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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대종주 제9구간
방축리~궤일산~과치재~방아재~만덕산~국수봉~노가리재~까치봉~유둔재 37.8km
뵬산 너울마다 으름처럼 익어가는 가을의 전설
2.0(90) 2.5(90) 2.8(80) 3.2(150) 2.5(100) 2.4(60) 2.3(90)
방축리-----315봉-----봉황산-----서암산-----설산어깨-----무이산-----과치재-----
===== A ▲315 A ▲235.5 A △450 A △°412 A ▲304.6 A ======
154(24번국도) 130(15번국도)
1.1(40) 1.8(90) 3.9(110) 1.2(50) 3.6(100) 2.4(80) 3.9(140) 2.2(50)
연산-----방아재-----만덕산-----입석리-----국수봉-----노가리재-----까치봉-----456.5봉-----유둔재
△505.4 A ―――――― A △575 A ―――――― A ▲557.6 A ――――――― A △°469 A ▲456.5 A ――――――
220(포장도로) 330 368(포장도로) 270(887번지방도)
*산행거리표 보는 법
1. 지명 아래 표시 중 ▲는 확인한, △는 미확인 삼각점, △°는 비껴가는 봉우리, ====는 포장국도, ―――는 포장지방도, -----는 소로 또는 등산로를 뜻한다. 이번 종주에서는 단 한 군데의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했다.
2. 화살표 위의 숫자는 구간 도상거리(km)이며, ( )안에는 걸린 시간을 표기한다. 이 산행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한 평균속도를 기준으로 했으며, 날씨나 인원, 짐의 무게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날 수 있다.
3. 화살표 아래 알파벳은 구간 등산로의 상태를 나타낸다. A는 가장 좋은 상태, C는 가장 나쁜 상태. 이 등산로의 상태 역시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번 아홉 번째 구간의 등산로 상태는 모든 구간을 A로 표시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좋은 상태였다. 단지 무이산에서 과치재까지의 짧은 구간에서 잡목숲과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야했다.
*산행길잡이
순창, 담양간 24번 국도를 건너는 정맥의 마루금은 방축리 마을 건너편 나무젓가락 공장과 포도밭 사이로 이어지던 머루금은 이내 88올림픽고속도로 건넜다가 바로 다시 건너온다. 그리고는 1km 가량 고속도로를 따르다가 잡풀 사이를 뚫고 314.5봉을 향해 오른다. 소나무 몇 그루가 베어진 314.5봉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아득하게 무등산이 보인다.
314.5봉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다시 한 번 99올림픽고속국도를 건너야 한다. 이후 마루금은 해발 100m대의 야산과 논두렁과 밭두렁으로 희미하게 이어진다, 주변으로 시야가 트이지도 않아 독도에 어려움이 많다. 이목마을을 지나 오르는 봉황산 역시 마을 뒷산에 불과하고, 주변에 갈림길이 많아 길을 놓치기 십상이다.
일목마을과 상신기마을을 지나 단풍나무 묘목장 옆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서암산 어깨다. 이곳에서는 북쪽으로 금성면의 드넓은 들판과 그 뒤를 가로막고 있는 추월산, 용추봉, 산성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의 전 구간에 걸쳐 가장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는 봉황산 구간이 굽어보인다.
5ㅁ반분의 1 지형도에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이 경계를 계속 따라오던 마루금은 설산 어깨에서 온전히 전라남도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암릉으로 형성된 괘일산 정상부에서는 동서남쪽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동으로는 섬진강의 본류가 적시고 지나가는 곡성의 너른 들판과 그 너머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아스라하고, 서쪽으로는 담양읍의 벌판과 그 너머로 이제껏 지나온 추월산이 보인다. 남족으로는 이제 가야 할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멀리 봉긋한 원추형의 무등산이 산등 너머로 얼핏 보인다.
담양, 곡성간 13번 국도가 지나는 과치재에는 주유소가 있다. 국도를 건너면 바로 호남고속국도를 건너야 하는데 서쪽 방향으로 버려진 도로를 따라 1km 정도 가면 지하통로가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따라 다시 돌아와 절개지에 설치되어 있는 철계단을 이용해 능선에 오르면 왼쪽 밤나무 사이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연산 정상 직전에는 잘 단장된 묘 1기가 있다. 연산을 지나면 벌목지 지나 방아재로 내려선다. 방아재 동쪽 수곡마을에는 몇 채의 민가가 남아 있다.
