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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부읍(瓦阜邑)
1. 기와를 만드는 언덕은 어디 ? (瓦阜)
2. 한강물이 큰 못을 이룬 곳 은? (德沼) -떡수
3. 덕소의 원래마을 =원덕(元德)=굴덕소 .한강의 큰 섬이 있는 곳
<->새로운 덕소는 新村(1925년 을축년 홍수)
4.우시장(장터거리):4,9일에 5일장
5.점말(店 가게점) :옹기 점
6.밤나무 계곡 –율계(栗溪)=뱅깨. 말무더미(말을 묻은 곳)
7.금대산(金垈山)=쇠터산 (금이 났다고 함) . 다른 이름 송장산
8.덕소리와 도곡리 경계에 있는 산은 ? 금대산고개 . 보리고개
9.모래가 많은 시내(계곡)마을 =사계(砂溪)
>원래는 金.朴.尹의 3 姓이 촌락을 이루어 조오루(鳥梧樓)=새루 라고
하다가 후에 모래와 같이 모여 부락을 이루었다고 하여 사계부락
10.새울에서 석실로 넘어가는 고개는 ?(원수고개) , 왜 원수고개?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 하여..
11.돌이 많은 집은 ? 석실(石室)부락
>원래 이름은 적실(賊室)로 도둑의 소굴을 의미하여 약 400년전 청음
김상헌 선생이 부락에 돌이 많다하여 석실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12.수레를 들고 지나가야만 하는 고개는 ? 득수리고개. 득실이고개
>옛날에 양반이 많이 살던 곳이었고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이곳으로 수레를 끌고 지나갈 때 그 소리가 시끄러워서 양반들이 수레를 들고 지나갔다고 해서 득수레고개>득수리고개 ..
13.수림이 울창하여 조선시대 인근과 서울의 땔감 공급지 산은 ?
>예봉산(禮峯山),사랑산(큰사랑산.작은 사랑산)으로도 불리며
옛 문헌에는 예빈산(禮賓山)으로 기록
2)질그릇을 만드는 계곡마을 도곡리(陶谷里) >도기공장
1.도심:도골의 중심부
2.새재고개:적갑산과 예봉산 사이
3.성지정(聖地井):기독교신자인 태씨가 살았다고 함
4.어룡 동족에 있는 마을로 운길산과 예봉산 아래에 있어서 항상 구름이 끼어 있는 마을은 ? 자운동(紫雲洞)
5.냇가의 바위가 강물에 비췰 정도로 물이 깨끗했던 곳은 ? 경포(鏡浦)
>원래 명칭은 경석개
6.문궁(文宮)마을=문의골+ 궁말
7.문룡(文龍)마을=문의골+궁말+폭포말 >문우곡+어룡부락
8.어룡(魚龍 )마을:어변성룡(魚變成龍)의 전설이 서린 곳
9.동막(東幕):한 사람이 부락 동쪽에 초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동네
10.우묵배미:지형이 우묵하게 들어갔다
11.쑥배미:지형이 쑥 들어가
12.메주처럼 생긴 바위 –메주바위
13.쪽섬 :마을 앞 한강에 있는 섬
14.문곡폭포 또는 문우골폭포
:운길산에서 발원하여 장장 5km의 계곡이되어 흐르다가 도곡리에 와서 폭포로 떨어지는데 전설에 의하면 폭포의 깊이가 물속으로 한강과 상통하였는데 수년 전 대홍수에 어룡저수지가 파괴되어 폭포의 일부가 매몰되었다고 한다.
15.경포 뒤에 있는 바위로 매우 기이한 바위는 ? 난바위
16.양이 붉은 갑옷을 입은 것 같은 모양을 한 산은 ? 적갑산(赤甲山)
17.아침 일찍 해뜨는 산 봉우리 ? 조조봉(朝照峯)
18.궁촌천의 발원지는 ?조조봉 북쪽 골짜기-도곡리에서 한강과 합수
3)달과 문인. 학자들의 마을 >월문리(月文里)=월곡+문곡
1.월문리는 구한말 달동배 +시우리=월곡(月谷) >일제시대에 시우리를 제외하고 달이골을 합하여 월문리라 하였다.
여기서 달이골은 다리골(多里 또는 多李)로 부르며 태종의 후손이요 이인한의 선조 후손이 이곳에 낙향하여 주전경야독(晝田耕夜讀)으로 대대로 살아오니 이씨가 자작일촌하여 당시 사람들이 이씨가 많다하여 多李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2.배나무골:배나무가 많았음 >혹시 多梨골 또는 달 +계곡
3.이곡(梨谷)=배나무골 +골안
4.문곡(文谷) 글개을 .글계울
>조선말기에 문곡이라는 호를 가진 선비가 살아서...
5.매봉재. 제비바위. 황새바위....
6.평촌(坪村)=벌말 (월문리 아래 부분에 위치)
7.점골=옹기점
8.시무의숙터(時務義塾) * 塾 글방 숙
:판서 홍순형이 개화기 민족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세운 학교터
인근에 홍순형 택지가 있다
9.삼화(三和):본래는 음달말이라 하였으며 170여년전에 김해김씨가 살기 시작했고 일제때부터 삼화라 불렀다.
그 근거는 음달말+양지말+조촌말의 3마을을 병합하였다.
10.월문리에서 사람이 제일 먼저 살기 시작한 부락은 ? 중촌(中村)
월문리의 중앙이라 “중말” 또는 “주막거리”라 한다
11.샛말 :주막거리와 삼화 사이에 있는 마을
12.선원(仙元)=원터
화도읍 접경에 있는 험한 고개로 옛날에 강원도 방면을 가는 사람들이 해가지면 여기서 쉬어가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으며 또한 원님이 쉬어 갔다하여 원터 > 후에 선원으로 바뀜 >수레너미고개(車山里)
13.묘적(妙寂)골:약 1300년 전 신라시대에 학울대사가 초막을 치고 살았다하여 예부터 화전민(火田民)이 많이 있었으며 “고요하고 묘한 곳”
14.구선(九仙)마을:옛날 선녀들이 하강하여 목욕하고 하늘로 올라갔다하여 구선, 지금도 이 마을 앞산에 예봉산이 있으며 산꼭데기에 좋은 우물이 있다. 구선 북쪽에는 신선봉(神仙峯)이 있다.
15.묘적천이 월문천이 된 사연 ?
>월문천은 묘적골에서 발원하여 덕소에서 한강과 합류한다.을축년 대홍수에 갑산에 사태가 나서 나무가 뿌리채 뽑혀 토사와 함께 하천의 중간을 가로질러 막음으로써 냇물이 좌우로 분류되어 양편이으로 새로운 하천이 만들어 졌는데 이 하천이 월문천이다.
