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영화 접속 중에서)
만나야 할 음식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 섬진강의 명물 벚굴처럼. 벚굴은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되는 지점에서만 서식하는 민물 굴을 말한다. 녀석과 운명적 만남은 올 봄에 이뤄졌다. 한순간 절정에 달했던 벚꽃도 바람 줄기에 떠나가고, 가지마다 싱그런 녹색으로 물들어가던 4월 어느 날. 섬진강 바람결에 실려 도착한 곳은 경남 하동 고전면 선소마을. 이곳이 바로 섬진강 하류에 있는 하동포구다.
하동포구는 예로부터 대표적인 벚굴 서식지로 알려져 왔다. 강물이 오염되지 않은데다 민물에 염도 60프로가 섞여 벚굴이 자라는데는 최적의 자연환경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금강에서도 났지만 금강 하구둑이 생기면서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벚굴은 벚꽃이 만개할 때 가장 맛있다고 해서 벚굴이다. 하지만 물속에서 하얀 속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벚꽃과 흡사해 벚굴이라는 주장도 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광양 망덕포구에서는 강굴이라고도 부른다. 강에서 나니까 강굴이라 하겠지만 왠지 벚굴에 비해 시(時)적이지가 않다. 이처럼 벚굴에 대한 유래나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3월에서 4월 사이에 가장 맛이 좋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봄이 되면 겨우내 얼어있던 산속의 유기질이나 각종 미네랄 성분이 봄비와 함께 강으로 유입되어 굴을 살찌운다. 또 5월 산란기를 앞두고 영양이 오를 대로 오른다. 이처럼 봄철의 굴은 겨울에 비해 한 층 성숙된 맛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이 맛을 보지 않고 봄을 보낼 수는 없는 일. 그래, 벚굴 맛을 보러 하동까지 왔노라.
벚꽃이 만개할 때 가장 맛있는 벚굴
선소마을에서 벚굴식당을 운영하는 김선익 대표는 벚굴잡이 배 선장이기도 하다. 맛객이 찾아간 날 마침 벚굴 따러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김선익 대표를 따라 선착장으로 내려가자 한척의 배가 대기 중이다.
배에서 만난 김기관씨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잠수부다. 벚굴은 바다 굴처럼 물이 빠지면 따는 게 아니라 잠수해서 따야한다. 선장의 배려로 맛객도 동승할 수 있었다.
배가 움직인다. 강물을 헤치는 배의 움직임이 참 부드럽다. 바다처럼 심하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미끄러지듯 나아가자 강바람이 기분 좋게 스친다.
원래 이곳에서는 재첩도 많이 났다. 하지만 80년대에 행해진 무분별한 골재채취로 인해 재첩 서식지가 상당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골재채취로 수심이 깊어지자 98년 지리산 폭우 때는 큰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강을 파면 생태계가 파괴 될 뿐만 아니라, 강물의 유속을 가속화 시켜 홍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환경재앙은 알게 모르게 인간이 부른다.
현재는 벚굴도 갈수록 개체수가 감소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니 환경의 변화로 인한 피해는 벚굴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인간은 예외일까?
“귀해진만큼 가격이 많이 올랐겠어요” 오히려 기름값 오르는 걸 감안하면 예전보다 손해죠“
무분별한 골재채취는 생태계 파괴로.... 다음은?
10여분여 물살을 가르는가 싶더니 닻을 내린다. 닻줄이 꽤 길게 들어간다. 강둑과는 불과 10여미터도 안 떨어졌지만 수심 7~8미터가 넘는다. 깊은 데는 십수미터나 된다.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김기관씨가 풍덩 물속으로 뛰어든다. 물거품도 금세 사라지고 이내 잔잔하고 고요해진다. 그 예전 이곳은 은빛고운 모래들이 눈부시게 펼쳐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강물에 들어가 재첩도 잡고 고기도 잡았다. 모래사장에서 뛰놀거나 휴식을 취했을 모습들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정겹게 느껴진다.
지금은 바다처럼 변해 더 이상 인간의 접근을 허락치 않는다. 강과 사람은 단절되었다. 하지만 관계를 단절시킨 건, 강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었다. 우리 후손들에게서 빌려 쓰고 있는 산과 강, 갯벌만큼은 더 이상 파괴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덧 30여분이 흘렀다. 물속에서 하얀 물거품이 치솟는가 싶더니 김기관씨가 모습을 드러낸다.
뒤이어 벚굴이 가득 든 그물망이 갑판위로 끌어 올려졌다. 한눈에 봐도 일반 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김기관씨가 즉석에서 벚굴 한개를 집어 들더니 딱! 딱! 껍데기를 벌려 건네준다. 거친 표면과 대비된 속살은 더욱 더 뽀얗고 부드럽다. 한입에 다 먹지는 못하고 뭉덩 베물어 먹었다. 비릿함과 간간함이 밀려들어온다.
바다의 향취라고 하기엔 약하고 그렇다고 민물의 것도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그저 자연을 먹고 있을 뿐이다. 두번째 베물어 먹었다. 치장하지 않은 맛, 내면을 드러내는 맛이다. 맛은 늘 이렇게 솔직하다. 그리고 평등하다. 인간의 입이 솔직하지 못할 뿐. 맛에 차별을 두는 것도 이기적인 인간의 입 때문이다. 녀석과의 조우 때문일까? 봄이 저만치 멀어지고 있어도 아쉽지가 않다. (2008.5.24 맛객)
벚굴식당(굴 구이) 055) 883-4342 원진수산(굴 택배주문) 017-230-4644 보태기/ 하동 관련 포스트를 보시려면 하동은 지금 천년 차의 향이 피어오른다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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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맛있는 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