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여, 팔불출이 되자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술좌석에서 모두가 ‘팔불출’이 된 적이 있다. ‘팔불출’이란 여러 모로 쓸데없이 몹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특히 자식과 아내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과거 아버지가 중심이었던 세계에서는 분명 자식자랑과 아내를 칭찬하는 것이 남들에게는 놀림감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이 아비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아비는 흐뭇하고 즐겁기만 한 것이 요즈음 세태이다. 좋은 구석보다 나쁜 구석이 많아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팔불출이 많을수록 가정은 건강해지고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밝은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날 술좌석에서는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이야기의 큰 줄기였다. 저학년의 아이를 둔 친구들은 사교육 때문에 아내와 다툼도 있었다는 등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가능한 한 아이들의 부담을 덜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경제의 부담을 덜기 위해 기초적인 예능계열 외에 학과 과외를 시키는 내 입장에서는 그 대화가 왠지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대학을 다니는 아이가 있는 내게 친구들은 우리가족의 경험이나 조언을 부탁하였지만, 세 아이 모두에게 그랬듯이 ‘학교와 담임을 신뢰하라’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줘라’ ‘아이의 능력에 맞는 상급학교를 진학시켜라’ 등 경험적인 이야기를 던지자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나나 아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냐는 반문도 받았다.
하긴 얼마 전 취학통지서를 받은 한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교육과 예능교육을 더 시킨 다음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겠노라며, 인터뷰하는 광경을 보았을 때, 우리부부가 그 모습을 의아했듯이 말이다.
유치원부터 아니 뱃속부터 시작되는 과외. 이는 ‘교육행정의 실수’라는 외적인 요소도 큰 몫을 하지만 ‘내 아이만큼은’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들을 부모 자신의 보시(報施) 대상으로 삼는 그릇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보시의 대상이 된 아이들은 백팔번뇌라는 너울 위에서 멀미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옛이야기를 통해 과외에 대한 약이 되고 독이 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 이야기 중 ‘죽롱신동(竹籠神童)’이란 말이 있다. 당시 주천석이라는 아이가 7세에 장원급제 한 뒤, 아이의 영특함에 반한 어른들은 나라의 동량(棟梁)을 만들어 보겠노라 ‘신동과(神童科)’를 설치하여 시험을 치르자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코흘리개들에게 과외열풍이 불었다. 어려운 과거에 통과하자니 요상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나무로 만든 상자에 아이들을 가두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생긴 말이다.
자연히 시험도 보기 전에 죽은 아이, 정신병을 앓는 아이들도 생겨났다고 하며, 소문난 과외 선생은 미리 선금을 주고 계약했으며, 소위 족집게 선생은 과거를 앞두고는 웃돈을 얹어 초빙하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 ‘청구야담’에 옛날 경상도 합천에 새로이 부임한 현감의 아들이 13세가 되도록 일자무식에다 고약한 버릇의 망나니가 있었다. 자식을 사랑한 아비는 해인사의 고승을 수양훈장으로 삼고 죽이든 살리든 이 아이의 나쁜 버릇만 고쳐달라며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기둥에 묶이고 송곳에 찔리며, 지독한 수업을 받던 아이는 출세보다는 훈장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훗날 스승을 찾은 개망나니는 복수심보다는 스승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 포옹하며, 크게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서 죽롱신동은 우리의 교육현실이며, 수양훈장은 스승에게 아이를 믿고 맡기는 모습이 절실한 우리의 이상향이다.
부모의 교육에 대한 현명한 선택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결정한다. 가족은 아이들을 죽롱에 가두어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바로 서야 아이들이 우뚝 선다. 그래야만 아비는 아이들을 맘껏 자랑할 수 있는 팔불출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나라의 미래라고 하지 않았던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한철수/시인·좋은아버지가되려고하는사람들의구리모임직전회장
기재일 : 200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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