16.고래산(鯨山? 鍄=땅이름 경)
4)팔선녀(八仙女)가 놀던 자리 8곳 > 팔당리(八堂里)
:후세에 8개의 집을 지어 놓았다는 전설
:강을 중심으로 하여 양쪽으로(하남과 남양주)뻗은 나무가 八자 모양
-다른 이름:바다이. 바당이. 바대이. 바다나루
1.팔당에도 철마산이 있다 > 팔당. 능내. 조안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쇠말산이라고도 한다.
2.상팔 .하팔
3.호랑바위. 호암(虎岩)
5)돌이 많고 밤이 많은 마을: 율곡리(栗谷里) >율석리(栗石里)
1.눈누지골. 솔모루쟁이. 수누고개 .승지골
2.대동(大洞):큰 골 . 밤디. 율북리 >율석리에서 제일 큰 마을
3.율정(栗亭):밤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동네를 둘러싸고 있었다하여
밤나무정=한자로 율정(栗亭),다른 이름 “밤나무제이”
4.늪포재:늪이 있었던 마을
5.목식(木植)골 또는 목숨골 :율석리에서 제일 나무가 우거져 깊숙한
골(안골)로 큰 굴이 있어 임진왜란 때 목숨을 구하였던 곳
6.피사골:전쟁시 이곳으로 피난을 많이 와서 목숨을 구하였으나 일부 피난민들과 군인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피사(避死)골
진접읍(榛接邑)
개암나무 고을 “진접”
1)150년 전 철(鐵)을 파낸 곳 > 금곡리(金谷里)
다른 이름: 쇠파니. 쇠푸니.
1.가마솥골
2.간촌(間村)=샛말
3.신감역의 장독대라 불리는 벼락소 옆에 있는 바위> 독바위
4.벼락소의 전설
이곳에 신감역이라는 마음씨 나쁜 부자가 살았었는데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달라고 하자 쇠똥 한 바가지를 퍼주는 것을 본 며느리가 다시 바가지를 씻어 쌀 한 바가지를 퍼주니 스님이 하는 말이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 하여 뒷산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나며 폭우가 계속 쏟아지니 겁이나 자기 집을 돌아본즉 집은 벼락불로 되었다가 폭우가 계속되니 상류에 하천 둑이 터져 홍수로 인하여 그 집터는 깊은 못으로 변하고 그 며느리는 산 중턱에서 돌부처가 되고 신감역 가족은 모두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5.3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골짜기라 하여 주릿골 또는 주유골 >周谷
6.철마산(鐵馬山):대동여지도에는 검단산(黔丹山)으로 표기
검은산. 수풀이 우거진 산 .쇠를 캐는 광산
2)내각리(內閣里):조선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올 때 풍양궁에서 머므르는데 내각이 맞이하러 와 있었으므로 내각리
1.왜 “관논” 일까? 대궐터 앞에 있는 들
2.내동(內洞):태조 이성계가 비각마을에 행궁을 정하고 있을 대 왕비 신덕왕후 강씨가 임시로 거처하였다고 하여 안마을 즉 내동이 되었다.
3.대궐터=구궐지=비각마을 =궐리 >내각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풍양궁이 있고 구궐비가 있었음 >태조 이성계가 정종에게 왕위를 정하고 상왕이 되고난 후 태종이 이곳에 도읍을 정했던 곳이라 비각을 세운 후로비각마을 일명 대궐터로 불렀다.
4,뜀바위(선바위)
:태극정앞에 있는 바위로 물놀이 할 때 이 바위에서 뒤어 들어감
5.밤섬(유원지)
:내각리앞 왕산내에에 있는 섬으로 밤마무가 많고 이단상의 태극정이 있고 유원지로 개발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자연적으로 형성된 19,162평의 섬
6.백현(栢峴.잣고개 .백고개)
:잣나무가 하늘을 가려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험한 고개로 내각리>청학리
7.비각(碑閣) 대궐터에 있는 비각으로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태조 대왕재상왕시구궐유지(太祖 大王 在 上王 時 舊 闕 遺址)라
하여 1755년(영조 31)에 세우고
하나는 태조고황제소어구궐유지(太祖高皇帝所御 舊 闕 遺址)라 하여 1905년(광무9)에 세웠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9년에 다시 지었음
8.알동산 (앞동산, 앞섬)
옛날 큰 장마에 이 산이 가평에서(1963년 이전은 입석. 내방. 외방리가
가평) 떠 내려와 이곳에 새 산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가평에서는 졸지에 산을 하나 잃어버린 것이다.
가평에서는 고민 끝에 공무원을 내보내어 매년 이곳에 와서 세금을 걷자
남양주에서는 필요도 없는 산에 세금을 내기가 억울하여 당시 현감이 가족끼리 고민을 하던 중 그의 손자인 아이가 그 광경을 보고 그 산이 필요 없으니 가져 가라고 하자 조부가 손자의 말대로 하니 가평에서는 다시는 세금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이 산은 모양이 둥굴고 보통 때는 한쪽으로 왕숙천이 흐르고 여름에는 물바다로 건너지 못하여 알동산 또는 앞섬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 :도담삼봉. 속초 울산바위....
9.임송(林松):옛날에 송림이 무성하여 ...
10.전도치고개 :별내-진접 사에게 오고가던 사람이 많았던 고개
11.징심석(澄心石)
:태극정 앞에 있는 바위로 밑에 맑은 물이 흘러서 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뜻으로 우암 송시열이 “澄心石”이라고 새겼다고함.
12.태극정(太極亭):밤섬에 있는 정자로 현종 때의 문신 이단상이 학문에 힘쓰던 정자
13.풍양궁터(豐壤宮)1400년 11월에 왕이 왕위를 그 아우 태종에게 물려주고 이 곳에 와 있었다고 함 , 1402년(태종2)에 태조가 사랑하는 세자 방석 ,방번이 참변을 당하자 태종을 미워하여 함흥에 가 있다가 4년만에 박순의 충언에 감동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머무르고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내각들이 와서 모시고 서울로 올라 왔으므로 더욱 유명해짐(내각리 723-21 번지로 추정)
14.풍양현지(豊壤縣址) : 양주의 풍양현 읍지가 있었던곳
15.현창지(縣倉址):양주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내각리 489번지로 추정)
16.천견산(天見山) .천참산(泉站山):정상에 우물이 있음
3)풍양현 안쪽 마을 :내곡리(內谷里 .안골)
1.봇들:동촌 앞에 있는 들판으로 보가 있음
2.영서마을 =영지동 +서촌
3.내곡리의 원마을 =원내곡 .안골. 역말. 역촌
4.여경구 가옥 :내곡리 286 중요민속자료 129호
4)광릉내 부자마을 부평리(富坪里)=부토동(富土洞)+평촌(坪村)
1.갓무소-부평리에 있는 소
2.관골:부평리에 있는 골짜기
3.광릉(光陵):조선7대 세조와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능 ,사적197호
4.광릉내=광천(光川) ,광릉에서 흐르는 내가 이 부락 앞으로 흘러서
5.부평리 “살내벌”의 전설
:살내벌은 광릉앞에 벌판의 이름으로 옛날 차수복이라는 사람이 임금의 능에 참배를 하러가는데 부채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그냥갔다.
