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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근 시집 <사람이나 꽃이나>, 푸른사상, 2015. 10.
탈핵의 시학
맹문재
1
채상근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탈핵을 선구적으로 추구한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한국의 시인들 중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를 가장 전면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작품화해 핵 문제를 부각시켰다.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를 단순히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한국의 원자력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물론 앞으로의 대응책도 나름대로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시인은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품었다. 반핵 운동이나 탈핵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은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인류의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시인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껴안은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노동자들은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삼고 국가의 전력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방사선을 맞아가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사회적 차별 내지 사회적 불평등의 관점으로 인식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자세를 가졌을 때 원자력 발전소를 안전성이나 경제성이나 과학기술의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시인이 원자력 발전소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의 불안과 고통 등을 담은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자의 영역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제를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의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곧 원전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원자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참사를 뉴스 보도를 통해 지켜보면서도 먼 나라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원자력 발전소가 설치될 예정 지역의 주민들이 반대 집회를 열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는 국내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지금까지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리하여 원자력과 관계된 안전 교육도 정보 공유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국내 원자로 23기가 고장으로 멈춘 시간은 총 5만 5,769시간 46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23기 중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되지 않았던 원자로는 한 개도 없다.”라는 사실에서 보듯이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면밀한 점검과 예방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원자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근래에 한 신문은 「원전 막으려면 전기 소비자인 시민들이 힘 보태줘야」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원불교 환경연대가 마련한 ‘탈핵 할매 토크 콘서트’에 출연하고자 한국을 찾은 사와무라 가즈요(80)와 미토 기요코(80)를 취재한 것이다. 38년간 탈핵 운동을 펼쳐온 사와무라는 1995년 한일 탈핵 교류를 시작한 이래 3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미토는 핵발전소의 건립을 멈추는 일만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같은 대참사를 막을 수 있다며 탈핵운동을 벌인 도교대학교 핵물리학자 미토 이와오 교수 부인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에 충격을 받고 남편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시와무라는 현재 일본에는 54개의 핵발전소가 있는데 막아낸 것이 훨씬 많다며, 한국에서 핵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지의 주민들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므로 서울 시민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구체적인 대응책까지 제시했다. 미래 세대가 살아갈 수 있도록 연대 활동으로 막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발전은 대기업의 돈벌이 수단일 뿐”이라며 “‘방사능은 차별하지 않는다’란 노래가 말하듯 재앙은 핵발전 추진자들에게도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이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다. 이미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강화하는 한편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는 그와 같은 추진이 아직 미흡하다. 따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실행하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 채상근 시인의 시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는 원자력 발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들에게 역사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2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58초
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
붉은 옷을 입은 소방관들은
사명감으로 소방 호스를 메고 달려가고
갑자기 작전에 투입된 젊은 군인들은
소련의 아들 빛나는 영웅이 되고
멀리서 폭발하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영문도 모른 채 버스에 실려 키에프로
또 다른 낯선 도시로 흩어진
원전 계획 도시 프리피야트 시민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저녁 봄바람은 천천히 불고 있었고
방사능에 오염된 벨라루스 공화국은
오백 여 개의 마을을 잃었다
