works)으로 이어진다’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모든 성도는 이웃에게 해가 되는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고, 모든 종류의 선을 행하라’라고 설교했다.
웨슬리 목사가 말한 선행(good works)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혼을 위한 선행’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몸을 위한 선행’이다. 영혼을 위한 선행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는 것, 병든 영혼들을 위한 선행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배고프고 헐벗은 자들, 갇힌 자들을 돌보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 작가 정연희 [원수사랑] /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무슨 말입니까? 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게는 그리도 엄격하시면서 어찌 내 원수에게 그리 관대하십니까?” / “보아라, 나와 함께 하는 것아! 네가 원수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구나,” → 요나와 니느웨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어도 ‘어디까지 알아듣느냐?’가 문제가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은 알아듣는데, 하나님께서 왜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하시는지 그 뜻을 모르면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
■ 미국 에모리대학 정신의학과 부교수 찰스 레종 박사에 따르면,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수준을 넘어 누군가에게 적개심을 지속적으로 품으면 자기 육체의 건강도 병들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에 따르면 미음과 증오의 감정 응어리를 풀지 않으면 호르몬, 면역체계에 교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마음에 분개와 복수심을 품으면 신체가 본능적으로 그 대상과 싸울 준비를 하는데 이러한 끊임없이 싸울 대비는 혈압과 심박동수 증가와 같은 변화로 이어진다고 한다. 마침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황 발작을 겪으며, 체내에 C반응성단백질과 같은 화학물질이 쌓이면서 심장과 신체 다른 부위에 큰 타격을 준다고 하였다. 이는 혈압과 심박동수 증가와 더불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현상을 발생시켜 부정맥, 심장질환 등으로 돌연사하게 한다고 하였다.
결국 화병(火病 - 억눌린 분노에 따른 정신적·감정적 장애)에 걸려 죽는다는 말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셈이다. 또한 미음과 증오의 감정 응어리를 풀지 않은 채 장시간 지내면 호르몬, 면역체계에 교란을 장시간 방치한 결과를 빚어서 결국 호르몬 조화가 깨져서 각종 몸의 이상 현상에 시달려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또 인체 면역계의 장시간 교란은 균형과 조화가 깨져서 그 면역계가 손상되거나 약화하면 신체가 더욱 쉽게 감염되게 된다. 이렇게 사람에서 장시간 면역결핍은 암세포를 파괴하지 못하는 지경이 오게 되어 당연히 각종 암에 걸린다. 그리고 그 면역계의 장시간 교란은 자가 면역질환으로 인해 만성 염증성질환으로 일평생 고생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 엔돌핀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엔돌핀은 사실 코티졸, 엔케팔린과 함께 3대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엔돌핀은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뇌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가장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의 200배에 해당하는 진통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오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엔돌핀이라는 용어가 단지 하나의 호르몬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내재성 통증 조절 성분을 지닌 호르몬을 모두 총칭하는 용어가 바로 엔돌핀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뇌 속에는 여러 가지 뇌파가 나오는데 깨어 있는 낮 동안에는 우리 몸에 해로운 베타(β)파가 나온다. 이것은 100%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뇌파이다. 그래서 오감으로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듣고, 본다고 할지라도 남는 것은 점점 스트레스와 피곤뿐이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알파(α)파가 나온다. 그러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것은 병을 고치는 호르몬으로 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은 피로도 회복하고 병균도 물리치고 암세포도 이기게 한다. 그러므로 잠을 푹 자고 나면 저절로 병이 낫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잠을 자는 것은 오감이 차단되는 것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듣지도 않고 생각도 안하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 그런데 깨어 있을 때도 알파(α)파가 나올 때가 있는데 사랑할 때와 웃을 때와 감동 받을 때라고 한다. 사랑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뇌 속에서 알파(α)파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선물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뇌 속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도르핀이 나온다. 이 엔도르핀이 분비가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진다. 그런데 작은 일이라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엔도르핀이 더 잘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를 잘하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늘 원망과 불평하며 무슨 일이 그렇게 못마땅한지 늘 불만에 쌓여 인상을 찌푸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엔도르핀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암을 유발시키는 나쁜 독이 몸에서 배출이 되기 때문에 건강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망과 불평하며 부정적이며 짜증을 잘 부리는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보다 5-10년 더 일찍 죽는다고 한다. 병들고 빨리 죽으려면 매일 원망과 불평하며 살면 된다. 그러나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하며 성경에 나온대로 향수하려면 늘 감사하면서 살면 된다.