이에 임금에 대한 불경의 죄를 지었다고 해서 차수복을 동구밖에서 참수하려 하였다. 그런데 차수복은 동구밖까지 춤을 추면서 끌려갔다.
그때 마침 임금이 능에 참배를 하고 내려오다가 이를 보게 되었다.
임금은 곧 참수를 당해 죽을 사람이 희한한 춤을 춘다고 해서 차수복을 살려주라고 명을 내렸다. 뿐만아니라 부채도 하사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차수복이 춤을 추었던 장소를 임금이 “살려줘라”고 한
연유에서 살내벌, >현 봉선사천
6.광릉약수
:봉선사 뒤에 있는 약샘으로 속병에 좋다하여 삼짓날,사월 초파일 ,단옷날 때는 더욱 많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7.능남산(陵南山)=능앞산
8.달마골=달마동(達痲洞)
9.뒷들(후평 後坪, 신광 新光마을) 광릉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새광내”를 한자화 원지명은 부평리 뒤에 넓은 뜰이 있다하여 “뒷들”이라 부르고 있다
10.말구리고개(마명리고개):부평-마명리 말우리로 넘어가는 고개
11.망고개(능고개.넘고개):봉선사에서 능 안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참봉이 망을 보았다고 함
12.못물터(온물터):부평리에 있는 약수터로 피부병에 좋다고 함
13.분토골(粉土洞.부동 富洞):광릉에 세조의 능을 모신 후부터 능지기나 산지기에게
나라에서 토지를 분배해주었다하여 부동 또는 분토골이라 불리고 있다.
14.사스미고개(절고개):사슴이 많았음
15.장막굴:광릉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임금이 거동 할 때 장막을 쳤음
16.적십자마을:광릉내 옆에 있는 마을로 1964년 9월13일 폭우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적십자사에서 보호하여 이룩됨
5)곳곳의 여뀌 연못이 대 평야로 바뀌다 –요연평(蓼蓮坪) > 연평리(蓮坪里)
:연평평야가 개척되기 전에 토질이 습하고 군데군데 연못이 있었다하여 ..
:왕숙천을 끼고 드넓게 펼쳐저 있는 들판 > 풍양들
1.궁골(궁동 宮洞) 약 400년전 조선조 왕자 복성군의 묘가 생긴 후로 궁골 > 궁동
* 복성군 :중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빈박씨 ,현감 윤인범의 딸과 결혼
2.마른개울(乾川):장마 때나 물이 흐르고 그 외 기간에는 늘 말라있는 하천
3.와촌(瓦村 . 오얏마을 .와말) :토질이 기와에 적당하여 150년 전 기와공장이 있었는데 그 연유로 와말(기와마을)>발음변화로 오얏마을 >와촌
4.원머루. 원모루(院一):궁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원집이 있었음
5.중보개(중포 中浦) :임진왜란 때 개척한 요연평에 흐르는 보의 수로가 가운데로 축제되었다 하여 중보개 > 중포
6.옛날 연평리의 땅값은 얼마 였을까? “목화배미”의 전설
예전에 이곳에서 목화를 재배하던 연유에서 목화배기 또는 목화배미라 불렀는데 옛날 어떤 농부가 이곳에 600여평의 논을 가지고 있엇는데 흉년이 들었을 때 너무나 배가고파 논 600여평을 팥죽3그릇과 바꿔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7.과거의 비상연락 망
-대이산 봉수(大伊山 烽燧) * 烽 봉화 봉 . 燧 부싯돌 수
:포천 잉읍점봉수로 부터 구리 아차산봉수로 신호를 보내는 중계역할
(연평리 산32-1번지)
6)멀고, 길고, 높은 고개마을 장현리(長峴里)=장승+봉현(蜂峴)
1.궁안 :(한들 大野洞)장승배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영빈묘가 있음
2.버리개.벌우개 (봉현 蜂峴):부락동쪽 고개에 벌집이 있어 오고가는 사람을 ..
3.용바위 .龍沼 .용숙깨미 :옛말에 장수가 나면 용마가 난다고 하였는데 진벌리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용마를 타고 천하를 다스릴 장수가 없음을 알고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여 진벌리 바위 위에서 하늘을 향하여 크게 3번을 울더니 발자국을 남기고 용소로 뛰어 들었다고 하여 그 후부터 용소로 불렀으며 용소는 바위굴로 되어서 그 깊이는 덕소로 한강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4.장승배기(매봉재)
5.전동(全洞.전골.정굴):장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면사무소.지서.우체국
>예날 이곳에 기름진 밭이 많았다 하여 전골
6.학교말
7.한글산:전골 뒤의 산,
한글학회의 산으로서 한글학자 주시경 ,최현배의 묘소가 있음
7)개암나무를 베고 형성된 마을 진벌리(榛伐里). 갬벌
1.상나무배기(상납배기):진벌리 들판으로 향나무가 있었기 때문
2.중말(중마을):진벌리와 부평리 중간에 위치
8)조선 태조가 여덟 밤을 주무시고 간 마을 八夜里 (여덟밤이)
조선태조가 함흥에 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데 이 곳에 이르니 여덟밤이 되므로
“아 여덟 밤이로구나” 하여..
1.鶴林(黔丹이.黃林洞):해 뜰 때 검게 보이고 해질 때 붉게 보여
2.끝재말 (끝 마을 . 下村) 팔야리의 맨 끝 마을
3.누운고개 :검단> 음현리 넘은 고개로 비스듬이 누운 것 같은 고개
4.丹山(단산. 윗검단)
5.대답바위:팔야리에 있는 바위로 구멍이 있어 부르면 대답하는 것 같이 울림
6.독점마을(陶谷):고려시대에 이곳에 옹기점
7.사기막골:사기를 구웠음
8.새말(新村)
9.아작고개(아재고개):검단이에서 진벌리 중말로 넘어가는 고개로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아작 하고 잡아먹었다는 데서 유래
10.元八夜:팔야리의 원 마을 ,이곳에서 이태조가 8밤을 ...
11.왕숙천(王宿川).왕산천(王山川)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는 함흥으로 가버렸고 이에 태종은 사자를 보내 부친이 돌아오도록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태조는 거절했고 사자들 마저 죽여버렸다. 태종은 궁리 끝에 태조의 사부라 할 수 있는 무학대사를 보내어 겨우 태조를 환궁시킬 수 있었다. 이때 태조가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금의 팔야리에서 여덟밤을 자고 갔으므로 “여덟배미”,한자로는 八夜里 , 이 마을 앞을 흐르는 내를 “왕이 자고 갔다”는 의미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조의 광릉 안장 후 선왕이 永宿(깊이 잠든다)한다는 뜻에서 “왕숙천”, 이곳 마을 사람들은 왕산내 또는 王山川이라 부르고 1861년 대동여지도에 “왕산천”이라 표기되어 있다.
