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길재경은 북의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이고 비자금 총책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7년 전 이 길재경이 미국에 망명했다는 통신 기사가 뜨면서 신문 방송은 며칠간 온갖 억측과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사흘 만에 호들갑은 끝났다. 북의 애국열사릉에 묻힌 길재경의 묘비명 사진이 중앙일보에 공개되면서 사실 아닌 오보로 끝나버렸다. 한 장의 사진이 사실과 루머를 갈라놓았다.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타블로(본명 이선웅), 유명한 힙합 가수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학·석사를 3년 반 만에 마치고 베스트셀러 소설까지 쓴 르네상스적 수재다. 이 잘나가던 청년에게 학력위조 의혹이 인터넷에 제기되면서 액운이 겹쳤다. 의혹은 확신으로 확산되고 병역 면제를 위한 이중국적자로 낙인까지 찍혔다. 성적증명서와 졸업증서까지 제출했지만 그 또한 가짜라는 대응이 나오고 의혹은 증폭됐다. 급기야 한 방송사가 타블로와 함께 스탠퍼드대를 찾아 담당 교수를 만나고 그와 함께 일했다는 식당 종업원까지 대면하는 확인 작업이 장황하게 TV로 방영됐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타진요’라는 해괴한 사건은 이렇게 끝이 나고 있다.
인터넷 발달로 사라지는 것들이 무엇인가. 최근 뉴스위크지가 특집을 냈다.
나인 투 파이브(9to5) 라는 출퇴근 개념, 비디오 대여점, 집중력, 예의 바른 태도, CD, 전화번호부, 편지 쓰기 여기까진 좋다. 아! 그런데 여기에 프라이버시와 사실(Fact)까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루머가 사실을 압도하는 시대다.
사실과 오보가 언론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면 진실과 허위는 법정이 담당할 성역이다. 명백한 유언비어에 너도나도 가세하면서 천안함 폭침 이후 계속해서 북의 입장에서 남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편가르기와 패싸움에 골몰케 하는 이 진영 논리를 실질적 피해가 없다고 과연 볼 수 있는가. 종북 좌파 진영의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실을 마냥 흔들어대는 이 인터넷 게릴라들의 피해에 대해 법관마저 사실과 진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 10일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요지는 추기경은 (4대 강 사업에 반대하는) 주교회의의 분별력을 경시하고 판단행위마저 부정했다, (북에 대한)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교회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뒤이어 진보적 원로사제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추기경의 용퇴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천주교사에 일찍이 유례 없는 하극상 사태가 발생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지난 8일 성탄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발언을 했기에 사태가 여기까지 왔는가. 추기경 옆자리에 앉아 발언 내용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는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정 추기경은 4대 강 개발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은 사람에게 지구를 가꾸라 했다. 그건 개발은 하지만 파괴는 안 하는 거다. 난개발 자연파괴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4대 강 개발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4대 강 죽이기 아닌 4대 강 살리기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원론적 답변이었고 주교단 입장과 배치된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간담회 말미에 추기경은 “사람이 참 묘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여운 있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 편의 논리, 내 진영의 말만 고집하고 외칠 때 우리 사회의 진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사실과 허위가 뒤범벅이고 진실과 궤변이 가려지지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인터넷 루머가 사실을 압도하고 법정이 진실과 허위를 명백히 가려주지 않을 때 보통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나. 교회가 진실과 궤변을 왜곡하는 이 어두운 시대에 참된 길과 진리와 생명의 복음을 어디서 들을 것인가. 쿠오바디스 도미네(Quo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첫댓글 타블로 사건은 원래 별 관심 없었는데 미디어에서 계속 노출하니까 큰 이슈처럼 느껴지게 되더라고요? 정보 조작 과장 유포 정말 대단한것 같아요. 안그래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 인간인데 그나마 제공되는 정보들조차 불량하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