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영화 : 밍크코트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2개부문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이 영화는 할머니의 안락사-'연명치료중단'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정보를 가지고 영화를 봤었기 때문에
당연히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와 쟁점들을 다룰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예상들이 계속 빗나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제 예상을 계속 벗어나고 있어서 사실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연명치료중단, 이로 인한 가족간의 의견충돌, 불화, 해묵은 갈등...
거기에 중단을 반대하는 주인공 현순(황정민)의 종교문제와 이로 인한 갈등까지.
하나만 떼어내도 영화 한편은 될 듯한 소재들이 겹겹이 얽혀 있습니다.
처음에 현순이 등장할 때는 '오아시스'의 종두를 보는 느낌이 들다가,
약간 이단처럼 보이는 현순의 종교와 관련해서는 '불신지옥'이나 '마더'를 보는 듯한
오싹하고 섬뜩한 호러나 스릴러의 느낌도 납니다.
가족들간의 갈등장면은 '초록물고기' 등에서 보는 가족드라마 같다가,
밍크코트가 등장할 때는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허진호식 가족드라마도 생각나고,
병원에서의 엎치락 뒤치락은 무슨 장례식 소재의 블랙코미디 영화 같다가,
마지막 사건에서는 임권택의 '축제'의 우화도 떠올랐어요.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예측은 계속 빗나갔고,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떤 얘기를 하고자 한 건지... 주제가 뭔지...
그냥 먹먹한 마음만을 가지고 극장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려 하고,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 자체가
조금 무리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영화 좀 봤답시고, (또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약간 낮추어 본 것도 있구요-.-)
영화를 머리로 파악하고 쉽게 재단하려 한 것 자체가
큰 실수이자 무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명치료중단이건 종교건 가족이건...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들이 실제 사는 모습일 뿐이겠죠.
영화는 그런 우리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또렷하게 응시하고 관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선이...
깊고 날카로우면서도 예의 바르고 따뜻합니다.
섣부르게 인물을 재단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고,
섣부르게 인물을 동정하거나 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차갑게 방관하며 관찰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시선의 깊이... 사려깊음... 묵묵한 자세...
이 감독이 정말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미쳐 느끼지 못했던
영화 속 인물들 한명 한명이 내 마음 속 깊숙이 들어와서
마음이 앓듯이 아파왔습니다.
주인공 현순은 물론이고 할머니,오빠,언니,시누이,딸,사위 할 것 없이 모두 다...
저예산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기 때문에...
무거운 소재의 영화지만, 조금 가볍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얼마나 얄팍하게 생각하고 살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종의 반성이자 깨달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또 그로 인해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정화되는 느낌을 얻기도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과, 삶의 무게와 소중함도 다시금 깨닫게 되구요.
참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이런 느낌을 얻게 된 것 같구요.
다시금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기대도 조금은 더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쫌 오버한 감도 있지만, 솔직한 느낌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이라면,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신다면
저는 첫 관람에서 놓쳤던 더 많은 것들을
보시게 되지 않을가 생각해 봅니다.
밍.크.코.트.
<사족1>
팜플렛에 '웰메이드 독립영화'라고 나와 있던데요.
웰메이드라는 말에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웰메이드. 맞습니다.
유명하고 인기도 많았던 독립영화들 많이 있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들을 보면서도 미세하게 어설픈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또 그런 점이 독립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미세한 어설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이고, 첫 장편연출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어느 저명한 영화감독의 작품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매끄럽습니다. 연기,촬영 등등 모든 면에서요.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들고찍기 촬영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예전에 이창동 감독도 '오아시스'인가에서
시도하려다가 실패하고, 처음부터 다시 고정으로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모든 장면이...
그냥 두말할 필요없이 참 잘 찍었다는 느낌이 그냥 듭니다.
막 들고 찍었는데, 실수하거나 버려진 느낌이 하나도 없고,
모든게 치밀하게 계획된 것처럼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참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제가 제일 잘 찍었다고 생각한 '들고찍기' 영화가 '아이앰샘'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 못지 않게, 또는 더 잘 찍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족2>

이 영화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게 황정민씨 연기인데요.
연기에 대해 잘은 몰라도, 역시 뭐 훌륭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다들 정말 잘하셨구요.
제가 언급하고 싶은 건 제일 비중이 적은 현순(황정민)씨의 나이어린 사위분 !
이 분이 거의 대부분의 코미디를 책임지는데,
이 코미디가 빵빵 터지고, 질도 아주 높은 기분좋은 웃음을 줍니다.
이 영화가 의외로 코믹하고 재미있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 건
이 분의 기여가 큰 듯.
soopgnl (네이버)
첫댓글 들고 찍기 맨먼저 시도한 감독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선두자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시작해서 그의 영화대부분이 들고찍은 작품인걸로 알고 있죠!! 우리나라에선 그리 많지도 않고 있다해도 ^^ 이 영화 줄거리도 흥미로운데..볼 날있겠지요**