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0일 수요일 10시에 제기동 선농단에서 선농제향을 보고 왔습니다.
선농단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 2동 274-1번지에 있는 제단으로써, 조선조 성종 7년(1476년)에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선농제향의 유례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자면, 신라때 입춘뒤 첫 해일에 명활성의 남쪽 옹살곡에서 선농제를 지냈으며, 고려때에는 성종 2년(983년) 정월에 황제가 원구단에서 기곡제를 지내고 몸소 적전을 갈며 신농에게 제사지내고 후직을 제향했습니다.
그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 융희황제 4년(1910년) 5월에 제사를 지낸것을 마지막으로, 일제치하에 들어가면서 폐지되었다가, 후에 1979년부터 제기동의 유지들에 의해 선농단 친목회를 구성, 1년에 한번씩 선농단에서 치제를 올리다가 1992년부터 동대문구에서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다른 스퀘줄(?)이 있었으나, 특별히 1년에 한번 열리는 이 선농제향을 보기 위해 땡땡이(?)를 치고 보러 갔습니다. 밤새도록 온라인 게임인 군주를 즐기다, 새로 산 책들을 읽다 늦게 잠을 든것이 화근이었습니다. 11시에 기상, 허급지급 제기동행 버스를 타고 간신히 제사 시간에 맞춰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의 제향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폐례(농업신인 신농에게 폐백(예물)을 드리는 의식-초헌관), 초헌례(초헌관이 첫 번째로 농업신에게 작을 올리는 의식-초헌관), 아헌례(아헌관이 두번째로 농업신에게 작을 올리는 의식-아헌관), 종헌례(종헌관이 세번째로 농업신에게 작을 올리는 의식-종헌관), 음복수조례(제관이 제사를 마치고 신이 내리는 제물(복)을 먹는 복식), 망요례(폐백과 축문을 태워 땅에 묻는 의식)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YTN에서도 취재를 하러 오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에 제향이 치루어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선농제라는게 어떤것인지 눈으로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오신분들이 대부분 노인, 구 유지, 구의원, 유치원 아이들 등이었습니다. 아쉬운점은 가장 이 행사를 잘 봐둬야 하는 유치원 아이들이 맨 끝에서 보았다는 점에서 너무 아쉽습니다. 차라리 구의원 분들 앉는 곳을 유치원 아이들을 앉히는게 낫지 않을까요?
선농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선농탕(설렁탕) 시식이겠지요!!
하지만 이날 주최측의 준비부족과 우리 한국의 시민의식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설렁탕 양이 부족했던것은 아닙니다. 자원봉사자분들의 불친절은 더더욱 아닙니다.
주최측이 준비해 두었던 간의 식탁은 수많은 인원(?)들을 수용하기엔 부족하였습니다.
뭐 그럴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이리 많이 올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문제는 시민의식의 부재였습니다. 일단 참가자 대부분이 놀랍게도 노인분들과 노숙자 분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노인분들의 행태에 저는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마치 식당에 돈 주고 음식을 시켜먹은듯, 자원봉사자 분들께 "설렁탕 빨리 빨리 안 갖다 줍니까?" "막걸리, 떡, 김치좀 더 갖다 줘요" "아 몇분을 기다렸는데 왜 안주는 겁니까?" 등의 고함이 빗발쳤습니다. 거기에 더 가관으로 한그릇을 더 드시고 추가로 더 뺏어서 드시는 분과, 술주정을 부리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거기에 노숙자들이 몰려와 선농탕을 나눠주는 곳까지 기웃거려 음식물을 제공하지 않으면 행패를 부리는 추태(?)까지 부렸습니다. 드시는것 좋습니다. 하지만 다 드셨으면 그릇을 깨끗히 한곳으로 모아두시거나, 여분의 음식물을 땅에 버리지 마셔야지요!!
결국 저는 20분 기다린 끝에 설렁탕을 먹지 못하고, 오히려 자원봉사자 분들이 빈 일회용 그릇들을 치워주는 일만 거들어 주다 왔습니다.
일부 몇 사람들 때문에 일년에 한번뿐인 문화행사를 망칠순 없습니다. 주최측의 세심한 행사 진행과 시민의식의 함양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