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마을 배추작목반이란 수상쩍은 모임이 있습니다. 올해 처음 결성된 주제에 대풍을 꿈꾸는 맹랑한 모임입니다. 딴에는
조직적으로 해보겠답시고 '농업기술지도사', '작업반장', '구매담당', '홍보담당' 등등 역할도 나누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두둥~ 이 작목반은 올해 배추 파종을 세 번 하게 됩니다.
1. 친환경 상토에 양분이 부족한 걸 걱정하던 농업기술지도사, 친환경 상토에 영양분이 될 미생물배양체를 섞기로 결정. (참고로 농업기술지도사께서는 다년간의 배추농사 경험이 있음)
2. 파종 10일 전인 8월 초, 미친 듯한 폭염을 뚫고 작목반원들이 묵묵히 농업기술지도사의 지도에 따라 친환경 상토와 미생물배양체를 섞고 물을 뿌리고 뒤집어주며 발효시킴.
3. 8월 15일, 1차 파종. 휴가라고 놀러온 일가친척 조카아이까지 동원하여 휘파람과 불암3호와 추광을 골고루 파종. 파종기가 오작동하여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고 다시 뿌리는 참사도.
4. 벌레를 막기 위해 한랭사를 씌우고, 기온 떨어지지 않게 비닐도 씌우고, 매일 비닐을 씌웠다 벗기고, 두 번씩 온도 맞춰 물
주고, 비오면 비 와서, 바람 불면 바람 불어서, 해가 너무 쨍하면 해가 너무 쨍해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나가 살피면서 모종
키움
5. 발아율 좋지 않음. 추가 파종 결정.
6. 모종이 통 자라지를 않음. 추가 파종한 씨는 발아율이 정말 형편없음. 원인이 뭘까에 대한 의구심이 모락모락. 모종팀은 매일 안절부절, 노심초사.
7. 농업기술지도사, 벌레를 막기 위해 친환경 벌레기피제를 뿌리라고 지시. 모종팀, 호기롭게 목초액 성분을 탔으나 너무 많이
탐. 뿌리고 돌아서니 애지중지 키운 모종들이 시들시들, 잎이 타기 시작. 침통하게 농업기술지도사에게 연락.
8. 농업기술지도사, 전격적인 재재파종을 결정. 그날 오후에 첫 파종 때 만큼의 배추씨를 다시 파종.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우기로.
9. 모 작목반원이 미생물배양체에 대해서 찾아보다 '상토용으로 혼합하거나 상토로 사용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를 봄. 동공지진.
그러나 친환경 상토만 써서 재재파종한 모종판을 1차 파종한 자리에 갖다놓으니 마찬가지로 발아율과 성장율이 형편없음.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10. 첫 파종분과 재파종분이 약해를 이기고 당당하게 살아남음. 갑자기 모종 4만 포기 가진 어엿한
대농, 모종 부자 됨. 나중에 여기저기 나눠주며 인심도 씀. 하지만 여전히 잘 크지 않아 애를 태웠으나, 어렵쇼, 완전 뿌리가
실해! '뿌리왕 모종' 됨.
11. 재재파종분은 늦게 파종한데다 영양분이 부족하리라는 걱정에 오줌 액비 등을 과도(?) 살포한 덕에 웃자람. 잎만 무성. 다행히 뒤늦게 뿌리가 차서 정식에는 문제가 없었음.
12. 9월 5일, 배추 정식 시작. 바로 겉절이를 담가도 될 듯한 관행농 모종과 비교하면 우습다 못해 애처로울 지경이지만, 나름 '뿌리왕'들. 다행히 잘 자람.
13. 씨앗 2,000개씩 든 배추씨 23봉지를 파종하였으나 수확하게 될 배추 수는 아직 미지수.
14. 아직도 1차 파종과 재파종한 씨앗들의 발아율과 성장율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는 미스테리.
15. 평생 농사 지어봐야 배추농사 몇 번 지을 수 있을까? 그것도 매년 기후와 조건이 다른데.... 과연 농사에 전문가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경험.
16. 하지만 내년엔 더 잘하고 싶다. 배추씨들아,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