화도읍(和道邑)
1)맷돌이 많이 생산되었고 부락의 길이 돌고 돌아서 생겼다하여 “磨石隅里”
맷돌모루 또는 맷돌머루
1.사장터 :활을 쏘던 터
2.산성부락 : 머재 또는 메재 ,약 400년전 부락 중앙이 깊숙하고 주위가 산으로 둘러 싸여 마치 성같이 생겼고 사방에 문과 같은 고개가 있어서...
3.계전(鷄田 .아래닭계)-金鷄抱卵形
4.조지훈의 묘:박두진.박목월과 함께 청록파의 한사람
5.마석우리장
2)천마산과 마치(馬峙)고개 밑에 있어서 먹고개 ,먹갓 또는 묵동이라 불리는
묵현리(墨峴)=묵동(墨洞)+양현(兩峴)-안터 .두고개
묵동은 옛날에 검은 갓을 만들었다하여 “먹갓” >한자로 묵동,
검은 것은 예부터 사람에게 제일 경사스런 갓 이었다고 한다.
1.갓무산:먹갓 남쪽에 있는 산으로 형태가 갓처럼 생겼음
2.행자머리:의안대군의 상여가 머물렀던 곳
3.사당터:의안대군 이화의 사당이 있었음
4.서태님(소탄님):소를 타고 가다가 쉬었던 곳
5.잣동산 : 잣나무가 많은 산
6.너브내고개: 윗닭계>가곡리. 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7.직동(直洞.직골): 마을이 곧게 이루어져 있어
8.원지(院址):묵현리 367-5번지가 옛 원터로 강원도방면으로 또는 한양으로 오가는 무인지경의 대로변 으로 이곳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제공 현재는 형적도 없고 지명만 원터로 남아있다.
3)나의 아름다운 집 가곡리(嘉谷里 .가오실 嘉吾室)
:조선말기에 嘉谷大臣 이유원이 살던 곳 인데 그가 “나의 아름다운 집”이라 하여
1.괘라리고개(팔현리고개):가곡리 >팔현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주 험한 부락으로서 다래덩굴에 걸린다 하여 > 掛蘿里
2.일호. 이호. 삼호마을 :도유림 사업소에서 지어준 이름
3.쥐산: 쥐처럼 생긴 산
4.월곡(越谷 .너머골)
5.범선골:범이 있었다 함
6.절골;보광사가 있는 골짜기
7.송라산(松羅山) 가곡리와 묵현리 경계에 있는 산 ,해발 480m
정상에 철마가 있었는데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함
4) 9개의 상징적인 바위가 있는 구암리(九岩里)=구운+응암(鷹岩)
1.상로봉(향로봉):향로처럼 생긴 산
2.멱골 .고깔여울 .곱생이골. 쇠시랑골
3.애장굴:애장(兒葬)이 많았음
4.용늪:용이 하늘로 올라가
5.홍수골 .홍수굴 .장사바위. 장승모롱이 .평풍산 .응암(매바우)-매모양의 바위
6.榛伐(갬벌)부락
:진벌부락은 개가 꿩을 날게한 후 매가 이를 쫓게하는 형상의 부락
:개암나무 榛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하여
:개암나무가 많아서
7.새터(신기 新基) .신대(新垈)-새 부락
8.전의동(典儀洞 .전의골):원리 이 마을은 전씨가 살았는데 홍씨가 서울에서 낙향하여 그들의 세도에 밀려 전씨들은 전옥(典獄)에 사는 것 같다하여 전옥골 > 전의골
9.야현 (야미기고개.야미기굴):이 부락은 약 200년 전 어떤 풍수가(風水家)가 묘를
쓰고 也 (야)자 모양의 고개라하여 “야미기고개”라 하다가 한자로 야현(也峴)
5)산은 王女요 북한강은 거문고(琴)...거문고 소리 은은한 금남리(琴南里)
:마을 모양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왕녀처럼 생겼고, 남향이어서
1.갓바위.
2.당재-산제당
3.댓내(중대천)-큰 강.큰 내
4.마돌:금남리에서가장 큰 바위
5.범바위 .부엉바위. 매봉재.수리바위
6.세경바리:금남리 들판
7.장구늪:장구처럼 생긴 금남리의 늪 ,조개늪
8.헌터:금남리 들로 마을이 헐렸음
9.금대 (琴垈) .검터(거문고터):약 400년 전 전 씨가 설립한 부락으로 전 씨 중에 음율을 좋아하던 고관이 있었는데 매일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하여 검터라 하였고 한자화 하여 금대(琴垈)라 하였다.
10.고인돌떼(지석묘군 支石墓群)검터 북쪽에 20여기의 고인돌이 있음
11.금중:금남리의 중간 마을
12.금신(琴新). 남일원. 남하리. 박말. 박촌 :금신부락은 “박마을” 또는 “남일원”이라고도 하는데 약400년전 박씨가 많이 살았다는 전설과 약300년전 진주유씨 조상이 이곳에 “남일원”이라는 서재를 짓고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
13.내미연나루:금남리에서 양평 문호리로 건너가는 나루
문바위:문안산(文案山)의 바위로 문처럼 생겼음
14.닥박골:옛부터 닥이 많이 생산
15.백월리(白月里. 한다리) :약 400년전 최명길의 白月堂이라는 정자를 지었다하여
16.이춘의의 묘 및 신도비:조선 중기 문신 백월리산56-9
6)논이 많아 논골부락 “畓內里”
:월산리로부터 이 마을로 흐르는 물이 북한강까지 연결은 되어 있으나 도중에 물이 지하수로 흡수되어 버리고 말아 斷川또는 단내로 부르다가 발음변화로 답내가 되었다.
1.신포(新浦) .새 개(새로 만들어진 개울) :200년전 수해로 인하여 새로 만들어진 개을
2.답동(畓洞).논골:논이 많은 부락
7)달이 떠오르는 산 “月山里”.달미.당미.땅미
:달이 떠오르는 모양의 산봉우리가 있어 이 산을 월계산(月鷄山)>달에(달뫼) .당미
1.독바위:독 처럼 생긴 ...
2.상나무배기:향나무
3.오두봉(烏頭峯)
4.세월산(細月山).가래땅미. 가리당미
:이 부락에서 달뜨는 것을 보면 능이 가늘게 보인다하여 ..