술집마다 보드카는 동이 났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2명 사망 보도
유피아이 로이터연합은 2천명 사망
사망자들은 핵폐기물을 매장하는
피로고프 마을에 묻혔다
―「방사능 시대․1986」 전문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58초/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이 일어났다.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로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4호기 원자로가 비정상적인 핵반응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 바람에 다량의 방사선 물질이 누출되어 국제 원자력 사고 중에서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었다. 폭발 직후 “붉은 옷을 입은 소방관들은/사명감으로 소방 호스를 메고 달려가고/갑자기 작전에 투입된 젊은 군인들은/소련의 아들 빛나는 영웅이 되”어 화재의 진압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물이 기화하여 주변이 증기로 가득 찼는데, 이 증기가 다른 물질과 반응해 가연성 물질로 변해 잔해를 폭발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군용 헬리콥터가 동원되어 중성자를 흡수하기 위한 붕소 화합물이며 방사능 차폐를 위한 납과 모래, 진흙 등이 투하되었다. 그렇지만 그것마저 추가 폭발이 우려되어 중단되었고, 3호기의 액체 질소를 노심에 주입해 5월 9일이 되어서야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화재 진압에 동원된 소방관들이나 군인들은 방사선에 피폭되어 대부분 사망했다. 사고 직후 원자력 발전소 직원과 소방대원 등을 포함해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2명 사망”이라고 보도했지만, “유피아이 로이터연합은 2천명 사망”이라고 보도했다. 공식 보고에 따르면 25,000명이 사망했다. 방사능 측정 장비나 방호 장비를 갖추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의 근무자들이나 소방대원들은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멀리서 폭발하는 불빛을 바라보다가/영문도 모른 채 버스에 실려 키에프로/또 다른 낯선 도시로 흩어진/원전 계획 도시 프리피야트 시민들은/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사고가 난 하루 뒤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까운 프리피야트와 야노프역에서 살던 주민들은 이주되었다. 그리고 나흘 뒤에는 사고 지역 주변 30km 이내의 주민들이, 5월 14일부터는 30km 이상 떨어진 지역 중에서 방사선 조사량이 기준치 이상인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이주되었다. 이렇게 소개된 주민은 “오백 여 개의 마을”에 거주하는 11만 6천 명에 이르렀으며 가축도 6만 마리나 되었다.
그런데 사고 즉시 소련 정부가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는 바람에 스웨덴의 제기에 의해 비로소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날 아침 스웨덴의 포스막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그 이튿날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지역들과 덴마크에서 검출되었다. 이에 스웨덴 정부는 대기 상황을 고려해 방사능이 소련에서 날아온 것으로 보고 소련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소련은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간과 피해 정도를 밝히지 않은 채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갖가지 소문이 서방으로 퍼져 나갔고, 미국의 위성에 의해 손상된 원자로가 확인되면서 사고가 매우 심각한 규모라는 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소련 정부는 5월 6일에 이르러서야 사고를 보도하기 시작했고, 방사능 누출을 막는 작업을 하는 한편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방사능 폐기물이 발생되어 30km 이내가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1986년 8월 국제 원자력 기구(IAEA)는 소련 정부가 제공한 자료와 전문가들의 증언을 토대로 원자력 발전소의 구조적 결함이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밝혔다. 사고 전까지 기술적인 문제로 원자로를 정지시킨 경우가 총 71번이 있었는데도 소련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홍보했던 것이다. 그 결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전 세계인들에게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원전의 참사는 체르노빌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경
섬 일본을 뒤흔든 대지진 발생
선반 위 장난감 자동차들은 살아나
방바닥으로 떨어져 굴러가 처박히고
물에 젖은 스마트폰은 먹통이 되고
배터리 끼워진 둥근 벽시계는 구르다 멈추고
바퀴도 없는 큰 배는
논바닥으로 올라와 쓰러지고
상상을 사정없이 덮쳐버리는
시커먼 바다
땅 위에 사람도 집도 신작로도
쓰레기처럼 쓸려가 처박히고 갈라지고
지구 한 귀퉁이가 툭 툭 터져나가는 것처럼
핵폭탄처럼 터져버린 후쿠시마 원전
질질 흘러나오는 방사능
태평양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으로
방사능 세계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다시 쓰나미가 몰려오는 날
현재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방사능이
세계의 바다를 지구를 덮쳐버릴 날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방사능 시대․2011」 전문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경/섬 일본을 뒤흔든 대지진 발생”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대재앙이 일어났다. 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과 해일을 견디지 못하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것이다. 그리하여 “핵폭탄처럼 터져버린 후쿠시마 원전/질질 흘러나오는 방사능/태평양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으로” 번져갔다.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어 대기, 토양, 바다, 지하수 등이 오염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사고가 일어난 지역으로부터 반경 20㎞를 ‘경계구역’으로 지정해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주변 지역 중 방사능이 많이 검출된 곳의 주민들을 피난시켰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자국민의 방사능 피해를 막기 위해 도쿄를 떠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일본의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거나 품질 보증서 및 생산 가공지를 기록할 것을 요구했다.