방아재에서 정상에 묘 1기가 있는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다시 임도가 나타난다. 이 임도에서 만덕산까지는 아주 가파른 오르막이다. 헬기장에 잡풀이 가득 우거진 만덕산 정상을 지나면 동쪽으로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쪽으로는 이제 무등산이 지척으로 건너다 보인다.
만덕산을 지나 임도 건너 450.9봉을 지나면 이리저리 복잡한 임도가 산허리를 지르고 지난다. 수양산 오르기 전 소나무 숲 사이에는 '호남정맥 중간지점' 이란 안내판이 붙어있다. 총 462km의 호남정맥에서 꼭 231km 지점을 알리고 있다. 마루금은 수양산 정상을 지나지 않고 그 앞에서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도를 잔뜩 낮춘다. 그 아래 자리한 입석 마을에는 그 이름처럼 여기저기 돌무더기를 쌓아두었다.
입석리에서 국수봉 오르는 길은 논두렁 지나 가파른 사면을 오르다가 다시 능선으로 이어진다. 능선부까지 어지럽게 임도가 나 있다. 국수봉에서 다시 북진하기 시작한 마루금은 오래된 임도를 따르다가 월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버리고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임도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까지 이어진다. 흑염소 목장의 울타리가 마루금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노가리재를 지나 능선에 오르면 길은 뚜렷해진다. 이제 능선에서 무등산은 지척으로 보인다. 전남 학생야영장에서 세운 몇 개의 안내표지판이 나무에 걸려 있다. 까치봉 정상은 마루금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바로 오른쪽(서쪽) 아래로는 광주호의 푸른 물이 보이고 그 옆으로 887번 지방도의 자동차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 잘 단장된 청주한씨 묘지를 지나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광주시 충효동에서 화순을 잇는 유둔재에 도착한다.
길 찾기에 주의할 곳
방축리에서 314.5봉을 지나 88올림픽고속국도를 건너 봉황산과 서암산에 이르기까지의 약 6km 구간은 호암정맥 전 구간 중 가장 고도가 낮은 구간이다. 주변 조망이 트이지 않을 뿐더러 뚜렷한 지형지물도 없어 잠시만 주의를 소홀히 하면 십중팔구 길을 잃고 만다. 그만큼 독도가 까다로운 구간이다.
88올림픽고속국도를 총 3번 건너야 하지만 취재팀은 314.5봉을 내려서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한 번만 횡단했다. 고속도로 횡단 직전 서쪽 비내동에 있는 대나무골야영장과 연결된 등산로가 마루금과 이어진다, 이 등산로를 따르지 말고 곧장 직진해 고속도로를 건너야 한다. 봉황산 오르는 길 역시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나 있고 잡목 사이를 지나게 되어 독도가 쉽질 않다. 수시로 지도를 보는 수밖에 없다. 이곳을 지났던 다른 종주자들 역시 독도에 자신이 없었는지 표식기가 거의 없었다.
봉황산을 지나서도 마루금은 고구마밭과 콩밭, 고추밭의 두렁을 따라 복잡하게 이어진다. 취재팀은 거의 GPS에 의존한 채 도경계를 따르는 마루금을 그대로 이어갔다. 상신기마을을 지날 때는 고갯마루에 있는 주황색 지붕의 민가 앞을 지나 단풍나무 묘목장 앞을 지나 가파른 산길로 접어든다. 방성리와 서홍리를 넘는 고개를 지나면 이제 특별히 길을 잃을 만한 곳은 없다.
설산 정상 오르기 전 삼거리에서 정남향으로 방향을 트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과치재 지나 호남고속국도를 횡단해야 하는데 직접 고속도로를 건너는 일은 너무 위험하다. 신촌주유소 뒤쪽 개사육장 지나 구도로와 별장가든 간판을 따라 서쪽으로 약 1km 가면 지하통로가 나온다. 이 지하통로를 이용해 고속도로를 건넌 후 고속도로변 화단을 따라 다시 과치재 마루까지 간다. 절개지에는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만덕산을 지나 450.9봉과 수양산 어깨를 지나는 구간에는 여러 갈래의 임도가 어지럽게 나 있다. 수양산 역시 정상을 지나지 않고 고도를 낮추어 입석마을로 내려선다. 입석마을에서 국수봉 오르는 길 역시 임도가 나 있으나 마루금은 임도 옆으로 이어진다. 외동 마을을 크게 휘감아 도는 마루금은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서부터 흑염소 목장의 울타리를 따른다.
노가리재를 지나면 전남학생야영장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이 몇 군데 나무에 걸려있으며, 길은 점점 더 뚜렷해진다.