5.등경동(燈警洞).등경골
:약 200년 전 어떤 풍수가가 남평 문씨의 묘터를 잡고 등잔을 걸어놓은 모양이라 하여
6.붉은덕고개: 흙이 붉음
7.지현(智峴)=지르레미
:이 부락은 약150년 전에는 부락이 없어 도현(陶峴.도시래)부락에 질러 넘는다 하여 “지르레미” >한자로 지현((智峴)
8.주막거리(점막.점촌):조선시대 서울로 가는 동행인의 여인숙
8)국가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고개마을 “창현리(倉峴里)”
9)마을 앞산에 잣나무가 많아 사슴이 많은 마을 “녹촌리(鹿村里)”
10)기계 유씨의 비석 건립에 우마차로 석조물을 운반 (덕소에서 차산리)하였다 하여 車山里 =수리너머고개. 차유령(車踰嶺)
진건읍(眞乾邑)
1)승천할 용이 나올만한 우물마을 : 용정리(龍井里)
2)소나무가 많고 성릉이 있어 송능리(松陵里)
3)새로운 달그림자 마을 :신월리(新月里)=신촌(新村)+월음(月陰)
4)단종비 정순왕후의 능(思陵)이 있는 마을 :사릉리(思陵里)
5)면(面)이 리(里)가 되어버린 진관리(眞官里)
*옛날에 양주군 진관면(면의 중심지) >본진관, 현재는 진관리
6)부락 골짜기마다 뱀이 많아 배남굴> 뱀굴 >배암굴>배양리(培養里)
*배양리(培養里)=고현(高峴. 고재 +도농리 >통합하여 북돋아 키운다
오남읍(梧南邑)
:한 개 마을이 (오남리) 읍으로 승격
:어람리(御覽)+오산리(梧山)
1) 양지바른 마을 양지리 (陽地里)
1.망세정지(望世亭址) 양지리 326번지에 있는 심선(세종때 벼슬하다가 단종이 왕위를 찬탈 당하자 이곳에 은거)의 정자터 ,심선의 묘도 양지리 향나무 인근에 위치
2.양지리향나무:양지530번지 천연기념물 232호 ,높이13m,수령 500살
3.삭다니마을(골말) :이 마을에 화재가 나서 마을 대부분이 타 버렸는데 “모두 타버린 마을 ”>싹 타버린 마을 >싹탄리>삭다니.삭다리, >한자로 骨말
2)세조가 광릉산지를 찾으러 광릉으로 가던 길에 내각리에서 쳐다본 마을 :梧南里
1.숫돌모루(梧山洞):숫돌이 났다 함
2.어남(어람):태조 이성계가 내각리에서 바라본 곳
3.장자말(長者) 이 마을 의 산세가 백만장자의 혈 터
3)여덟 명의 현인이 은거하며 강론을 펼친 마을 :팔현리(八賢里)
1.괘라리마을(掛羅里) 아주 험한 부락, 갓이 다래나무에 걸릴 정도...
2.억바우(億岩) 바위가 많음
3.남양홍씨 4효정문: 홍서구. 홍주구. 홍우구. 홍응구 4형제의 효자 정문
4.형제바우(兄弟岩) 팔현리 어귀에 검은 빛의 4개의 큰 바위가 산에서부터 개울을 향하여 우뚝 서 있는데 이것을 형제바우라 부름,이곳에서 위 4형제들이 사이좋게 놀던 자리라 하여, 이 바위에 돌을 던지고 기원을 하면 아들형제를 낳는다고...
5.발현제(發賢齊) :조선초기 문신인 하자종을 모신 사당
별내면(別內洞):別非+內洞
1)용이 큰 바위에 앉은 마을 :용암리(龍岩里)
1.거묵마을(巨墨) 큰 묵이 나와서, 숲이 우거져 (응달)...
2.광릉(光陵)마을:광릉산 아래 부락
3.닥밭.범바위.병풍바위. 삿갓바위.샘재.재작나무골.재비바위.절골.형제봉.수리봉
4.도감(都監)마을 :도감벼슬을 한 사람이 낙향하여 살아서..
5.용암산:용처럼 생긴 바위
6.비루개(星峴)마을 :별을 딸 수 있을 만큼 높은 고개 밑에 있어서
2)마을 동편 은행나무에 푸른 학이 살던 마을 :청학리(靑鶴里)
1.사기막(沙器幕):마당바위가 있는 마을로 고려시대 사기를 제조
2.마당바위(場巖):바위가 마당처럼 넓고 커서..바위모양이 기이(중간은 굽었고 좌우는 넓어 물이 잘 빠짐),100여명이 앉을 수 있고 옛날 측량원이 지나다가 올라와보고 농민들과 같이 즐기기도 하였다.
3.국사봉(國賜峯):원종공신 의령남씨 남흥복 사패지(賜牌之地)
*왕족, 국가유공자에게 일정한 토지를 하사하여 그 토지의 수입으로 생활하도록 하는 포상법으로 국사봉은 남씨의 사패지구역내에 있는 산봉우리라 나라에서 사패 받은 봉우리 라는 뜻의 국사봉이 되었다.
청학리와 용람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358m ,옛 집터. 범바위골. 북망산. 飛仙谷이 있다
4.수락산(水落山):도봉산과 마주하여 불암산 북방에 砂岩으로 된 산이어서 수림은 울창하지 못하지만 산중에 금류동(金流洞). 은선동(隱仙洞). 옥류동(玉流洞)의 3沼 가 있다
수락산의 모든 봉우리는 거의 전부가 서울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그래서 태조 이성계는 서울 수호산이라 칭하였다. 실제로 수락연봉(水落蓮峯)은 과거 한양방어선이었다고 한다
5.동학굴(東鶴窟) .동학동:동네가 크며 앞산이 잘룩 잘룩 셋이 있는데 먼데서 보면 마치 학이 날아가는 것 같은 모양이고 그 학이 동쪽으로 머리를 두어 동쪽으로 날아간다는 것 같은 전설이 전하여 진다.
6.쌍백정지(双栢亭址) :청학리 입구 남용익의 정자
7.옥류동(玉流洞).폭포 : 골짜기에 폭포가 있음
8.응달말:동쪽에 높은 옛성산이 있고 부락이 서쪽에 있어 응달진 마을
9.정촌말: 鄭씨가 살았다 하여 =정씨촌
10.투구봉:투구처럼 생긴 봉우리
3)조선시대 한양 밖에서 제일 큰 밭이 있는 마을: 廣田里
1.광암(廣巖 넉바위) 부락 뒷 학계산(鶴鷄山)에 있는 바위로 기이 웅장(길이7.5m ,너비 6m ,높이9m) 머리는 말 잔등처럼 생긴 기암이 좌우의 송림 속에 엄연히 독립되어 있어서 넉바위 ,일명 넓은바위라 불려진다.
