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음치 중의 음치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동요를 부르다 나도 모르게 삑사리가 났고...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까르르 웃은 이후... 난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겁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나는 노래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남편은 내 노래를 어쩌다 듣는 날은, 참으로 신기하다고 한 마디 한다.
어떻게 반 음이 아니라, 5분의 3음이나, 7분의 5음이 나는지...
피아노 건반에 없는 음정을 소리내는 내 음악적 재능(?)에 감탄 또 감탄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노래 부를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나가서 부르라고 나를 격려한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사이에 어쩌다 한 명 끼어 있는 음치의 노래야말로
모든 사람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최상급이라나 머라나...
나는 피아노 악보를 보면 피아노를 잘 치지만, 악보없이는 동요도 치지 못한다.
반면에 남편은 악보를 보지 않으면 아는 노래는 다 치는데, 악보를 보고서는 치지 못한다.
남편이 나를 신기해 하는 것 이상으로 나도 남편이 참으로 신기하다.
남편은 노래를 잘 하는 편이다.
교회 찬양대에서 30년 넘게 테너 파트에서 노래를 했으니, 웬만한 노래는 악보만 보면 부른다.
하이 칼라의 맑고 밝은 목소리를 듣다보면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처음 만나 연애하던 시절,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나를 꼼짝달짝 못하게 하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듣다 보면 자꾸만 그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져
내가 전화를 종종 걸고는 했다.
지금도 목소리만 들으면 30대 초반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아 상대방이 나이를 속기도 한다.
처음, 집에 사귀는 남자라고 소개했을 때 교회 장로였던 큰 오빠는, 교회 찬양대에서 테너 파트에서
노래한다는 한 마디에 다른 것 볼 것 없이 무조건 오케이다라고 선뜻 교제를 허락했으니, 남편은 노래 덕을
단단히 본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여때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찬양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하고, 찬양대장을 6년이나 맡아 봉사하기도 하는 등 최선을 다 하고 지내니 그 모습이 보기에 참으로
좋다.
남편은 교회 찬양대 이외에도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 교수중창단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크로스남성합창단이라는 준프로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합창단은 연중 7-8 회 정도 순회연주를 갖고, 합창곡 시디를 녹음하여 이를 판매하여
얻게 된 수익금 등으로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을 돕기도 한다.
순회공연이 있는 날이면 남편과 함께 가 남편은 노래를 부르고, 나는 관중석에 앉아 노래를
듣는다. 내 눈에는 내 남편이 제일 잘 생긴 것처럼 보이니, 이는 노안이 오기 시작한 내 시력
탓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이 과히 싫지는 않으니, 이 역시 나이 들어 가는 징조이리라...
남편의 반강권으로 지금은 구청에서 운영하는 가곡문화센터에 나가 1년 넘게 가곡을 배우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한시면 어김없이 그 곳에서 가곡 한 곡을 배운다.
음치 중의 음치이지만... 1년 넘게 가곡을 귀동냥하다 보니...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음감이 느껴져오는
신비한 체험을 하는 중이다.
지난 연초에 남편과 함께 몽골의 국립대학과 합동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했을 때...
내몽고 그 광할한 사막 한 복판에서 맞이했던 자정 무렵의 밤하늘, 별은 총총, 아니 대포대포였다.
아니다... 미사일, 맞다 미사일미사일(?) 정도로 별들은 눈으로 쏟아져 내릴 듯 반짝였고...
30여명의 교수들이 캠프화이어를 펼치고... 그 불꽃 뛰는 조명 사이에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난... 그리운 금강산을 멋들어지게(?) 불렀고...(남편 혼자 신나 하며 앵콜을 연발했지만... 다른 교수님들은
모두 배꼽을 잡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역시 아직도 탈출하지 못한 음치의 비극이라니...)
그렇지만... 노래하라면 겁부터 먹던 나는, 이제는 노래를 할 차례가 하면 겁없이 노래를 한다.
음치의 노래라도... 노래할 때 사람들이 신나 한다는 사실에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무엇이 두려우랴, 아... 나이 오십이 넘는다는 것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때는 내게 큰소리치던 남편이... 요즘은 내가 치는 작은 소리에도 오금을 저리는
것을 보면... 아, 나는 무서운 오십대 아줌마임이 틀림없다.
요즘은 "봄날은 간다"를 열심히 연습 중이다. 언젠가 노래방 가면 기필코 이 노래를 부르리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멋들어지게 한 번 불러 보리라.
아직도 내 마음은 열여덟, 여고시절, 멋진 교복을 입고, 교정을 들어서던 그 마음 그대로인데...
아, 내 인생의 봄날은 가고 있는가...
아니다, 내 인생의 봄날은... 두 달 반만 기다리면 다시 오는 걸...
전군간 도로에 벚꽃이 만개할 때...
내년 봄에는 군산에 들러... 내 모교 교정을 남편 팔짱 끼고 걸어보리라.
새까만 후배들이... 우릴 쳐다보며 아줌마 아저씨도 낭만을 아네... 하며 속닥거릴지라도...
나는... 기필코 남편을 졸라... 내 모교 교정을 걸을 것이다.
무서운 규율부 선생님도... 다 늙어 기운 없을 거니... 무어가 겁나랴...
오십대 아줌마 만세... 만만세...
하늘천사
첫댓글 어쩜 ~~~맛깔나게 글도 잘 쓰고, 방배동 아줌마 만세 ~~~!!!! 다음 모임에 꼭 참석해서 봄날은 간다 멋드러지게 뽑아 주기를 ........실명으로 닉네임을 고쳐 주면 더 좋을텐데......
아니~~이런 명사(?)가 그동안 어디서 뭐했니??글솜씨만큼이나 노래솜씨도 많이 늘었겠구나~~언제 기회가 닿으면 꼭 노래방을 가봐야겠네~~?? 사진도 좀 올려줘봐~~50대 아줌마의 모습이 보고 싶다~~~열심히 사는 모습에 달콩참기름이 좌르르르~~~ㅎㅎㅎ
음치에게 박수를 ~~, 내앞에선 음치라 명함도 내 놓지 말길..그래도 남편이 격려해주고, 국제 몽골땅까지 가서 노래할 정도이니. 용기에 용기를,,네 말대로 나이가 스승이라고 못할 것도 없더라, 그냥 남의식않하고 마구잡이로 부르면 내년쯤 봄날은 간다" 노래는 아마 100점일거다,, 난 120도 나오더라,, 마이너스점수,,ㅎㅎ
서후순,,,,이름은 기억 속에 있는데,,,,,기왕이면 이곳에 연락처도 댓글로 달아주면 더~~ 좋겠다. 다음 번 친구들 모임에 연락해 줄께,,,, 화려하고 맛깔 나는 글솜씨 너무 멋지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서울에도 마~니 모여 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