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해맑은 얼굴'이라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사이판에서 총격을 받고 척추가 산산조각이 나 평생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는 너무나 긍정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어찌 그와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던 걱정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의 옆에 앉은 그의 아내를 보는 순간 '아, 박재형씨의 저토록 밝고 건강한 모습의 기원은 바로 박명숙씨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부부는 매우 진취적이고 활기찬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어둠 속에서도 절대 빛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을 그들의 온화한 얼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날 모임에 올 때도 박재형씨는 척추 통증 때문에 매일 먹는 진통약 외에 따로 진통주사를 맞아야 했다고 했다. 평생 끊어질 듯 아픈 척추 통증을 친구처럼 데리고 살아야 하는 그였기에 그의 '해맑은 얼굴'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박재형씨가 총격을 받고 반신불수가 된 것은 작년 11월, 사이판에서였다. 학원 강사 일을 하던 그는 친구들과 40살이 되는 해에 부부동반 여행을 가기 위해 계를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토록 그리던 40세 기념여행을 사이판으로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반긴 것은 아름다운 사이판의 산호가 만든 코발트빛 해변이 아니라 무차별 총격이었다. 한 실내사격장의 직원이 임금체불에 불만을 품고 750여 발의 실탄과 총을 들고 나와 관광객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이다.
사이판은 의료시설도 제도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척추를 관통 당하고 사경을 헤매던 박재형씨를 살려줄 의사는 사이판에 없었다. 그나마 두 명 있던 의사가 죽어가던 박재형씨에게 붙으니 다른 총격피해자들은 이리저리 병상을 옮겨가며 대기하는 일 말고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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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과 머리에도 총탄 파편이 박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흉터를 가리키는 박재형씨 친구 |
이날 모임에 반신불수가 된 박재형씨를 업고 들어온 친구도 실은 총격피해자였다. 실은 그가 박재형씨보다 더 많은 총탄에 맞았다고 한다. 머리, 가슴, 다리, 온몸에 총탄 파편이 박혔지만 용케도 그는 박재형씨처럼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결국 사이판에서 어떤 치료도 받을 수 없었던 박재형씨는 급히 사이판으로 넘어간 형에 의해 한국으로 이송됐고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박재형씨, 그러나 그에겐 평생 반신불수라는 천형이 내려졌다.
그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가 40살이 되었다는 것과 그걸 기념해서 사이판으로 부부동반 관광을 간 것 외에는.
사이판은 그에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사이판엔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고, 의사는 단 두 명뿐이었으며, 그조차도 신뢰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상도 해줄 수 없으며 해줄 능력도 없다고 엄살을 부렸다.
한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그들은 민간 모금을 해서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대신 그들이 한 것은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운 홍보전이었다. 그들은 KBS의 천하무적 야구단을 이용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사이판에 갔고, 행복한 그들이 사이판의 바다에서 떠들며 노는 모습이 2주간 대한민국의 공중파를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대한민국 정부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외교부는 자국 국민의 불행에 대해 사이판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통보해주는 것 말고는 벼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부산에서도 실내사격장 사고가 발생했는데, 대한민국 총리는 일본인 유족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여행주관사인 하나투어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곤 어떻게 하면 자기들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보상을 적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하나투어는 고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책무보다 고객으로부터 자신의 책임을 방어하는 데 더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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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생일을 맞은 박규화씨와 블로거 실비단안개. |
박재형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며 돕겠다고 나선 것은 사이판 당국도, 대한민국 정부도, 여행사 하나투어도 아닌 블로거들이었다.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블로거 실비단안개가 중심이 된 블로거동맹은 끊임없이 정부와 사이판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며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여기에 경남도민일보가 거들고 나섰다. 김주완 기자에 의해 기사화된 사이판 총격사건의 진실은 그때껏 외면만 하던 언론사들도 가만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방송사들은 박재형씨 사건을 기획특집 프로로 제작했고, 마산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자국민 보호에 대해 아무런 의지가 없는 한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외에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박재형씨는 사이판으로부터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으며, 하나투어가 주겠다는 2000만원의 보상도 거부했다.
그리고 곧 소송을 준비할 것이라고 한다. 사이판이든 여행사든 그들이 내세우는 적절하고 충분한 보상 거부의 이유는 이 건이 전례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사이판이란 곳이 언제든지 이런 사고가 일어날 위험성을 늘 안고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이날 모임은 박재형씨 부부와 함께 사이판에 갔던 박재형씨의 친구, 그리고 박재형씨를 응원하는 블로거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멀리 전라남도 곡성에서 온 박규화씨는 그날이 자기 생일이었지만, 가족들에게 생일을 알리지도 않고 달려왔다고 했다.
사이판은 미국령이었다. 다시 말해 박재형씨의 총격피해에 대한 보상책임이 미국정부에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외교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나선다면 아마 그 상대는 미국 국무성이 될 것이다. 혹시 사이판이 우리나라의 도, 또는 시군과 비슷한 지위에 있어서 외교부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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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박재형씨, 그러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
그건 난센스이다. 아무튼, 박재형씨와 그의 아내 박명숙씨는 매우 낙관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러나 블로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지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박재형씨는 밤마다 뼈가 끊어지는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진통제를 넘기며.
박재형씨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의 등에 업혀 나갔지만, 밝은 표정으로 블로거들을 배웅했다. "먼 길 와주셔서 너무 고맙고 반가웠어요. 앞으로도 가끔 즐거운 마음으로 만납시다." 작년에 40이 된 그는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보기로는 10년도 더 젊어보였다. 매우 동안의 얼굴이었다.
이날 모임엔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과 이혜영 기자도 함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