이 바위는 이성산과 불암산 중간에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불암산에는 우리 군대가 진을 치고 이성산(里城山)에는 왜군이 진을 쳤다고 하며 지금도 성터와 샘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2.산하(미아리):마을 모퉁이에 미아바위가 있어 미아리(彌阿里)
3.삼밭굴(마전 麻田):조선시대 삼을 많이 재배
4.임촌(任村):임씨가 많이 살아서...
5.퇴뫼( 태봉 胎峯):퇴뫼산 밑으로 왕자의 태를 묻어 ...
6.옛성산(古城山):옛 성터가 있는데 을지문덕장군이 쌓았다는 전설
4)덕흥대원군의 능산에 송림이 울창하여 이름 지은 마을 :德松里
1.남아릿굴(남아리골):인적이 드물고 유일하게 한집밖에 없어 ,시골 깊숙한 곳 이라..
2.덕흥대원군 묘 및 신도비( 덕릉 德陵):흥국사 위쪽에 있는 조선 제14대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3.덕흥(德興)마을 :능 안에 위치한 마을
4.덩릉고개(당고개)
5.독산:돌로 된 산이라서..
6.약물터:독산에 있는 약물터
7.유꿀 (廟洞):옛날 사당이 있었다 하여
8.범바위(虎巖):범처럼 생긴 바위
9.순화궁(順和宮):선조의 왕자 순화군의 무덤
10.식송(植松 .싱근솔):릉 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
11.장자밭(長者밭. 長者田)
12.흥국사약사전(興國寺藥師殿):흥국사내에 있는 전각으로 본래 이 약사여래는 정릉동 약사사에 모셔저 있었는데 아주 영험해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으니 1920년경 중들이 피곤하여 “약사부처님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이라”하고 원망하였더니 밤사이에 부처가 없어져 찾아보니 근처 개울가에서 발견하여 옮기려해도 움직이지 않아 결국 흥국사로 결정하고 옮기는데 힘하나 들지 않고 옮겼다고한다.
5)꽃과 나비가 춤추고 지형이 곶처럼 되어 있는 마을 :花蝶里
1.가닥밭골: 갈나무가 많아
2.치마바위: 치마 처럼 생긴 바위
3.하얀산: 나무는 없고 흰 바위만 있어서
4.가굴: 박쥐가 많은 동굴이 있어서
5.논골: 논이 많아
6.담터고개
7.딴릉 : 건원릉 터로 잡으려 했으나 딴데로...
8.불암굴: 불암산 밑에 있는 마을
9.삼안리(三安里 .삼안이)
10.쑥고개 :딴능 >삼안리 ,쑥이 많아 .. 그러나 지형이 쑥 올라와..
11.장자말
12.평양(平陽)마을 :양지편마을
13.주을천(注乙川 .주을내) :태조의 능지를 화접리에 있는 다른 능에다 선정한 후 능지의 적지 여부를 중국에 문의하였는데 적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와 동구릉에 재선정하게 되었다. 그사이 영의정 남재가 죽게되어 다른 곳에 장지를 선정하고 동시에 하관키로 하였으나 통신망이 발달하지 못하여 줄을 매어 신호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 줄이 지나간 부락이라 하여 “줄흘내” >주을내
퇴계원면
양주군 별비면 지역으로서 도제원(渡濟院.道濟院)이 있었으므로 도제원 또는 토원(兔院)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퇴조원(退朝院) >퇴계원
:조선 태조가 왕자의 난을 아주 미워하여 함흥에 가 있다가 신하들의 권고에 못 이겨 이곳 냇가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삼각산의 세봉우리를 바라보다 분이 복받쳐 다시 진접 내각리 풍양궁으로 물러갔으므로 퇴조원
:또한 예종이 선왕인 세조의 능인 광릉에 참배차 행차하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길을 새로 만드는데 냇가를 길로 닦기 위하여 물을 밖으로 물리쳤기 때문에 퇴계원
*도제원:조선 시대 양주(楊州)에 있었던 숙박소[院].
출장 간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주기 위하여 각 요로(要路)나 인가가 드문 곳에 원을 두었음
1.고인돌(支石墓):퇴계원 74번지에 있는 고인돌
2.말티고개(馬峙고개)
3.뱅이고개(부락) .백양(白羊:흰 양과 같은 고개 밑에 위치한 부락) .지남철고개
>서울에서 백리 되는 지점
4.신하촌(新河村):퇴계원 동쪽에 새로된 마을 (예전에는 다리촌 .대홍수 로 사라짐)
5.바우배기 논 :논에 바우가 많아 현재 강남아파트 자리
6.주막(酒幕.술막):퇴계원역앞 주막이 많이 있었서 ..
7.退溪院場:일제시기에 장이 형성되었다가 1960년대 폐지
물 동네 수동면(水洞面)
수동팔경(水洞八景)
물골안 계곡에 연하여 있는 마을
이름부터가 다분히 시취(詩趣)요, 화의(畵意) 그대로이다.
송천리(松川里), 운수리(雲水里), 입석리(立石里), 수산리(水山里)
제1경(第一景):석수장림(石水長林)
>암반(岩磐)을 타고 흐르는 물+거암(巨岩)=“석수동(石水洞)”
>울창한 장림(長林)속 큰 바위에 “낙역무궁(樂亦無窮)”이란 시구가 예서로 각자
>지금은 감리교 교육원으로 쓰여지고 있다.
>석수대에서 약 30m정도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가 물속을 들여다보면 약 10여 평
됨직한 암반(岩磐)이 있는데 이름 모를 소요묵객(逍遙墨客)이 새겨놓은 “석천아연거(石泉我然居)”와 작은 글씨로 “편애청산 청불노(偏愛靑山 靑不老)”란 시구.
제2경(第二景): 만취육교(晩翠陸橋)
>만취대(晩翠臺)는 옛날 가평현으로서 운하천(雲霞川)이 경계, 운하천은 지금의 수동천(水洞川)을 말하며 만취대 아래에는 못(潭)이 있고 거암 절벽이 병풍처럼 깎아질러 서 있으며 바위색(色)은 희다 못해 창백하고 바위주름은 부벽준(斧劈皴)을 이루었으니 기관(奇觀)이요, 기승(奇勝)이라 하였는데, 이 말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선생의 「유만취대기(游晩翠臺記)」를 인용한 것이다.
제3경(第三景) : 비룡채운(飛龍彩雲)
>비룡마을에 들어서니 하늘엔 여러 빛깔로 아롱진 곱디고운 뭉게구름이 가득하여 마치 구름에 채색한 듯 아름답다.
제4경(第四景) : 당두평야(唐頭坪野)
>수동천(水洞川) 오른쪽은 축령산(祝靈山)이요, 왼쪽은 천마산(天摩山)이 높이 솟은 산이 당두마을이 자리하고 주위에 제법 넓은 들이 전개된다.
제5경(第五景) : 수교망월(水橋望月)
>돌다리에 올라 보름달을 바라보는 경치.
제6경(第六景) : 운수모연(雲水暮煙)은 운수리의 저녁연기.
