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고려불화, 왜 대부분 외국에 있을까?
고려불화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종교예술로 꼽힌다. 섬세하고 단아한 형태, 붉은색·녹색·청색 등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의 조화, 호화로운 금니(金泥)의 사용, 흐르는 듯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묘(線描)는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미(美)의 세계를 창조했던 고려인의 높은 품격을 잘 보여준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160여점. 그 중 130여점이 일본에, 20여점이 미국과 유럽에 있다. 국내에 있는 10여점은 최근 외국에서 구입한 것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그림들은 언제 어떤 경위로 해외로 유출됐고, 왜 일본에 많은 걸까? 고려불화 전문가인 박은경 동아대 교수는 "고려시대에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일본 사신에 대한 증여품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고, 고려 말 왜구들이 약탈하거나 임진왜란 때 유출된 것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내에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숱한 외부 침략으로 불에 타고, 조선시대 폐불(廢佛)정책으로 상당수가 소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불화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1868년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 때 일본 정부가 토속신과 외래신을 구분하는 '신불분리(神佛分離)' 정책을 펴면서 많은 불상·불화들이 소각·파괴됐는데 이 시기에 많은 불교미술품이 해외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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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만에 日서 돌아온 觀音의 눈빛은 쓸쓸하기만…
내일부터 '고려불화大展'
명품 중 명품 '물방울 관음'… 현해탄 건너 처음 선보여
美·日·유럽 등에서 귀국… 동아시아 불화 비교 감상도
전시장 한복판, 감실처럼 조성된 어두운 공간에 그림 한 점에만 조명이 떨어진다. 온 세상 중생의 고난을 보살핀다는 자비(慈悲)의 관세음보살이 비단 화폭 속에서 고고한 자태로 빛나고 있다. 슬픈 듯 우수에 젖은 눈빛, 팔에 걸쳐진 채 발아래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베일,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일반적인 수월관음도가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인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모양 광배(光背) 안에 서 있는 자세여서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관음보살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물 위를 스치는 옷자락 끝까지 흐르는 선(線)의 아름다움,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농담(濃淡)으로 효과를 준 색채감이 환상미의 극치를 이룬다. 화면 오른쪽에는 '해동(海東) 승려 혜허(慧虛)가 그렸다'는 글씨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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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 소장‘수월관음도’. 불법(佛法)을 구하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다는 내용을 그린 고려불화다. 비단에 채색, 142.0×61.5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교과서 등에서 고려불화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일본 현지에서도 한 번도 전시되지 않았던 이 그림이 처음으로 현해탄을 건너 고국 땅을 밟았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조선일보와 KBS 후원으로 12일 개막하는 《고려불화대전(大展)-700년 만의 해후》를 위해서이다. 11월 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일본·미국·유럽·한국 등에 소장된 고려불화 61점, 이들과 비교, 감상을 위한 중국·일본 불화 20점,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전기 불화 5점, 고려불상과 공예품 22점 등 108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고려불화는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을 비롯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이번 전시는 출품기관만 44곳에 이른다. 이번 특별전을 기획하고 2년 동안 준비한 민병찬 전시팀장은 "출품작 대부분이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소장한 사찰에서 '그림도 한 번쯤은 자기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겠나'라면서 대여를 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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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조코지(淨敎寺) 소장‘아미타팔대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 아미타여래가 여덟 보살을 거느리고 움직이는 듯하다.
전시는 주제별로 구성됐다. 1부 '깨달음의 존재, 부처'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부처를 주존(主尊)으로 그린 작품들을 모았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는 아미타불이 보살들을 거느리고 극락에 왕생할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내영도(來迎圖) 형식으로, 서하(西夏)의 그림인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와 나란히 전시됐다. 두 그림은 주제와 구도가 비슷하지만 색채감이 뚜렷이 구분된다.
2부 '중생의 구제자, 보살'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주제로 한 불화들을 전시했다. 일본 단잔(談山)신사 소장 '수월관음도'는 귀갑·연꽃무늬를 입힌 붉은 치마의 색감과 옷 주름에 사용된 금니(金泥)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죽은 후의 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그린 그림들도 나란히 놓여 있어 비교, 감상할 수 있다.
3부 '수행자의 모습, 나한'은 1235~6년에 그려진 '오백나한도' 연작을 선보이며, 4부 '이웃나라의 불보살'에서는 고려불화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중국과 일본의 불화들을 전시해 동아시아의 불교회화를 넓은 시야에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특히 1909년 코즐로프 탐험대가 하라호토에서 발굴한 12~13세기의 서하(西夏) 불화 3점(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이 주목된다. 에필로그인 '전통의 계승'에서는 조선전기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들을 통해 고려불화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조선일보 20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