■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서 ‘다이돌핀(didorphin)’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엔돌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그럼 다이돌핀은 언제 우리 몸에서 생성될까? 의외라고 해도 될까 모르겠지만 엄청 의외였다. 바로 가장 감동을 받았을 때 다이돌핀이 우리 몸에서 생성된다.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감동의 예(?) / 노래와 춤으로 감성지수가 높아져 감동받을 때, 멋진 풍경에 감동받았을 때,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받았을 때,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자신이 원하는 큰 목표를 성취했을 때,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깊이 울려 퍼질 때, 매우 힘들 때 누군가로 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았을 때, 환상적인 사랑에 빠져있을 때, 마음속 깊이 한없는 기쁨이 용솟음칠 때에 다이돌핀이 생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다이돌핀이 생성될 때는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이다. 이때 우리 몸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전혀 반응이 없던 호르몬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안 나오던 엔돌핀, 도파민, 세라토닌이라는 아주 유익한 호르몬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특히 굉장한 감동이 왔을 때 드디어 ‘다이돌핀’이 생성된다. 이 호르몬들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켜 암을 공격한다. 감사를 느낄 때 혈류는 뇌로 많이 들어가고 심장파동과 뇌파는 아주 일정하며 안정됐다. 반대로 분노할 때는 혈류가 아주 적게 들어가고 심장파동과 뇌파가 불규칙하다.
■ 천부적인 달란트로 찬송시를 지은 여류작가, 화니 크로스비 /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지 6주 만에 심각한 눈 염증을 앓아 의사의 부주의한 처방으로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왜 우리에게 이런 비극이! 안 돼!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원망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의 골짜기를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그 의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제가 만약 다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그분이 저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섭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그와 같은 섭리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자서전 ‘화니 크로스비의 생애’에서 말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만약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해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또 자신이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래들을 쓸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만약 제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제 주위를 끄는 많은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결코 수천 편의 시를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크로스비 가문은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 집안으로 신앙심이 깊었다. 화니는 자랄수록 청각과 미각, 후각과 촉각이 예민하게 발달했고 손재주가 좋았으며 영리하고 똑똑했다. 할머니는 어린 화니에게 성경 이야기를 은혜롭게 들려주며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손으로 만져 보고, 코로 향긋한 향기를 맡게 했다. 특히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가르쳤다.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라. 그리고 일어난 모든 좋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해야 한다.” “일이 너무 어렵다고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다. 자기의 필요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능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란다.” “너의 기도제목이 아무리 엉뚱하거나 가망이 없는 것일지라도 너에게 유익하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해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얼토당토않는 너의 소망과 기대보다 더 좋은 것을 이미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늘 기뻐해야 한다. 고통과 좌절도 기쁘게 인내하면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의 외할머니는 성경의 사람이었으며 “기도를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하는데, 1848년에 맹인학교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죽게 되어 주검의 시신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장례식에서 경험하고, 화니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면서 죽음과 그 후의 삶에 대해서 깨닫게 되어 자기 신앙을 돌아보았다. “만일 콜레라가 내 생명을 빼앗아 갔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때마침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회개의 시간을 통하여 과거 어두움을 다 씻어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는 사명의 눈을 뜨게 되어 그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에 대해 “내 영혼은 하늘의 빛으로 차고 넘쳤다. 처음으로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님을 붙들려고 노력해 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 체험으로 화니는 예수님 사랑에 푹 빠졌다.
1864년 그녀는 저명한 찬송 작곡가이자 출판가인 윌리엄 브래드버리를 만나 첫 복음성가 ‘저 하늘에 빛나는 우리의 본향’을 출판했는데 출판사에서 그녀가 지은 시 한 편에 1~2달러(당시 달러 가치) 정도만 지급했기 때문에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앞으로 51년 동안 하나님께 이끌려 찬송 8,000여 곡을 지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 상태가 최적에 도달할 때까지 늘 회개하고 기도하며 “나는 시 쓰기에 앞서 기도해요. 좋으신 주님께 내가 쓰려는 시에 영감을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는 찬송가를 써 본 적이 없어요.”라고 했다.
화니 크로스비를 잘 모른다 해도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녀가 지은 많은 찬송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으며 그 찬송들이 비록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영혼의 눈으로 본 영의 세계가 그의 펜을 통하여 아름다운 찬송시로 나타났다.
“당신을 위하여 용서가 있다오, 나를 지나가지 마소서, 주께로 내가 옵니다.” 찬송가 대부분을 1인칭으로 써서 부르는 자들이 그 찬송의 사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그녀의 삶은 당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던 복음 전도자 무디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자신이 경험한 간증과 찬양으로 수많은 이를 주님께 인도했다. 맹인이며 95년의 생애를 살면서 대략 8,000여 찬송시를 쓰고 일반 서정시도 1,000여 편 이상을 쓴 시인이며, 교육자, 음악가인 그녀는 하프와 오르간 연주가로도 유명하고, 간증 설교자 겸 강연자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찬송 시인이며 위대한 탐험가요 위대한 승리자였다. “주가 맡긴 귀한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천국 아침 맞을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쁜 마음으로 얼굴 대하리” 그의 영안으로 보는 주님의 모습에 그녀는 절망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감격의 인생길 95년을 찬양 속에 살아갔다.
현재 찬송가에는 31, 40, 144(예수 나를 위하여), 176, 240, 255(너희 죄 흉악하나), 279(인애하신 구세주여), 288, 361, 380, 384, 391, 417, 435, 439, 454, 498, 531, 532, 540, 608(1892년), 615장 22곡이 실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