제7경(第七景): 황소명사(黃沼明沙)
>황소대(黃沼臺)의 빛나는 모래를 칭함이니 황소(黃沼)는 지금의 입석리(立石里)로
>개발로 인하여 옛 자취는 찾을 길 없으나 누런색의 물과 아름다운 바위, 아름답던
모래밭은 전답으로 개간
제8경(第八景): 비금계곡(秘琴溪谷)은 비금의 계곡이 아름다워 오남읍 괘라리에 살던 북창(北窓) 정렴(1505~1549)이 자주 찾아 즐긴 곳으로서 지금의 몽골촌 근처.
*자료: 이영보(李英輔; 1687~1747)의 동계유고(東溪遺稿)에 기록.(1999.2)
1)산골짜기 안동네 >안방골=내방리(內防里)
1.가닥발산:가닥(갈)나무가 많음
2.방골. 坊洞;내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네모
3.비금리(秘琴里)
4.시루봉 .서낭댕이 .장자골. 치마바위
5.안마산(安馬山 또는 내마산):안씨와 마씨가 살았다고 함
6.엿새갈이골:엿새갈이 할 정도의 밭이 있음
2)산 밖에 마을 >바깥방골=외방리(外防里)
1.불당(佛堂)골:불당이 있었음
2.새창벌:사창(舍倉)이 있었음
3.서리산
4.석고개(石峴):외방리에서 가장 큰 마을
5.수리넘이고개
6.전지랏골(전자동 全子洞) :이 마을에 맨 처음 전씨 지씨 라씨 하씨가 살았다 하여..
3)물 저장의 보고 같은 산이 있는 마을 :수산리(水山里)
1.가깨말:갯가(하천)에 있는 마을
2.검단이고개(=진접) 괘라리고개(팔현리고개)=오남 .쇠푸니골=금곡리 .철마산
3.꽃재(화현 花峴)
4.도린개말:하천물이 돌아 흐르는 마을
5.물막골(수막 水幕). 물탕골.바위소구미소 .백소 .수산천
4)큰 선돌이 있는 마을 입석리(立石里)
1.가마소. 감투바위. 굄돌 .상여봉. 논골.떡갈봉. 매봉재.치마바위.
2.만취대(晩翠臺)
3.새논들. 새말. 새말들. 새봇들
4.우무골:움집이 있었음
5.섬벌:입석리 들판으로 섬처럼 되어 있음
6.은드먹고개(銀頭目峴):은두목산 줄기에 있는 고개
7.점둔지마을 :옹기점이 있었음
8.탑거리 :돌탑이... 탁거리=주막거리
9.퇴서(退暑)골: 더위를 물러가게 하는 계곡
10.파위(巴位)고개 .마을 :산이 반달모양으로 돌아서 생긴 마을 파호>파위
11.피야골: 피(기장 직 稷)의 골짜기?
12.황소터(沼);이무기가 있어서 황소를 잡아먹음
5)지초라는 신비한 풀과 버섯이 풍부한 지둔리(芝屯里)
1.원지둔(元芝屯).안산(案山).돌모루.둥글봉.선바위.
2.고사리양지(산):양지바른 산으로 고사리가 많음
3.광대울:약200년 전 이 마을의 통정대부 집에서 경연이 벌어졌는데 이때 한 광대가 줄을 타다가 떨어져 울고 갔다고 해서 ...
4.노적봉(露積峯): * 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음. 또는 그런 물건
5.줄선산: 신선이 놀았다 함
6.새창벌: 벌판에 있는 마을로 사창(社倉)이 있었다 함
7.삼각골. 삼가(三佳)골: 山가. 水가. 人가
8.스무나무: 삼각골에 있는 나무- 시무나무
9.형제바위(兄弟岩):크고 작은 두 바위가 형제처럼 서 있음
6)구름이 모여 물이 되는 마을 운수리(雲水里)
1.거북바위. 두껍바위. 뜀바위. 동굴봉. 절터골. 호통골
2.군안(群雁).구난(求亂 九亂):운수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9번의 난리를 피난하여
구난>군안
3.당두둑.당두평(唐豆坪)
4.석수대(石水垈):석수대는 수석이 좋아 수동유원지에서 첫째가는 풍경으로
옛 선현들도 이곳의 산수를 즐기면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시상을 가다듬었음을
알게한다
*음풍농월:바람을 읊고 달을 보고 시를 짓는다, 시를 짓고 흥취(興趣)를 자아내며 즐김
5.섬말(섬마을 .島村):부락 양측을 하천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섬과 같다하여 ..
6.탕귀마을(고개): 쓸어버리다 . 씻다 (蕩) ? 湯 넘어질, 쓰러질 탕 ?
7)하천가에 소나무가 어우러진 마을 송천리(松川里)=松蘿+長川
1.높은터.덕고개.베틀바위.보통산.보통이들.산신터.쑥고개.아장터.치마바위.학고개.두리봉
2.구진터:옛날에 진을 쳐다함.
3.성제바위:두 바위가 형제처럼 서 있음 *성제=형제
4.신발리(新發里):새롭게 마을이 형성되는 마을
5.장개울=長川里
6.장자터:부자가 살았다 ,부자터
7.한새 (한사리 寒沙里): 모래가 차다
8.화채봉(花菜峯)
9.황개터골=황가터골 :황가가 살았음
새도 사람도 편안한 조안면(鳥安面)
1)아홉 개의 산봉우리(九峯)가 세 개의 봉우리를 이룬 마을 삼봉리(三峯里)
1.아양 (峨洋 .峨陽 .阿羊. 襾羊 .蛾陽)
-조선중기 소규모로 양을 길러 우리나라에서 맨 먼저 목장 형식으로 양을 기른 곳
2.고누골(고노골):옛날 고누놀이 한데서
3.부엉배마을 :부엉바위가 있는 마을
2)신라 마의 태자가 금강산 가는 길에 날은 저물고 그때에 비가 와 쉬어간 마을
시우리(時雨里)-동간(東間) 부락
1.우럭바위.광명
2.내치(內峙)부락:조선시대 궁내에 내시를 양성 궁에 받쳤다 하여?
3.새우젖고개:시우리-운길산
4.새재고개:시우리-도곡리
5.유량묘 및 신도비
3)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마을 송촌리(松村里)=배나무용진
1.두촌(豆村)=용진(龍津)=평촌(坪村)=벌말
-조선시대 배나무가 많기로 유명 > 콩 재배가 유명
2.송신(松新). 송송골
-두촌부락에 세대수가 늘어나자 소나무밭 속산에 마을을 다시 만들어 살게 되어
-중국에서 장수 이여송을 조선에 보낼 때 송자가 붙은 마을은 가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을 들은 한은 이덕형이 직접 이마을에 송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 “송송골”
그 이유는?