전 세계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정부 역시 소련 정부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을 은폐하고 축소했지만 세계 각국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지진과 해일에 따른 사고라고 할지라도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해온 일본이 원전의 폭발 앞에서 대책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감을 가진 것이다. 그리하여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확보되었다고 믿어왔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원자력 발전소의 증설 정책을 재고하는 것은 물론 원전 자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채상근 시인의 작품에서도 그와 같은 면을 볼 수 있다.
3.
관광버스와 수학 여행단은
원자력 전시관 앞에서 기웃거리지 않아도
대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의 품에 안겨주는
원자력 발전소 홍보용 책자와 방문 기념품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던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가로막기에 충분하다
원자력 발전소만 잘 돌려주면
깨끗한 에너지 원자력과 함께
평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으리라는
땃땃한 기대와 희망을 가득 싣고
씽 씽 돌아들 간다
여기선 침묵이 최선의 방호다
에어록은 슬그머니 열리고
작업 조원들을 맞이하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방사 분해된
쉰 공기들
―「방사능 시대․1995」 전문
“관광버스와 수학 여행단”이 “원자력 전시관”에 방문하면 “대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원자력 발전소의 관계자들은 자사가 추진하는 사업을 방문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방문자들에게 “원자력 발전소 홍보용 책자와 방문 기념품들”을 나누어주며 원전의 안전성이며 청정함을 홍보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의문과 질문을 가로막”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그들의 주장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참사에서 증명되듯이 허구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핵의 안전성에 도전해서 방대한 에너지를 얻고 있으므로 그 자체가 위험하다. 원자핵을 불안전하게 만들면 화학물질보다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동시에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방사능도 방출된다. 원자력 발전소는 핵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그 방사선을 원자로에 축적해놓고 가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축척되어 있는 방사능이 방출되어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밸브와 배관 등으로 조립된 기계이므로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기계를 만들고 가동시키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천재지변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30년이 되었는데도 처리가 끝나지 않고 있는데서 보듯이 원전 사고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피폭당한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는데, 유족들조차 다가갈 수 없기에 죽어서도 고통을 겪고 있다. 또한 사고 처리에 사용된 수많은 차량들과 헬리콥터도 버려진 채 방사능 묘지로 남아 있다. 자국 곡물의 40%나 공급하던 곡창지대가 시간조차 사라진 폐허의 땅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관계자가 홍보하는 “원자력 발전소만 잘 돌려주면/깨끗한 에너지 원자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허구이다. 원자력이 곧 청정한 에너지라는 주장은 꾸며낸 신화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주장은 석유 중심의 화석 연료 사용이 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므로 원자력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산업 부문, 운수 부문, 민생 부문에서 큰 것이지 발전소와 같은 에너지 전환 부문에서는 미소하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소의 증설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오히려 전력 소비를 조장시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늘릴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만 잘 돌려주면” “평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사실과 다르다. 원자력의 추구에는 에너지 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되어 있다. 화석 연료의 고갈은 시기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미래의 에너지를 개발할 필요가 있는데, 원자력이 그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자력은 무(無)에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라늄이라는 연료에서 핵분열을 시키는 것이다. 핵분열로 인한 높은 열로 물을 끊여 전기를 만드는 것이므로 원리 차원으로 보면 화력 발전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라늄이 존재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보면 원자력이 미래의 에너지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라늄의 실제 매장량이 석유나 석탄보다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자력의 청정성이나 미래 에너지라는 신화를 내세우기보다는 원자력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는 공기 공급 호흡기를 착용하라
가슴 부위와 성기는 납차폐복을 착용하여
우리를 죽이는 방사선을 방호하라
방사선 준위가 높은 작업장에서는
절대로 말을 꺼내 놓지 마라
할당받은 시간 동안만 작업을 하고
미련일랑 두지 말고
빨리 작업장을 떠나라
방사선 감시 측정기에서 경고 알람이 울리면
납차폐벽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문을 닫고
방사선고준위 경고판을 부착하라
다음 작업자는
작업 예행연습을 철저히 하고