야영지와 샘터
이번 아홉 번째 구간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출발 지점인 방축리와 일목마을, 상신기마을과 민가, 과치재에 있는 신촌주유소, 입석리, 방아재의 수곡마을 등이다. 이중 상신기마을이나 방아재의 수곡마을, 입석리는 바로 마루금에 위치한 마을로서 야영이 가능하다.
과치재에 있는 신촌가든(061-362-7911)에서는 닭백숙, 오리구이 등의 음식이 가능하지만 민박은 하지 않는다. 취재팀은 청룡리 마을회관에서 하루를 잤고, 담양과 광주에서 각각 숙박한 후 차량으로 이동해 종주를 마쳤다.
교통
출발 지점인 방축리까지는 담양과 순창을 오가는 군내버스가 자주 다닌다. 과치재 역시 담양과 곡성을 수시로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유둔재까지는 광주에서 화순온천, 동복, 북면까지 다니는 버스를 타면 된다.
호남정맥 산줄기에도 가을이 무르익고
방축리에서 시목마을 뒷산을 지나 88올림픽고속국도에 내려섰다. 마루금은 고속도로를 건너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금방 다시 건너온다. 총알같이 달리는 자동차들의 위세에 질려 고속도로를 건너지 않고 갓길을 따라 걷다가 314.5봉 오름길로 접어든다. 길은 희미하고 도처엔 가시덤불이 우거졌다. 314.5봉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바짓가랑이에는 온통 도꼬마리와 도깨비바늘, 도둑놈갈고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점점이 붉은 얼룩은 자리공 열매 덕분이다.
호남정맥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낮은 고도로 이어지는 봉황산 구간이 발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목동리 들판 사이로 힘겹게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가야할 서암산과 설산이 보이고 남족 끄트머리 하늘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무등산이 비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88올림픽고속국도 위로 난사하는 총알 세례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각개약진으로 돌파한 호남정맥 종주대는 고추밭과 고구마밭, 콩밭의 밭두렁과 임도를 용감하게 지나 봉황산을 향해 힘찬 전진을 계속했다. 이목마을을 지날 때는 온 동네 개들이 모두 나서 짖어댔지만 종주대의 용감한 발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가시덤불이 앞을 막을 때면 박창근(47세, 전주 백산산악회)씨가 앞장서 길을 뚫었다. 길 내는 일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박씨의 주특기.
이름과는 달리 초라한 동네 뒷산에 불과한 봉황산까지 종주대는 다섯 번 정도 길을 잃고 헤맸다. 거의 5분마다 한 번씩 지도를 꺼내 보았다. 그러나 불과 100~200m의 해발고도를 지난 마루금은 시야가 트이이 않는 것은 물론 밭과 묘목장, 마을 뒷길과 임도, 여러 갈래의 산길이 나 있어 길을 잃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봉황산 지나 솔숲 아래 점심상을 펼쳤다. 새벽부터 종주대를 위해 김밥을 준비한 박창근, 유경희(41세, 전주 백산산악회)씨 부부, 신석호(49세, 전주국도유지사무소)씨와 박찬현(45세, 전주국도유지사무소)씨는 유부초밥과 방울토마토를 준비했다. 빵 한 조각과 비스킷 몇 개, 커피 한 잔이 고작이었던 종주대에게 이 점심은 진수성찬이었다. 걸진 점심에 대한 보답으로 신현승(29세, 한국산악회)씨의 판소리 <사철가> 한 곡.
"....봄이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 되고 보면 월백설백 천지백허니
모도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뒤따라오던 일행이 죽림동으로 잘못 네려갔다가 트럭을 얻어 타고 올라와 일목리 고개에서 다시 만나는 우여곡절을 겪고, 상신기마을을 지날 때는 어느집 뒷마당으로 잘못 내려섰다가 놀란 그 집 개로부터 호된 호통을 듣기도 했다. 상신기마을 뒷편 묘목장에는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은 황국단풍'처럼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전북 땅을 온전히 벗어난 호남정맥 종주대
서암산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굽어본다. 누런 황금들판 사이를 납작 엎드린 산줄기가 힘겹게 이어진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저 산줄기 역시 '물을 가르는' 그 본분을 여지없이 다 하고 었음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쪽 들판의 끝은 추월산과 산성산이 듬직하게 둘러막고 있다.
방성리로 내려가려 했으나 또 한 번 길을 잃고 내려선 곳이 청룡리. 그레서 금과면 청룡리 마을회관에서의 하룻밤. 밤새 설산 위로 무수한 별이 떴고, 우리는 가을 석양 같은 와인을 두 병쯤 마셨다.