3.관가정지(觀嘉亭址):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즐기는 주인 미상의 정자 터
4.대아당지(大雅堂址):크고 우아한 집이란 뜻의 한음 이덕형의 *별서(別墅)로
*별서(別墅):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의미
-이노정(怡老亭) :이곳에 있으면 기뻐서 늙지 아니하는 정자
-읍수정(挹秀亭) :물에 떠 있는 듯한 빼어난 정자가 있었으며
-대청쪽마루 진일헌(眞佚軒):참으로 편안한 추녀
-서실(書室)인 애일당(愛日堂):하루하루를 아낀다, 햇살이 좋아 사랑스러운 집
5.변협묘 및 변응성 묘
6.수종사(水鍾寺)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가, 이수두(二水頭: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어 깊은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뜻밖에도 바위굴이 있고, 그 굴속에는 18나한(羅漢)이 있었는데, 굴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왔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는 유래.
4)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말로 진을 치고 대항한 마을 진중리(鎭中里)
1.구절터: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골짜기
2.굴바위:굴이 있는 바위
3.두물머리
4.수리바위:수리처럼 생긴 바위
5.옻나무골. 한가골. 배나무골 . 中里=중말. 雲吉山
6.마진(馬鎭)=마평(마들=말을 매는 들판)+진촌(진말)
–조선 중기 오랑캐를 막기위해 우리 군대가 진을 쳤던 곳
7.장구매기:장구의 목처럼 생긴 골짜기
8.도당터(진터):전에 진을 쳤던곳, *도당제(都堂祭)를 지냈음
*동네 사람들이 도당에 모여 그 마을의 수호신에게 복을 비는 굿
9.조곡(鳥谷)마을: 산 속의 새가 아름다운 소리로 울고 계곡이 깊숙하여 물이 깨끗하며 사람 살기에 좋다하여 조곡(鳥谷)이 되었다.
10.새우젓고개: 조곡 >도곡리 대추나무골
11.고려장터:고려장은 고구려시대의 장사 지내는 법으로서 늙고 병들은 사람을 묘실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거기에 안치하고 금은보화를 넣은 다음 돌로 쌓아 봉토하는 것을 말하며 이곳은 이러한 고려장을 실행하던 구체적인 장소였던 곳으로 추정
5)새소리가 좋고 물이 좋아 가던 길 멈추고 사는 마을 조안리(鳥安里)
1.공순이고개 .다랑굴. 방아다리. 씸배굴.장승배기.새재
2.벼락바위:큰 바위가 있었는데 벼락을 맞아 여러 조각으로..
3.조동 (鳥洞. 새울. 새월): 옛날 이곳에 새가 머물고 날았 갔다 하여,박씨 선조가 한양가는 길에 마을 앞을 지날 때 해가 저물어 쉬게 되었는데 새소리가 듣기 좋고 물이 조아 가려했던 길을 멈추고 여기서 살기로 한 이후로 ...사방에 높은 산이 있음.
4.사안(砂安).고랭이 .高安 :을축년 장마 때 물이 고개를 넘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고 이로 인하여 물고기도 고개를 넘었다 하여 고랭이> 고안> 사안
5.팥죽고개: 비가 오면 길에 흙이 질어져서...
6)서원부원군 한확의 묘가 있는 능안마을 능내리(陵內里)
1.곡동(曲洞).곱동굴 .노루목. 다래골 .두미沼 .부처바위.장승배기.절골
2.복당골:불당(佛堂)이 있었음
3.원곡(院谷)=원골
4.지청들:서원부원군 한확의 제청이 있었음
5.마현(馬峴)=마재 .두척(斗尺)-말 두 ,자 척
:광주 분원으로 넘어가는 길로서 말을 타고 넘어가는 길이 많았던 고개라 하여 마현
:말재-높은 고개 , 이 부락은 정약용 4형제가 태어나서 자랐고 선생과 그 친척들이 살았고 한림학사 민시도 이곳에 살았다.
6.다산 유적지
7.여유당(與猶堂):정약용의 생가로 본래 다산 유적지 입구 추차장 부근으로 추정되며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소실되었던 것을 현재위치에 복원 .다산묘역 바로 아래에 위치함.
8.암행어사 박문수 택지:다산 정약용선생 생가 앞에 있는 박문수의 집터
9.우천도선장(牛川渡船場 . 소래나루):마재 앞에 있는 나루터로 광주 남종면 우천리 소내로 건너감
10.원릉(元陵)마을: 능안이라 불리며 청주한씨 서원부원군 한확의 묘소가 있다.
11.능밑마을 .비선골마을(한확의 신도비가 서있는 마을)
12.막은데미골:한확의 묘를 쓸 때 사성을 높이 하였는데 풍수의 말이 금까마귀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성이 높아서 알이 곯는다 하여 막은 사성을 없애다함.
13.사리장(砂利場)마을 :원릉 남쪽에 있는 마을로 한강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만들어짐
14.봉안(奉安) =상봉+하봉
15.팔당댐:1974년 능내 봉안에 건설된 댐으로 높이 132m 길이 545m, 시멘트콘크리트댐으로 총저수량은 2억4400만톤..
16.호암바위:능내역에서 팔당으로 가는 철로 위쪽 산에 있는 바위로 호랑이를 닮았음
평지가 좋아 호평동(好坪洞)
1.구룡터(구멍터. 구녕터. 구명터):이 곳 우물에서 아홉마리 용이 승천해서..
-구씨와 명씨가 살아서
-전구용이란 사람이 살아 –구룡터
-전구멍이란 사람이 살아 –구멍터
-전구영이란 사람이 살아 –구녕터
2.구슬막마을 :구슬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음
3.뒷벌. 벌말(평촌). 상거리
4.호만(好滿)마을 .홈안. 홍안 :예전에 논에다 물을 대기 위해 느티울 쪽으로 나무홈을 파서 만든 홈통을 이어낸 농수로가 있었는데 이 홈통으로 된 농수로 안에 있는 집들을 “홈안” > 호만
5.배래니고개:호만에서 오남 팔현리로 넘어가는 고개
평지 안쪽이 더 좋아 평내동(坪內洞)=궁촌+장내
1.
온 계곡마다 금 나온다 금곡동(金谷洞)
바르고 바르게 성장. 발전하는 양정동(養正洞)
-평구역의 역마를 교대하는 첫 번째 마을 일패동(一牌洞). 이패동. 삼패동
*조선조 중기 이후 역마가 도중에 휴식하며 공문을 전달. 교환 하던 장소
지초가 비단처럼 널려있던 아름다운 마을 지금동(芝錦洞)
-한강 가에 구름을 더하여 금상첨화의 아름다운 마을 가운동(加雲洞)
-한강 가에 돌이 운집하니 이곳이 금강산 같은 동네 수석동(水石洞)
도자기 굽는 평온한 농촌마을 도농동(陶農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