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은 항상 옳은가...
김환기 그림 속 서정주의 시
피나 PINA ・ 2021. 5. 3. 23:45
"영원의 노래", by 김환기, 1957, 캔버스에 유채, 162.4x130.1 cm
화가 김환기(1913~1974)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철학을
그만의 조형 언어로 승화시킨,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중의 거장인데요.
왼쪽: "종달새 노래할 때", by 김환기, 1935, 캔버스에 유채, 178×127 cm (소재불명) /
오른쪽: "귀로", by 김환기,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98x79 cm
화가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김환기는 우리 고유의 색을 찾기 위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파리시대 (1956~1959)'라고 불리는,
1950년대 파리 유학 시절 화가 김환기는
우리 고유의 정서를 담은 항아리와
매화와 달의 이미지들을
우리 산과 하늘, 바다를 닮은
푸른 빛을 배경으로 화폭에 담아내게 되죠.
1957년 프랑스 파리 생 루이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시절의 김환기 화백
남도의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가 김환기에게
푸른색은 우리강산을 상징하는 색이요,
백색은 우리땅의 흙으로 빚은
우리 전통의 백자의 색인 동시에
그 백자와 닮은 보름달의 색이었을 거예요.
이 과정이 있었기에
김환기를 대표하는 푸른 전면점화들의
탄생도 있을 수 있던 것이지요ㅇㅇ
백자와 꽃, 1949, 캔버스에 유채, 40.5×60cm, 환기미술관 소장
"내 뜰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몸이 둥글고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놓여 있는 것 같지가 않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도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칠야삼경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중략)
어쩌면 사람이 이러한 백자항아리를 만들었을꼬……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따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 김환기, 1955년 5월
"매화와 항아리", by 김환기, 1957, 캔버스에 유채, 55x37 cm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
– 김환기 1963년 4월
항아리, 1956, 캔버스에 유채, 100×81cm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 중에서,
단언컨대, 김환기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
한국적 전통과 정체성을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내는
과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한 화가라고 할 만하며,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는데요.
누가 그러더라구여, 김환기의 최대 경쟁자는 김환기,
즉 '김환기 vs. 김환기'라고.
"두 항아리", by 김환기, 1955-1956, 캔버스에 유채, 65x80 cm
'환기블루 (Hwanki Blue)'라고 불리는
푸른 빛을 배경으로 그린
김환기 화가의 다양한 항아리와 달 그림들
먼저 만나보실까요 :)
"항아리와 여인들", by 김환기, 1951년, 캔버스에 유채, 54.0×120.0cm
"여인들과 항아리", by 김환기,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10.0×460.0cm
왼쪽: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by 김환기, 1956, 캔버스에 유채, 61x41 cm /
오른쪽: "여인과 달과 항아리", by 김환기,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100x80.3 cm
그냥 색을 잘 쓰기만 한 게 아니라
원형의 곡선과 함께 표현함으로써
리듬감도 느끼게 하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형시인"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제 생각엔 김환기는
조형음악가이기도 하다능 :)
"섬 이야기", by 김환기, 1940년대, 캔버스에 유채, 80.3×100 cm
김환기의 푸른색만을 주로 떠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아냐, 아냐!
김환기는 노란색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쓴단 말이야>.<
막 찾아서 보여주곤 하는데ㅋ.ㅋ
이웃님들 보시기엔 어떤가요 :)
"가을", by 김환기, 1955, 캔버스에 유채
"정물 StillㅡLife", by 김환기, 1950년대 초, 39.5×39.5 ㎝
"달과 항아리와 벚꽃", by 김환기, 1956, 캔버스에 유채, 50x40 cm
"에코", by 김환기, 1965, 코튼에 유채
"7-VI-69 #65", by 김환기, 1969, 코튼에 유채, 178x127cm
왼쪽: "3-II-70 #143", by 김환기, 1970, 캔버스에 유채, 176x93 cm /
오른쪽: "무제", by 김환기, 1969, 캔버스에 유채, 208.5×157.5 cm
"14-XII-71 #217", by 김환기, 1971, 코튼에 유채, 291x210cm
그런데 말이에요.
김환기의 노란색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구상화들 중 최고가를 기록한
이 <항아리와 시>를 제가 블로그에서든
다른 SNS에서든 언급한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이 시서화의 오른쪽에 적혀 있는 시가
다름아닌 미당 서정주의 시이기 때문.
"항아리와 시 (Jar and Poetry)", by 김환기, 1954
기도
저는 시방 꼭 텡 비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비인 들녘 같기도 하옵니다.
主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든지
날르는 몇 마리의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지와 같이 하시든지
마음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어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서정주 詩
* 도가지: 김치독, 장독 할 때의 그 '독'의 방언
"항아리와 시", by 김환기, 1954
미당 서정주의 시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을 했고
군사독재 시기에는 독재자를 찬양하는
시를 쓰며 양지만을 찾아다녔다는 것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서정주의 시를 적어 넣은 김환기의 시서화가
그의 구상화들 중 최고가를 기록하며
아름다움과 희소성 등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그래서 양가적인 감정을 늘 느끼게 해요.
어떤 이들은 위 짤처럼
서정주의 시가 적힌 부분을 그림에서 잘라내
김환기의 그림만 보기도 하죠.
예술가의 작품을 오직 그 작품 자체의
미적인 가치와 완성도만 보고 평가할 것인가,
그 사람의 행적까지 고려해 평가할 것인가.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전설의 공주 Les Princesses de Légende", by 안톤 판 베일리 Antoon van Welie, 1899
실력도 뛰어나고 예술사적으로도
비중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치에 부역했거나 나치의 주장에 동조한
전력이 있는 예술가들, 인종차별주이자였거나
또는 인종차별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어도
최소 백인우월자였던 건 확실한 예술가/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서구에서도
이런 논쟁이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거든요.
당대 잘나가는 화가였지만
히틀러의 추종자였고
무솔리니의 초상화까지 그리면서
20세기 미술사에서 사실상 지워지다시피
했다가 최근 재발견, 논쟁이 재점화된
네덜란드의 안톤 판 베일리가 그 중 한 예이구여.
"하이드파크 Hyde Park", by 앙드레 드랭 Andre Derain, 1906, 캔버스에 유채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열린
<야수파 걸작선>에서 앙리 마티스와 더불어
야수파를 주창한 화가로 재조명되었던
프랑스 화가 앙드레 드랭(1880~1954)도
'나치 공식 예술가'로 활동했던 인물이에요.
이 전시회를 주최한 회사가 "줄.리"라고도
불리는 그분의 '코.바나 컨.텐츠'였
전시회를 열 때 주최측이나 언론에서
단순히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 투톱이며
현대미술의 진정한 개척자라고만 드랭을
소개하지 않고, 그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던
나치 부역 전력까지 상세히 소개했다면,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이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과 평가도 달라졌을까요?
"빅벤 Big Ben", by 앙드레 드랭 Andre Derain, 1906, 캔버스에 유채
이상으로,
김환기의 노란색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의 <항아리와 시>만큼은,
그 아름다운 색감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의 시 때문에
노란색이 포함된 김환기의 다른 그림들만큼
맘 편히 즐길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봤는데요.
그 예술가의 행위는 밉지만
그의 작품까지 미워하진 말자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웃님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항아리와 시", by 김환기, 1954
[출처] 아름다운 것은 항상 옳은가...김환기 그림 속 서정주의 시|작성자 피나 P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