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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읽기] 드라마 작가 30년…'고수의 저력' 돋보여 SBS 김수현의 '완전한 사랑' 시청자들 '통속성'에 빨려들어 SBS의 김수현 드라마 ‘완전한 사랑’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방송드라마 한 편에 웬만한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물량을 투입한다. 제작진의 수준도 높아졌고 연기자들의 상품성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수준은 영 올라가질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작가에게 있다. 그들은 너무 젊다. 그래서 순간을 좇는다. 젊은 주인공부터 늙은 아버지, 한 많은 이모까지 모조리 ‘20대 버전’으로 대사를 읊는다. 나오는 직업들도 그녀들의 친구들이다. 홍보사 직원이나 잡지사 기자, 디자이너 일색이다. 여성이 콘텐츠를 독점하다시피 한 21세기라고 하지만 한국의 TV 드라마는 ‘젊은 그녀의 취향’으로 점령되었다. 깊이와 무게가 없으니 감동이 따를 리 없다. 그러나 오랜만에 김수현의 드라마 ‘완전한 사랑’을 보니 고수의 저력을 재확인한다. 항상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면(물론 예외도 있었으나) 그리 기대치 않았던 연기자들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본다. 연기자로서 대성할 만한 용모와 매력은 지녔으나 ‘목소리의 한계’를 지닌 차인표가 배역과 녹아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딱 떨어지게 야무진 연기를 펼치는 김희애도 마찬가지다.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때로 희화화하고 패러디했던 ‘일상적인 대사의 묘미’이다.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요’ 대신 ‘사랑해요-정말루, 당신을요’ 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식이다. 급할 때는 토씨도 생략되고 말도 헛나온다.
언젠가 존경하는 가수 조영남씨가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를 극찬하며 말했다. “그 주인공 여자가 콘택트렌즈를 끼면서 전화하는 장면 있잖아? 정말 이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던 자연스러움의 극치야. 사실 우리가 평소에 그러는데 한 번도 영화에는 나오지 못했던 것, 다들 폼잡고 연기를 위한 연기만을 했잖아?” 옳은 말씀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김수현 드라마에서는 수없이 봤던 것들인데…’라고.
하지만 김수현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통속성’이다. 불행과 불운의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가진 여주인공에게 ‘모든 여성들이 그리던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난다.
그는 ‘그녀’를 위해 종합선물세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는 부자이고 잘생기고, 게다가 성격까지 좋다. 세상에 이런 남자는 절대로 없다는 것을 절절한 체험으로 확실히 알지만 여성들은 자발적인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 통속성에 웃고 울며 드라마의 인물들과 ‘한통속’이 된다.
한 작가가 30년을 내리 TV 드라마를 썼다는 것은 ‘전선 위의 참새’나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같은 놀라움을 우리에게 준다. 방송계뿐 아니라 뭐든 쉽게 쓰고 쉽게 사라지는 요즘 세상에 30년을 건재한 작가의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기쁜 일이다.
(전여옥 /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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