방사선 방호에 만반의 준비를 하라
―「원자 방사능에 오염된 시」 부분
“방사능”이라는 말은 ‘방사선을 내는 능력 또는 성질’의 의미를 갖지만 실제로는 ‘방사선 물질’를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방사능”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렇지만 호흡과 음식 섭취를 통해 생명체의 몸 안으로 들어오면 세포를 공격한다. “각 세포가 특별한 세포로서 기능이 분화됩니다. 이러한 세포 분열 끝에 인간은 성인을 형성하는 약 60조 개의 세포가 있는 것입니다. (중략) 방사선에 피폭된다는 것은 이러한 신기로 이루어진 우리 유전 정보가 절단되어서 유전자 이상(異常)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DNA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몇 전자볼트 에너지에 비해 방사선이 가진 에너지는 수십만에서 수백만 배나 커서 ‘생명 정보’가 갈기갈기 찢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소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는 “공기 공급 호흡기를 착용하”고 “가슴 부위와 성기는 납차폐복을 착용”해서 “우리를 죽이는 방사선을 방호”해야 한다. 또한 “방사선 준위가 높은 작업장에서는/절대로 말을 꺼내 놓지” 말고, “할당받은 시간 동안만 작업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방사선 감시 측정기에서 경고 알람이 울리면/납차폐벽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문을 닫고/방사선고준위 경고판을 부착하”는 것도 필수이다. 원자력 발전의 기술을 무조건 믿거나 막연한 자신감을 갖기보다는 “방사선 방호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4.
원자력 산업은 핵무기의 개발을 위한 기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원자력은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시킨 원자폭탄과 소련의 원자탄 개발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핵무기의 개발에 가담한 자들은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953년 12월 8일 유엔총회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 연설, 즉 그 유명한 <아톰즈 포 피스(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중략) 핵의 군사 이용이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 미국 또는 미․소가 함께 주체가 되어서 상업 이용으로 눈을 돌리게 했던 것이다. (중략) 새로운 물리학이나 과학기술을 써먹겠다는 사람들의 바람 같은 것을 따르기는 했지만, 애당초 원자력의 상업 이용은 커다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위로부터’ 도입되었던 것이다. (중략) 이 배경에는 국가 권력과 산업자본보다는 금융자본이 작용했으며, 국제적인 흐름도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의 결과,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자력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청춘 남녀의 애달픈 사랑인가
붉게 타오르는 빛이 보이지도 않고
페로몬 향이 나는 사랑의 냄새도 없는 것이
몸과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사랑하는 이의 속을 활활 태워버리고는
천년이 지나 발견된 미라에도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을
지독한 사랑의 흔적 같은
방사능
―「방사능 시대․2000」 전문
“방사능”은 “빛이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속을 활활 태워버리고는/천년이 지나 발견된 미라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지독한 사랑의 흔적 같은”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방사능이 스며드는 환경에, 즉 “방사능 시대”에 놓여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에서 보았듯이 원전 사고는 대재앙을 가져온다.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명체들이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도 정부와 원전 관계자들은 안전 신화를 계속 내세운다. 그들의 주장은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이 예외 없이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에서 허위임이 드러난다. 그들의 주장대로 원자력 발전소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면 전력 소비가 많은 대도시에 세우는 것이 마땅할 텐데,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원자력이 무한한 에너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곳으로 전달될 뿐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총량이 일정하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열역학 제1법칙)에 따라 무(無)에서 창조될 수 없듯이 원자력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라늄의 에너지를 핵에너지의 형태로 변환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원자력은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의 선진국은 우라늄 매장량의 한계, 안전사고에 대한 공포, 방사성 폐기물 처리의 어려움, 막대한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에 비해 부족한 경제성 등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을 포기하는 추세이다. 유럽의 원자력을 주도해온 프랑스는 물론이고 미국, 독일, 핀란드, 이탈리아 등이 원자력 발전의 계획을 축소하거나 동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추세를 한국 사회도 인지할 필요가 있는데, 채상근 시인이 그 역할을 선구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과 전망을 원전의 역사와 배경은 물론 그곳에서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삼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토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악의 선을 뿜어내는 방사능에/인간은 아무런 방어를 할 수 없다는/사실을”(「방사능 시대․2002」) 우리에게 전하며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孟文在 |시인․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