코가 닿을 듯한 가풀막을 올라 설산을 향한다. 마루금은 설산 정상에 미치지 못하고 그 어깨 어름에서 고개를 남쪽으로 홱 튼다. 여태껏 왼발은 전북 땅을, 오른발은 전남 땅을 밟아오던 종주대의 두 발이 이제 온전히 전남 땅으로 접어든 것이다.
깎아지른 암릉으로 이루어진 괘일산 정상에서는 동쪽과 서쪽의 조망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호남정맥이 가두는 섬진강의 본류가 적시는 곡성의 너른 들판이 가없고, 서쪽으로는 영산강이 적시는 담양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남쪽 가야할 능선 끄트머리 참에는 원추형의 무등산이 봉긋 솟았고.
괘일산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에서부터 버려진 쓰레기를 줍던 장수진(32세, 광주시청)씨의 손에는 무이산을 지나 과치재에 내려섰을 때 커다란 쓰레기 봉투가 들려 있었다. 주유소 뒤편 개 사육장에서는 이 낯선 불청객들을 향해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그 개 짖는 소리보다 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자동차들이 호남고속국도를 질주한다.
호남고속국도는 도저히 건널 재간이 없다. 88올림픽고속국도는 왕복 2차선에 중앙분리대도 없어 도로교통법도 무시하고 건너볼 깜냥을 냈지만 이 호남고속국도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한참을 돌아 지하통로를 찾아내 고속도로를 건넌 후 다시 마루금을 이어가야 했다. 연산을 향해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르다. 발 밑에 저절로 떨어져 벌어진 밤송이가 지천이지만 숨이 턱에 차 누구하나 밤 한 톨 주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윽고 도착한 방아재.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다. 쓸쓸한 고갯마루에 덮치듯 땅거미가 내리고, 다시 하늘에는 성근 별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벽부터 신발 끈을 졸라매고 만덕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오늘은 유둔재까지 도상거리 19km를 주파해야 한다. 마음은 바쁜데 만덕산 오름길은 가파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코를 땅에 쳐박고 이를 악문채 숨을 헐떡이기를 꼬박 한 시간. 억새가 무성한 만덕산 정상에 도착했다. 만덕산 정상을 지나자 우거진 덩굴에서 김석우(34세, 봔트클럽)씨가 몇 개의 으름 열매를 따 왔다. 갈 길이 멀어 지천으로 매달린 으름 열매를 못 본 체하고 걸음만 재촉했다.
"저기 반야봉이 보입니다. 그 옆에 노고단도 있어요!"
신현승씨가 동쪽 숲 사이로 터진 하늘을 가리킨다.
아아! 지리산! 사실이었다. 거기 동쪽 뭉게구름 아래 아득하게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였다. 둥근 두 개의 봉우리가 틀림없이 반야봉이었고, 삿갓처럼 뾰족한 것은 역시나 노고단이었다. 지리산을 본 후 일행의 발걸음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바로 앞에는 원추형의 무등산이 어서 오라는 듯 빙긋이 웃고 서 있다.
만덕산에서 본 반야봉과 노고단
평탄하고 순한 길을 일사천리로 내달릴 무렵 수양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우리는 '호남정맥 중간지점' 이란 표지를 발견했다. 이제부터 남은 길이 지나온 길보다 적어지기 시작한다. 이 사실에 한 번 더 탄력을 얻은 호남정맥 종주대. 압석리를 단숨에 지났고, 국수봉의 가파른 오름길도 일거에 지나쳤다. 국수봉 지날 무렵에는 마루금이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호흡조절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미 탄력을 얻은 종주대는 내쳐 이곳을 그냥 지나쳐버려 억새밭을 30분 가량 헤매야했다.
와동리를 서쪽으로 한 바퀴 감아도는 마루금에는 흑염소 목장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엿으로 유명한 창평면의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노가리재를 지나 까치봉을 향해 오르면서 일행들은 점점 말이 없어진다. 바로 오른쪽 아래로는 유난히 푸른 광주호가 오늘의 종착지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눈앞으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무등산도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887번 지방도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새목이재를 지나 465.5봉 삼각점을 확인했다. 이미 노루꼬리만큼 짧아진 가을 해는 뉘엿거리고 산들거리며 불어오던 바람은 어느덧 소슬해지고 말았다. 안간힘을 다해 어스름 녘 유둔재에 도착했다. 눈앞의 무등산은 여전히 의연하기만 하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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